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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카논치사] 연애의 이해(1)

ㅇㅇ(121.159) 2020.08.28 21:36:25
조회 370 추천 19 댓글 4
														

1. 삼월 둘째 주, 강의OT

 

  경영관 L501 강의실. 경영관 제일가는 대형 강의실답게 이미 사람이 북적북적한 강의실 내부를 먼발치서 바라보며 치사토는 복잡한 심경을 금할 수 없었다. 항상 매니저에게 수강신청을 부탁했던 것이 화근이었을까 치사토는 자신이 원하지도 않았던 교양강의 신청자 목록에 제 이름이 올라 있는 것을 수강철회 기간이 지난 오늘 아침에서야 확인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동경했던 A대학 연극영화과에 당당히 합격했음에도 바쁜 스케줄 탓에 지난 일 년 간 제대로 된 대학 생활을 겪어보지 못한 치사토는 지난 연말부터 소속사에 지겨울 정도로 휴지기를 요청해왔었다. 덕분에 연간 단위로 이미 예정된 일정을 제외하면 이번 학기는 일감의 압박으로부터 꽤 여유롭게 학교생활을 즐길 수 있을 터였다.

 

  분명 그랬을 터인데……. 치사토는 다음번에 매니저를 만나면 기필코 한 마디 해줘야겠다고 다짐하며 강의실 입구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지 않아도 많은 수강생에 유명 연예인인 시라사기 치사토의 등장으로 강의실 안팎은 금세 소란스러워졌다. 한 번도 연기자의 길을 걷겠다고 다짐한 일을 후회한 적이 없음에도 치사토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자신만이 어색하게 부유하는 이 분위기가 짐짓 견디기 어려웠다. 교수님이라도 빨리 들어오시면 좋으련만 치사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수업 시간인 오후 4시를 넘겼음에도 강의는 시작되지 않고 있었다.

 

***

 

  그 시각 카논은 한 손에 스마트폰을 쥐고 시간을 확인하며 후문에서 경영관으로 향하는 계속되는 언덕을 이마에 구슬땀까지 흘려가며 열심히 오르고 있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후문에서 바로 경영관과 예술관으로 향하는 사잇길을 타는 것이 힘들이지 않고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방법이었겠지만, 방향치에 이제 막 후문 근처에서 자취를 시작한 카논에게 지름길이란 마치 다른 세상의 일이나 다름없었다.

 

  만약 이번 학기도 통학을 했었더라면 꼼짝 없이 강의 첫 날부터 지각 확정이었겠구나, 카논은 새삼 자취를 허락해준 부모님께 감사의 마음을 느끼며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알음알음 길을 물어 강의실을 찾아갔다.

 

L관이면 경영관이라고 했으니까. 여기 이 건물인건가?”

 

  카논이 알지 못하는 변수가 있었다면 경영관과 딱 붙어있는 사회과학관이 제법 초행자들의 길을 잃게 만든다는 사실이었다. 산비탈을 깎아 학교를 세운 A대학은 으레 산비탈에 지어진 학교들이 그러하듯 같은 층에 있는 두 건물의 위치가 달리 표기되는 일이 왕왕 있었다. 예를 들어 카논이 지금 발을 들인 사회과학관 이 층 로비는 연결된 통로를 따라 경영관으로 곧장 이동하면 경영관 일 층이 되어버리는 셈이었다.

 

***

 

  카논이 기적적으로 경영관 오 층에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10분이 지나 사회과학관 일 층에서 삼 층까지의 계단을 오르고, 경비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경영관으로 이동해 이 층에서부터 오 층까지 계단을 내리 오른 후였다.

 

  강의 시작 직전 교수님과 조교의 입장과 동시에 가까스로 강의실에 도착한 카논은 가쁜 숨을 진정시키려 심호흡을 하며 남아있는 빈자리를 찾기 위해 강의실 뒤편에서부터 서서히 앞쪽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아슬아슬하게 시간에 맞춰온 것이 잘못이었을까 역시나 학교에서 손꼽히는 대형 강의답게 그 많은 좌석마저도 저마다 들뜬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들로 만석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유난히 반경 이 미터 내로 아무도 접근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연예인 오라를 풍기는 사람-정확히는 그 사람의 빈 옆자리-가 카논의 눈에 들어왔다. 주변에서 은근히 웅성거리는 소음이 그 사람을 향한 것이란 걸 그때의 카논은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조금은 어수선한 강의실 분위기를 환기하려 주의를 주는 조교의 말에 카논은 후광이 비치는 저 사람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비어있는 그 옆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연애의 이해. 이름부터 거창한 이 강의는 종잡을 수 없는 특이한 담당 교원과 지나칠 정도로 후한 성적, 그리고 이에 반하는 빡센 수강신청으로 학교 내외로 소문난 일반교양 과목이다. 강의에서 짝이 된 두 수강생은 한 학기 동안 교수가 정해주는 각각의 미션을 수행한 뒤 과제물의 개념으로 인증샷을 찍어 이를 제출해야 한다. 종강 직전 시험 대체로 블라인드 테스트와 같이 상대방에 대한 상호 호감도 평가를 위한 간단한 레포트를 작성하고, 두 사람 모두 상호 호감도 평가 만점을 기록하거나 실제 연인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면 성적은 무조건 최고점인 A+. 꼭 그렇지 않아도 모든 수강생에게 기본적으로 B0 이상의 성적을 나눠주는 상당히 인심이 넉넉한 강의였다.

