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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여고생 두명이 서로 고백하는 이야기

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5.30 10: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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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너를 좋아해.”



승연은 눈을 꼭 감았다. 감정이 자꾸만 흘러넘쳐서 가슴이 넘실거린다. 두근거리는 심장이 입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갑작스러운 고백은 아니었다. 그 언젠가 지연을 향한 야릇한 가슴의 두근거림이 사랑임을 알았을 때부터. 승연은 차근차근 이 순간을 준비해 왔었다.



매일 밤 곰돌이 인형을 의자에 올려놓고 고백 연습을 했고, 철저한 로케를 통해서 완벽한 장소를 골랐다. 지금도 승연이의 가방에 들어 있는 귀여운 고백일지에는 ‘드디어 고백 준비 완료! 날짜는 5월 29일 금요일. 위치는 지연이의 집으로 향하는 마지막 골목길. 특히 노을이 아름답게 비추는 곳에서 하자.’라고 적혀있었다.


준비 완료는 얼어 죽을, 승연은 고백일지를 쓰던 일주일 전의 자신을 저주했다. 미친 듯이 두근거리는 가슴은 하나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응 나도 좋아해.”



지연은 잠깐 생각하는 듯하더니 태연하게 대답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승연의 대답만을 간절히 기대하던 승연의 사고가 잠시 정지했다. 지연의 태도는 고백의 승낙치고는 너무나도 태연했다. 그 순간 ‘어? 얘 지금 뭐 착각하는 거 아닌가?’하고 승연의 가슴 한구석에서 의문이 피어올랐다. 승연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저기, 아니, 나는 그런 좋아해 가 아닌데?”


“응? 그럼 싫어한다는 거였어?”



어떻게 저 말에서 그런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지 오히려 궁금할 정도였다.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이는 지연을 보며 승연은 다급하게 자신의 말을 정정했다.



“아니, 좋아해! 나 승연이를 좋아하니까.”


“응 그래서 나도 좋아한다고 말했어.”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구나, 하고 지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못 듣기는 얼어 죽을 승연은 답답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이미 승연의 가슴속의 떨림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승연은 지연이가 이렇게 눈치 없는 아이였는지 전혀 몰랐었다. 기가 찰 노릇이었다.



“아니, 내가 말하는 좋아해는 남자애가 여자애를 좋아하는 그런 좋아해야!”


“에, 승연이는 남자였어?”



아니야, 그건 아니야 승연은 고개를 세게 저었다.



“비유법이야 비유법, 너 공부 잘하잖아! 대충 알아들으라고!”


“헤헤, 승연이한테 칭찬받았다.”



얼굴을 붉히는 포인트가 잘못됐어. 승연이는 지연이의 행동 하나하나에 태클을 걸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얼굴을 붉힌 지연의 모습은 분명 곰돌이와의 고백 연습 중 상상하던 일이었다. 그 중에는 눈물까지 글썽이며 얼굴을 붉히는 지연이의 모습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맹세의 키스를 한 후였지, 이런 상황 따위가 아니었다.



이미 고백 계획은 쓰레기가 된 지 오래였다. 될 대로 되라지, 승연은 아무렇게나 소리쳤다.


“좋아해 가 아니라 사랑해야! Like가 아니라 Love! 사랑한다고!”


“그건 에로스의 의미? 스토르게? 필리아? 아가페?”


“응 너 잘난 건 알겠는데, 너무 오버했어 지연아.”



승연이가 나를 미워해, 보기 좋게 풀이 죽은 지연이가 중얼거렸다. 지연이가 강아지였다면 분명 귀랑 꼬리를 축 늘어뜨리고 있을 듯한 모습이었다. 승연은 그 모습이 귀엽게 느껴지긴 했다, 귀엽기는 했지만! 지금 이 장소에서 보고 싶은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승연은 심호흡을 했다. 아무리 눈치 없는 자신이라도 지연이가 장난을 치며 말을 돌리고 있다는 사실은 눈치챌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지쳐간다. 이제는 슬슬 솔직하게 말해줬으면 좋겠다. 승연은 지연이 그 정도 눈치는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제 말장난은 그만하자, 나는 지연이가, 네가 좋아. 아니, 사랑해. 너는 어때?”


“음….”



깊은 고민에 잠긴 듯한 지연의 모습을 보자, 다시 한번 승연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승연이가 계획하던 모습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가장 중요한건 지연의 대답이었다.


