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마이너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일반] [오네로] 우리 아가씨가 달라졌어요

백갤용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8.26 10:54:26
조회 1855 추천 26 댓글 10
														




viewimage.php?id=21b4dc3fe3d72ea37c&no=24b0d769e1d32ca73cec86fa11d0283110260b998d7cfa8997b9266521881b79608b44dca16a3cadd65314751f515276b62ac1b2cb9a52cf30ab15224f3cfbd50fd9070796



새근새근, 눈을 뜨자 처음으로 들려오는 것은 아가씨의 자그마한 숨소리였다. 자명종이 아닌 아가씨의 숨소리로 하루를 시작한 것은 벌써 몇 번째일까? 기분 좋은 나른함 속에서 유리는 살짝 고개를 돌려 보았다. 달빛을 녹여 만든듯한 금빛 머리카락, 젖살이 채 빠지지 않은 동그란 볼, 건드리면 사라질까 조마조마했던 자그마한 선홍색 입술. 유리가 가장 좋아하는 아가씨, 티나는 어떤 꿈을 꾸는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우물우물 거리고 있다. 꿈 속에서 좋아하는 소시지라도 드시는 걸까? 유리는 행복하게 웃는 아가씨의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었다. 이런 아이 같은 아가씨의 얼굴을 보고 있자면 이른 아침의 나른함도 밀려있는 집안일에 대한 걱정도 잊어버리게 된다.


마지막으로 유리는 아가씨의 통통한 볼에 살짝 입을 맞추고 그녀가 깨지 않게 조심조심 침대에서 일어났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왕도의 거리는 조금 짙은 남색. 아침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었다.



----



왕도에서의 아침은 바빴다. 티나의 고향인 리베른 백작령에 있을 때는 수많은 사용인이 분담해서 했던 일도, 왕도에서는 유리 혼자 하여야만 했다.


“티나님, 슬슬 일어나셔야 해요.”


그래도 오늘은 조금 일찍 일어난 덕분에 조금의 여유는 있었다. 방 청소와 아가씨가 입을 드레스의 세팅은 이미 끝내놓고 유리는 아침 식사를 준비하며 티나를 깨웠다.


“으응, 30분만 더 잘래.”


그렇게 말하면서도 침대에 걸터앉아 졸린 눈을 비비는 티나였다. 반쯤 감긴 눈으로 자신을 찾는 아가씨의 모습이 너무나도 귀여워서, 유리는 하마터면 굽고 있던 소시지를 태워 버릴 뻔했다.


아가씨의 식사라고 해서 거창한 것은 없었다. 작은 호밀빵에 달걀부침, 오늘은 아가씨를 위한 소시지까지. 돈이 부족한 건 아니었지만 역시 유리 혼자서 거창한 아침 식사를 준비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러기에 아침만큼은 아가씨가 좋아하는 거로만 하고 싶은 게 유리의 마음이었다.


“와, 소시지 냄새.”


잠시 멍하니 침대에 앉아 있던 아가씨가 눈을 반짝이며 다가왔다. 아침에 약한 아가씨가 이렇게 일찍 잠에서 깬 것은 좋은 일이었지만, 유리로써는 아침 인사보다 소시지를 먼저 찾는 아가씨에 조금 복잡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괜한 질투심 속에서 유리는 거칠게 소시지를 뒤집으며 말했다.


“빨리 손 씻고 오세요. 오늘도 왕궁에 가셔야 해요.”


