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승지가 21살이 되던 해였다. 고등학생 때부터 나이를 속여 위험한 물건의 배달을 해오던 승지는 20살이 되면서 전보다 더 당당하게 위험한 물건들을 배달하기 시작했고, 1년이 지난 지금은 매우 능숙했다.
승지는 항상 집 근처의 편의점에서 물건을 받고 시간에 맞춰 약속된 장소로 향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승지는 평일이면 늘 같은 시간대에 라면을 먹는 여학생이 눈에 띄었다. 갈색 머리의 작고 마른 체형의 여학생은 늘 교복 차림으로 저녁에 편의점을 찾아와 너구리 컵라면 가장 작은 사이즈를 먹었다. 평소 타인에게 관심 없는 승지였지만 아무래도 같은 시간대에 매일 보다 보니 그녀가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저 그뿐이었다.
***
"어, 왔냐. 오늘은 일찍 왔네."
"응, 담배가 다 떨어져서. 늘 피던 걸로 줘."
승지와 대화를 나누는 사람은 그녀의 동업자인 혜령이었다. 혜령의 주 거처는 부산이었으나, 갑작스러운 단속으로 인해 잠시 서울로 올라왔고 이곳에서 (편의점 알바생인 척) 승지에게 물건을 전달해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혜령은 담배진열대에서 승지가 늘 피는 담배와 검은 봉투를 주었다. 그것을 받아든 승지는 담뱃값을 계산하며 봉투 안에 담긴 쪽지를 확인했다. 쪽지 안에는 배달해야 하는 장소와 시간이 쓰여 있었고 승지는 시계를 보며 그 이동 시간을 잠시 계산했다. 이번 장소는 꽤 가까운 덕에 일찍 온 승지는 시간이 많이 남았다 생각하며 편의점에서 배나 채울 생각으로 라면이나 김밥을 둘러보았다. 곧이어 승지는 라면 하나와 김밥을 두 개 들고 계산대로 왔다.
"허, 언제봐도 많이 먹는구먼."
"시끄러."
평소 먹는 양에 비하면 이것은 간에 기별도 안 가는 양이었지만 승지는 굳이 말하지 않았다. 더 대꾸 없는 승지의 말이 익숙한 혜령은 그대로 계산을 이어갔고 포스기에서 '이벤트 상품입니다'라는 안내 말이 나왔다.
"이거 2+1이란다. 하나 더 들고 와."
그렇게 총 컵라면 1개와 김밥 3개를 먹게 된 승지는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받으며 남은 시간을 다시 한번 더 되뇌자, 문뜩 이렇게나 먹을 거면 차라리 식당에나 갈 걸 생각하였다. 라면이 익는 동안 김밥의 포장을 뜯어 그것을 먼저 먹기 시작한 승지는 편의점 김밥은 퍽퍽하기만 하고 맛없다고 생각하며, 이번엔 라면의 뚜껑을 열어 그것을 먹기 시작했다.
그때 혜령의 휴대폰이 문자 수신 알림을 울렸고 그 내용을 확인하자 그녀의 눈썹이 신경질적으로 꿈틀거렸다. 혜령은 짜증이 난 듯 한숨을 뱉더니, 승지를 보고는 마침 잘 됐다는 얼굴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야, 권승지 오늘 일당 두배 어때?"
"음?"
"오늘 오기로 한 다른 한명이 갑자기 빵꾸가 나서, 대신 좀 가주라."
"어딘데?"
"너 가는 곳이랑 가까워."
승지에게 대답하며 혜령은 그녀에게 장소와 시간이 적힌 쪽지를 건넸다. 혜령의 말대로 거리는 가까웠으나 시간이 애매했다. 앞의 물건을 배달하고 나면 뒤의 물건까지 한 시간의 텀이 있었다. 다른 날도 아니고 겨울에 한 시간 대기는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일당이 두배였기에 승지는 혜령에게 알겠다고 대답했다.
'대충 카페에서 시간이나 때우지 뭐.'
