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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뇌절 2세물) 레몬향 첫걸음 (2)앱에서 작성

AGBMD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5.31 00:3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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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이, 여기야."

이윽고 해가 저물며 붉어지기 시작한 하늘 아래에서 아스미가 손을 흔들었다. 이케다는 반가운 마음에 발걸음이 빨라졌지만, 점차 아스미의 모습이 시야를 채워가기 시작하자 저도 모르게 걷는 속도를 늦추었다.

물론 아스미는 그런 이케다 유이의 마음을 알지 못한 채 아무리 반가워도 부딪히거나 넘어지지 않게 자신의 앞에서 속도를 줄이는 유이가 굉장히 어른스럽고 배려심 많다고 생각했다.

따스한 오해를 마음속에 넣어두고 아스미는 이케다의 손을 세공품을 다루듯이 조심스럽게 잡았다. 아스미의 손가락이 닿은 부분에서 뜨거운 열기가 전해졌다. 손끝에서 타오른 뜨거운 불길이 가느다란 손목을 타고 올라가 이케다의 심장을 불태우고 있었다. 떨리는 손가락 끝이 사랑스러워서 아스미는 보랏빛 눈동자에 미소를 머금고 천천히 이케다를 이끌며 걸어갔다.

오랜만에 맞잡은 손은 더워서인지 땀이 조금씩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이케다는 혹시 선배가 찝찝해 할까 봐 손을 놓고 싶었지만 아스미의 눈동자를 보자 그런 생각은 사라져버렸다.

그저 이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온기를 천천히 계속, 더 많이, 더 넓게 느끼고 싶었다. 손뿐만 아니라, 입술과 목, 가슴, 그리고 온몸으로 아스미의 온기를 느끼고 싶었다. 설령 태양 빛이 자신들을 불태우더라도.
그런 민망한 생각이 들자 이케다는 저도 모르게 아스미와 잡은 손을 놓아버렸다. 갑작스러운 이케다의 반응에 아스미는 적잖이 당황했지만 이내 그런 반응을 미소로 숨겨버렸다. 물론 너무나 올곧은 자색 눈동자에는 씁쓸함이 묻어나와 있었고 이케다는 그 눈동자를 보자 입에서 쓴맛이 느껴져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유이, 괜찮아?"

이케다가 멍하니 서서 떨쳐버린 손을 허공에 든 채로 있자 아스미가 물어왔다. 그런 와중에도 남 걱정부터 하는 아스미의 상냥함에 더욱 가슴이 아파져 왔다. 이케다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면서 애써 태연한 척 아스미의 곁으로 달려가 실없는 미소를 지었다.

"저, 손에 땀이 많으니까..."

어쭙잖은 변명으로 이케다는 번뇌를 떨쳐내면서 붉은 노을 아래로 걸어갔다.

아스미는 그런 이케다의 옆모습을 아무말 없이 지켜보다가 곧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허전한 듯 허공에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던 아스미는 양손을 스커트 앞에 모은 채로 깍지를 끼고 이케다의 곁을 걸어갔다.

묘하게 어긋나는 두 사람의 발소리가 인적 드문 골목을 채우고 있었다.
*
'아 맞다. 오늘 엄마들 다 늦게 오시는 날이지.'

현관에 들어와서 인기척이 전혀 없는 고요한 집안을 둘러보던 아스미의 머릿속에 잊고 있던 사실이 떠올랐다. 현관 앞에 가만히 서 있는 것도 모양이 이상해서 이케다에게 어서 들어오라는 손짓을 한 뒤 아스미는 방으로 향했다. 한두 번 와본 것이 아니기에 이케다도 길을 헤매지 않고 아스미의 방으로 향했다.

다만 평소라면 바로 달려올 아스미의 어머님이 보이지 않자 이케다는 곧 집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그러자 갑자기 이케다는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에어컨이 켜지지 않은 복도가 여름의 열기에 후끈 달아올라 더운 공기를 머금고 있었기에 이케다는 손으로 계속 부채를 부치며 걸었다.

