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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망고'라는 단어 보니까 회로가 돈다

legaldrug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6.07 22:50:37
조회 308 추천 13 댓글 1
														


"허억, 허억, 이제 제발 그만 좀 뛰어......"


"허억, 하하."


"허억, 웃음이 나오냐!"


기말과제 제출했으니 술 마시자고 하는 룸메의 말을 거절해야 했다. 지연이는 며칠째 거의 잠을 못잔 거 같으니 둘 다 적당히 조금만 마시고 들어가면 되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소주 1병에 제정신이 아니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가게에서 나오기 전까진 멀쩡해서 방심했지만 편의점에서 숙취해소제를 사고 나오는데 갑자기 지연이가 뛰기 시작했다. 속으로 오만 욕을 하면서 따라 뛰는 동안 지연이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큰 소리로 웃어댔고, 그러다가 학교 정문 근처에서 갑자기 멈춰 서서 따라 잡을 수 있었다.


"또 뛰면 진짜 내일 내가 네 무릎 아래를 발목처럼 돌려버린다."


"하하하. 무릎을 발목처럼 돌린대."


"아, 신이시여....."


차라리 걷지도 못할 정도로 취해서 내가 부축해 가는 게 더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정문 근처까지 왔으니 기숙사까지 가면서 뛰어봤자 길 잃어버리거나 어디 이상한 데 쓰러져 자진 않겠지만 그래도 불안해서 지연이의 후드 모자를 손으로 붙잡았다.


"뭐 해?"


"뛰지 말라고."


"안 뛰어, 하하."


"아까는 뛸 거라고 예고하고 뛰었냐?"


"하하하. 그러면 이렇게 해."


그렇게 말하면서 지연이는 모자를 잡은 내 손을 떼서 맞잡았다. 사귀는 사이지만 평소에는 먼저 손을 잡거나 하는 일이 전혀 없으면서 술에 취했기 때문인지 거리낌 없이 손을 잡는 게 적응되지 않아 부끄러웠다. 취해서 평소의 딱딱한 표정은 없어지고, 풀어져서 헤실헤실 거릴 때부터 이미 귀엽다고 생각했는데 이러니까 화낼 생각도 없어졌다.


"아~ 진짜, 알고 하는 거냐?"


"뭘? 하하."


"아, 됐어."


"으응~."


그러다가 지연이는 갑자기 내 손을 잡은 채로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나도 덩달아 상체를 숙인 자세가 되었지만 다행히 넘어지진 않았다.


"뭐 해? 빨리 가자."


"망고 먹고 싶다."


"뭐?"


"망고 먹고 싶다고."


"달달한 거 별로 안 좋아하잖아."


"망고~."


"하아, 알았어. 사 올 테니까 여기서 기다려."


평소에 달달한 것을 즐기지도 않으면서 갑자기 망고 타령을 해대는 게 어이가 없었지만 주저앉은 꽐라를 상대로 실랑이하고 싶지 않아서 근처 편의점에 들어갔다. 편의점 안은 밝아서 밖에 좀 떨어진 곳에 앉아 있는 지연이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대로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이 시각에 여는 데가 없긴 하지만 편의점에 망고가 있긴 하냐......'


망고주스라도 사야 하나 두리번 거리던 중 망고 아이스바를 발견했다. 망고주스보단 그나마 이게 더 망고 원형에 가깝지 않나 싶어서 얼른 사서 돌아왔다.


"자, 그냥 망고는 없더라."


"우와, 감사."


답지 않게 진짜 망고가 아니라고 떼쓰면 어쩌나 했던 우려와는 다르게 지연이는 얌전히 받아서 한 입 베어물었다. 아이스크림 하나에 벌떡 일어나서 즐거워하는 게 애 같아서 귀여웠다.


"맛있냐?"


대답없이 한동안 우물거리던 지연이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으아, 왜 울어? 맛 없어?"


"하하하, 너무 다네."


"뭐?"


'아니, 세상 누가 망고 아이스바가 달다고 우냐고!'


"너무 달아......하......"


그러다가 지연이는 또 주저앉아 바닥을 보고 있었다.


'이쯤 되니 나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망고를 그대로 얼린 아이스바라 녹아서 지연이의 손이나 신발에 떨어지는 일은 없었고, 지연이도 처음 발견했을 때 이후로 더 울고 있진 않았다. 단지 쪼그려 앉아 멍하니 뭔가를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안 가?"


"좀만 있다가 들어갈게. 먼저 가."


'너 같으면 두고 먼저 가겠냐..... 귀엽다고 생각한 거 취소다......'


애인이 취한 모습이 귀여워서 이성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애썼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 있지만 한 번도 취해서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준 적 없는 친구가 이러니 달아오르기는 무슨, 그냥 난감했다. 사귄 지 1년이 다 되어 가서 말수가 적은 지연이의 속마음을 유추하는 데에는 익숙해졌지만 이런 모습은 너무 신선해서 돌아버릴 것 같았다.


"....니."


"뭐?"


"언니가 망고 좋아했는데......"


"아......"


지연이는 외동딸이라 지금 생각하고 있는 언니가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사귄지 얼마 안 됐을 즈음, 장난으로 나 말고 전에 좋아했던 사람 없었냐고 물었을 때 예전에 사귀었던 언니가 있었다고 말했다. 의외라서 놀리려고 "네가 삽질해서 헤어졌구나?" 라고 물었고, 돌아온 대답은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났어." 였다. 그 후로 우린 그 얘길 꺼내지 않았다.


"괜찮아?"


"언니......"


"지연아....."


"망고 좋아하는......"


"이지연."


나지막하게 힘주어 이름을 부르자 지연이는 중얼거리는 걸 멈추고, 고개를 들어 나를 봤다. 얼린 망고라고 해서 달달하지 않은 건 아니고, 아프지 않은 척한다고 해서 안 아픈 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솔직히 질투가 안 난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위로해주고 싶었다. 지연이를 일으켜 세워서 꼭 끌어안았다.


"나 취해서 내일이면 잊을 테니까 울고 싶으면 울어."


자존심이 세서 누가 보는데 우는 건 싫어하는 걸 알아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었다. 질투심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이것뿐이라는 슬픔에 마음이 아팠다.


"슬퍼서 우는 거 아냐."


"그래."


"그냥 아이스크림이 너무 달아서 화난 거야."


"그래. 알았어."


지연이는 내 어깨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숨죽여 떨었다. 축축해지는 어깨가 느껴졌지만 어차피 뛰느라 땀에 젖은 옷이었다. 여름이라 공기도 끈적하고..... 정말 축축한 밤이었다.


=======


친구가 취해서 제정신이 아닐 땐 적당히 가까운 교내 건물 로비에 버리고 가도록 하자.

요즘도 편의점에 망고 아이스바 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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