조금 퉁명스러워진 유리의 목소리를 아는지 모르는지 아가씨는 하품을 하며 화장실로 향했다. 욕실로 향하는 아가씨의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본다면 또 할 일이 늘어나 버린다. 머릿결이 그렇게 좋으신데 도대체 왜 아침만 되면 저렇게 산발이 되는지 유리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잘 익은 소시지를 접시에 담으니 시간은 7시를 조금 지나고 있었다. 시간은 아직 여유가 있었지만 그리 넉넉하지도 않았다. 생각해두었던 시간에 아가씨의 머리를 새로 세팅할 20분을 추가해보면 여유 시간은 15분 정도. 마차를 미리 수배해두긴 했지만, 왕궁에 늦을 수는 없기에, 15분의 여유는 조금 애매한 시간이었다. 식사 시간을 줄여야 할까? 화장 시간을 줄여야 할까? 예상치 못한 상황에 조금 머리가 아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등 뒤에서부터 뺨을 콕하고 찔러오는 무엇인가가 느껴졌다.


“유리 바보~”


얼떨결에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건 아가씨의 웃는 얼굴. 앞니까지 보이면서 방실방실 웃고 있는 모습을 보면 영락없는 어린아이다. 그런 아가씨의 천진난만한 미소를 보고 있자면 무심코 왕궁에 좀 늦으면 어때~ 란 생각이 들 정도다.


상당히 중증이구나 나, 유리는 고개를 젓는 것으로 불경한 생각을 날려버리고 등 뒤의 아가씨를 안아 들었다.


“자자, 오늘은 왕궁에 간다고 했죠? 빨리 식사하세요.”


안겨있는 아가씨를 의자에 앉혀드렸지만, 아가씨는 좀처럼 자신의 품에서 나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가씨는 유리의 목에 감은 손을 풀지 않고 유리의 가슴팍에 얼굴을 부비부비 비볐다. 살짝 내려다본 아가씨의 눈은 무엇인가를 말하려는 듯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티나님, 장난칠 시간 없다고 했죠. 빨리 식사하세요.”


오늘은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으니 어리광부리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는 않았다. 아까 소시지에 아침 인사를 밀린 울분도 살짝 담아서 유리는 억지로 아가씨를 떼어냈다. 아가씨는 잠깐 버티는 듯했지만, 유리의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홀로 덩그러니 놓인 아가씨는 볼을 풍선처럼 부풀리는 것으로 삐진 티를 팍팍 내며 유리를 올려보았다. 그리곤 명백히 무엇인가를 원하는듯 유리에게로 몸을 기울였다.


“삐지셔도 소용없어요. 빨리 식사하세요.”


그런 아가씨의 모습이 귀엽기는 했지만, 유리는 조금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기울어진 몸을 의자에 똑바로 앉히고 유리는 억지로 아가씨의 손에 식기를 들려 주었다. 날카로운 유리의 시선에 마지 못해 식기를 집어 든 아가씨는 조금 주춤거리더니 나이프로 소시지를 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확인하고 나서야 유리는 테이블의 반대편,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아침을 먹지 않는 유리가 아가씨의 식사 시간 동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단순히 자신의 음식을 맛있게 드시는 아가씨를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바쁜 아침 시간에도 잠시 앉아 아가씨의 웃는 얼굴을 보는 것이 유리의 일상 중 하나였다. 하지만 역시 야단맞은 고양이처럼 풀이 죽은 아가씨의 모습을 보는 것은 조금 가슴이 아팠다. 평소라면 아가씨가 먹는 모습을 엄마 미소로 지켜보았을 유리도 오늘은 고개를 돌려 시계를 바라보았다. 시간은 7시 12분. 아가씨가 식사를 18분 안에 끝내는 것이 계획이었다.


“..안 했잖아.”


서걱서걱, 영혼 없이 소시지를 썰던 소리가 멈춘다 싶더니 아가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섭섭함이 그대로 묻어 나오는 아가씨의 목소리에 가슴이 저릴 정도의 죄책감이 몰려왔다. 하지만 너무 응석을 받아주는 것도 좋지 않았다. 눈을 딱 감고, 유리는 아가씨를 돌아보지 않은 채로 말했다.


“뭘 안 하셨는데요.”