방으로 향하며 복도의 불을 하나둘 켜자 땀에 젖은 하얀 세라복 아래로 아스미의 속옷 끈이 살짝 비쳐 보였다. 흰색 합성 섬유 끈이 눈에 들어오자 이케다는 낯이 간지러워서 서둘러 시선을 아래로 깔았다. 그랬다가 슬쩍 고개를 올려 비치고 있는 끈을 몰래 바라보았다. 정말로 툭 치기만 해도 풀 수 있을지 궁금했다.

그런 망측한 생각을 하는 것도 모르고 아스미는 방문 앞에서 문고리를 살며시 잡고 이케다를 향해 티끌 하나 없는 미소를 보여주었다. 이케다는 가슴을 송곳으로 찌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죄책감인지 수치심인지 알 수 없는 아픔 때문에 이케다는 조금 위축된 채로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만 앉아 있어. 마실 거 가져올게."


가방을 내려두고 아스미가 주방으로 향했다. 아스미가 사라지자 이케다는 크게 한숨을 쉬고 바닥에 드러누웠다. 에어컨을 켰지만, 방 안의 습하고 뜨거운 공기는 쉽사리 식지 않았다. 답답한 공기를 폐에 머금은 채로 이케다는 지금 상황을 천천히 머릿속에서 정리했다.

아스미의 어머님은 지금 집에 없고, 아스미 선배랑 단둘. 그리고 지금 둘은 사귀는 상태고, 아직 가벼운 입맞춤 외에는 전혀 진도를 나가지 못했다.

'이거 절호의 찬스잖아?'

사실 연인이긴 하지만 아스미는 놀라울 정도로 둔감했다. 손을 잡아도, 입맞춤을 해도 처음에는 귀여운 반응을 보여줬지만, 이후로는 스스로 절제하고 있는 느낌이 강했다. 어차피 거짓말도 연기도 잘 못 하는 아스미는 두근거림을 몸소 표현하고 있었던 것 같지만, 그 감정을 최선을 다해 숨기려고 하고 있었고, 이케다도 아스미가 그럴 생각이라면 굳이 들춰내진 않았다.
그러다 보니 대체 어디까지 허용해 줄지 알기가 어려웠다. 더 거리를 좁혀도 될지, 아니면 지금 이 거리가 가장 좋을지 연애 경험도 사회 경험도 적은 중학생 이케다는 항상 고민에 빠졌다.

그래서 미나미에게 상담을 한 결과 나온 것이 '거리 두기' 였다. 늘 가까이서 느끼던 온기가 식으면 아스미가 허전함을 느끼고 다가올 거라는 계산이었다.
사랑하는 선배를 애써 피해야 한다는 사실이 아쉬웠지만, 마시멜로 이야기처럼 조금만 참으면 더 큰 보상이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요 1달간 노력했다. 그 결과 쓸쓸한 한 달을 넘어 지금 이 순간에 도달했다. 이케다는 사랑의 여신님이 자신을 갸륵히 여겨 포상을 준게 분명하다고 생각하며 굳어있던 입꼬리의 힘을 풀고 헤실헤실 웃었다.
사랑하는 아스미 선배와 1달 만에 단둘이 천천히 이야기를 나눌 생각에 더위에 지친 몸이 조금씩 활기를 띠었다. 물론 에어컨도 어느정도 기여했지만.

"...... 무슨 아저씨냐?"

음료수와 감자 칩을 가지고 들어온 아스미는 방바닥에 누워 실없이 웃는 이케다에게 핀잔을 주며 테이블 위에 쟁반을 올렸다. 이케다는 화들짝 놀라 빠른 몸놀림으로 정좌 자세를 취했다.
부끄러움 때문에 이케다의 얼굴과 목에 때아닌 단풍이 피었다. 방정맞은 애인을 바라보면서 아스미는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사귄 뒤로 가까이 지내며 이케다는 의외로 덜렁거리는 성격이라는 것을 알게 된 아스미는 평소의 똑 부러진 모습을 열심히 보여주려 노력하는 이케다가 귀여웠다. 연인이지만 여동생 같아서 보살펴 주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감자 칩을 뜯어서 이케다의 입에 넣어주려는 것도 그 포근한 보살핌의 일환이었다.

"서...선배? 저, 혼자 먹을 수 있어요!"