제발 응이라고 말해주라고, 승연은 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응, 나도 승연이를 사랑해. 이 정도.”


“작아! 겨우 그 정도였어?”



응 이란 말은 뛸 듯이 기뻤지만, 이어지는 말에 확 가라앉아 버렸다. 지연은 승연의 태클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지연은 양손을 어깨너비 정도로 벌리고 있었다.



“미안, 아까 물걸레 청소를 해서 그런지 어깨가 잘 안 펴져,”


“조금은 무리하라고! 중요한 대답이잖아….”



승연은 머리가 다 아플 지경이었다. 승연은 지금 들은 지연의 대답을 승낙의 의미라고 받아들여야 할지 긴가민가했다. ‘일단 사랑한다고 들었으니 승낙인 건가? 그럼 오늘부터 1일? 이런 걸 고백이라고 할 수 있을까?’ 머릿속이 착잡했다. 이런 승낙따윈 바라지 않았다. 이럴거면 차라리 고백하지 말걸하는 후회의 감정이 밀려들어왔다.



“그렇지만 여자끼리잖아.”


“아…….”



그 말에 승연의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상상하기도 싫었던 최악의 대답이었다. 지연이는 남자 친구는 없었지만, 여자를 좋아한다는 말 같은 건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사랑에 성별은 없다느니, 조금만 기회를 주면 지연이가 나를 좋아하게 만들 것이라니 수백번의 고백 연습중에서 승연은 몇 가지 대답을 준비하긴 했지만. 막상 실제로 들으니까 좀처럼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자신의 욕심 때문에 지연이의 미래를 망치는 건 아닐지 두렵게만 느껴졌다.


머릿속이 하얘져서 어쩔 줄 몰라 하던 승연의 눈앞에, 지연이 가늘고 긴 손가락이 휙 하고 다가왔다.



“승연이는 검중이 좋아 중약이 좋아?”


“또 이상한 소리나 하고! 제발 조금은 진지해지라고!”



저런 녀석을 걱정한 자신이 바보 같게만 느껴졌다. 지연은 손가락들을 번갈아 가면서 약간은 외설적인 손가락 움직임을 보였다. 그 모습에 승연은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평소에 길고 아름답다고 느꼈던 지연의 손가락이었지만, 그것이 자신의 몸 안에 들어온다고 생각하니 야하고 외설스럽게 보였다. 승연은 그런 생각을 털어버리기 위해 고개를 휘휘 저었다. 이런 주제는 역시 너무 이르다고 생각했다. 휘휘, 휘휘 승연이 계속해서 고개를 젓고 있자니 지연이가 무엇인가를 건네왔다.




"멘토스 먹을래?"


"아, 고마워.. 가 아니잖아!"




그러면서도 멘토스를 받지 않지는 않았던 승연이였다. 레몬맛 멘토스의 상큼한 향기가 입을 채웠다. 첫 키스는 레몬맛이라고 하던가, 승연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의식하기 시작하니까, 지연이가 방금 한 승낙의 말도 뭔가 두근거렸다. 승연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 그럼 지연이도 나를 좋아한다는 거 맞지?”


“응 좋아해, 이 정도”



또 어깨 정도로 팔을 펴는 지연의 모습이 갑자기 짜증이 났다. 얘는 왜 진지함이 없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승연은 지연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승연은 어깨너비로 펼친 지연의 팔을 붙잡고 있는 힘껏 쭉 벌려버렸다. 갑작스러운 승연의 행동에 지연의 어깨에서 약간 두득거리는 소리가 났다.



“아아, 아파, 진짜 아파, 미안해 승연아.”


“응, 너는 좀 아파봐야 해.”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집까지 팔을 늘려버리고 싶었지만 계속하다가는 지연이가울 것만 같아서 승연은 지연의 팔을 놔주었다. 지연은 어깨를 붙잡고 찡찡거렸다.



“흑흑, 승연이가 나를 괴롭혀.”


“자업자득이야.”



승연은 흥하고 콧소리를 내고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분명 완벽한 고백 계획을 짰을 텐데 왜 이런 분위기가 된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그러자 승연은 지연의 태도가 갑자기 짜증이 났다. 이쯤 되니 자신이 진짜 지연이를 좋아하긴 하는 건가 하는 본질적인 의문이 들 정도였다. 흑흑하고 과장해서 우는 척을 하는 지연을 보고도 아무런 반응조차 해주기 싫었다. 승연은 조금 걸음을 빠르게 해서 지연을 앞서서 걸었다.



