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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오네로]이유가 필요한 사랑이라면앱에서 작성

ㅇㅇ(223.38) 2020.08.10 20:42:19
조회 1136 추천 26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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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좋아하는 이유가 뭐야?"




지치지도 않는지 넌 또다시 그렇게 물었다. 창가 쪽에서. 다섯 시 쯤 애매한 대각선의 햇빛을 등 뒤로 받으며. 얼굴은 내 쪽을 바라본 채 삐걱거리는 책상에 교과서를 대고 볼을 비비며.
반쯤 졸린 것도 같다. 눈을 보니 꿈뻑꿈뻑. 요즘엔 웬일로 수업 중에 졸지 않는 것 같더니. 열두 살 어린 아이의 체력은 여기까지가 한계인가보다.
모두가 하교한 한적한 교실이었다. 그러니 저런 대담한 소리도 할 수 있겠지. 누군가 들었으면 그 즉시 교사 자격 파면 감이다. 




"자기가 먼저 고백해놓고. 그런 게 왜 궁금해?"
"그치만 정상적인 어른은 열두 살 애가 고백하면 받아주지 않아."
"그치. 하지만 알다시피 정상적인 어른과는 거리가 먼 것도 사실이지."





내 앞의 조그만 아이는 오래 전부터 봐왔었다. 얼마나 오래 전이냐 하면 내 언니가 내 눈 앞의 아이를 낳고, 점점 커 오는 모습까지 다. 기저귀 가는 모습까지 전부 봤었다. 




"그리고,"




바쁜 언니를 대신해 자주 저 아이를 돌봐주었던 탓일까. 자랄수록 나에 대한 의존이 심했다. 걱정될 수준 즈음엔 언니에게 얘기를 해봤지만 덜렁거리는 나보다는 네가 더 믿음직스럽기 때문이라며 오히려 나에 대한 강한 신뢰를 덧붙였다. 원체 나에게 의존도가 높았던 언니였기도 하고.




"넌 그걸 알고 치사하게 고백한 거고."




언니의 무서운 점 하나는 눈치가 빨랐다. 내 표정이 평소와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무슨 일 있냐고 곧잘 물어보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더욱 티를 내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내가 여자를 좋아한단 것을. 내가 언니를 좋아한단 것을. 
솔직히 들켰을 수도. 하지만 지금의 관계가 유지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살아왔었다.
저 발랑 까진 꼬맹이가, 내 시선을 눈치채기 전까진.




'이모. 우리 엄마 좋아해?'




저 애가 열한 살이 되던 날 정말 뜬금없이 저렇게 물어봤다. 무언가 마시고 있었다면 질문을 던진 애한테 그대로 다 뿜어냈을 거다. 그만큼 몸 속의 무언가가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다. 눈치도 닮는 것일까. 요즘엔 그렇게 끈적하게 바라본 적도 없는데. 좀 무서울 정도였다.




'...'




반박할 타이밍을 놓쳐버린 건 한참 뒤에야 깨달았다. 다 괜찮은데 언니 앞에선 한없이 약해지던 나였다. 그만큼 언니의 아이도 사랑스럽지 않을 수 없었고, 난 내 나름 잘 돌봐주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되돌아올 줄이야. 음.





'흐음...'





뭔가 미심쩍은 듯 날 쳐다보더니 씩 미소를 짓곤 뒤돌아서버렸다.

그 때부터가 시작이었다.





"... 키스해 줘."





파면 감의 멘트를 연타로 맞은 충격에 곧바로 생각이 걷혀들어갔다. 정말 어딜 봐도 귀엽지 않다. 하는 짓이며, 뻔뻔하게 나를 향해 팔을 벌리고 있는 것이며 맘에 드는 게 하나도 없다. 
신기할 정도로 언니와 판박이인 외모마저 마음에 들지 않는다.




"... 망할 꼬맹이."




난 그 아이에게 가까이 걸어갔다. 당황하는 기색조차 없다. 언니를 닮은 얼굴로 징그럽게 눈웃음을 칠 뿐이었다.

처음엔 단순히 호기심이겠거니 했다. 눈치가 빠르고, 그래서 남들보다 조금 더 성숙한 아이겠거니 했다. 그래서 금방 떨어지겠지 하고 농담삼아 받아줬지만, 아마 이게 내 가장 큰 패인이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 어른의 키스는 언제 해 줄 거야?"





입술을 부딛히는 것 쯤이야 저 아이와는 어렸을 때부터 워낙 자주 해와서 익숙한 일이었다. 귀여운 내 조카이기도 했고. 
커갈수록 귀여운 뽀뽀가 점점 입술 말고 내 이곳저곳 향할 때부터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저 애는 싸이코라는 걸. 단순한 장난으로 치부했던 게 패인이었다.




"어른의 키스는. 어른이 되면. 당연한 거 아니야?"
"... 아이인 나는 싫어?"





저 애가 가장 짜증나는 점은 지 얼굴을 너무 잘 활용한다는 점이다. 평소엔 그래도 좀 닮았다 수준이지만 이상하게 울먹이며 보채는 얼굴이 옛날 언니와의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저 표정이 내 약점임을 깨닫고 나서는 지가 불리할 때 툭하면 저 표정을 짓는다.




"난 지금의 나를 사랑해주길 원해."




불가능한 걸 알면서도 말할 수 있는 것은 아이만의 특권이겠지. 가끔은 저 말도 안되는 당돌함이 부러웠다. 저 아이 때만이 가질 수 있는 순수함. 거짓은 한 방울도 담지 않은 눈동자가 날 쳐다보며 그렇게 말했다.




"... 어른의 사정은 복잡한데. 이 정도로 봐주면 안 될까."





하지만 난 이미 어른이 되었고, 그런 유리구슬같은 순수함은 현실의 무게로 가볍게 짓이길 수 있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가장 적합한 해법을 골랐다. 적당히 이 아이가 즐기다 떨어질 수 있으면서, 선은 넘지 않으면서, 어떠한 경우에도 상처가 덜 할 수 있는. 그런 선택지만 골라야겠지. 어른이 된 이상 나에겐 그런 선택지밖에 남지 않았다.

난 아이를 번쩍 들고 꼭 끌어안아줬다. 이럴 땐 얌전해서 좀 귀엽다.




"... 상관 없어. 이유가 없는 사랑이라면,"
"..."
"이유를 만들면 되니까. 내가."




품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던 애가 내 눈을 보며 참 교활하게도 말했다. 묘하게 여우같은 웃음도 좀 닮은 것 같다. 언니와. 뭔가 진 것 같아 짜증이 밀려와 아이의 고개를 내 어깨 너머로 휙 넘겨버렸다.





"으으, 놔. 키스할 거야. 뽀뽀. 뽀뽀할 거야..."
"어허. 가만히 있어. 확 놔버린다."




딱 현실의 무게가 느껴질 만큼 가벼웠다. 대충 아이의 책가방을 다른 한 손에 들고 교실을 빠져나왔다. 아직 이유는 없지만, 저 아이가 지쳐떨어질 때까진 이래도 되겠지. 원래 글러먹은 어른이었으니까. 언니에게 욕정이나 하던 몹쓸 동생이었으니까. 지옥이라도 특급 불가마를 타고 입장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했다. 그랬었다. 그런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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