이케다가 눈에 띄게 당황하며 얼굴의 색소를 더 빨갛게 붉혔다. 이래서야 더 부끄러운 짓들은 시도조차 못 할 지경이다. 그녀는 손을 가슴 앞에서 좌우로 흔들며 허리를 뒤로 빼면서 아스미의 보살핌을 필사적으로 거부했다.

"...... 유이는 역시 날 피하는구나."

갑자기 내리깔린 저음의 목소리에 이케다는 조금 전까지 휘젓던 손을 딱 멈췄다. 감자 칩을 허공에 든 채로 아스미의 표정에 길게 그림자가 드리웠다. 서쪽 하늘로 내려가는 태양의 꼬리를 따라 서린 그 그림자는 몹시 쓸쓸해 보였다.

이케다는 아니라고 부정하려고 했지만 아스미의 탁한 보라색 눈동자에 순간 마음을 뺏기고 말았다. 끝없이 깊게 내려가는 짙은 자색의 바다에 빠져들어 갔다. 깊은 블루홀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발버둥 치면서도 그 아름다운 색채에 죽는 순간까지 마음을 뺏겨버리듯이 이케다는 자색 싱크홀에 빠져 할 말을 잃어버렸다. 아주 잠깐이지만 낙담한 아스미의 눈동자가 너무 아름답다고 생각해버렸으니까.

잠깐의 침묵이었지만 아스미는 그것을 긍정으로 받아들였다. 감자 칩을 뜯어둔 봉지 위에 올려둔 아스미는 조심스레 일어서서 이케다에게 다가갔다. 자색 눈동자가 사라지고 대신 새하얗게 뻗은 매끈한 종아리가 눈에 들어오자 이케다는 자색의 바다에서 겨우 빠져나왔다. 그제야 이성을 되찾은 이케다는 빨리 부정의 표현을 하기 위해 머릿속에서 문장을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바다에서 빠져나온 이케다의 이성은 그렇게 빨리 숨을 고르지 못했는지 어... 나 아... 같은 감탄사만을 출력했다.

"유이, 혹시 내가 잘못한 게 있다면, 지금 여기서 말해줘. 내게 싫증이 났다면...... 부탁이니까 말로 전해줘."

테이블을 돌아 이케다의 앞에 앉은 아스미가 이케다의 손을 잡았다. 아스미의 서글픈 목소리가 이케다의 마음을 후벼팠다. 하지만 아스미의 그 목소리에는 서글픔과 다른 무언가 따뜻한 것이 숨어있었다. 그 축축한 목소리 앞에서 이케다는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피하지 않았어요. 피한 게 아니라... 그냥... 부끄러워서 조금 거리를 둔 거라고 해야 하나... 아 생각해보니 피한 게 맞긴 한데..."

흘러나오는 말을 정리하지 못하고 쏟아내면서 이케다는 고개를 푹 숙였다. 아스미를 끌어내기 위해 거리를 두는 전략을 취했지만, 갑자기 생긴 그 거리감이 아스미의 마음에 불안의 싹을 틔우고 물과 비료를 던져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케다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에게 독초를 심어버린 것 같아 죄책감이 파도처럼 몰려왔다. 더더욱 선배의 눈을 마주하기 힘들어진 이케다의 고개가 자꾸만 떨어졌다. 그러자 별안간 낮은 웃음소리가 귀를 간질였다. 놀라서 고개를 드니 아스미가 입을 손으로 가린 채로 웃고 있었다.

"이케다도 참 잘 속네."

아스미가 멍청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이케다의 이마에 꿀밤을 때리자 이케다는 퍼뜩 정신을 차리며 이마를 손으로 감쌌다. 한쪽 눈을 찡그리면서 아스미를 바라보던 이케다는 곧 자신이 속았다는 걸 깨달았다. 살짝 느껴졌던 온기가 이런 장난을 뜻한 거였을까.

"연습한 보람이 있네. 이케다의 귀여운 모습도 볼 수 있고."