자신이 내뱉었지만 너무나도 날이 선 목소리에 유리는 잠시 주춤거렸다. 그깟 소시지에 밀린 게 아직도 그렇게 분했던 것일까? 자신의 쩨쩨함이 절망스러웠다.


“아침 인사…. 아직 안 했잖아.”


날이 선 유리의 목소리가 기폭제가 된 듯, 아가씨의 목소리는 울음기가 섞여서 작게 떨리고 있었다. 우는 어린아이를 보고 그냥 지나칠 사람이 있을까? 특히 그 어린아이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아가씨라면. 마음을 아무리 독하게 먹어도 아가씨의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심장이 잘게 잘게 잘리는 기분이었다. 두 눈을 꽉 감고 독하게 버텨보려 하다가도 결국 버틸 수 없게 된 유리는 하는 수 없이 아가씨를 바라보았다. 고개를 푹 숙인 아가씨의 어깨는 작게 떨리고 있었다.


“어제는 저녁 인사도 안 해줬으면서. 오늘은 아침 인사도 안 하고. 유리는 내가 싫어진 거야?”


뚝뚝, 떨어지기 시작한 눈물이 아가씨의 잠옷을 적셨다. 처음부터 아가씨를 울릴 생각은 전혀 없었다. 왜 이렇게 된 걸까? 이제는 독한 마음마저 포기하고 유리는 손수건을 꺼내 들어 허둥지둥 아가씨의 곁으로 다가갔다. 아가씨에게 인사가 이렇게 중요한 일이라고는 유리는 생각지도 못했다.


말로는 아침 인사와 저녁 인사라곤 해도 단순한 인사는 아니었다. 유리와 티나 사이에서 인사란 서로 가볍게 볼에 입을 맞추는 일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아가씨가 가슴에 얼굴을 비비셨던 것도 반짝이는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았던 것도, 아침 인사를 졸랐던 게 아니었을까? 유리는 조금 아차하는 기분이었다.


생각해보면 어제도 굿나잇 키스를 하지 못했었다. 그도 그럴 게 왕궁에 출입하려면 여러 가지 절차가 필요하다. 대부분은 아가씨나 자신의 이름을 대면 쉽게 통과되는 일이라도 마차를 수배하거나 왕궁 출입증이 있는 마부를 고용하는 것은 온전히 유리의 몫이었다. 덜컹거리는 마차에 아가씨가 불편할까 싶어, 조금이라도 아가씨를 편하게 해줄 마차와 마부를 찾기 위해 왕도를 헤집고 다닌 유리가 어젯밤 집에 돌아온 시간은 11시 30분. 아가씨는 당연하게도 주무시고 계셨다.

깨워서라도 저녁 인사를 했어야 하는 걸까? 유리의 머리가 핑핑 돌았다.


“아뇨, 제, 제가 티나님을 싫어하게 될 리가 없잖아요”


유리는 일단 아가씨의 눈물을 닦아드리기로 하였다. 손수건을 손에 잡고, 조심스럽게 아가씨의 턱을 들어 올리자 아가씨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드셨다. 초롱초롱했던 아가씨의 파란 눈에는 커다란 눈물방울이 가득 맺혀 있었다.


“그럼 왜 인사를 안 해주는 거야.”


맺혀 있던 눈물이 뚝뚝 떨어져 간다. 오랜만에 보는 아가씨의 눈물에 잔뜩 당황한 유리는 서투른 손으로 아가씨의 눈가를 닦아주었다.


“그, 그럼 지금이라도 할까요?”


바보 같다, 바보 같은 말이었다. 도대체 나는 왜 이렇게밖에 말을 못 하는 거지? 절망스러운 표현력이었다. 아가씨를 달랠 말은 수도 없이 많았을 텐데. 유리는 자신의 표현력을 저주하며 두눈을 질끔 감았다.

그러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살짝 뺨을 들이 밀어 보았다.


