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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오네로]혹시 당근이새오?앱에서 작성

ㅇㅇ(112.150) 2020.08.13 03:18:39
조회 672 추천 17 댓글 2
														

혹시 당근이새오?

끝날듯 끝나지 않던 장마가 그친 어느 날 오후. 거리 위로 내리쬐는 햇살이 반가워 은행업무를 핑계로 직장동료들 틈을 빠져나왔다. 이제 막 사회에 물들어가는 어른이의 소소한 일탈은 즉흥적이면서도 뒷말이 무서운 법이었다. 그렇게 멀리가지도 못하고 도보로 10분, 역 앞 광장 한 켠 적당히 잘 마른 벤치에 기대 앉아있으려니 누군가 혀짧은 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혹시 당근이새오?"
"당근?"

반사적으로 되물으며 돌아보니 앉은 키와 비슷한 눈높이의 여자아이가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인채로 손가락을 뻗었다.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유치가 빠진 자리를 반쯤 채운 토끼이빨과 송곳니가 빠끔 마중을 나왔다.

"그거 파신다고 했자나여. 뿌링큐어에 나오는 구르미여."
"이걸 판다고? 비매품인데."

아이의 손가락이 닿은 건 클러치백에 달린 열쇠고리. 며칠 전 회식 후 세살 어린 선임이 취한채로 인형뽑기에서 뽑아준 곰 비슷한 캐릭터였다. 개인취향은 묻지도 않고 서툰 손짓으로 달아두길래 냅뒀다가 잊어버리고 있었던가. 무심코 열쇠고리의 커다란 귀를 툭 건드리자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아이의 시선이 엄지 손가락만한 싸구려 인형을 따라 움직였다.

"너 혼자야? 부모님은? 이거 산다고 시내까지 온거니?"
"검중님이 여기서 보자면서요. 직거래하면 네고해준다고 한 거 맞죠?"

제대로 대답한 건 하나도 없지만 짐작하건데 역 앞에서 누군가에게 열쇠고리를 사기로 한 듯 했다. 겨우 초등학생 정도 되어보이는 애를 부모가 혼자 보낼리 없으니 몰래 나왔을테고. 겁없는 아이의 무모한 도전을 가지고 실랑이 하기에 직장인의 점심시간은 짧았다.

"이게 가지고 싶은거지?"

한숨을 푹 쉬고선 클러치백에서 열쇠고리를 떼어 아이의 손에 쥐어줬다.

"자, 얼른 집에 가 꼬마야. 이런 거 싸게 판다고 낯선 사람한테 함부러 다가가지 말고."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며 일어나려는데 아이가 덥석 소매를 붙잡았다.

"이잉? 구르미한테 이런거라니여!"
"어?"
"그리고 엄마가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해써여! 분명히 나중에 바가지 씨울꺼라고 조심하랬어여!"

아이가 목소리를 높이자 지나치던 사람들이 흘끗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황급히 벤치에 주저앉듯 다시 엉덩이를 붙이고 일행인척 아이를  옆자리에 앉혔다.

"그런게 아니고 이모가 너 예뻐서 주는거야."
"이잉?"

급하게 내놓은 멘트가 썩 좋지 않았다. 더 수상해지기 전에 수습하려는데 말꼬리마다 턱을 치켜들던 아이가 등에 맨 가방을 풀더니 주섬주섬 뭔가를 꺼냈다. 조막만한 손에 차고 넘치는 크기의 여자아이 둘과 열쇠고리의 곰 모양이 그려진 스티커였다.

"검중님도 백합 조와해여?"
"응? 어. 그럼. 이모 그거 잘해. 회사에서 제일 좋아하는거야."

무슨소리인지는 몰라도 맞장구를 치자 아이는 반토막짜리 토끼이빨 너머 편도가 보일 정도로 환히 미소지었다.

"우와! 이렇게 큰 사람이 좋아하는 건 처음봐여! 나도 우리학교에서 제일 조아해여! 사실 저밖에 안 조아해여. 그래도 카페에서 만난 애들은 보빔왕국이 좋대여! 한번도 만나본적은 없지만여. 검중님은 뭐가 제일 조아여?"
"어... 이모가 좋아하는 건 옛날거라 잘 모를거야."
"옛날거면 마리아가씨가보고계셔?"

아무래도 좋다. 위기탈출 겸 대충 맞다고 하며 아는척을 하자 신난 아이는 손짓 발짓을 해가며 떠들기 시작했다. 의심의 눈초리를 하던 사람들도 지나쳐가고 광장이 한산해지자 월급쟁이 어른이는 초조해졌다.

"그래서 미래랑 리아가 왜 결혼한 사이냐면..."
"음... 저기 얘야?"
"제 닉네임은 사약선발대인데 편하게 불러요 검중님! 백합파는 사람들은 다들 친구니까요!"

세상 편하게 말을 거는 아이는 쉽게 마음의 경계를 허물 수 없는 닉네임을 부르더니 자신만만하게 악수를 청했다.
엉겁결에 마주잡은 손이 생각보다도 여리다.

"그래그래. 하여튼 그건 선물이니까 가져가."
"근데 저기 제가 오프라인에서 백합파는 어른 만난게 처음인데 연락해도 되여? 뿌링큐어 얘기도 하고 검중님이 좋아하는 것도 잘 모르는 거라 물어보고싶고..."

아이의 탄력에 내심 감탄하던것도 잠시. 다시 부끄럼쟁이가 된 아이가 몸을 배배 꼬기 시작하자 처음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먹은것도 없이 점심시간을 통째로 날려도 일해야하는 어른의 사정을 떠올리자 속이 쓰렸다.

"그럼, 만나서 반가웠어. 사약순찰대? 선발대였나?"
"사약선발대에여. 집에 가서 바로 쪽지 보낼게여 검중님!"
"하여튼 너도 조심해서 들어가."
"또 만나여!"

적당히 구색을 맞춘 말에도 만연한 미소. 광장을 떠나는 아이를 배웅해주려다 팔만 열심히 흔들뿐 가지를 않아서 먼저 벗어났다. 돌아오지 않는 답장에 동심은 와장창 깨지겠지만 거기까지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그렇게 안심했던 어른이는 10년후 바디프렌드의 침대 머리맡에서 발견한 구르미 열쇠고리에 덜미를 잡혔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여아쟝갤이니 실화같은 판타지를 바탕으로 각색하였슴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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