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마이너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창작] [카논치사] 언제까지고 깨어나고 싶지 않을 꿈을

ㅇㅇ(121.159) 2020.08.18 17:09:12
조회 430 추천 20 댓글 9
														


  며칠이나 계속됐던 거센 비가 마치 환상이었다는 듯 하나사키가와 여학원 옥상에서 바라본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했다. 오히려 내리쬐는 햇빛이 너무나도 눈이 부셔서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제 옆에 있는 카논과 함께 어디론가 사라질 것만 같다고 치사토는 생각했다.


-


  지난주 내내 연락 한번 없던 카논은 여름방학 보충 수업 등교일이 되어서야 교실에 모습을 나타냈다. 어딘지 모르게 분위기가 가라앉은 차분한 모습에 치사토는 자신의 가슴이 쿵 하고 떨어지는 충격을 받았으나 어디까지나 배우답게 태연한 모습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그 태연한 연기로 카논에게 안부 인사를 건네기까지 했다. 카논. 무슨 일 있었니? 연락이 안 돼서 걱정했어. 치사토 쨩. 별일 없었어. 그냥. 생각 정리할 게 좀 있어서. 그래? 별일 없었다면 다행이다. 치사토는 최선을 다해 연기하고 있는 지금 자신의 얼굴이 제 생각처럼 움직여주고 있을까 걱정했다. 최근 들어 자신이 카논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기라도 한 걸까, 아니면 별일 없었다는 말이 거짓이고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닐까. 치사토의 머릿속은 온갖 난잡한 생각들로 팽팽 돌기 시작했다.


  치사토가 카논을 좋아하게 된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배우로 일했던 치사토는 제 또래 아이들이 자신에게 갖는 기대와 동경, 그리고 제멋대로인 재단까지 그 모든 것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어리다는 이유로 무시 받지 않으려 촬영장에서 온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도 모자라 학교에서는 주변 사람들이 기대하는 배우 시라사기 치사토의 모습을 완벽히 연기해야 했다. 개중에 유명인사라 신기하다는 식으로 말을 걸어오는 사람도 있었지만 단지 그뿐이었다.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면 치사토는 매 순간 어디에서든 사람들이 제게 기대하는 제 모습을 연기해야 했다. 그렇기에 우연히 복도에서 부딪힌 악의 없는 표정으로 연거푸 사과를 거듭하던 그 말간 얼굴, 불편한 교실에 들어설 때 누구보다 반가운 투로 자신을 반겨주던 부드러운 목소리, 방과 후 교실 한편에서 창가를 투과하는 햇살에 잘게 빛을 내며 쪼개지던 하늘색 머리칼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문제 될 것이 있다면 혹여나 카논이 친구 이상의 감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저를, 싫어하게 되지는 않을까, 아니면 혐오하게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따위의 것들이었다. 어디까지나 좋은 친구로서 자신을 곁에 두고 있는 자신의 친구를 멋대로 사랑하게 되어버린 죄로 치사토는 꽤 지독한 가슴앓이를 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예전부터 해왔던 연기로 이번에도 그럭저럭 위기를 넘길 수 있으리란 기대였다. 평소와 같은 얼굴로, 맞닿은 손끝이 뜨거워지는 것을 감추고, 애틋해지는 눈길을 자주 비추지 않으면, 카논은 분명 자신이 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아니, 분명 알지 못해야 한다. 치사토는 이제 와서 제 바보 같은 연심에 세상 누구보다도 소중한 친구를 잃을 수는 없다고 자신에게 되뇄다.


치사토 쨩.”

, 카논. 무슨 일이니?”

오랜만에 날도 갰는데, 옥상이나 갈까 해서. 괜찮지?”

. 좋아.”


  오랜만에 제게 말을 건네준 카논의 음성에 괜히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 역시도 자신이 멋대로 카논을 좋아하게 되어버린 탓이라고, 치사토는 기쁨과 죄악감이 뒤섞인 맘으로 카논의 뒤를 쫓았다. 저보다 큰 키에 빠르게 걸어갈 수 있음에도 뒤 한 번 돌아보지 않고 제 보폭에 맞춰 속도를 늦춰주는 친우의 배려에 치사토는 왠지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오늘따라 카논이 뒤를 돌아보지 않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


  오랜만에 만난 카논은 눈에 띄게 말수가 줄고, 눈 밑에 심하진 않지만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머릿결도 약간 푸석푸석한 것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바라보는 시선을 들킬까 조심하면서도 치사토는 차마 제 시선을 카논에게서 거둘 수 없었다.