아가씨는, 당연하게도, 들이 밀어진 유리의 뺨을 살짝 밀쳤다.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밀쳐져 보니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그, 그, 그, 그럼. 음, 오늘 저녁 인사는 두 배로 한다던가.”


말할 때마다 자신이 더 못나지는 기분이었다. 자신이 바보 같게만 느껴져서, 무엇인가를 더 말하는 대신 유리는 고개를 푹 숙였다. 다행히도 아가씨의 눈물은 멈춘 모양이었지만, 이젠 자신이 울고 싶은 지경이었다. 불편한 침묵, 완전한 어둠 속에서 똑딱거리는 시계의 초침 소리만 이상하게도 크게 들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죄책감이 몰려온 유리의 눈에도 살짝 눈물이 고일 때쯤 아가씨의 작은 손이 유리의 손을 잡아 왔다. 그제야 유리는 조금 고개를 들어 아가씨를 올려다보았다. 눈앞의 아가씨는 아직 조금 빨간 눈으로 가만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와 같은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눈빛이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그 눈빛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한참을 유리를 바라보던 아가씨는 한숨을 내쉬고는 살짝 미소마저 보이며 유리의 손등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유리는 바보니까 내가 용서해줄게.”


유리로써는 아직도 뭐라 말해야 할지 몰랐지만, 아가씨의 작은 손은 어느덧 유리의 머리를 향해서 앞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어린아이는 체온이 높다더니 정말로 아가씨에 손끝에서부터 따듯함이 퍼져 나갔다.


“그래도, 유리. 해야 할 말이 있지 않아?”


그걸 몰라서 이러고 있는 거예요. 다시 고개를 숙이고 싶은 기분인데도 아가씨의 손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유리가 조심스럽게 올려다본 아가씨는 조금은 기대하는 눈빛이었다. 눈물을 흘렸던 탓인지, 조금 발갛게 상기된 얼굴의 아가씨는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그 기대를 채워줄 수 없다는 사실이 가슴 아팠다.


유리의 대답이 들리지 않자, 아가씨는 조금 얼굴을 가까이했다. 서로의 숨소리마저 느낄 수 있는 가까운 거리. 아가씨가 내쉬는 날숨이 유리의 뺨을 간지럽힌다. 그 간지러움에 살짝 고개를 뒤로 빼려고 하면, 뒷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는 아가씨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조금은 강압적이지만 상냥한 손길에 붙잡혀서, 유리는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되었다.


아가씨는 대답을 강요하는 듯 가까워 지지만, 반대로 유리의 머리속은 점점 하얗게 변해간다. 어느덧 유리의 시야를 가득 채우는 아가씨의 얼굴은 무엇을 생각하시는지 조금 웃고 있다. 아까는 숨소리였지만, 지금은 콩닥거리는 심장 소리까지 들려온다. 정말로 조금만 발돋움하면 입술이 닿을 만한 거리. 아가씨의 파란 눈은 빨려 들어갈 듯 아름다워서 유리는 자신도 모르게 도망치듯 두 눈을 꽉 감았다.


“유리, 이럴 때는 죄송합니다. 라고 하는 거야.”


조금 멀리서 들리는 상쾌한 목소리. 눈을 떠보니 더이상 시야를 가득 채웠던 아가씨는 없었다. 정말 유리는 어쩔 수 없다니까, 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아가씨. 귀여운 손짓을 하며 어깨를 으쓱거리는 아가씨의 모습은 영락없는 어린 아이였다.


“정말, 죄송합니다. 한마디가 그렇게 힘든 걸까?”


아가씨는 자세를 고쳐 앉고는 포크를 집어 들었다. 싱글벙글 웃으며 좋아하는 소시지를 집어 입으로 가져가는 아가씨. 아까의 조금은 강압적이던 아가씨의 모습이 거짓말만 같았다. 그 이상할 정도의 괴리감에 유리는 다리가 풀려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그래도 저녁 인사 두 배는 조금 좋을지도.”


