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리에는 ‘소아성애자’인가요?”

 따스한 햇살이 비추는 오후의 테라스, 릴리에의 주인인 필리아 폰 빈터홀드의 입에서 갑작스레 튀어나온 말이었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과 같이 은빛으로 빛나는 머리칼과 새하얀 피부, 나이에 걸맞지 않은 차가운 눈동자와 차분한 성격을 소지한 그녀는, 14살의 나이에 차기 ‘여자’공작의 후보로 거론되기까지 하며 빈터홀드 영지가 입지한 북쪽 영지의 귀족들에게 총명받는 아이였다.

 이름있는 남작 집안 출신의 릴리에는 그런 주인의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그녀를 보필할 수 있다는 것에 늘 자랑스러워하였다.

 그런 만족감을 갖고 오늘도 어김없이 둘만의 오붓한 티타임을 갖는 와중에 릴리에의 주인이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내뱉은 것이다.

 릴리에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평소 조신하고 차갑기만 한 그녀의 입에서 웬, 되도 않는 단어가 나오다니!

“아가씨, 무슨 말씀이신지?”

 릴리에가 차를 끓이던 손을 멈추곤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분명 잘못 들은 것일 것이다. 하지만 필리아는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랑곳하지 않고 같은 질문을 되뇌었다.

“릴리에는 ‘소아성애자’인가요?”

“아닙니다.”

릴리에가 즉답했다. 그러자 필리아는 팔을 괴곤 한참 생각에 빠진듯한 체를 하더니 끝내 입을 열었다.

“그런가요.”

 그렇게 다시, 릴리에는 차를 우려내고 필리아의 찻잔에 티를 따랐다. 방금 막 우러나온 산뜻한 케모마일 티의 향이 테라스 전체에 퍼지는 듯했다.

필리아는 릴리에가 막 따른 따스한 차를 한모금 홀짝거렸고, 릴리에를 다시 쳐다보았다. 그러곤 입을 열고 말하였다.

“릴리에가 제 목욕 시중을 들때마다 욕정하는 건 알고있어요.”

“아가씨! 오해십니다! 욕정이라뇨.”

 릴리에는 그 말에 이전까지 유지했던 침착함은 잊어버리곤 다급히 변명하였다. 욕정이라니. 누가 제 주인을 보고 그런 파렴치한 생각을 한단 말인가. 아니, 사실을 말하자면 목욕 시중을 들 때마다 아가씨의 새하얀 피부에 자꾸 눈이 가긴 하였다. 하지만 그 정도일 뿐 욕정이라는 추잡한 단어와는 거리가 먼 감정이었다.

“정말인가요?”

“정말입니다.”

“제가 차를 마실 때 제 입술을 힐끗힐끗 쳐다보는 건요.”

“그것도 오해입니다. 아가씨의 입술이 아름답긴 하지만 그렇게 대놓고 쳐다보진 않았습니다.”

“몰래는 쳐다봤나요?”

“윽.”

“좋아요. 그럼 저번에 본 걸 물어보죠. 저번에 다른 시녀들이 빤 제 옷을 코에 대고 냄새를 맡고 있던데 그건 뭐였나요?”

 ‘이런 들킨 건가! 하지만 세 번밖에 하지 않았는데 언제였지?’ 릴리에는 생각했다.

“한번이 아니라 세 번 그러던데요.”

 릴리에 자신은 몰래했다고 자부했지만 아니었나보다. 릴리에가 필리아의 옷 냄새를 맡은 진짜 이유는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녀가 자신의 주인 곁에서 그녀를 보필할 때 마다 풍겨지는 향긋한 냄새의 출처가 어디서 나는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절대 추잡한 목적으로 그리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의 주인한테 ‘냄새가 나서 궁금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용인이 어디있겠는가. 릴리에는 필리아에게 그럴듯한 변명을 하기 위해 고심했고, 마침내 떠올려 입을 열었다.

“빨, 빨래가 제대로 말랐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제대로 마르지 않았다면 쾌쾌한 냄새가 났을 테니까요. 주인을 보필하는 자로서의 의무였습니다.”

“정말인가요?”

 필리아가 눈을 가늘게 뜨고 릴리에를 바라보았다. 어린애 답지 않은 차가운 눈동자가 그녀의 심장을 꽤뚫었다. 릴리에의 심장이 벌렁벌렁 뛰기 시작했다. 사심이 없었냐고 물어보면 거짓말이다. 필리아는 어른인 릴리에가 보기에도 빛나 보였고, 아름다웠다. 같은 여자로서 경외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그것이 ‘소아성애’ 같은(그것도 같은 여자로서) 목적으로 품은 마음은 절대 아니었다.

“아가씨, 저는 소아성애라는 독특한 취미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릴리에가 그녀의 주인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그런가요, 그럼 저한테는 욕정하고있나요?”

“아닙니다.”

 릴리에의 말을 듣자 필리아는 약간 아쉬워하는 기색이었다. 그녀의 메이드는 애석하게도 그걸 눈치채지 못한 듯했지만 말이다. 필리아는 곧바로 표정을 숨기곤 릴리에에게 말하였다.

“그럼 다행이군요.”

“네, 그렇죠. 그런데 아가씨 갑자기 그런 건 왜?”

 만약 다른 사용인들이 아가씨께 추잡스러운 지식이나 소문을 귀에 들어가게 해서 이 사단이 난거면 그녀의 주인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필하는 이로써 다른 이들을 주의 시킬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필리아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런 말이 아니었다.

“릴리에가 만약 소아성애자라면 제가 크게되면 절 봐주지 않을 거 아니에요.”

“네?”

“다시 말해드릴까요? 릴리에가 소아성애자라면 제가 크게되면...”

“아닙니다. 아가씨. 저는 아가씨를 떠날 마음이 없습니다.”

“정말인가요? 저랑 같은 의미로 곁에 있어줄 건가요?”

“무슨 불안이 있으신진 모르겠지만 저는 아가씨 곁에 있을 겁니다.”

“릴리에는 정말 이럴 때만 눈치가 없군요. 아니에요, 됐어요.”

 릴리에는 그녀의 주인이 부루퉁해서 하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런데도 필리아는 속으로 그녀를 기필코 함락시키겠노라 다짐했다. 만약, 그녀가 소아성애를 갖고 있었더라면 유예기간이 짧았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게 아니란 것이 확인됐으니 차근차근 공략해 나가면 될 것이다.

 릴리에는 필리아의 어두운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가슴을 쓰라 내리면서, ‘아가씨가 자기가 크면 내가 떠날까 봐 불안했구나.’ 하는 식으로 이번 사건을 넘겼다.

 참고로 릴리에가 필리아에게 공략되기까지 세달이 남은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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