  아무리 눈치가 없는 사람이라도 이런 뜨거운 시선을 받으면 그 마음을 눈치채지 못 하는 일이 없을 거라고 카논은 생각했다. 자신을 향한 치사토의 마음을 자각하기 시작한 이후로 카논은 치사토의 행동 하나 표정 하나를 모두 새롭게 보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팔짱을 껴오다가도 자신이 부담스러워할까 팔을 내려버리는 모습, 잠시 책상에 엎드려 잠이 든 자신을 말없이 바라만 보고 있던 애달픈 표정, 헤어지는 시간이면 산뜻한 얼굴로 쥐어짜 내 건네는 인사까지. 한 번 마음을 깨닫게 되자 지금껏 이를 알지 못했던 자신이 원망스러워질 수준이었다. 역시 치사토 쨩 대단한 연기자구나. 감탄할 새도 없이 앞으로 우리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머리가 아득해졌다.


  치사토 쨩이 제게 부딪혀 오는 마음이 어떤 결인지 알면서도 좋은 친구인 척 나는 계속 지금까지처럼 지낼 수 있을까. 모르는 척 평소처럼 행동하는 것이 치사토 쨩을 위한 일일까. 어쩌면 나도 치사토 쨩에게 느끼는 이 간질간질한 마음을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카논이 형태조차 보이지 않는 해답을 찾으려 수 없이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있는 와중에도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은 단 하나의 진실이 저를 매섭게 쏘아보고 있었다. 치사토 쨩은 내가 자신을 연예인 시라사기 치사토로 바라보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저 시라사기 치사토 한 사람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나를 좋은 친구로 곁에 둔 것이겠지……. 치사토 쨩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치사토 쨩에게 집착하고, 내 맘을 전하려 하는 건 그녀에게 부담만 줄 뿐이야. 어쩌면 치사토 쨩 이런 내 맘을 알면 나를 싫어하게 될지도 모르겠네.


  자조 섞인 실소. 기록적인 장마가 지속됐던 지난 일주일간 카논은 치사토에 관한 일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이었다. 카논은 보기와는 다르게 심지가 곧은 사람이다.


있지. 치사토 쨩.”

, 카논. 무슨 일이니?”

치사토 쨩은. 내가 곁에 있어 달라고 하면언제까지고 곁에 있어 줄 거야?”

무슨 뜻인지 모르겠네. 카논 얼굴도 안 보이고. 얼굴 보여줘, 카논.”

싫어.”


  머리를 기댄 치사토의 어깨가 제 물음을 들은 이후로 조금씩 들썩이고 있다는 사실에 카논은 안도감을 느끼면서도 서글픈 기분이 들었다. 분명 그녀도 동요하고 있으리라. 지난주에 연락하지 못했던 건 미안해, 치사토 쨩. 아까도 말했지만생각 정리할 게 있어서. 그래서 연락 못 했어. 으응, 아니야.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마워, 카논. 이러고 있으니까 우리 꼭 코알라 같다. 그치? 후훗, 그게 뭐야. 이제야 기운 차렸네. 치사토 쨩.




  언제까지나 당신 곁에 가장 친한 친구로, 가장 소중한 사람으로 남을 수 있다면. 작열하는 태양을 바라보며 두 사람은 서로의 곁에서 깨어나지 못할 꿈을 꾸고 있었다. 언제까지고 깨어나고 싶지 않을 꿈을.



---


백하! 항상 눈팅만 하다가 처음으로 글 써봅니다

대백갤에서 뱅드림 2차 창작은 곧 잘 봐도 카논치사카논은 본 적이 있나 모르겠네요...

장마 오지게 때리다가 폭염 시작된 기념으로 적어봤습니다

친구이상 연인미만 쌍방삽질 치사카논이 넘 좋아서요...,

다음 글이 언제 올라올진 미지수인 포타 주소 남기고갑니다 문제시 삭제할게유

다들 폭염 조심하고 즐거운 대백갤 되시길!