“승연이 화났어?”



지연이 슬그머니 승연의 손을 잡아 왔다. 진짜 미안하다는 듯 힘이 없는 지연이의 목소리가 안쓰럽긴 했지만, 승연은 영 복잡한 기분이었다. 자신이 누구보다 열심히 준비했고 기대해오던 고백이 지연이에겐 그저 장난 거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왠지 울적해졌다. 지난 날 신이나서 고백노트 따위를 만들던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하게 느껴졌다.



“아니, 화 안 났어. 그냥 내가 너무 병신같네.”




마음이 싱숭생숭한 탓인지 승연은 마음속에 있던 생각을 가감 없이 말했다. 너무 퉁명스럽게 말한 것 같아서 아차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지연이 무엇인가를 느끼길 바라는 마음으로 굳이 정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런 승연의 마음은 아직도 지연에게 잘 전해지지는 않는 듯 했다.



“미안해, 나도 승연이를 좋아해. 러브의 의미야. 에로스적으로.”


“네네, 그러세요. 많이 러브하세요. 에로스적으로.”




끝까지 지연은 이런 식이었다. 승연은 지연에 대한 오만 정이 다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미안해, 나도 승연이를 좋아해.’라고 말하면 끝나는 일인데, 꼭 무엇인가를 덧붙인다. 지연은 자존심이 강한 아이였다. 그건 승연이도 아는 사실이지만 이럴 때는 그 자존심도 조금은 포기해주기를 바라는 게 승연의 마음이었다.



“그 말 진짜야?”


“말했잖아, 나 너 좋아한다고. 근데 이젠 모르겠다. 솔직히 지금은 네 목소리 듣기도 싫어.”



승연은 지연을 노려보았다. 처음 고백할 때 느꼈던 그 두근거림이 바보 같게만 느껴졌다. 노을이 지연의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승연은 지금처럼 노을빛에 붉게 물든 지연이의 얼굴을 보며 처음으로 사랑이란 감정을 느꼈던 자신을 떠올렸다. 지금은 그게 아득히 지나가버린 추억속의 일인 것 처럼만 느껴졌다. 가슴의 두근거림도 사랑의 감정도 이제는 잘 모르겠다.



“아니, 그 말 말고 있잖아, 러브해주라고 다음에 했던…”


“됐어, 더 이상 말 걸지 마! 나 화났으니까. 나 먼저 간다. 내일 보자, 잘가 지연아.”



승연은 걸음을 조금 빠르게 했다. 순간 승연은 처음으로 지연이가 짜증난다고 느꼈다. 이 감정이 격해지기 전에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었다. 지금은, 지연이가 없는 곳에서 조금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연은 승연의 손을 잡아 챘다. 거칠게 끌려가는 어깨가 아팠다. 또다시 보이는 지연의 장난스러운 표정이 참을 수 없이 화가 났다. 승연은 마지막 이성의 끈이 휙하고 풀리는 것을 느꼈다.



“아니, 그 에로 시작해서 스로 끝나는 그거 말하는 건데…”


“제발 좀 닥치라고!”



승연 자신도 놀랄만한 급발진이였다. 승연은 거의 소리치다시피 말했다. 울컥하고 승연의 눈에 차오른 눈물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제발 그만해줘, 그렇게 말하는 승연의 마음은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지연에 대한 감정도 사라져서 아무것도 모르게 됐다. 이젠 될 대로 돼라지. 승연은 자신의 손을 잡은 지연의 손을 강하게 뿌리쳤다. 그리고는 가슴속에 있던 말을 두서없이 토해냈다.



“그래, 나 너 좋아해, 진짜 좋아했어. 근데 이제는, 이제는 진짜 모르겠어…. 지금은 그냥 네 행동 하나하나 목소리 하나하나가 짜증이 나, 역겨워. 너 다 알고 있잖아. 내가 얼마나 준비했는지 얼마나 기대했는지. 다 알고 있으면서…. 자꾸만 말 돌리고…. 비웃고 장난치고…! 내가…. 얼마나…. 용기를 냈는데…. 너는 끝까지…. 시발…. 나쁜 년….”



울먹이면서 말하는 그것은 이미 절규였다. 승연은 말을 끝내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거대한 감정의 쓰나미가 지나가자, 홀로 남은 건 서러움이었다. 머릿속에 서러움만이 남아서 자꾸만 자꾸만 눈물이 나왔다. 이제는 아무것도 모르겠다. 승연은 그냥 지연이 그냥 너무나도 미웠다.