 

  몇 년에 한 번꼴로 세간에서 잊힐 때가 되면 매스컴에 해당 강의가 다시 소개되는 것은 물론이요, 실제로 이 강의를 통해 결혼까지 골인한 선배들이 있다는 정체 모를 도시 전설도 심심찮게 들려왔다. 교수님은 어딘지 모르게 자신이 캠퍼스 커플, 아니 캠퍼스 부부의 연을 맺도록 등을 밀어준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품고 계신 듯했다. 그렇지 않으면 강의 남녀 성비가 정확히 반으로 떨어지지 않는 경우엔 동성끼리도 충분히 짝을 이룰 수 있고, 본 강의의 목적은 커플 탄생뿐만이 아니라 강의를 통해 좋은 인연을 만나는 것에 있다는 이야기를 이다지도 사람 좋은 얼굴로 말할 수 없을 것이었으므로…….

 

오늘은 OT 시간이니까 짝을 정하는 것까지만 진행할게요. 처음 만난 사람들이니 이 시간 이후에 간단히 이야기라도 나누면 더 좋겠죠? 앞으로 한 학기 동안 수요일 오후나 저녁은 좋든 싫든 짝과 함께 보낸다고 생각하면 될 거예요.”

 

  실로 말도 안 되는 강의 내용에 치사토가 하얗게 얼굴을 질려가며 아연실색하고 있는 사이 교수님은 나머지 강의 개요를 빠르게 설명하고, 마음에 드는 사람 혹은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 짝을 이룬 다음 학번과 이름을 적어 앞에 있는 조교에게 제출하라는 말만을 남기고 쾌활하게 강의실을 나섰다.

 

다음 주 미션은 자유 데이트입니다. 짝과 자유롭게 시간을 보낸 뒤 인증샷을 사이버클래스 과제란에 업로드 하는 것 잊지 마시고, 그런고로 다음 주는 강의실에 모이는 일 없이 인증샷만 제출하면 됩니다. 오늘 강의 여기서 마칩니다.”

 

  홀연히 사라진 교수님 대신 능숙해 보이는 조교가 강의를 마무리하자 강의실은 각자 점 찍어둔 상대의 메신저 아이디나 전화번호를 물어보는 학생들의 목소리로 떠들썩했다. 과제물을 제출하려면 어쨌든 주에 한 번은 서로 만나야 하니 연락처를 교환해야 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강의실에 들어온 지 채 10분도 되지 않아 끝나버린 강의에 허무해 하기도 잠시 카논은 제 옆에 앉은 사람으로부터 왠지 뜨거운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그제야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듯한 그 얼굴이 자세히 눈에 들어왔다. 윤기 있는 금발을 자연스럽게 반 묶음 한 헤어스타일과 작은 얼굴에 화려한 이목구비가 오밀조밀 들어차 있는, 아역배우 출신 연기자 시라사기 치사토. 분명 작년 입학식에서 신입생 대표로 선서를 했던 그 치사토가 틀림없었다.

 

  카논은 비로소 유난히 소란스러웠던 강의실의 분위기와 아까부터 흘끔흘끔 자신들 쪽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초리가 무엇 때문이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연예인과 함께 듣는 교양수업. 사람들이 묘하게 들떠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다만 자신이 공인임을 의식해서 그런 건지 쉬이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걸지 못하고 혼자 머뭇거리고 있는 제 옆 사람이 더 신경 쓰였다. 말을 걸고 싶어 하는 눈치이긴 한데 이쯤 되면 자신이 먼저 말을 거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카논은 퍽 마음을 다잡고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저기, 사람 많은 곳은 좀 불편할 것 같은데. 저랑 이름 적고 같이 나가실래요?”

 

  아, 너무 오버했나. 실례되는 말이었음 어떡하지……. 카논이 머릿속으로 이미 뱉어버린 말을 곱씹어보며 후회하고 있는 사이 치사토는 카논의 악의 없는 말에 자못 감동한 표정으로 순순히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종이 있으세요?”

, 제가 공책 찢어드릴게요. 아니다, 제가 제 이름하고 학번 적어서 드릴게요.

후후. 아니에요. 제가 적을게요.”

 

천천히 주세요. 자신이 먼저 말을 걸고도 치사토의 즉답이 돌아올 줄 몰랐던 카논이 어찌할 바를 모르며 가방 속에서 연습장을 찾자 치사토는 약간은 긴장이 풀린 표정으로 카논의 옆모습을 차분히 바라봤다. 당황하는 모습이 꽤 귀엽다고 생각하며.



---


백하! 불금인데 약속 취소돼서 집에서 글이나 쓰고 있다...

이 정도 분량이면 글 안잘리겠지??!! 저번에 분량 넘쳐서 글삭한 전적이 있어가지고


대학생 카논과 치사토가 교양수업에서 만난다는 내용

일단 적어보고는 있는데 반응 괜찮으면 다음 편도 써오겠음

여긴 쨍쨍하더니 갑자기 비 내린다... 백붕이들 다들 건강 조심하길


출처: https://baeknamoo.postype.com/post/7686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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