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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재업)무제-14

1234(39.113) 2020.07.19 19:4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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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이제 없다.


오직 있는 것은 총알, 폭발, 그리고 죽음 뿐.


엠마는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남은 것은 오직 하나, 명령에 따라 적을 쏘고 죽이는 것 뿐이다.


철컥


장전 손잡이를 당기고 그녀는 종이탄피를 집어 넣는다. 다행히 적들은 아직 전장식 소총, 덕분에 엎드려서 사격 가능한 것은 그녀들에게 있어 유리한 일이었다.


장전이 끝나고 어떤 주저 없이 그녀는 앞으로 다가오는 적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정확하게 명중, 피를 흘리며 적은 쓰러졌다. 엎드려서 사격하는 것은 전투를 압도적으로 유리하게 이쪽으로 이끌었다. 구식 소총으로 무장한 적병들의 전투력이란 뻔한 법이다.


한발 발사 후 화약을 총구로 집어 넣고 총알을 다시 넣은 후 꼬질대로 꾹꾹 눌러 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는 사이 이쪽은 종이탄피를 그저 집어넣고 장전하면 그만이다. 물론 이것도 이것대로 문제가 없진 않았지만 총기 수입을 말끔하게 한 자신의 애총은 언제나 그녀를 배반하지 않았다.


장전이 끝나고 다시 방아쇠를 당긴다.


"윽!"


짧은 비명과 함께 정면의 적은 쓰러졌다. 일방적인 학살이라 해도 다르지 않는 전투 양상은 그녀와 동료들의 사기를 크게 올려버렸다.


콰앙


"으아아아악!"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소총이 있다 하더라도 포병 화력에서 밀려버리면 끝이다. 저들은 최신예 후장식 대포로 무장하고 있었다. 아무리 엎드려 있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신형 후장식 대포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엠마! 후퇴...."


미리아가 제대로 말을 끝내지도 못하고 쓰러졌다. 차마 그녀의 시신을 바라볼 수 없었던 엠마는 그녀의 마지막 말을 따라 후퇴하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다행히 아직 어떻게든 살아있던 포병대가 엄호 사격 중이다.


그 사이 도망가지 못한다면 죽는 것은 그녀일 것이다. 엠마는 최대한 빨리 다른 사람에게 후퇴를 말하며 도망쳤다.


전투는 패배했다.


그 사실을 다른 누구보다도 뼈져리게 느낀 건 엠마였다. 보병 화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압도적인 화력 앞에 그녀들의 군은 패배하였으니까. 살기 위해 그녀는 최선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 안전한 곳이라 생각한 순간 그녀는 느껴야 했다.


자신의 뒤에서 관통한 총알을.


뜨거움과 아픔이 그녀를 쓰러지게 만들었다.


매케한 화약 냄새, 그리고 흘러내리는 피는 엠마의 머리를 어지럽힌다. 이렇게나 아픈 것이 있다는 것을 단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다.


살이 타는 것 같았다.


몸을 어떻게 가눌 수가 없었다.


털썩


결국 그녀는 쓰러져야만 했다. 살아있지만 이대로라면 죽음 뿐이겠지. 누군가 그녀를 치료해주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렇지만 구원의 손길 따위는 없었다. 아니 그런 기적은 일어날 수 없었다.


동료들은 이미 그녀를 챙기고 도주할 틈이 없었다. 고개를 돌아보니 적들은 다가온다. 살기 위해선 결국 부상병 하나 둘은 포기하는 것이겠지.


이대로라면 위험했다. 엠마는 어쩔 수 없이 주변의 강에 뛰어들었다. 잘못하면 죽겠지만 잘하면 살 수도 있겠지. 신의 인도 아래 살아남기를 바라며 그녀는 차가운 물 속에 몸을 맡겼다.


---------- 


정신을 차렸을 때 엠마는 침대에 있었다. 처음보는 장소였다.


몸을 움직이기에는 격통으로 시달리고 있었지만 그나마 움직일 수 있는 오른손으로 상처부위를 확인하니 붕대가 감겨져 있었다. 누군가 자신을 건져서 치료해준 모양이었다.


고개를 돌아보니 전형적인 농촌 사람들의 방이다. 적국과 달리 이곳의 사람들은 특유의 문양으로 방을 장식하는 만큼 위험한 곳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엠마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였다.


지켜야 할 곳을 지키지 못했다. 게다가 그녀는 부상까지 입은 상태.


후퇴 중 부상으로 인한 낙오니 탈영은 아니더라도 결코 명예스럽지 못한 모습이다. 그렇지만 그녀는 어떻게 할 수 있는게 없었다.


그저 이대로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고작이겠지.


이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굴욕 앞에서 그녀의 표정은 어둡기만 하였다. 그렇지만 한편으론 다행이라 생각했다. 자신을 구해준 사람 덕분에 그녀는 살아남았으니 말이다.


뭐라 할 수 없는 복잡한 심정 속에 그녀는 한숨만 내쉬었다.


"어 깨어났어요?"


문이 열리고 엣띤 소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그녀가 아는 목소리였다.


"세라?"


놀라움을 뒤로 하고 엠마는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엠마 언니 다행이에요."


눈물을 글썽이며 세라는 엠마에게 다가왔다. 잠시 그녀의 마을에 주둔하던 동안 엠마는 세라와 많이 친해졌었다. 그렇지만 군부대는 언제든 이동한다. 덕분에 그녀와의 짧은 만남은 끝나버렸다.


마을의 아가씨라곤 하지만 아직 어린 나이다.


그래도 당돌하면서도 그 나이 또래의 활발함이 마음에 들던 소녀였다.


하지만 그런 그녀가 자신을 구해주다니 참으로 놀랄 일이었다.


