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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사약대회]성아미리앱에서 작성

아글라레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6.30 23: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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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성아 선생님."


등 뒤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성아는 튀어 오르듯 몸을 일으켰다. 대놓고 당황한 티를 내는 자신과는 달리 여유로운 분위기를 뿜어내는 미리의 모습에 성아는 애써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왜 그렇게 놀라요? 뭐 보고 있었어요?"

"아니 뭐, 그냥... 애들 노는 거요... "


자신이 미리를 찾고 있었음을 들킬세라 성아는 눈을 피했다. 어색하게 얼버무리는 그녀의 대답을 미리는 고맙게도 캐묻지 않았다.


채성아 선생님. 잠결에 들어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는 목소리였다. 언제나 같은 높낮이지만, 그 어떤 말이나 행동보다 미리의 감정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한마디이기도 했다. 그 더러운 성격과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예쁜 미소를 띠고는, 혹은 미남과 다툰 사실을 귀신같이 알아내고는 걱정스러운 말투로, 그것도 아니라면 짱구네가 또 사고를 쳤다며 짜증을 담아서. 채성아 선생님. 채성아 선생님? 채성아 선생님!


지난 금요일, 유치원 선생님들과 회식 자리가 끝난 뒤 집에 돌아가던 택시 안에서도 미리는 똑같이 성아를 불렀었다. 과음한다 싶더니 잔뜩 꼬인 발음으로, 채성아 선생님. 미리가 어깨에 머리를 기대오는 감촉에 성아는 어째선지 미남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제야 그녀에게도 취기가 도는지 생각은 느려지고 심장 박동이 빨라짐을 느꼈다.


"저 선생님 좋아하나 봐요."


그 짧은 한 문장만을 뱉어놓고는 그대로 기절하듯이 잠에 빠진 미리의 말을 이해하는 데만 수 초가 걸렸다. 덕분에 성아는 미리를 집에 내려다 주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고작 네 단어로 구성된 미리의 문장을 분석하고 설명하려 느려진 사고회로를 혹사했으며, 다음 날 아침, 그녀의 맨정신은 전날의 사건을 술주정이거나 자신을 놀리려는 장난이라며 납득하고 넘어갔으나, 그 이후에도 몇 번이고 불현듯 떠오르는 기억 때문에 혼란스러운 심경으로 주말을 보내야 했다.


그러고 보면 나미리 선생님, 요즘 들어 제대로 된 연애도 못 하셨지. 외로우실 만 해. 그런데 나는 미남 씨랑 있었던 일들로 떠들어대기 일쑤였으니... 앞으로는 좀 자중해야지. 아니면 그냥 내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건가? 많이 취하시기도 했었고, 나미리 선생님은 기억도 못하실 텐데. 복잡해진 생각을 정리하지 못해 미남과의 데이트 계획 역시 취소해버린 그녀였다.


직접 만나서 늘 그렇듯 으르렁대다 보면 금세 기억도 못할 거라고 확신했으나, 막상 미리를 마주하자 사흘이 얼마나 긴 시간인지를 체감할 뿐이었다. 나미리 선생님이 원래 저렇게 생겼었나? 미인인 건 예전부터 알았지만, 뭔가 느낌이 달라진 거 같은데. 정작 평소와 다름없이 자신을 대하는 미리의 태도와 자신만 어색해하는 모습 사이의 괴리감 때문에 그녀를 피해 다니던 참이었다.


그렇기에 갑작스레 미리와 대면한 지금 이 상황이 더더욱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그런 성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미리는 더욱 가까이 다가섰다.


"어디 아프세요? 얼굴이 좀 빨간 거 같은데."


서로의 숨결이 느껴질 만큼 얼굴을 밀착시킨 미리는 조심스레 성아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열은 없는데... 걱정어린 미리의 목소리와 위아래로 오물거리는 그녀의 입술이 소리와 영상의 싱크가 어긋난 영화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성아는 자신이 그 입 모양에 미리의 고백을 덮어씌우고 있음을 깨달았다. 저, 선생님, 좋아하나, 봐요. 성아의 얼굴이 조금 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붉게 달아올랐다.