출처: https://baeknamoo.postype.com/post/7610259

자동등록방지

추천 비추천

20

고정닉 8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자동등록방지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말머리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2868 설문 힘들게 성공한 만큼 절대 논란 안 만들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6/10 - -
1398712 공지 [링크] LilyDB : 백합 데이터베이스 사이트 [22] 샤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4.03.17 6041 45
1331557 공지 대백갤 백합 리스트 + 창작 모음 [17] 샤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1.30 13254 25
1072518 공지 대세는 백합 갤러리 대회 & 백일장 목록 [23] <b><h1>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11.27 24442 14
1331471 공지 대세는 백합 갤러리는 어떠한 성별혐오 사상도 절대 지지하지 않습니다. [9] 샤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1.30 8903 32
1331461 공지 <<백합>> 노멀x BLx 후타x TSx 페미x 금지 [11] 샤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1.30 7370 25
1331450 공지 공지 [31] 샤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1.30 10352 43
830019 공지 삭제 신고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9.29 92911 72
828336 공지 건의 사항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9.27 41140 27
1464473 일반 흐어엉 숨막혀ㅠㅠㅠ 아르륵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07 14 0
1464472 일반 ㅠㅡㅠ [3] 응애여아쟝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02 20 0
1464471 일반 야 뚝백붕 [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59 29 0
1464470 일반 ㅋ 벼응신 ㅋ [3]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59 46 3
1464469 일반 드디어 죽었나 백갤 [5] 마이레오팬클럽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45 66 0
1464468 일반 백붕이 한시간만 [1] 융가0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45 30 0
1464467 일반 괴롭혀주세요, 악역영애님 <-애 낳음? [2] ㅇㅇ(59.13) 02:26 96 0
1464466 📝번역 [번역] 괴롭혀주세요, 악역영애님! 90화 [6] 유동(P)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18 298 28
1464465 일반 게임에 주인공이 있을 필요가 있나 [3] 마이레오팬클럽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16 91 0
1464464 일반 여주인공 고정 하면 또 헤번레인데 ㅎㅎ [1] rwbyros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14 55 0
1464463 💡창작 늠검) 결국.... 잘렸어.... 우우 백부이... [11] sabr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59 240 11
1464462 일반 ㄱㅇㅂ) 와 더워서 잠이 안 오네 [8] 씨사이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57 122 0
1464461 일반 백바... 살아서 보자... [2] 후에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57 50 0
1464460 일반 애웅... ㅇㅇ(114.108) 01:50 55 0
1464459 일반 이거 갓에넬 아니냐 [3] ㅇㅇ(218.154) 01:49 128 0
1464458 일반 ㄱㅇㅂ) 잠 다 깼는데 그냥 작업이나 할까 [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49 83 1
1464456 일반 왜 섭종이 확정되고 나서야 마기아레코드가끌리지 [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46 57 0
1464455 일반 악리 센세는 ㄹㅇ 호감이네 아오바모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45 66 0
1464454 일반 백붕들 안뇽안뇽 [6] 아르륵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43 42 0
1464453 일반 이치사키 보구가 [4] 초코모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43 66 1
1464452 일반 소전 스토리에 보이스가 없는게 좀크다 [6]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43 59 0
1464451 일반 간만에 왔는데 진득하게 볼 거 없나 [3] 유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42 63 0
1464450 일반 분명 10화 요루카노 대박쳐서 앞화 몰아봤어야됐는데 [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42 91 0
1464448 일반 ㄱㅇㅂ 개졸리네.... [9] 융가0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41 140 8
1464447 일반 솦갤펌) 소전의 백합관계도 [7]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40 83 4
1464446 일반 카노안욱벌써 야짤나왓네 [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40 54 0
1464445 일반 진짜 백합작가들 트위터들어가면 맨날작품들이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36 89 0
1464444 일반 사람의 상상력이란 대체 뭘까 [2] 나리유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36 86 1
1464443 일반 밤해파리 자막은 보아하니 오늘도 글렀구만 ㅇㅇ(220.85) 01:33 80 0
1464442 일반 사사코이 애니화도 안됐는데 언급 왜이리 활발하지 ㅇㅇ(222.110) 01:32 193 17
1464436 일반 키황인데 왜 키위아님?? [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9 69 1
1464435 일반 꺄아아아아악 레즈마왕이야!!!!! [1] 키타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8 93 0
1464434 일반 키황 씹간지네... [2] ㅁㅁ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5 113 2
1464433 일반 친애하는 원수님 결재하려면 어디로 가야해? ㅇㅇ(221.151) 01:25 27 0
1464431 일반 평범한 경음부 재밌네 ㅇㅇ(220.85) 01:22 57 0
1464430 💾정보 24년 10월 수성의마녀 제일복권 3탄 미쳤다 ㅇㅇ(118.34) 01:21 90 2
1464429 일반 전생 7왕자 11화보고 사사코이 생각남 비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0 57 0
1464428 일반 나나레하나나레 신규 키비주얼 [3] ㅇㅇ(118.36) 01:19 66 1
1464427 일반 밤의해파리 왜 아직도 자막이 안뜬거야? [3] ㅇㅇ(222.110) 01:13 109 0
1464426 일반 념글 짱깨들 지랄하는 글 보니깐 새삼 [3] 소리야겟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13 523 25
1464425 일반 니나모모가 맛있는게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09 66 1
1464424 일반 스포)드디어 종트도 거의 끝나가네 ㅠㅠ AGBMD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04 68 1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