볼을 부풀리며 그녀를 노려보는 이케다의 뺨을 아스미가 손으로 장난스레 만졌다. 푹신한 감촉이 느껴져서 절로 웃음이 나왔다. 99 퍼센트의 거짓에 1퍼센트의 진실만을 섞어도 굉장한 설득력을 가진다는 말이 있다. 아스미는 방금 그걸 이케다에게 실험했고, 성공적인 결과를 도출했다. 이케다가 자신이 싫어서 피하던 게 아니라는 것은 귀갓길에서 바라본 이케다의 표정에서 전부 알 수 있었다. 노을보다 새빨간 얼굴을 보니 역시나 너무 솔직한 아이였다. 매일 이렇게 생활했다면 전교생이 전부 알아차리는 것도 무리는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 소중한 자수정을 포기할 일은 없으리라고 다짐하면서 아스미는 이케다의 손을 살포시 잡고 손가락을 엮었다.

부끄러움에 불타는 이케다의 얼굴에 손에서 올라온 또 다른 불길이 들이닥쳤다. 하얗디하얀 손으로 어쩜 저렇게 뜨거운 불길을 가져오는지 이케다는 손이 떨릴 지경있었다. 물론 SF를 즐겨 읽는 이케다는 붉은색보다 흰색이 스펙트럼상 고온이었다는걸 떠올리며 어느 정도 납득할지도 몰랐다. 문제는 지금 그녀의 뇌는 그런 생각을 할만큼 차갑지 않았다.

지근거리에 사랑하는 아스미 선배가 있었다. 1달 만에 가깝게 보는 선배의 자색 눈동자와 탐스러운 붉은 입술이 시선을 빼앗았다. 약하게 풍겨오는 레몬 향과 살짝 벌어진 입술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온기에 이케다는 아직 마셔보지도 않았지만 마치 술에 취한듯이 몽롱해졌다. 그 몽롱한 정신을 뚫고 아스미가 이케다에게 입맞춤을 했다. 부드러운 감촉이 입술 근처에서 머물고 있었다.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짓는 아스미를 보자 몽롱한 이케다는 이성을 깊은 곳에 묻어두고 본능대로 움직이기로 했다.

"선배, 좋아해요."

입맞춤을 하고 잠시 거리를 둔 아스미의 양손을 이케다는 힘껏 잡은 뒤 자신 쪽에서 먼저 입맞춤을 했다. 그러고 보니 사귀기로 했던 날 입맞춤을 했던 것도 자신이었다는걸 생각하며 여전히 느린 선배에 대해 약간의 불만과 동시에 우월감을 느꼈다.

달콤한 레몬 향이 두 사람 사이에 퍼지면서 입술을 축축하게 적셨다. 이케다는 한 발짝 나아가기로 하고 혀로 아스미의 부드러운 입술을 건드렸다. 순간 맞잡은 손이 떨리고 아스미의 호흡이 잠시 끊긴 것을 느꼈다.
아스미는 분명히 당황했다. 역시 이런 감정까지 숨기지는 못하는 듯했다. 이케다는 아스미의 입이 약간 열린 그 잠시를 놓치지 않고 혀를 아스미에게 천천히 넣었다.

더 농후한 레몬 향이 혀끝에서 느껴졌다. 아스미의 혀와 입술을 쓸어 담듯이 탐하자 그녀의 목에서 야시시한 신음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에어컨이 돌아가는 기계음만 울리던 작은 방에 살아있는 소리가 조금씩 울리며 방을 덧씌웠다.

아스미는 그저 입을 살짝 벌린 채로 이케다의 혀를 받아들였다. 혹여나 이케다의 혀를 씹을까 봐 턱에 힘을 준 채로 필사적으로 입을 벌렸다. 들어오는 이케다의 체취와 타액에 의식이 녹아내리는 듯해서 아스미는 혀를 움직여 호응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호흡이 힘들어져 야릇한 신음소리가 계속 새어 나왔다.
몸에 힘이 빠진 아스미는 그대로 이케다에게 덮쳐지는 모양새로 방바닥으로 쓰러졌다.
이케다는 아스미가 다치지 않도록 잡은 손에 힘을 준 채로 천천히 아스미를 바닥에 눕혔다. 아스미의 매혹적인 긴 갈색 머리카락이 방바닥에 흐트러지듯이 펼쳐졌다. 이케다는 그러는 와중에도 뜨겁고 진한 레몬향을 음미하며 계속 혀를 움직였다.