이번에는 빵을 우물거리며 유리를 곁눈질하는 아가씨. 넋이 나간 듯 가만히 자신을 올려다보는 유리를 보고, 아가씨는 포크에 잘린 소시지를 콕 집어서 유리의 입에 넣어주었다.


“맛있지?"


천진난만하게 웃는 아가씨. 그 어린아이 특유의 미소를 보고 나서야 유리의 멍했던 정신에 현실감이 들었다. 이것도 아가씨답다면 아가씨답다고 해야 할까? 그제야 유리는 아가씨에게 멋쩍은 미소를 돌려주었다.


조금 지친 걸까? 도대체 왜 나는 아가씨에게 그렇게 설렜던 거지? 아직 가슴속 작은 의문은 남았지만, 그래도 조금은 개운해진 기분이었다. 아가씨는 아가씨일 뿐이라는 결정을 내리고 유리는 휘청거리며 일어섰다. 한참을 쪼그려 앉은 탓에 다리가 조금 저렸다. 문득 시야에 들어온 시계의 시간은 7시 43분. 빠듯하지만 충분한 시간이었다.


아니, 7시 43분? 유리는 고개를 돌려 시계를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잔혹하게도 시간은 7시 43분, 바로 방금 44분으로 변했다.


“에에에에엣?”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아가씨가 콜록거리며 유리를 돌아보았다. 정말 밥 먹는데 소리 지르지 말라니까, 투덜거리는 아가씨를 유리는 황급히 안아 올렸다.


“에? 나 밥먹는..”


“지금 아침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아직 절반 넘게 남은 소시지에 아가씨의 표정이 울상이 되었지만, 아가씨를 안아 든 유리는 그대로 화장실로 향했다. 빠른 손놀림으로 솜씨 좋게 아가씨의 잠옷을 벗기곤, 유리는 바가지를 들어 직접 아가씨의 머리에 물을 끼얹었다.


“차, 차가워! 유리, 이 물 엄청 차가운데”


“참으세요, 어쩔 수 없어요.


차갑다고 소리지르는 아가씨와 엄한 목소리의 유리. 그리고 첨벙거리는 물소리.


“꺄악, 유리 변태! 샤워는 나 혼자 할 수 있다니깐!”


“안 돼요, 티나님은 온종일 샤워를 하시잖아요.”


간지럽다고 소리치는 아가씨와 집중해서 비누를 문지르는 유리. 그리고 아무렇게나 던저진 속옷들.


조금 일찍 일어났다고 생각했지만, 결국엔 이렇게 돼버린다. 두 사람의 일상은 결국 언제나와 같았다.




“휴우, 이 정도면 아슬아슬하게 맞출 수 있겠네요.”


시간은 8시 42분. 유리가 수배해둔 마차가 8시 50분에 집 앞에 오기로 했으니 다행히도 늦지는 않았다. 시간에 대한 확신히 들자, 괜히 피로감이 몰려 들었다. 유리는 찌뿌둥한 몸을 쭈욱 피며 조금 편안해진 얼굴로 기지개를 켰다. 평소보다 두 배는 빨리 움직인 탓에 몸에서 삐걱 소리가 날 지경이었다.


“유리…. 나한테 해야 할 말이 있지 않아…?”


“네, 티나님 완벽하셔요!”


불만 가득한 목소리에도 유리는 빙긋 웃으며 아가씨를 내려다보았다. 하늘색의 실크 재질 드레스는 아름다웠고, 가벼운 화장은 튀지 않으면서도 아가씨의 앳된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했다. 따로 묶지 않은 황금색의 머리카락은 찰랑찰랑 윤기 있게 흔들린다. 자신이 했지만 정말로 완벽한 세팅이었다.


“그 게 아 니 라!”


아가씨는 고개를 붕붕 저었다. 아아, 세팅해 둔 머리가! 이리저리 휘날리는 금빛 머리카락을 보며 유리는 마음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밥을 못 먹어서 배고파! 찬물 때문에 아직도 추워! 억지로 씻겨서 아파! 이럴 때는 죄송합니다, 라고 하는 거라고!”