자신도 모르게 미리를 밀쳐내고 나서야 성아는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당황과 자책은 금방 스쳐 지나갔지만, 미리의 절제된 미소로도 감출 수 없는 눈빛의 동요가 성아의 죄책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래, 틀림없는 죄책감이었다. 자신이 미리에게 상처를 줬음을 인식하자마자 왼쪽 가슴에서 느껴지는, 콕콕 찌르는 듯한 통증을 성아는 그렇게 단정 지었다.


"오늘 끝나고 맥주 한 잔 어떠세요? 제가 살게요."


상황을 수습하려는 성아의 말이 그녀의 의도보다도 높고 빠르게 튀어나왔다. 갑작스러운 제안임에도 미리의 주의를 끌기에는 충분했던 모양인지 그녀의 눈빛이 반짝였다.


"전 좋아요. 그런데 선생님-"

"그럼 이따가 퇴근하고 봬요. 저는 다음 수업 전에 준비할 게 좀 있어서 먼저 가볼게요."


재빨리 약속을 확정 짓고는 성아는 황급히 몸을 돌렸다. 안 그래도 나미리 선생님 얼굴 보기 불편한데 어쩌자고 단 둘이 술 약속을 잡아버린 거지. 스스로를 탓하는 독백에도 불구하고 성아의 입꼬리는 미세하게 올라가 있었다. 쿵쿵. 그녀의 가슴을 찌르던 감촉은 어느새 안쪽에서 두드리는 노크로 변모되어 있었다.


#


유치원을 나설 때까지만 해도 내리쬐던 무더위가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해가 진 도시의 밤공기는 서늘했다. 미남과 커플로 맞춘 얇은 난방 대신 따뜻한 맨투맨을 선택한 아침의 자신에게 성아는 감사를 표했다. 금방 서류 하나만 검토하면 되니 먼저 가 있으라던 미리는 벌써 20분째 도착할 기미가 안 보였다. 여기 입구 찾기가 좀 복잡해서 혼자 못 오실 텐데. 성아가 미리를 애타게 기다리는 건 빨리 추위를 피해 가게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서, 그뿐이었다.


왜 이렇게 안 오시지. 전화해볼까? 재촉하려는 걸로 보이려나. 성아가 한참 고민에 빠져있을 무렵에 익숙한 검은 머리가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나미리 선생님! 머리 위로 손을 흔드는 성아의 동작은 조금은 지나치게 들떠있었다. 그런 만큼 미리와 동행한 은주의 모습을 발견한 성아의 심경 변화가 더욱 극적으로 비쳐 보이는 것이었다.


"차은주 선생님도 오셨어요?"


유치원 교사 생활로 단련된 웃음을 유지한 채 성아는 미리와 은주를 맞이했다. 입꼬리에 쥐가 날 것만 같은 심정이었다.


"저... 나미리 선생님께서 불러주셔서..."

"셋이 마셔도 괜찮죠? 대신 반은 제가 낼게요."


눈치 없이 덧붙이는 미리의 미소는 그 와중에도 참 예뻤다. 성아는 한숨을 애써 억누른 채 두 사람을 가게 안으로 이끌었다. 술자리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뭐.


#


술자리에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은 가게의 입장인 모양이다. 성아는 흐릿한 시선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생각했다. 분위기에 휩쓸리다 보니 주량을 넘겨도 한참 넘겨버렸다. 바싹 마른 입안에 풍기는, 뱃속에서 올라오는 알코올 냄새에 성아는 다시 한번 머리를 테이블에 얹었다. 그녀의 옆자리엔 은주가 안경을 벗은 채로 엎드려 있었다. 그녀에게 접근하려던 남성들이 하나같이 성아로써는 듣도 보도 못한 쌍욕을 얻어먹고 충격받은 채 돌아가는 모습을 오늘 밤 내내 목격했기에 그녀는 얌전히 고개를 돌렸다. 테이블 건너편에 앉아있어야 할 미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오늘 좀 덜 마시시던데, 숙취가 심했나. 하긴, 저번에 많이 드시긴 했지. 마음에도 없는 소리나 하실 정도였으니까. 나도 됐다, 이거야. 나미리 선생님보다 훨씬 잘난 남자친구도 있고. 근데 미남 씨 이름이 뭐였더라. 미남 씨구나. 이름도 비슷하네. 미리, 미남. 미남, 미리. 미리.


