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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무제-58

1234(39.113) 2020.08.16 20:4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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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파멸.


그것은 비극이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보다 더한 즐거움도 없었다. 한 인간의 일생을 건 모든 것이 무너지고 아무 것도 남지 않는 공허한 상태.


그렇게 되는 과정도 즐겁지만, 무너졌을 때를 보는 것이 최절정의 기쁨이다.


유키코는 그런 것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 팔며 돈을 버는, 넘기면 안될 선을 넘겨버린 여자였다.


이른바 망가진 정신을 가지고 있는, 절대 가까이 가선 안될 사람.


그렇지만 그녀가 가진 매력은 언제나 많은 이들을 불나방처럼 이끌곤 했다. 그리고 그들은 언제나처럼 파멸을 맛보았다.


지금 여기 자신의 무릎을 베고 누워있는 토모코처럼 말이다. 더 이상 이길 수 없다는 사실에 울며 항복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유키코는 승자의 기쁨을 만끽하였다.


토모코는 나름대로 능력있는 작가였다. 흔히 말하는 유망주이며 실제로 그런 평가가 틀리지 않은 글솜씨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에게 무엇이 없는지를.


그래서 그녀와 관계된 사람들은 모두 파멸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유키코에게 접근했다. 자신의 벽을 넘기 위해서.


유키코에게 있어 그런 사람들은 정말로 맛있는 먹잇감이었다.


좌절 속에서 무너져 범재가 되던가 은퇴하던가.


그런 모습을 보고 싶었기에 유키코는 토모코를 자신의 영역 안에 들어오도록 허락했다.


그리고는 그저 지켜보았다. 토모코가 무엇을 할 것인지.


토모코는 의외로 정직하게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며 글을 썼다. 그것은 처음 보았을 때와 비교하면 꽤나 놀라운 수준의 글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모자랐다.


자신에게 도전한 무모함에 경의를 표하듯 유키코는 그저 작품으로 승부했다. 정면에서 그녀의 작품을 아주 산산조각을 낼 정도로 지독한 단편으로 토모코를 공격했다.


일반적인 작가라면 그 정도로 무너졌을 것이다.


굳이 평론가들을 움직일 필요도 없이 정면에서 그대로 분쇄되었겠지.


하지만 토모코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발버둥치는 모습을 유키코는 사랑했다. 그녀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존재는 맛있게 먹히기 전까지 최선을 다해 발버둥치는 사람이니까.


토모코의 작품은 사실 아주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유망주 특유의 빈틈은 얼마든지 후벼팔 수 있는 것.


유키코는 몇 번이고 무너트리기 위해 공격했다. 과거랑 다른 점이라면 일부러 더러운 수를 쓰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작품으로 승부했다.


그건 약간의 변덕이었다.


토모코가 일반적인 사람이 아니었기에 부린 약간의 자비.


그 과정 속에서 몇 번이나 술도 같이 마시고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며 유키코는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과연 어느 누가 이렇게까지 그녀를 흥분시킬 수 있을까?


오늘은 또 어떤 글을 쓰고, 내일은 또 어떤 글을 쓸지 너무나도 기대되었다.


그렇기에 유키코는 계속해서 토모코를 무너트리려고 키보드에서 손을 놓지 않았다. 토모코도 거기에 맞서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하지만 결국 오늘, 토모코는 무너졌다.


더 이상 쓸 수 없을 것 같다는 말을 하며 그녀는 유키코에게 눈물을 보였다. 완벽한 패배.


그 모습은 더 없는 쾌락이었다.


조금만 더 자신을 갈고 닦는다면 깨졌을지 모를 원석.


하지만 그 마지막을 견디지 못하고 또 다시 무너진 재능.


그렇기에 유키코는 토모코를 정말로 소중하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왜 난 안되는 걸까요?"


토모코는 여전히 퉁퉁 부은 눈을 한 채로 유키코에게 물어보았다.


"포기했으니까."


자신이 그렇게 한 주제에 유키코는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답했다.


"...."


억울하다는 듯 토모코는 오리처럼 입술을 쭉 내밀었다. 하지만 더 이상 덤빌 힘은 남아 있지 않았다.


재능의 차이.


벽을 깰 수 있는 인내심.


그 모든 부분에서 토모코는 유키코를 이길 수 없었다.


"근데 왜 평론가를 쓰고 하면서 공격하지 않았나요?"


유키코라면 평론가들까지 동원해서 상대를 파멸로 이끄는 건 문단에서 이미 유명한 일.


그렇지만 토모코에게는 전혀 그러지 않았다.


"그게 더 확실하게 널 망가트릴 수 있었으니까."


정면 승부로 상대를 무너뜨리는 것이 제일 재밌다고 유키코는 어떤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그녀의 말 앞에 토모코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미 무너진 자신은 앞으로 뭘 할 수 있을지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런 주제에 이렇게 유키코에게 어리광을 부리는 건 무슨 생각인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허나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유키코는 결국 자신을 파멸시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한편으로는 은인이었다.


만약에 자신이 그녀를 격파시켰다면 입장은 바뀌었을지도 모를 일.


하지만 토모코는 약했다. 결국 그녀는 포기하고 도망쳤다.


이제 남은 건 뭘까?


자신이 무얼 할 수 있을까?


아무 것도 알 수 없었다.


그저 다시금 눈물이 흐르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그래 실컷 울어. 날 위해서. 날 좀더 즐겁게 해줘."


유키코는 황홀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것은 그녀를 오싹한 쾌락으로 이끌었다.


그저 더러운 사생활을 파헤치는 것으로 상대를 무너트릴 수도 있고 때론 약간의 조작으로 자멸시킬 수도 있다.


허나 토모코는 순수하게 개화되지 않을 실력을 자신의 능력으로 짓밟았다. 그것보다 더한 즐거움이 또 있을까?


"악마...."


토모코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유키코의 무릎에서 머리를 떼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손길을 기분 좋게 받아들일 뿐이었다.


"응. 그래서 세상은 즐거운거야."


그렇게 말하며 유키코는 토모코의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게 했다. 그리곤 조용히 이마에 입을 맞췄다. 토모코는 잠자코 그것을 받아들일 뿐이었다.


패배자에게 더 이상 어떤 것도 없다는 것을 그녀는 잘 아니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이제 더 이상 토모코는 글을 쓰지 못하겠지. 그저 그렇게 유키코의 먹이가 되어 자신은 사라질 것이다.


그 사실이 너무나 아득하게 느껴진다.


그녀의 집에 다짜고짜 들어와 승부하겠다고 소리친 것도 토모코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주고 자신의 집에서 같이 생활하며 그녀를 가르친 건 유키코였다.


뒤틀어진 선생과 제자의 관계는 이런 식으로 파국을 맞이하였다.


허나 한편으로는 다행이었다.


그렇기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자신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빛나는 유키코를 바라보면서 억울함과 후련함, 그리고 막막함 속에서 토모코는 계속해서 울었다.


그런 그녀의 머리를 언제까지고 부드럽게 유키코는 쓰다듬어 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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