서툴렀지만 아스미만을 원하는 혀 놀림이 아스미의 입안을 적셨다. 넘쳐흐르는 타액이 아스미의 입가로 조금 흘러내렸다. 그 타액까지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이케다는 입꼬리까지 핥아 올렸다. 질척거리는 물소리가 아스미의 온몸에 불을 지폈다. 아랫배가 자꾸 뜨거워져서 아스미는 계속 다리를 이리저리 꼬면서 불길을 잡으려 했지만 그럴수록 더 달아오르기만 했다. 너무 뜨거워서 숨을 쉴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점차 올라오는 불길에 아스미는 폐마저 말라붙는 것 같아 그녀는 잡은 손에 힘을 넣으며 이케다에게 무언의 신호를 보냈다. 숨을 쉬고 싶다는 의사를. 하지만 이케다에게 닿지 못했는지 이케다는 오히려 더 격렬히 혀를 움직였다. 아스미의 얼굴이 점점 더 빨개졌고 호흡의 간격이 더 짧아져 갔다. 머리가 아파져 오기 시작한 아스미는 결국 최후의 수단으로 오른발로 이케다를 걷어찼다. 갑작스러운 다리의 격통에 이케다가 혀를 씹으며 아스미의 어깨 옆으로 쓰러졌다. 얼마 동안 질척이던 물소리와 신음이 순식간에 단말마로 바뀌며 끊어졌고 방안은 이케다의 끙끙 앓는 소리가 채우고 있었다. 로맨틱했던 첫 어른의 키스가 침몰하는 순간이었다. 아스미는 단말마 소리에 놀라며 어깨 옆에 쓰러진 이케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하아...하아... 유이...미안해. 그... 괜찮아?"

이케다는 아스미의 목덜미에 기댄 채로 끙끙 앓고 있었다. 아스미는 헐떡이며 부족한 산소를 채웠지만 빨개진 얼굴은 그대로였다. 그러는 와중에도 두 사람은 잡고 있던 손은 놓지 않았다. 헐떡거리는 뜨거운 숨결이 이케다의 귀를 간질였다.

이케다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계속 목덜미에 얼굴만 묻은 채로 있자 아스미는 슬슬 불안과 걱정이 올라왔다. 처음으로 찐한 키스를 당해서 당황했고 둘 다 미숙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애인을 발로 차다니. 숨이 막혀서 그랬던 거라고 해도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라도 쓰다듬어 주면서 달래주고 싶었지만, 아직 이케다가 잡은 손을 놓지 않아서 그럴 수 없었다. 게다가 마지막으로 입술을 뗄 때 약간 쇠 맛이 났던 게 문득 생각났다. 자신의 입에는 딱히 상처가 없으니 혹여나 이케다가 다친 건 아닌지 더 걱정되었다. 물론 잘못 느낀 것일 수도 있지만 아스미는 원래부터 사소한 걱정이 많은 선배였기에 죄책감이 배가 되었다. 죄책감 때문에 첫 키스의 여운 같은 것을 천천히 만끽하지도 못했다. 그래도 그녀는 자신의 개인적인 감상보다 지금 의도치 않게 폭행해버린 사랑하는 이케다가 우선이었다.

"유이......? 괜…. 찮아?"

한참이나 이케다가 계속 목덜미에 얼굴을 묻은 채로 있자 아무래도 부끄러워졌다. 아까보다 왠지 더 맹렬히 도는 듯한 에어컨 소리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뭐라도 말소리를 듣고 싶었다. 그러자 갑자기 목덜미에서 교태로운 물소리가 들리며 간지러운 촉감이 뒷목을 타고 올라왔다. 아스미는 자기도 모르게 이상야릇한 소리를 내었고 그 소리가 어색했던 에어컨 소리를 떨쳐버렸다.
이케다가 아스미의 목덜미를 천천히 핥아 올릴 때마다 아스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부끄러워서 입을 막고 싶어도 양손이 붙잡혀 있었기에 필사적으로 입술을 틀어막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입술 사이로 요염한 소리가 계속 새어 나오고 있었다. 조금 식었던 아랫배에 다시 열이 올라왔고 두근거리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었다.

