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아유미는 읽던 책을 덮고 베란다로 나갔다.

여름의 더위를 잠시나마 잊게 하는 시원한 빗소리를 즐기며 그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이 가득한 하늘은 부끄럼쟁이 달을 가리며 내일 아침 더러운 것들을 씻어겠다는 듯 대지를 빗물과 함께 청소했다.

이렇게 내리는 비처럼 모든 것을 깨끗하게 정리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유미는 생각했다.

내일은 과연 어떤 표정으로 소라를 봐야 할까?

오늘 있었던 일을 떠올리면 그저 부끄러울 뿐.

그 아이에게 자신은 무슨 짓을 한 것일까?

생각할 수록 마음은 무거웠다.

남들 앞에서 소라의 마음을 부정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라에게 너무나 큰 죄를 지은 것 같았다.

아니 부정하지 않으면 안될 일이었다.

만에 하나 조금만 잘못 트집잡힌다면 소라는 그 아이들에게 상처 입을 것이 분명했다.

그것은 소라도 알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마음을 부정하는 것은 해선 안될 짓이었다.

허나 어쩔 수 없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아니 그런 식으로 자기 합리화를 한다고 자신의 죄는 사라지지 않았다.

가슴이 아팠다.

차라리 자신이 상처받더라도 소라의 마음을 부정하는 것을 하면 안되었다.

그러나 두려웠다.

자신이 상처받을 것이.

그것이 얼마나 큰 잘못이던가?

자신은 왜 그렇게 바보 같이, 자신을 바라보는 소라를 배신한 걸까?

아유미는 자신도 모르게 눈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미안했다.

용서를 구하고 그녀에게 어떤 소리를 들어도 달게 받아야 할 죄를 지었다.

아유미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무겁다.

자신은 얼마나 큰 죄를 지은 것일까?

무거운 마음은 아유미를 짓눌렀다.

그때였다.

벨 소리가 울렸다. 그것은 소라에게서 온 것.

아유미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하지만 받지 않는다면 자신은 정말로 더 큰 죄를 짓는 것이겠지.

어떤 욕이라도 상관없다.

자신의 잘못을 떠올리며 그녀는 조심스럽게 폰을 받았다.

"....여보세요."

아유미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유미.... 오늘 고마웠어.-

소라는 전혀 생각 못한 말을 했다. 소라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아니, 내가 잘못했잖아. 그런 말을 하면 안되었는데.... 나는...."

아유미는 사과하며 다시금 울기 시작했다. 아유미는 오늘의 일이 너무나도 큰 죄를 지은 것만 같았다.

-아, 아니, 아유미가 그렇게 해준 덕에 김을 빼서 걔네들 내게 이상한 일 안했는걸. 뭐 그때는 좀 그랬지만 덕분에 오늘은 무사히 넘길 수 있었어.-

소라는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유미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나, 난 모르겠어. 소라를 위해선 그러면 안된다고 생각하면서 겁먹고...."

-괜찮아. 그럴 수 밖에 없었잖아.-

소라는 아유미를 오히려 달래주었다. 그러나 아유미의 마음은 무거웠다.

"난 괜찮은걸까? 네게 상처만 주는게 아닐까?"

아유미는 자신도 모르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 네가 날 항상 생각해주는 것보다 고마운 건 없어. 그리고....-

소라는 잠시 침묵했다. 아유미는 조용히 다음 말을 기다렸다. 허나 그 짧은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것들이 떠올랐는지 말로 표현할 수도 없었다.

-네가 정말 날 싫어하거나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러고 있진 않을거잖아.-

".... 그래도 난 내가 미워."

-괜찮아. 사랑해주니까 그런거잖아?-

사랑.

아유미는 눈물이 범벅이 된 가운데서도 그 말에 얼굴이 붉어졌다.

"....몰라."

아유미는 눈물을 흘리는 가운데서도 그렇게 토라진 듯 말했다. 그건 어떻게 할 수 없는 반응이었다.

그런 아유미의 반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소라는 전화 상으로 살짝 웃었다.

"웃지마."

아유미는 그렇게 말하며 소라가 웃는 걸 멈추게 하려 했지만 그녀는 한동안 계속 웃었다.

-내일 만나서 이야기 해. 이런거 보면 정말 귀엽다니까.-

"몰라."

소라는 그렇게 말하며 끊었다. 아유미는 여전히 엉망이 된 얼굴로 통화가 끝난 폰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자신은 과연 잘 한 것일까?

아니면 잘못한 것일까?

소라는 괜찮다고 했고 오히려 고맙다고 했지만 자신은 그것을 인정할 수 있을까?

알 수 없었다.

아직도 복잡한 마음 속에서 아유미는 멍하니 하늘만 바라볼 뿐이었다.

비는 계속 내린다.

언제까지고 모든 것을 다 씻어버리겠다는 듯 내렸다.

아유미는 그것을 보며 자신의 마음 속을 시원하게 씻어주었으면 좋겠다고 여전히 퉁퉁 부은 눈가를 닦으며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