“미, 미안해 승연아, 그러려던 게 아니었어.”


“닥쳐!”



승연의 그런 모습은 지연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지연은 어떻게 하면 좋은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자신도 너무 심하다는 자각은 있었다. 하지만 그건 승연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서였지 이렇게 승연이를 아프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엎지른 물은 되돌릴 수 없었다. 지연의 생각보다 승연은 훨씬 여린 아이였다. 엄청난 죄책감이 지연에게 몰려왔다.



“오지 마, 오지 말라고 했지!”



다가오는 지연을 향해 승연은 마구잡이로 주먹을 내던졌다. 지연보다 키가 작은 승연이 내지르는 주먹은 치는 족족 지연의 복부에 꽂혔다. 지연은 이를 악물었다. 지연은 주먹질하는 승연의 팔목을 꽉 붙잡았다. 자그마한 승연이 팔은 덜덜 떨리고 있었고, 무척이나 가볍게만 느껴졌다. 한번 붙잡힌 승연은 아무 저항도 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저 모든 게 사라져 버렸으면 하는 게 승연의 바람이었다.



“제발, 제발 그냥 가줘, 지연아…”



그건 이미 저항이 아닌 애원이었다. 독기가 모두 빠진 슬픈 목소리로, 자꾸만 터져 나오는 울음을 가리지도 못하고, 승연은 계속해서 흐느꼈다. 지연은 손을 들어 승연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잠시 움찔하는듯 했지만 승연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지연은 조용히 그런 승연을 안아주었다. 오늘따라 승연이가 더 작게만 느껴졌다.


지연은 울음을 그치지 못하고 히끅거리는 승연의 등을 조심스럽게 두들겨 주었다. 그 손길에서 무엇인가를 느꼈을까, 승연은 한층 더 서럽게 울었다.



지연은 한참을 말없이 승연의 등을 두들겨 주었다. 등을 두들기는 손은 상냥하게 느껴졌다, 자신이 안겨있는 지연의 품은 따듯하게 느껴졌다. 그래, 지연이는 원래 이렇게 따듯하고 상냥한 사람이였다. 장난을 많이 치긴 했지만, 그것이 지연의 애정표현이란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결국, 지연의 포옹에 얼어붙었던 마음이 녹아가는 자신은 지연이를 사랑하고 있는거라고, 승연은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고 승연의 울음이 조금 잦아들었다. 그제서야 지연은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응, 미안해. 나도 승연이가 좋아. 너무 좋아서, 부끄러워서 나도 모르게 그런 식으로 행동해버렸어. 그게 널 상처입힐 수 있다고 알면서도 제대로 대답해주지 않았어. 너무 늦어버렸지만, 지금이라도 대답해도 될까?”


“응….”



울음을 멈추기 위해 숨을 히뜩거리면서 승연은 고개를 조금 끄덕였다. 다시 한번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고백이란 건 원래 이렇게 떨리는 거였다고 승연은 다시 확인했다.


지연은 눈을 감고 잠시 생각했다. 다시는 승연이를 상처 입히지 않기 위해 말을 고르고 또 골랐다. 하지만 좀처럼 좋은 표현이 떠오르지 않았다. 승연이를 감동시킬 표현대신 지연은 ‘사랑은 선택이 아닌 감정이다’라고 누군가가 말했던 것을 떠올렸다. 그냥 솔직한 내 마음을 말하자, 조금 부끄러워서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지금은 지연도 조금은 용기를 내기로 했다.



“응 나도 승연이가 좋아. 아니 사랑해. 내 팔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사랑해. 앞으로는 내가 더 잘해줄게, 다시는 승연이가 우는 일 없게 할게. 그러니까 이런 나를 한 번만 나를 용서해줘.”


말하는 자신도 어이없을 정도의 바보 같은 고백이였다. 그런데도 승연은 고개를 끄덕여줬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품 안에서 승연이가 계속해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지연이는 느낄 수 있었다.



한참 후에야, 승연이는 울음을 그쳤다. 얼마나 울었는지 양 눈이 퉁퉁 부어서 보기 안쓰러울 정도였다. 그런 승연의 모습이 웃겨서 지연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갑작스런 지연의 웃음에 조금은 당황스러웠지만, 승연은 그냥 지연을 따라 웃었다. 사람 한 명 오가지 않는 인적 드문 골목길을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가득 채웠다.