"흣... 유이... 미안해... 그러니까..."

애원하는 목소리로 이케다에게 부탁하면서 아스미는 결국 신음을 참는 것을 포기했다. 교태로운 교성이 방을 가득 채웠고, 아스미의 온몸은 에어컨 아래임에도 불구하고 땀으로 흠뻑 젖었다. 목덜미를 공격하던 이케다가 돌연 핥는 것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아스미를 바라봤다. 눈을 감은 채로 뜨거운 숨결을 헐떡이는 모습이 관능적이었다. 가쁜 숨결에 따라 오르내리는 목과 어깨, 그리고 볼륨감 있는 가슴까지 엄청나게 자극적이었다. 하지만 이내 느껴지는 혀의 통증이 깊이 들어가 있던 이성을 건져 올리고 있었다. 반짝이는 타액으로 물든 목덜미를 한번 바라본 이케다는 곧 아스미의 입술을 한 번 더 탐했다. 이번에는 혀를 쓰지 않고, 늘 하던 가벼운 입맞춤으로 끝냈다. 입맞춤이 끝나고 아스미가 눈을 뜨자 자색 눈동자 근처에는 물기가 가득했다. 만약 아스미의 발길질과 이케다의 혀 깨물기가 아니었다면 필시 저 자색 눈동자가 이케다로 하여금 일선을 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그 정도로 그 빛깔은 오늘따라 더 깊게 느껴졌다.

"선배, 저 혀 깨물었어요..."

"앗, 그...미...미안! 너무 숨 막혀서...그만..."

죄책감에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아스미를 보면서 이케다가 익살스럽게 말했다.

"아~ 혀가 아파서 밥을 못 먹겠네요... 이대로라면 저 영양실조 걸릴지도 몰라요?"

과장된 표현이었지만 아스미는 몹시 미안했다. 당분간 자극적인 음식을 먹기 힘들 텐데. 그리고 이케다는 매운 음식과 시큼한 음식을 좋아했다. 자기 때문에 좋아하는 걸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아스미는 죄책감에 슬퍼졌다. 뭐라도 해주고 싶었다.

"그... 잠시만, 내가 약 발라줄 테니까 잠깐만 앉아 있어!"
서둘러 거실에서 구급상자를 가져오려는 아스미를 이케다가 붙잡았다. 아스미가 의아해하며 돌아보자 곧바로 이케다가 아스미의 품에 안겼다. 아스미는 순간 뒤로 넘어질 뻔한 몸의 균형을 간신히 잡고 품에 안긴 이케다를 보았다. 부드러운 검은 단발과 하얀 목덜미가 대조를 이뤄 예뻤다. 이케다가 갑자기 자기 목덜미를 핥은 이유를 아스미는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기도 지금 이케다의 목덜미에 손을 대고 싶다고 생각했으니까. 동시에 아스미는 자기 때문에 다친 애인을 앞에 두고 이런 망측한 생각을 하는 스스로가 한심했다.

"선배, 혀 깨문 건 어디까지나 제 잘못이에요. 그리고 저도 너무 갑작스럽게 해버렸으니까..."

태연하게 말하고 있지만 중간 중간에 발음이 조금 꼬이는 것을 숨길 순 없었다. 아스미는 한숨을 쉬면서 이케다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유이도 참. 예전부터 달려오는 게 너무 빨랐다니까."

머리를 만지는 게 기분이 좋은지 품에서 귀여운 소리를 내는 이케다의 머리카락을 아스미는 계속 쓸어내렸다. 좀 더 기르면 분명히 예쁜 머리카락이 될 텐데. 어쩌면 카나타보다 더 예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못내 아쉬워졌다. 그래도 긴 머리를 관리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란 걸 알기에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 이케다는 이케다만의 아름다움이 있는 거니까. 손끝에 느껴지는 머리카락의 사랑스러움을 만끽하면서 아스미는 이 시간이 계속되었으면 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이케다의 혀가 낫지 않을 것이기에 아스미는 그런 나쁜 바램은 가슴 속에 묻어두기로 하고 이케다의 머리카락을 천천히 음미하며 흘러가는 시간을 배웅해주었다.

