이마이 리사는 하네오카 학원의 인기인이다. 댄스 부에 속해있는 고등학교 3학년으로 유명한 걸즈 밴드 로젤리아에서 베이스를 맡고 있다.

사실, 악기를 다룬다는 게 알려지기 전까지만 해도, 멋있지만 일진같은 선배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실제로 갸루들이랑 엄청 친하기도 했고.

하지만 로젤리아 공연을 보고온 수많은 동급생들이 '리사 센빠이'를 외치며 혼절하는 사태가 발생. 

그 이후로 하급생 사이에서 이마이 리사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던 것이다.

 하네오카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노하라 나츠메 역시 리사 센빠이를 연호하는 아이 중 하나였다.

그 팬심이 어느 정도냐면 리사가 벗은 양말을 입에 물라고 해도 포상이라며 환호할 것이며,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유키나일 정도였다.

사실 다소 위험한 수준으로 애정을 발산하는 그녀는 오늘, 이마이 리사에게 고백을 준비하고 있었다.

 고백 장소는 학교 뒷뜰. 대담하게도 나츠메는 리사의 신발장에 러브레터를 써넣고 기다리고 있던 것이었다.

몇분이나 지났을 까. 헐레벌떡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바쁜 걸음과 거친 숨소리, 나츠메의 리사 덕력 6개월 차 분석에 의하면

이 숨소리는 이마이 리사였다.

"기다렸니? 미안 미안. 부활동이 좀 늦어져서....."

 리사가 다소 지친 표정으로 손을 흔들며 말했다. 오랜만에 친구를 보는 듯 밝은 표정이라 나츠메는 저도 모르게 외쳤다.

"아니에요! 선배님! 저, 저도 방금 왔는걸요? 이번에 만나서 정말...."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 싶어서 불렀어?"

 리사는 벽에 기댄 채 물었다. 나츠메에겐 절호의 찬스였다. 이렇게 급하게 뛰어온데다가, 자신이 무슨 말을 할지 관심도 가져준다.

이건 그린라이트 아닌가? 

"리사 선배 사랑해요!"

"아 그래? 고마워."

 리사는 매우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나츠메는 뭔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러니까.... 저는 선배를 그... 사랑한다구요! 애인이 되고 싶어요!"

"음.... 미안해? 난 연하는 좀 취향이 아니라서."

"정말 사랑한다구요!"

"사랑이란게, 뭐 일방적인건 아니잖아? 나보다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게 어때? 일단 우린 이름도 모르고,

난 다짜고짜 고백하는 사람은 별로거든."

"아... 그..... 노하라 나츠메입니다! 하네오카 학원 2학년이고...."

"너에 대해 궁금하단 뜻이 아니었는 데."

 나츠메의 마음 속 연심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비뚤어진 마음이, 그 틈새를 타고 넘어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 여자 때문이죠?"

"응?"

"그 미나토 유키나라는....."

".....저기 있잖아?"

 리사가 한걸음 두걸음 다가오기 시작했다. 주변을 슥 둘러보던 리사가 나츠메의 멱살을 틀어잡더니 벽에 밀어붙였다.

무슨 힘이 이렇게 쌘지 발버둥쳐도 밀어낼 수가 없엇다.

"선배한테 말이 좀 짧다?"

"아...켁..크...그러니까..."

"너 나츠메라고 했지? 몇 반이야? 나 아는 후배 중에 너 아는 애가 있을거 같은데. 한 번 물어볼까?"

"죄, 죄송합...."

 나츠메를 내던지듯이 밀어냈다. 흙바닥을 구른 그녀의 교복이 엉망이 됐다. 리사가 자기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리사가 나츠메에게 한마디 더하려는 찰나

휴대폰이 울렸다. 전화를 본 리사의 표정이 급격하게 변했다. 마치 강아지마냥 밝아진 표정에, 있지도 않은 꼬리가 흔들리는 게 보였다.

"응응, 유키나! 지금 교문이라고? 알았어 금방 갈께! 뭐? 에이 아냐! 그냥 부활동하다가 좀 늦었어. 갈께!"

 리사는 그렇게 뒤뜰에서 사라졌다. 흙바닥에 주저앉은 나츠메는 한참 바닥을 바라보다가 몸을 털고 일어났다. 

조용히 교실로 돌아온 그녀는 가방을 챙겨서 집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