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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무제-57

1234(39.113) 2020.08.15 18:21:50
조회 144 추천 13 댓글 0
														

사람이 망가지는 건 아주 쉬운 일이다.


특히나 자신의 긍지가 무너지는 순간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처럼 무너지는 사람은 어디서든 볼 수 있다.


어떻게 올라간 대회였는데, 노아는 아직도 자신이 탈락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누군가에 의해 부딪히는 바람에 손가락을 다치고 결국 제대로 된 연주를 하지 못한 채로 탈락했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다.


결국 자신은 떨어졌으니까.


그리고 더 이상 지원은 없을 것이다.


이 대회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성적을 올리는 것만이 지원을 이어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융통성 없기로 소문난 지원 단체는 불의의 사고로 제대로 된 연주를 할 수 없게 된 소녀를 더 이상 지원하지 않을 터였다.


담당자들은 안타까움을 금할 수 밖에 없겠지만 높은 사람들이란 본래 그런 자들이다.


그들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서류로 증명되는 자료들 뿐.


결과가 없다면 어떤 것도 지급할 수 없다.


그것이 지원단체의 기본 정책이다.


남에게 좀더 나은 지원을 하면 안된다는 이상한 평등 의식에 사로잡힌 고리타분한 자들.


그래도 그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어찌되던 돈을 주니까 그 돈으로 대회를 나가고 상을 타며 그들의 체면을 세워주었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그 사실이 노아를 절망으로 이끌었다.


게다가 다친 손은 치료하는데만 얼마의 돈이 들어갈지 알 수 없었다. 지금 이렇게 대충 붕대로 묶어놓았지만 제대로 치료하고 재활하는데 걸릴 돈과 시간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허나 지금은 무엇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침대에서 일어날 기운도 없이 있을 뿐. 손이 회복된다 하더라도 다음 대회에 나갈 돈은 없다.


이대로 그만 두어야 하는 것일까?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차라리 대회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쏟아내고 떨어지면 이보다 덜 억울했겠지.


그러나 이미 늦었다. 고의든 아니든 누군가와 부딪히며 다친 것은 사실이고 덕분에 이모양이니까.


절망감.


그것이 노아를 짓누른다.


이대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예술 대신 일반적인 일을 알아봐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짓을 하더라도 연주자의 길을 이어가야 하는 걸까?


머리가 복잡했다.


띵동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누구도 보고 싶지 않기에 노아는 무시했다.


띵동


인내심 있게 정해진 간격에 맞춰 초인동은 계속 울린다.


"누구세요?"


결국 노아는 패배했다는 듯 밖으로 나왔다. 민폐는 생각도 하지 않고 초인종을 누르는 사람을 쫓아내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죄가 된다.


이런 때에는 사람을 보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연 문 앞에는 전혀 예상 못한 사람이 있었다.


"미나미상...."


절대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그녀에게 있어서 항상 벽이 되었던 사람.


사사건건 그녀를 방해하고 어떻게든 자신의 곁에 묶어두려고 한 사람.


그래서 노아는 미나미에게서 멀어지려고 했다. 하지만 미나미는 노아를 결코 놔두려 하지 않았다.


"손은 괜찮아?"


능글능글한 웃음을 띄며 미나미는 손부터 물어보았다. 그것은 마치 자신의 계획대로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설마?"


노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만약에 자신의 머리에 떠오른 그 생각이 사실이라면 어떤 원망을 퍼부어야 할지 모를 일이다.


"미안한데, 네가 생각하는게 뭔지는 알지만 난 아니야. 난 네가 이런 식으로 무너지는거 보고 웃으러 온거 아니니까."


미나미는 그렇게 말하며 이제까지의 웃음과 다른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마치 먹이를 발견한 뱀과 같은 표정이었다. 노아는 순간 자신의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당신에게 제안을 하려고 온거야."