말 없이, 조금은 강하게 승연이 지연의 손을 잡아 왔다. 그 작고도 따듯한 손에 지연은 조심스럽게 깍지를 끼었다. 손가락과 손가락 사이사이가 맞닿는 따듯함이 기분 좋았다. 승연이 지연의 팔에 꼬옥 붙었다. 서로의 감촉을 느끼면서 둘은 조금씩 다시 걷기 시작했다.



골목길은 벌써 거의 끝이었다. 멀게만 느껴지던 지연의 집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보통이라면 이제 손을 흔들며 헤어질 시간이었지만, 승연은 맞잡은 손을 좀처럼 놓지 않았다. 안녕의 인사를 전하는 대신, 승연은 가만히 지연을 바라보았다. 노을에 비춘 탓일까, 붉게 상기된 듯한 승연의 얼굴에 지연의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승연이 조심스럽게 말해 왔다.



“..키스해 줘”


“으응?”


“..지연이가 나를 좋아하는 만큼 키스해줘.”



승연은 불안했다. 지연이가 자신을 안아주고 귀에 사랑한다고 속삭여 줬을 때는 분명 기뻤다. 지연이의 웃는 얼굴을 보고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역시 자신은 지연이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속 한구석에서 떠올랐던 자신의 감정이 불안했다. 한순간이나마 지연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의심하였던 자신의 감정이 두려웠다. 지금 이 자리에서 승연은 그 두려운 감정을 이겨내고 싶었다.



“한 번이라도 좋으니까, 키스해줘…. 지연아….”



부탁이 아닌 애원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승연은 조심스럽게 눈을 감았다. 두근거리는 심장이 터질것만 같았다.



그런 승연의 행동이 지연은 당황스러웠다. 승연이를 만지고 싶다, 키스하고 싶다, 더 사랑하고 싶다, 그런 감정이 들지 않는 건 아니었다. 할 수만 있다면 키스뿐만 아니라 그다음의 것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방법의 문제였다. 키스란 걸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연은 잘 몰랐다. 입을 맞닿게 하고 혀를 움직인다. 그런 초등학생 수준의 지식이 지연이 아는 키스의 전부였다.



“..지연아…?”



승연은 감았던 눈을 조심스럽게 뜨며 말했다. 어느세 승연의 목소리는 불안함에 떨리고 있었다.



지연은 눈을 질끔 감았다. 다시는 승연이를 슬프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게 불과 몇 분 전이었다. 키스란 건 그냥 입술 박치기가 아닌가, 대충 입술을 맞대보면 어떻게든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은 행동이었다. 지연은 조금 고개를 숙여서 승연의 얼굴에 입술을 포개었다. 아니 포개려고 했다.




'쿵' 하고 이마가 먼저 부딪혔다 싶더니 입이 아파졌다.



앞니의 얼얼함을 느끼며 지연은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승연을 내려다 보았다. 승연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모르겠다는 멍한 표정이로 지연을 올려다 보았다. 둘의 눈이 마주쳤다. 키스란 건 본래 입술 박치기. 연애 초보 두 사람의 공통 된 생각은 그것이었다. 근데 지금의 것은 입술 박치기라기보단 이빨 박치기였다. 이걸 첫 키스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누가 먼저 할 것 없이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승연은 방금까지 고민하던 자신이 우습게만 느껴졌다. 애초에 그 지연이한테 리드를 맡기다니 자신답지 않다고 생각했다. 사랑은 선택하는게 아닌 느끼는 거라고, 고백 일기의 마지막에 써두지 않았던가. 자신의 감정이 의심된다면, 그건 내가 확인할 일이지, 남이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승연은 지연의 손을 다시 한번 꽉 쥐었다. 그러고는 조금 발돋움을 해서, 지연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개었다. 혀를 사용하지 않고, 그저 입술을 마주칠 뿐인 순수한 의미의 입술 박치기. 어떠한 에로함도 느껴지지 않는, 귀엽고 순수한 조그마한 전진. 그 잠깐의 부드러움을 지나고 두 사람의 얼굴이 조금씩 멀어져 간다.



둘의 눈이 다시 한번 마주쳤다. 둘은 소리 없이 웃었다. 첫 번째 키스는 아팠고, 두 번째 키스는 생각보다 시시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아름다운 키스일 거라고, 두 사람은 생각했다.



키스는 역시나 레몬 맛 멘토스의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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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날 당하기만 하던 애가 급발진해서 놀리는 애 당황하게 만드는게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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