쿵쿵 다가온 아가씨가 있는 힘껏 유리의 정강이를 발로 찼다. 엄청나게 아프지는 않았지만, 얼얼한 통증이 다리에 느껴졌다. 이유 없이 맞았다는 당혹감보다도 그 아가씨가 자신을 때렸다는 당혹감이 컸다.


“티나님, 사람을 때리면 안 돼요.”


유리는 아가씨의 어깨를 잡고 진심으로 걱정하는 얼굴을 지었다. 아가씨 정도 되는 분이 사람에게 함부로 폭력을 행사하여서는 곤란했다.


“으그그”


꽉 잡힌 아가씨는 조금 발버둥을 치는 듯싶더니, 이내 저항을 포기하고 유리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았다. 물론 유리도 순순히 사과할 생각은 없었다. 확실히 시간에 쫓겨서 조금 서두르긴 했지만, 그것도 다 티나님을 위한 일이지 야단맞을 일은 아니었다.


짧은 눈싸움 끝에 먼저 꼬리를 내린 건 아가씨였다. 아가씨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줬다고는 생각 안 하지만, 티나가 시선을 내리자 유리도 순순히 아가씨를 놓아주었다. 진짜 유리는 유치하다니까, 넘겨 들을 수 없는 말이 아가씨에게서 들려왔지만, 유리는 애써 무시했다. 시간은 8시 45분, 슬슬 아가씨는 출발하실 시간이었다.


“아가씨, 슬슬 나가실 시간이에요.”


유리의 말에 아가씨는 흥하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돌리더니 곁눈질로 유리를 바라보았다. 다시 한번 느끼는 아가씨의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눈빛. 유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티나님? 혹시 놓고 간 물건이라도 있나요?”


“유리, 일부로 그러는 거지….”


그렇게 말하며 아가씨는 조금 발돋움해서 양손으로 유리의 목을 붙잡았다. 그제야 유리도 무엇인가 생각난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아침 인사. 지금이라도 하시게요?”


아가씨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이런 걸 보면 완전히 어린애라니까, 유리는 괜한 엄마 미소를 지으면서 허리를 숙여 아가씨 쪽으로 뺨을 내밀었다.


째깍째깍 침묵 속에서 들려오는 초침 소리에, 덩그러니 내민 뺨이 어딘가 쑥스러워졌다. 한 20초 정도를 이러고 있었던 거 같은데도 아가씨는 좀처럼 뺨에 입을 맞춰오지 않았다. 또 어떤 장난을 생각하시는 걸까? 시간이 없는데도 정말. 유리는 조금 엄한 표정을 지으며 아가씨에게 고개를 돌렸다.


“티나님, 장난..”


유리는 말을 끝낼 수 없었다. 시야를 가득 채우는 아가씨의 미소. 그리고 자신의 입술을 덮는 따듯하고 부드러운 무엇인가. 아까보다 두 배는 빠른 속도로 머리가 새하얗게 물들어갔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는 금세 알 수 있었다. 이번에는 알 수 있었기에 눈이 핑핑 돌았다.





사이즈 차이가 있기에, 유리의 입술을 완벽하게 덮지 못한 티나는 대신하여 유리의 입 주변을, 혓바닥으로 가볍게 훑었다. 눈앞에서 두 눈을 질끔 감고 있는 유리는 마치 아기 같았다. 아무 말도 못 하고 자신의 손길에 따라 그저 본능적인 반응만을 보이는 아기. 그 모습이 재밌어서, 티나는 조금 더 나아가 유리의 윗입술을 가볍게 빨아들였다. 그렇게 살짝 벌어진 틈으로 혓바닥을 넣어 앞니를 톡톡 건드렸다. 뒷덜미를 잡은 손을 내려, 유리의 가슴을 살며시 어루만졌다.