미나미의 목소리는 나긋나긋했지만 그것은 마치 악마의 속삭임과 같은 달콤한 역겨움이었다.


"제안?"


노아는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내 여자가 될래? 대신 난 당신이 대회 나가는 걸 지원해줄게."


전혀 뜻밖의 말. 노아는 순간 답하는 것을 잊어버렸다.


"무, 무슨.... 나, 난 여자라고! 당신도 여자고!"


노아는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정상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제까지 자신을 괴롭히기만 한 사람이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데 어떻게 받아들이라는 것인가?


"싫으면 관둬도 좋아. 대신 당신은 더 이상 음악을 할 수 없겠지. 그 손 어떻게 할꺼야?"


"...."


노아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의 손, 대회 참가비, 그리고 대회 준비를 위한 모든 것들. 그 모든 것들은 다 돈이다.


하지만 자신은 돈이 없다.


자신 정도의 재능을 가진 경쟁자는 세상에 얼마나 있는지 모른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당신의 꿈은 어느 정도야? 회복되지 않은 손으로 더 이상 연주도 하지 않고 살아갈거야? 아니면?"


미나미는 그렇게만 말하고 미소지었다.


자신의 힘을 알기에 지을 수 있는 잔인한 미소.


그것을 보며 노아는 부들부들 떨 수 밖에 없었다.


지이이잉


이런 때에 폰은 울린다. 노아는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받았다.


"....그렇습니까...."


노아는 더 이상 어떤 말도 없이 전화를 끊었다. 역시나 생각대로다. 그들은 그녀에게의 지원을 끊어버렸다.


"...."


노아는 침묵했다. 머리가 멍해졌다. 진짜 그렇게 되면 이제 자신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시간을 두고 회복하고 나서 다른 방식으로 음악을 할 수 있긴 하다. 그러나 그것은 치료가 가능할 때의 이야기.


지금 그녀는 그런 것도 불가능했다.


돈이 없으니까.


"내 것이 되면 된다니까? 악마와 거래를 해서라도 음악을 하고 싶지 않아? 돈이야 얼마든지 있어. 그러니까 제발...."


미나미는 매혹적인,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절대 넘어가선 안되지만 그녀의 말에 마음이 흔들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손만 회복된다면 언젠가 더 높은 곳으로 다시 한번 도전할 수 있겠지.


그 한번이 안되어서 주저 앉는다는 건 참을 수 없는 일이다.


간절함 만큼이나 절망이 크다.


"...."


노아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거절도 하지 못했다. 방황 속에서 그녀는 그저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다.


"후훗."


미나미는 웃었다. 그것은 승리의 웃음이었다.


손을 뻗는다. 노아의 얼굴을 향한 손은 어떤 망설임도 없이 그녀의 뺨을 쓰다듬는다.


하지만 노아는 거절하지 못했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조금만 참는다면, 그녀는 다시 꿈을 손에 쥘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미나미는 그런 노아의 얼굴을 자신쪽으로 들어올리더니 어떤 주저도 없이 입을 맞추며 그녀를 끌어안았다.


거칠기 그지 없는 행동이었지만 노아는 반항하지 않았다. 단지 눈물만 흘릴 뿐.


그런 그녀에게서 입술을 뗀 미나미의 얼굴은 의기양양하지가 않았다. 대신 자신도 모르게 올라온 감정에 취한 듯 눈물이 가득했다.


"차라리 반항을 하라고..."


전혀 의외의 말.


그것은 전혀 예상도 못한 말이었다.


"완전히 무너졌구나. 내게 반항하고 올라와야 할 당신이...."


그렇게 말하며 미나미는 노아를 껴안고 울기 시작했다.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빠른 감정 변화.


그렇지만 그제서야 노아는 느꼈다.


미나미는 일그러진 방식으로 자신을 사랑했다는 것을.


노아는 그런 미나미를 위해 자신이 먼저 입을 맞췄다. 자신으로 인해 무너진, 원수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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