그때 편의점의 문이 열리며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한명이 들어왔다. 혜령은 곧 편의점 알바생인 척 카운터로 돌아갔다. 테이블에 남은 승지는 뒷정리를 하며 남은 김밥의 처리를 고민하고 있자 방금 들어온 여학생이 자신의 옆자리에 앉는 것을 발견했다. 여학생은 평일 같은 시간, 같은 라면을 먹는 유독 밝은 갈색 머리의 소녀였다. 승지는 그녀가 교복을 입은 것이나, 저녁에 오는 걸로 보아 중학생이란 것을 유추할 수 있었다. 여학생은 오늘도 어김없이 늘 먹는 사이즈가 가장 작은 너구리 컵라면 하나를 집어 뜨거운 물을 받고 있었다.
'설마 저녁이 꼴랑 저거 하나?'
평소였으면 관심조차 없었지만 지금은 때마침 처치 곤란한 김밥이 승지의 손에 쥐여 있었기에 그녀가 괜히 눈에 밟혔다. 승지의 시선을 느꼈는지 학생이 승지를 바라봤고 둘의 눈이 마주치자 승지는 잘됐다는 듯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이거 너 먹어."
"네..?"
갑작스레 손에 김밥 두 개를 건네받은 여학생은 당황하여 아무 말도 뱉지 못했고, 승지는 그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편의점을 나왔다.
***
다음날 또 편의점을 찾은 승지에게 혜령이 무언가를 건네줬다. 그것은 음료수 캔이었다
"뭐야 이건?"
"어제 어떤 여학생이 너 주래."
혜령이 말한 여학생이 누구인지 승지는 금세 알 수 있었다. 평일에만 편의점을 오던 여학생은 주말인 오늘 알바로 인해 오지 못하여, 대신 승지의 친구로 생각되는 혜령에게 음료를 전달해달라고 부탁했다. 음료에는 쪽지가 붙어있었고 거기엔 반듯한 글씨로 고맙다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어차피 버릴 거... 그냥 누가 먹는 게 좋을 거 같아서 준 건데... 이런 거 사지 말고 본인 밥이나 잘 챙겨 먹지... 글씨는 또 예쁘게 잘 쓰네..."
예상치 못 한 답례에 승지는 괜히 툴툴거리며 그 자리에서 음료를 곧바로 마셨다.
***
혜령에게 물건을 받기 위해 편의점을 찾은 승지는 괜히 라면 코너에 눈을 두었다. 그런데 그곳에 늘 있어야 하는 무언가가 오늘은 보이지 않았다.
"야, 여기 너구리 라면 비었는데? 빨랑 채워 넣어."
"안돼, 재고 없어."
"뭐? 재고가 왜 없어?"
"점장등신이 발주를 깜박했데~"
혜령은 그런 라면 따위 관심 없다는 듯 승지에게 줄 물건들을 검은 봉지에 차곡차곡 담고 있었다. 혜령의 시큰둥한 대답에 승지의 입꼬리가 비죽 움직였다.
"이런 인기 상품이 재고 없으면 어떡해, 넉넉하게 챙겨뒀어야지!"
"뭐? 야, 넌 내가 무슨 진짜 편순인 줄 아냐? 그딴 거 알 게 뭐야."
"아이씨...!"
"뭐야, 어디가?! 야!!"
"아, 금방 올게!!"
덩그러니 남은 혜령은 사라진 승지의 뒷모습을 보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승지에게 줘야 했을 검은 봉투를 일단 뒤로 밀어 넣으며 다른 사람을 부를지 말지 고민했다.
***
"아.."