"언니 겨우 들어 옮겼다니까요? 우연히 발견하지 않았으면 위험했어요. 체온도 얼마나 내려갔는데요."


"...."


무거운 군장을 매고 강에 뛰어들었으니 당연하겠지.


"언니의 상처를 어떻게 치료하고 바로 같이 들어가지 않았다면 정말 언니 죽었을지도 몰라요."


얼굴을 붉히며 세라는 그렇게 말했다. 엠마 또한 얼굴이 붉어졌지만 그래도 살리기 위한 일이었다. 그것에 뭐라 할 순 없었다.


"고, 고마워."


"뭐, 뭘요. 언니가 살아있으니 된거지."


세라는 그렇게 말하며 엠마에게 살짝 안겨 울먹거렸고 엠마는 그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을 뿐이었다.


---------- 


한동안 엠마는 침대 위에서만 생활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저런 걸 모두 돌봐주는 세라가 고마울 뿐. 허나 그녀는 이것을 그저 당연하게만 받아들이고 싶진 않았다.


때때로 세라는 자신에게 무언가를 바라는 듯한 눈이었다.


그것은 애정.


엠마는 하지만 그것이 바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안다.


세라는 고아다. 혼자서 꿎꿎하게 살아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외로워했다. 자신이 아니었다면 처음 만났을 때, 세라는 말 못할 치욕을 경험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고민했다.


과연 자신은 무엇을 해야할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음?"


겨우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된 이후 그녀는 가끔 소리를 들었다. 세라를 향해 다가오는 남자들의 소리를.


그것은 그녀의 몸을 원하는 더러운 놈들의 것이었다. 그리고 걱정을 가장하여 세라를 한계로 몰아가려는 자들의 소리였다.


물론 세라는 그런 위협에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언제나처럼 남자 못지 않은 모습으로 그들을 쫓아내려고 하였다. 여자만 사는 집에 감히 남자가 들어오는 자체가 용서할 수 없는 일이겠지.


평소라면 그녀의 곁에는 다른 아주머니들도 있었기에 남자들의 시도는 무위로 돌아갔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까?


마을의 고아란 언제나 그렇듯 버림받기 딱 좋은 존재였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것은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었다.


자신에게 마치 아내처럼 잘해주는 세라에게 자신은 무엇을 해주었던가? 그저 호의가 아니란 건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엠마는 어떻게 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그것은 그녀를 육체적 아픔 이상으로 괴롭게 만들었다.


"꺄아!"


한참을 고민하고 있을 때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세라의 비명 소리였다.


고민은 중요하지 않았다. 엠마는 주저 없이 아픈 몸을 이끌고 비명소리가 들린 곳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나무 몽둥이를 하나 챙긴 것은 현명하다면 현명한 판단이겠지.


그곳에는 용서할 수 없는 짓을 행하려는 남자들이 있었다. 주저 없이 엠마는 멀쩡한 오른팔로 나무 몽둥이를 휘두른다. 아픔을 무릅쓰고 그녀는 정확히 발을 내딛으며 무게를 실어 그들의 허리를 노렸다.


"크아아악!'


악행을 하려던 자는 단 일격에 쓰러졌다. 다행히 죽이려고 한 건 아니었고 실제로 죽진 않겠지만 그래도 한동안 일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언니..."


엠마는 그녀답지 않게 눈물을 흘리는 세라를 껴안아 주었다.


"괜찮아?"


"....네."


세라는 눈물만 하염없이 흘렸다. 그런 그녀를 껴안아주며 엠마는 머리를 쓰다듬어 줄 뿐이었다. 그리고 세라가 그녀에게 입술을 가져 갔을 때, 엠마는 그것을 거절하지 않았다.


---------- 


그날의 사건 이후 엠마의 존재는 다른 이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곧 떠날 것이라고 말했고 일전에 그녀가 마을에 주둔했던 당시 도움을 준 일 덕분에 마을 사람들은 그녀의 존재를 용인해 주었다.


게다가 세라를 건드리려고 했던 자는 평소에도 행실이 문제였었기에 오히려 잘되었단 분위기였다.


하지만 평화도 잠시, 이제 마을은 위험했다. 적군은 이제 이 마을 근처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아직 몸은 완벽하지 않았다. 게다가 얼마나 오랫동안 도망쳐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 엠마는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주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선택을 할 것인가?


어느 쪽이든 좋은 꼴은 보기 어려울지 몰랐다. 특히나 도주는 상당히 위험한 선택이다.


차라리 자신이 항복하는게 나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는다면 마을에서 적군은 무슨 행패를 부릴지 몰랐다. 자기 하나를 희생하는 것이 더 나은 것인지도 모른다.


엠마는 자신 때문에 소중한 사람들이 희생되는 것이 두려웠다.


지키지 못한 수치도 크지만 그 이상으로 앞으로 벌어질 일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왔다.


그렇기에 그녀는 세라에게 솔찍하게 이야기 했다. 자신에게 모든 것을 준 소녀에게 숨길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으니까.


그렇지만 세라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렇게 된거 뭘 걱정해요. 같이 떠나면 되지. 어차피 잡힌다면 저도 죽는걸요. 그럴거라면 함께 도망쳐요."


그랬다.


그들은 공범. 죽어도 살아도 함께였다.


그저 아이인 줄만 알았던 세라는 더 이상 두려울 것이 없어 보였다. 엠마는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그래. 너와 함께라면 말이지."


그렇게 말하며 엠마는 세라를 가능한 힘껏 안아주었다. 세라는 그런 그녀의 행동을 거절하지 않고 대신 키스로 답하였다.


언젠가 찾아올 최악의 결말이 그녀들을 기다리더라도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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