*

"혀는 괜찮아?"

탄산음료 대신 가져온 초코우유를 이케다의 잔에 따르면서 아스미가 걱정스레 물음을 던졌다. 아직도 미안해하는 기색이 표정에 드러났다. 이케다는 그렇게 모든 걸 자기 탓으로 돌리는 아스미가 맘에 들지 않았다. 초코우유까지 가져다준 상냥함도 어딘가 불편했다.

그래서 이케다는 그 죄책감을 무너뜨릴 방법을 궁리했다. 달콤한 초코우유로 짜디짠 혓바닥의 상처를 덮어버리며 이케다는 계속 아스미를 바라봤다. 아무 말 없이 자신을 쳐다보며 초코우유만 마시는 이케다를 아직도 근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아스미는 이 침묵이 어색한지 계속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초코우유를 다 비운 이케다가 한 번 헛기침했다. 그리고 아스미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지그시 바라봤다. 자색 바다에 작은 파문이 일었다.

"선배, 첫 키스는 레몬 맛이라던데."

"에...?"

"진짜 레몬 맛이었어요?"

"아... 잘 모르겠는데...."

고개를 모로 돌리면서 아스미는 멋쩍게 웃었다. 머리를 긁적이는 흰 손가락이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눈동자에 일던 파문이 잦아들었다.

"그럼, 무슨 맛이었는지 알려주세요."

이케다의 질문이 조금 전의 농후한 키스를 떠올리게 했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뭔가 느낄 새도 없었다. 반면에 이케다는 맛을 느낄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니, 아스미는 선배로서 조금 분했다. 살짝 골려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 농후한 혀놀림을 떠올리다가 머리가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아스미가 계속 대답없이 얼굴만 붉히자 이케다가 슬쩍 다가왔다. 살랑거리는 단발에서 달콤한 사과 향이 났다.

"잘 모르시겠으면.... 한 번 더 할래요?"

아스미가 눈을 반달 모양으로 뜨고 이케다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한 번 더 하겠다는 의사로 받아들인 이케다가 여기서는 한번 리드당해 주기로 하고 눈을 살포시 감았다. 아스미의 새콤달콤한 레몬 향과 부드러운 감촉을 기대하고 있던 이케다의 이마에 갑자기 강한 충격이 느껴졌다. 단말마를 지르며 이케다는 이마를 감싸면서 뒤로 물러났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궁금해 한쪽 눈만 뜬 이케다의 시야에 예쁜 호선을 그리고 있는 입꼬리가 보였다. 여전히 반달 모양으로 찡그린 눈동자의 시선이 따뜻했다. 배시시 웃으면서 아스미가 앞에 놓인 탄산음료를 마셨다.

"나중에 말해줄게. 그리고 유이, 다시 하면 첫 키스가 아니잖아."

"그...렇네요."

싱글벙글 이를 드러내며 웃는 아스미는 거의 보지 못했기에 꽤 신선했다. 이케다는 처음 보는 애인의 모습을 천천히 눈에 담으면서 허전한 입술을 두 번째 초코우유로 달랬다. 쓰라린 혀끝을 부드럽게 감싸는 달콤한 우유를 마시면서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눈동자에 천천히 아로새겼다. 죄책감이 희석된 아스미의 밝은 표정이 심장을 때렸다. 역시 선배는 웃는 게 어울린다고 느끼면서 이케다는 차가운 우유로 가슴을 진정시켰다.

"그래도 선배, 좋았는지 싫었는지 정도는 말해주지 않을래요?"

"......"

침묵 속에서 아스미는 묵묵히 탄산이 담긴 컵을 흔들다가 침대 머리맡에서 게임기를 꺼냈다. 이케다도 피식 웃으면서 가방에서 똑같은 게임기를 꺼냈다. 기다림도 하나의 좋은 조미료라고 생각하면서.

*

"슬슬 돌아갈 시간이에요."

"저녁 먹고 가지..."