미성의 목소리가 작게 안타까운 탄식 소리를 내었다. 그녀는 이전 승지에게서 김밥을 받았던 그 여학생이었다. 여학생은 아르바이트가 없는 평일에 늘 이 곳 편의점에서 저녁을 해결했고, 저녁으로 먹는 것은 무조건 작은 사이즈의 너구리 라면이었다. 그것을 고르는 이유는 단순히 가장 좋아하는 라면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편의점은 이상하게 큰 사이즈의 너구리가 없었기에, 여학생의 선택은 언제나 배를 더 채울 수 있는 큰 사이즈의 다른 라면이 아닌 입맛에 맞는 작은 사이즈의 너구리였다.
그러나 지금, 여학생이 늘 먹는 라면이 없었기에 여학생은 잠시 고민에 빠져들었다.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컵라면들을 스캔하더니 이내 여학생은 진라면, 그것도 순한 맛으로 손을 뻗었다. 그때 소녀의 뒤에서 숨이 벅차 보이는 목소리가 나타났다.
"그거 먹지 마, 진짜 맛없어."
그곳엔 승지가 있었다. 소녀의 선택에 승지는 눈살을 찌푸리며 심지어 맛없다는 제스처의 혀까지 내밀며 말했다. 그리곤 제 손에 있는 하얀 비닐봉지를 여학생에게 건넸다.
"그거 말고, 이거 먹어."
저번처럼 승지에게 억지스럽게 봉투를 건네받은 여학생이 그 안을 확인하자, 그곳엔 김밥 전문점에서 산 도톰한 김밥과 너구리 라면 큰 사이즈가 들어 있었다. 볼일을 마친 듯 승지가 편의점을 나서려고 하자 여학생이 승지를 불러 세웠다.
"앗, 저기!"
"응?"
여학생이 교복 주머니를 뒤지더니 승지에게 꼬깃꼬깃 접혀있는 만원 지폐를 건넸다. 그 모습에 승지가 당황하며 말했다.
"뭐야, 돈을 왜 줘?!"
"그렇지만... 그냥 받을 수는.."
"그냥 주는 거 아냐, 저번의 음료수 답례. 그럼 됐지?"
순수하게 받지 못하는 영원의 모습에 승지는 기분이 언짢은 듯 뾰로통하게 말했다. 한 번 더 거절하면 아주 뺏어 버리자고 승지는 생각했다. 그러나 승지의 예상과 달리 여학생은 승지를 보며 순한 눈망울을 살포시 휘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
처음 본 소녀의 표정에 승지는 말문이 막혔다. 승지는 금세 정신을 차리며 여학생을 두고 편의점을 나와 담배를 하나 입에 물었다. 그리고 그것에 불을 붙이며 편의점 안을 들여다보자 테이블에 앉아있는 여학생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녀의 작은 등이 이상하게 자꾸 승지의 시선을 빼앗았다.
'웃으면 그런 얼굴이구나.'
"저기요, 권승지씨. 저희 편의점은 외부음식 반입 금진데요."
여학생의 등을 바라보기 바빴던 승지의 옆에 혜령이 나타나며 그녀에게 시비투로 말했다. 안에 손님이 있거나 말거나 밖에서 담배를 피기 시작한 혜령은 긴 연기를 한번 내뱉으며 승지에게 다시 말했다.
"너 쟤한테 관심 있냐?"
"뭐래."
"아니면 뭣 하러 저렇게까지 챙겨?"
빈정거리며 묻는 혜령의 질문에 승지는 말 없이 담배만 피울 뿐이었다. 확실히 라면 따위 아무거나 먹게 하면 되는 일이었는데, 뭣 때문에 그것을 사러 가고, 또 김밥까지 사 왔는지 승지는 방금 자신이 한 행동이 이해가 안되었다.
유리창 너머의 여학생의 등은 작고 가녀렸다. 소매 밖으로 드러난 손목이 유독 가늘었고,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흔들리는 머리칼이 부드러워 보였다.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자 승지가 쥐고 있던 담뱃불의 열기에 승지가 정신을 차렸다.
'내가 뭐 하는 거람.'
***
"아."