그제야 꽉 감겨있던 유리의 눈이 조금 떠졌다.


자신을 밀어내는 유리의 손길. 그 손에는 힘이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아서, 어린 티나라도 충분히 버틸 수 있었지만 티나는 그러지 않기로 하였다. 유리의 혀도 느끼고 싶었는데, 아쉬움 속에서 유리의 윗니를 살짝 훑고 나서야 티나는 유리에게서 떨어졌다. 티나의 품에서 겨우 벗어난 유리는 콜록거리면서 꾹 참고 있던 숨을 들이켰다.


티나에게는 그 모습도 아기 같아서 귀여웠다.


“티, 티, 티, 티나님?”


유리는 자신의 입술을 가리며 황급히 아가씨에게서 떨어졌다. 키스는 할 수 있다. 할 수 있지만, 키스할 때의 아가씨는 너무나도 어른스러워서, 도저히 아가씨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입술에 남아있는 부드러운 감촉과 아직도 주변을 떠도는 은은한 작약 향기. 눈앞에 있는 어린 아이는 분명히 아가씨인데도. 아가씨가 아닌 것 같았다.


“아하하, 유리 지금 완전 웃긴 얼굴”


아가씨는 싱긋 웃고는 유리에게서 등을 돌렸다. 현관으로 향하는 아가씨의 걸음걸이는 사뿐사뿐 언제나와 같았다. 집을 나서는 아가씨를 마차까지 에스코트 해드려야 하는데도 풀려 버린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아 맞다”


문고리를 잡은 아가씨는 잠시 무엇인가 생각난 듯 고개를 돌리셨다. 아가씨는 웃고 계셨다. 언제나 보아온 천진난만한 미소. 영락없는 어린아이의 미소를.


“저녁 인사 두 배로 하는 거, 기대하고 있을게~”


그렇게 말하며 아가씨는 집 밖으로 나갔다. 처음부터 에스코트는 필요 없다는 듯 사뿐사뿐 마당을 걸어 나가는 아가씨의 뒷모습을, 유리는 멍한 눈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강하게 빨렸는지 피가 나는 윗입술은 지금의 비현실적인 상황 속에서 유일하게 현실감이 넘쳐서 쓰라리게 아파왔다.