아스미가 아쉬운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가 야근하는 바람이 오늘 저녁은 혼자 먹게 되어서 내심 그녀는 이케다랑 함께 식사하고 싶었다. 같이 밥 먹은 지도 꽤 되었기에 조금은 기대했지만, 이케다는 시선을 피하면서 거절했다. 이케다도 아스미와 좀 더 있고 싶었지만 조금 전의 뜨거운 열기를 식히고 싶었기에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떼면서 현관으로 향했다. 여기서 더 있다가는 진짜로 선을 넘어버릴까 봐 두려운 마음도 있었다. 차갑게 식은 이성이 수면 위로 올라와 있는 이케다는 아직 선을 뛰어 넘어 나아갈 용기가 부족했다.
"데려다줄게. 아직 해가 조금 있긴 해도 혼자 가는 건..."
"괜찮아요. 아스미 선배. 이 정도는 혼자 갈 수 있으니까요."

이케다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아스미는 불안했지만 이렇게 제안과 거절을 계속해봐야 늦어지는 건 귀가시간이기 때문에 아스미는 이케다에게 져주기로 했다. 못내 아쉬운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아스미는 잡은 손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이케다가 반대쪽 손으로 아스미가 낀 깍지를 한 손가락씩 풀었다. 깍지가 하나씩 풀릴 때마다 아스미의 가슴 속에서 답답한 뭔가가 차올랐다. 내일 또 만날 수 있겠지만, 그 8시간 정도의 시간도 아스미는 쓸쓸하게 느껴졌다. 올해 여름부터 에어컨의 온도를 올리기 시작한 건 그 때문이었을까. 마지막 5번째 손가락이 풀리자 아스미는 진지하게 손가락이 5개밖에 없는 것이 아쉬웠다. 1초라도 이케다의 온기를 느끼고 싶었지만, 이케다는 오늘따라 절제하는 느낌이 강했다. 애써 선을 긋는 느낌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항상 빨리 달리는 덜렁이 이케다이기 때문에 약간의 휴식이라 생각하고 아쉬운 대로 기다려 주기로 아스미는 마음먹었다. 마지막 손가락을 떼고 가방을 챙겨 현관문을 열려는 이케다를 바라보며 아스미가 손을 들었다.

"그럼 도착해서 꼭 라인해줘!"

"네~ 내일 또 봐요. 아스미...."

이케다가 작별 인사를 하다 말고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는 천천히 숨을 가다듬고는 아스미를 향해 달콤하게 속삭였다.

"아스미 언니."

갑자기 언니라 불린 아스미가 그 말을 머릿속으로 되뇌는 사이 이케다는 피식하고 웃은 뒤 아스미의 볼에 기습적으로 입을 맞추고는 잽싸게 현관문을 열고 그녀답게 빠른 발걸음으로 순식간에 골목길로 사라졌다.
"언...니?"

아스미는 낯간지러운 호칭에 얼굴을 감싸며 주저앉았다. 역시 사랑스러운 후배의 발걸음은 자신보다 훨씬 빠른가 보다. 아스미는 미친 듯이 오른 체온과 심박 수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계속 떠오르는 언니라는 말과 조금 전 입술의 감촉이 아스미를 더 뜨겁게 만들었다. 그리고 시간차를 두고 부상하는 농후했던 키스의 감촉이 결정타를 날렸다. 입안에 퍼졌던 질척질척한 혀의 감촉과 달콤한 사과 같은 향기가 아스미를 불태울 듯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우리, 정말로 키스했구나……"

아스미가 주저앉은 채로 부끄러운 듯이 혼잣말을 꺼냈다. 여름이라 사과가 제철이 아닌 것이 참 다행이라고 아스미는 생각했다.
저녁노을이 서쪽으로 천천히 사라지며 오늘의 마지막 불꽃을 하늘에다 짙게 흩뿌리고 있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빌드업 너무 어려워서


내인생처럼 생략했읍니다.

후일담 살짝 적구 다음은 고등학교 올라간 아스미 이케다 미나미 오오무로 이 4사람의 이야기를 써보려구 함


총수끼리 결혼해서 나온 딸은 총수일 수 밖에 없다

그나저나 진짜 카스아리 비중이 사라져서 이게 2차 맞는지 의심스럽다


ㅡㅡㅡㅡ

아니 슈발 줄바꿈 왜 이상하게 된 채로 올라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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