자신의 집 냉장고를 연 승지가 그곳에 담배가 한개비밖에 남지 않음을 발견했다. 평소 잘 채워뒀는데 일이 바쁜 나머지 깜박한 승지는 마지막 한개비를 입에 물며 베란다에서 불을 붙이곤 새 담배도 살 겸 점심을 먹으러 외출하기로 생각했다.
낮에 들어간 편의점에는 혜령이 아닌 다른 알바생이 있었다. 승지는 인사를 건네는 알바생을 무시하며 라면 코너로 들어갔고 식당에서 밥을 먹을지 간단하게 편의점에서 먹을지 고민했다. 그러나 딱히 내키는 게 없었기에 너구리의 존재만 확인하고 담배를 사러 계산대로 향하려고 하자, 그곳에서 여학생과 마주쳤다.
"어, 이 시간에 여기서 보는 건 처음이네... 학교는?"
승지는 여학생이 교복을 입고 있었기에 그녀가 학교를 다녀온 것을 알아차리며 점심시간 대에 이 곳에 있는 것에 관해 물었다.
"오늘은 졸업식이라서... 일찍 마쳤어요."
"그렇구나. 그런데 원래 졸업식에 후배들도 학교 가던가?"
"아뇨... 이건 그... 제 졸업식이라서.."
그러나 그녀가 졸업생임은 알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게 그녀의 손에는 졸업생이라면 익히 가지고 있을 꽃다발이 없었기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아... 아! 그렇구나! 너의 졸업이구나. 어어 그러니까 졸업 축하해."
승지는 어색하게 웃으며 그녀의 졸업을 축하해줬다. 여학생은 입술을 말아 물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여학생은 승지가 자신이 왜 졸업생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알 수 있었고 동시에 아무에게도 축하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들킨 것이 너무 부끄러워 빠른 걸음으로 승지를 지나치며 늘 먹는 작은 너구리 라면을 집었다.
"아, 잠깐..!"
졸업식인데 아무에게도 축하받지 못하고 또 이런 날에도 먹는 게 늘 먹던 라면이라는 것에 승지는 순간 여학생에게 외쳐버렸다. 승지의 외침에 여학생이 손을 멈추자, 승지는 옆에 있는 큰 사이즈의 짜장라면을 집으려다, 되려 여학생의 손에 있는 라면을 빼앗아 진열대에 욱여넣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나 점심 먹으러 갈 건데, 같이 가자."
***
승지가 여학생을 데리고 온 곳은 근처의 유명한 중국집이었다. 여학생에게 메뉴를 골라보라고 하였으나 예상대로 그녀가 고르지 않았기에 승지는 적당히 주문을 했다. 본인의 졸업식도 챙기지 않았던 승지였지만 졸업식에 짜장면을 먹는 것 정돈 알고 있었기에 그녀는 간짜장과 중화 볶음밥과 탕수육을 주문하였다.
음식이 나올 동안 여학생은 본인이 어쩌다 이곳에 오게 된 건지 이해가 안된다는 듯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에 승지는 여학생의 의견 없이 억지로 데리고 온 것에 혹시나 한 가정을 물었다.
"혹시 중식 싫어해?"
여학생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 모습이 귀여웠던 승지는 피식 웃으며 다행이다 말하고는 여학생에게 물을 따른 컵을 건네주었다. 승지의 작은 미소에 여학생은 순간 시선을 빼앗겨 버린 것도 잠시 승지가 건넨 컵을 건네받고는 그제야 여학생도 수저를 꺼내어 승지에게 주었다.
"중학교 졸업?"
"아, 네."
"그럼 이번에 17살이겠네."
약 두 달간 얼굴만 봐온 여학생의 나이를 처음으로 알게 된 승지는 작게 4살 차이 나네 라고 중얼거렸고 그것을 들을 여학생은 작게 놀래었다. 그 모습을 승지가 왜 그러냐고 묻자, 여학생은 머뭇거리며 말했다.
"전 당연 제 또래라고 생각해서.."
"푸흡."