--------------------


중단편 쓰던거의 첫부분인데

대회가 10000자 이하라고 해서 앞부분만 올림









자동등록방지

추천 비추천

26

고정닉 13

0

원본 첨부파일 1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자동등록방지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말머리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2868 설문 힘들게 성공한 만큼 절대 논란 안 만들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6/10 - -
1398712 공지 [링크] LilyDB : 백합 데이터베이스 사이트 [22] 샤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4.03.17 6045 45
1331557 공지 대백갤 백합 리스트 + 창작 모음 [17] 샤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1.30 13258 25
1072518 공지 대세는 백합 갤러리 대회 & 백일장 목록 [23] <b><h1>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11.27 24446 14
1331471 공지 대세는 백합 갤러리는 어떠한 성별혐오 사상도 절대 지지하지 않습니다. [9] 샤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1.30 8907 32
1331461 공지 <<백합>> 노멀x BLx 후타x TSx 페미x 금지 [11] 샤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1.30 7375 25
1331450 공지 공지 [31] 샤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1.30 10356 43
830019 공지 삭제 신고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9.29 92921 72
828336 공지 건의 사항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9.27 41142 27
1464483 일반 요캇따 해도 욕먹을판에 요싴ㅋㅋㅋㅋ [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0 69 4
1464482 일반 프리큐어에 백합이 참 많구나 ㅇㅇ(118.219) 04:16 24 0
1464481 🖼️짤 부모님이싸워서슬픈젤리쨩 포션중독용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11 42 0
1464480 일반 해리포터 백합 팬픽아는사람? [2] ㅇㅇ(124.53) 03:56 60 0
1464479 일반 카노 작중 시간으로 일주일 틀어박힌 거래 [9]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28 251 12
1464478 일반 ㅅㅂ 포치상 표정 ㅋㅋㅋㅋㅋㅋㅋㅋ 포션중독용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27 66 0
1464476 일반 종트 이번화 넘 잼있다! 천사세이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22 35 0
1464475 일반 안돼! [3] 치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17 98 8
1464474 🖼️짤 요루안욱 짤...? [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12 102 2
1464473 일반 흐어엉 숨막혀ㅠㅠㅠ [2] 아르륵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07 56 0
1464472 일반 ㅠㅡㅠ [3] 응애여아쟝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02 38 0
1464471 일반 야 뚝백붕 [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59 43 0
1464470 일반 ㅋ 벼응신 ㅋ [6]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59 271 17
1464469 일반 드디어 죽었나 백갤 [5] 마이레오팬클럽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45 104 0
1464468 일반 백붕이 한시간만 [2] 융가0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45 50 0
1464467 일반 괴롭혀주세요, 악역영애님 <-애 낳음? [2] ㅇㅇ(59.13) 02:26 122 0
1464466 📝번역 [번역] 괴롭혀주세요, 악역영애님! 90화 [7] 유동(P)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18 475 37
1464465 일반 게임에 주인공이 있을 필요가 있나 [4] 마이레오팬클럽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16 115 0
1464464 일반 여주인공 고정 하면 또 헤번레인데 ㅎㅎ [1] rwbyros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14 72 0
1464463 💡창작 늠검) 결국.... 잘렸어.... 우우 백부이... [11] sabr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59 368 17
1464462 일반 ㄱㅇㅂ) 와 더워서 잠이 안 오네 [8] 씨사이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57 133 0
1464461 일반 백바... 살아서 보자... [2] 후에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57 60 0
1464460 일반 애웅... ㅇㅇ(114.108) 01:50 59 0
1464459 일반 이거 갓에넬 아니냐 [3] ㅇㅇ(218.154) 01:49 148 0
1464458 일반 ㄱㅇㅂ) 잠 다 깼는데 그냥 작업이나 할까 [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49 90 1
1464456 일반 왜 섭종이 확정되고 나서야 마기아레코드가끌리지 [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46 61 0
1464455 일반 악리 센세는 ㄹㅇ 호감이네 아오바모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45 70 0
1464454 일반 백붕들 안뇽안뇽 [6] 아르륵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43 45 0
1464453 일반 이치사키 보구가 [4] 초코모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43 71 2
1464452 일반 소전 스토리에 보이스가 없는게 좀크다 [6]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43 67 0
1464451 일반 간만에 왔는데 진득하게 볼 거 없나 [3] 유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42 71 0
1464450 일반 분명 10화 요루카노 대박쳐서 앞화 몰아봤어야됐는데 [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42 107 0
1464448 일반 ㄱㅇㅂ 개졸리네.... [9] 융가0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41 174 11
1464447 일반 솦갤펌) 소전의 백합관계도 [7]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40 107 9
1464446 일반 카노안욱벌써 야짤나왓네 [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40 57 0
1464445 일반 진짜 백합작가들 트위터들어가면 맨날작품들이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36 93 0
1464444 일반 사람의 상상력이란 대체 뭘까 [2] 나리유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36 96 1
1464443 일반 밤해파리 자막은 보아하니 오늘도 글렀구만 ㅇㅇ(220.85) 01:33 88 0
1464442 일반 사사코이 애니화도 안됐는데 언급 왜이리 활발하지 ㅇㅇ(222.110) 01:32 302 20
1464436 일반 키황인데 왜 키위아님?? [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9 80 1
1464435 일반 꺄아아아아악 레즈마왕이야!!!!! [1] 키타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8 100 0
1464434 일반 키황 씹간지네... [2] ㅁㅁ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5 131 8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