의식의 흐름이 맥락 없이 그녀의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는 듯했지만 결국 그 목적지는 정해져 있었다. 나미리 선생님 어디 있지.


"차은주 선생님, 정신 좀 차려보세요."


그토록 애타게 찾던 미리의 목소리가 머리맡에서 들려옴에도 성아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하여튼 차은주 선생님 엄청나게 챙기네. 굳이 술자리에도 부르고. 저번에 데려다준 게 내가 아니라 차은주 선생님이었으면 거기다 대고도 좋아한다고 했겠지.


"여기서부터는 제가 모시고 가겠습니다."


중저음의 남성의 목소리가 은주를 깨우려는 미리의 분투에 끼어들었다. 잠시 옆자리에서 들썩거리더니 은주가 앓는 소리를 내며 멀어지는 게 들려왔다. 그... 수지네 경호원. 흑곰 씨였나. 술 취한 걸 데리러 올 만한 사이구나, 이젠. 차은주 선생님 잘됐네.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곁눈질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성아는 싸한 느낌에 시선을 위로 돌렸다. 옆으로 누운 채 팔짱을 낀 미리와 눈이 마주쳤다.


"뭘 아직도 엎드려 계신 거예요? 술 좀 깨셨으면 일어나세요, 채성아 선생님."


묘하게 날이 선 미리의 말에 성아는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미리의 모습도 다시 위와 아래를 찾아갔다. 영업시간이 이미 끝났는지 가게에는 자신들을 제외하면 뒷정리 중인 알바생들밖에 보이지 않았다. 보아하니 미리가 계산까지 다 마친 모양이었다. 그래서 저렇게 화가 났나. 일차원적인 사고회로임에도 성아는 무시할 수 없는 위화감을 느꼈다. 짐짓 다그치는 듯한 목소리와 미리가 부르는 자신의 이름에서 읽어낸 감정은 상반된 것이었다.


"나미리 선생님, 왜 저만 미워해요?"


뜬금없이 튀어나온 성아의 술주정에 미리는 어이없다는 듯이 그녀를 바라봤다. 한동안 대답이 없자 성아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울상을 지어 보였고, 그제서야 미리는 성아가 내심 바랐던 대로 당황하면서도 그녀를 달래려 다가섰다.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선생님을 왜 미워해요."


급격히 다정해진 미리의 태도에 성아는 속으로 흡족스러워 하면서도 기회를 놓치지 않고 푸념을 늘여놓았다. 맨날 저한테 뭐라고 하시구... 오늘도 차은주 선생님만 챙기구... 반은 주정이고 반은 연기인 성아의 신세 한탄에 미리는 부드러운 손길로 성아의 머리를 쓸어내렸다. 성아는 미처 눈치채지 못했으나, 얌전히 머리를 대고 있는 그녀가 사랑스러워 어쩔 줄 모르겠다는 애정 어린 눈빛이 미리의 두 눈에 아른거렸다.


"좋아한다고 했으면서."


말을 꺼내자마자 성아는 자신이 실언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머리를 쓰다듬던 미리의 손길이 멈춘 것이 그 첫 번째 신호였으며, 미리가 조심스럽게 몸을 떨어트린 것이 두 번째였다.


"...다 기억하고 있었네."


미리의 목소리가 불안하게 떨렸다. 성아가 그녀에게로 시선을 옮겼으나 미리는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선 채 얼굴을 보여주려 하지 않았다.


"그날은 제가 술에 취해서 좀 실수했나 봐요. 그냥 잊어주세요."


미남 씨한테 연락 드렸으니까 곧 데리러 오실 거에요. 저 먼저 갈게요. 옆에 못 있어 드려서 죄송해요. 뒤따른 몇 마디는 성아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랫입술을 깨문 채 돌아서는 미리의 모습이 매정하게 느껴졌을 뿐이었다.


멀어져가는 미리의 뒷모습이 아지랑이처럼 일렁였다. 성아는 미리의 마지막 말을 떠올렸다. 실수했나 봐요, 잊어주세요. 암만 술에 취해 오락가락하는 정신이라지만, 몇 번을 되짚어봐도 명백했다. 나미리 선생님, 결국 아니라고는 안 한 거지. 쿵쾅, 쿵쾅. 심장이 가슴을 뚫어버릴 기세로 노크 소리를 키워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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