승지는 방금 전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크게 웃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여학생은 자신의 착각이 부끄럽다 생각하며 동시에 승지는 크게 웃을수록 더 예쁘다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이름이 뭐야?"
"아, 전 지영원이예요."
여학생의 이름은 지영원이였다. 승지는 영원이라는 이름이 그녀에게 무척 잘 어울린다 생각했다.
"난 승지야. 권승지."
"승지... 네, 기억했어요. 승지언니."
"......"
"승지언니..?"
"아."
순간 승지는 마치 넋을 잃은 듯 영원의 말에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이상하여 영원이 한 번 더 부르자, 승지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고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를 때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음식 나왔다. 먹자 영원아."
"아, 네."
급하게 화제를 돌리는 것 같은 승지에게 영원은 아무것도 묻지 못하고 그녀와 밥을 먹기 시작했다. 가위로 한번 자른 짜장면을 조금씩 먹는 그녀의 모습을 승지는 자꾸만 빤히 쳐다보았다. 방금 전 영원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맑게 지었던 그녀의 미소가 승지의 뇌리에서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승지는 소스를 부어둔 탕수육을 우물우물 씹어 삼켰다.
영원이라는 눈앞의 이 아이가 왜 이렇게 신경 쓰이고 왜 이렇게 챙겨주고 싶은지 자신의 마음을 조금 알아 차릴 것만 같았다.
***
계절은 어느새 따뜻해져 꽃들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일 때문에 저녁에 편의점을 찾던 승지는 일이 끝난 후 밤에 한 번 더 편의점을 찾았다. 딱 그 시간대에 야자를 마친 영원이 지나가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주친 영원에게 승지는 담배가 떨어져서, 음료가 마시고 싶어서, 마침 지나가는 길이여서 라는 핑계들을 대었다. 그러다 한번 영원이 보고 싶어서 라며 장난스레 말한 적이 있는데 곧 낯부끄러워 농담이라고 얼버무렸으나, 기뻐하는 영원의 얼굴에 얼버무림을 다시 얼버무렸다. 그리고는 영원과 가는 길이 같다며 그녀의 집까지 바래다 주었고 어느새 그것이 일상이 되어 버렸다.
"언니 그런데 정말로 이 방향에 살아요?"
"응?"
"저 여기 오래 살았는데, 언니 한 번도 본 적 없는 거 같은데.."
"스쳐봤을 수도 있지. 그걸 어떻게 다 기억해."
"언니처럼 예쁜 얼굴이면 멀리서 스쳐도 절대 못 잊을걸요?"
"풋, 내가 그만큼 예뻐?"
"네, 엄청이요."
승지는 요즘 애들은 원래 이렇게 당돌한가 생각하며 영원의 발언에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영원은 첫인상과 달리 매일 조잘거리는 게 참새 같았다.
***
"권승지, 나 인제 서울 뜬다."
"흐음. 아, 늘 피던 걸로."
"자, 여기. 아니, 야 그래서 말인데 전에 말한 거 기억하지?"
"응?"
"같이 부산 가기로 했잖아."
영원이 학교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떨어진 담배를 사러 온 승지에게 혜령이 말했다. 승지는 아차 하며 대답했다.
"그래, 같이 부산 가자."
"네?"
그 순간 편의점 안에 있는 승지를 만나기 위해 들어온 영원이 그녀의 대화를 들었다. 부산으로 간다는 승지의 말을 들은 영원은 세상 모든 것을 잃은 눈동자를 하며 놀란 얼굴이 되었다.
"아, 어서 와 영원아. 학교는 잘 다녀왔.."
이런 영원의 마음도 모르고 그녀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네자, 영원은 승지의 인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그대로 돌아온 길을 따라 되돌아갔다. 갑작스러운 영원의 행동에 승지는 당황하며 그녀를 급하게 쫓았다.
"영원아. 잠깐, 잠깐만 멈춰봐."
영원은 승지의 부름이 아닌 그녀가 잡아챈 손목에 의해 발걸음을 멈추었다.
"영원아 갑자기 왜 그래."
"부산... 정말로 가요?"
"아아, 들었구나. 응, 이번에.."
"안 가면 안 돼요?"
"응?"
"언니 어디론가 가면... 이대로 못 만날 것 같아서... 언니랑 헤어지기 싫어요."
"영원아, 무슨 소리야."
"가지 마요. 절 떠나지 말아 줘요..."
승지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며 말하는 영원은 이번엔 자신이 승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승지의 손을 마주 잡은 영원은 강하게 힘을 주며 목소리가 떨렸다. 그제야 영원이 왜 이러는지 알아차린 승지는 웃음이 터질 뻔했으나 그것을 감추며 말했다.
"....나 부산 가고 싶은데, 보내주면 안돼? 응, 영원아?"
"이대로 가다가 영영 못 만나면 어떡해요... 흑.."
"으음... 그럼 영원이 언니 주머니에 넣고 갈까?"
"네..?"
승지와 헤어질 생각에 눈물을 그렁그렁 모으고 있던 영원이 어느새 승지가 웃으며 자신을 놀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것을 깨닫자 영원의 눈물은 쏙 들어가고 오히려 더 동그래진 눈으로 승지를 바라봤다. 승지는 결국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나 부산 놀러 가. 겸사겸사 쟤 이사도 돕고."
"놀..러..?"
"응. 한 2박 3일? 그런데 우리 영원이 우는 거 보니까 못 가겠다."
이전에 승지가 혜령에게 잠시 신세를 졌을 때의 일이다. 승지는 혜령에게 보답하겠다고 말하였고, 혜령은 그럼 부산의 단속이 끝나면 자신의 이사를 도와달라고 했다. 승지는 자신이 신세 진 것에 비하면 이사는 꽤 큰일이라 생각했지만, 겸사겸사 부산 놀러 가는 셈 치지 뭐 라며 그 제안을 받아 들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리 없는 영원이었기에 그녀가 착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나, 영원은 부끄러워 귀까지 빨개져 버렸다. 그 모습이 여간 귀여운 게 아닌 승지는 더욱 영원에게 장난을 걸었다.
"언니랑 헤어지는 게 그렇게 싫었어? 울 정도로, 응?"
"......"
"아주 애기네 애기야."
영원의 말랑한 볼을 승지가 살짝 꼬집으며 말하자, 영원이 갑자기 승지의 품 안에 머리를 대며 그녀에게 기대었다. 영원은 승지가 키득거리며 자신을 자꾸 놀리는 것보다도 그녀가 자신과 헤어지지 않는 다는 사실에 매우 안도하였다.
"다행이다... 언니 아무 데도 안 가서..."
언제까지고 이런 관계가 이어질 리 없고 언제까지고 만날 수 없단 것을 영원은 분명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곧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영원은 가슴이 미어질 듯 아팠다. 굳이 비교하자면 그녀의 엄마가 아주 어릴 때 자신을 버리고 간 것보다도 더 아프고 슬픈 기분이었다. 영원은 가랑비에 옷 젖 듯이 어느새 자신이 승지를 사랑함을 깨달았다.
'...네가 여기 있는데 내가 어딜 가..'
그것은 승지도 마찬가지였다. 승지도 분명 영원을 좋아했다. 그러나 이 말을 내뱉기엔 승지에겐 용기와 확신이 부족했다. 그렇기에 미처 전하지 못한 이 말은 꼬깃꼬깃 접혀 승지의 목 아래 깊은 곳에 꼭꼭 숨어 들었다.
***
백붕이 랜만
현퀘치이고 여름휴가 즐기고 오느라 바빴다
암튼 이제 여유 좀 돼서 구상해둔 승지영원 좀 쪄오겠음
기억할진 모르겠지만 이전에 찌던 사회인au 마지막 써도써도 이상해서 잠시 짱박아둠
나중에 생각나면 다시 써봄
진짜 작가고 창작이고 아무나 하는게 아닌듯 그저 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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