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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단편 하나 더 써왔어요모바일에서 작성

현시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9.01 08:56:12
조회 880 추천 31 댓글 11
														
뉴비에요
역시 어렵네요
잘부탁드려요





덥다. 하릴없이 늘어져서 선풍기 바람을 쐬고 있어도, 팔락거리는 옷 소매자락으로 들어오는 바람조차 시원하지가 않다. 그래, 이게 여름이다. 가만히 있어도 바닥과 맞닿은 살은 점점 열이 올라서 조금씩 몸을 불판의 고기처럼 돌려 줘야하는 그런 찜통. 그리고 나란 인간은 그 찜통 속의 만두.

그냥 누웠다가, 옆으로 돌아누웠다가, 조금 더 몸을 돌려 엎드리고. 머리카락이 어깨며 가슴께며 들러붙고 얽히지만, 그런 거 하나하나 신경쓰기조차 귀찮다. 그렇게 한바퀴를 돌아 도로 누웠더니 이마에 차가운 무언가가 닿는다.

"아."

"계곡 못 간 게 그렇게 아쉬워?"

이슬이 맺힐 정도로 차가운 유리컵이었다. 그걸 받아들고 몸을 일으키니 룸메이트가 부드럽게 웃고 있다.

"어쩔 수 없잖아. 비가 와 버렸는걸. 난 물귀신이 되긴 싫어."

"은서, 많이 컸네. 옛날이었으면 그래도 가야겠다면서 떼 썼을 거면서."

"...언제 적 얘기야, 정말."

부루퉁하게 대꾸해도 룸메이트는 뜻모를 웃음만 짓고 있다. 괜히 간질거리는 마음이 불편해져 컵에 담긴 음료수를 내려다본다. 아니, 차구나. 분명 음료수는 몸에 좋지 않다는 이유겠지.

룸메이트로 맺어지고 말을 놓게 되면서부터였나, 그녀는 내 생활습관 하나하나까지 손을 댔다. 자기 전에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잡고 있자면 어떻게 알았는지 어서 폰 내려놓고 눈 감으란 말이 들려왔고, 밤 늦게나 자다 깨서 출출하길래 냉장고 문만 열었다 하면 귀신같이 뒤에 서서 뭐하고 있어? 하는 말을 건네왔다. 밤 늦게까지 학과 동기들과 놀려하면 과음하지 말고 조심히 오라는 문자도 받았다.

강압적인 말들은 아니었다. 잠결의 투정일 수도 있고, 우연히 마주친 일들일 수도 있었다. 사소한 배려가 담긴 메시지일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왠지 그 뜻들을 따라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성적에 얽매여 공부에만 집중하던 초중고교 시절을 지난, 되다만 인간 은서를 사람으로 만든 게 룸메이트였다. 분명 동갑내기일텐데, 자상하고 사근사근한 말투에 왠지 모르게 거역할 수가 없었다.

"기분이라도 낼까?"

"어떻게?"

계곡도 안된다, 수영장도 안된다 말리던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에 곧바로 내 목소리가 나도 모르게 기대로 충만해졌다.
곧바로 거품처럼 빠져버렸지만.

"...아니, 명지야."

"왜. 계곡이랑 다를 거 없는데? 이참에 라면도 끓일까?"

노트북 사운드를 크게 틀어 흘러나오는 강물소리와, 족욕을 하겠다며 가져온 물 담긴 대야. 명지는 빨리 앞에 와서 앉으라며 깔깔거린다.
의자를 끌어다 명지의 앞에 마주앉아 같은 대야에 발을 담근다. 그래 뭐, 계곡에 가서 막 물에 빠져 놀고 그럴 나이는 지났으니까. 피서 겸 다리정도나 담그고 물장구 좀 치다 밥 먹고 낮잠 자고, 벌레 물린 곳 긁적이면서 돌아오고 하겠지. 사진 몇 장 남기고 돌아와서 sns에 누구누구야 재밌었어 하면서 올리고 그정도.

차라리 단둘이 이러고 있으니 더 좋다. 나쁘지 않네, 하고 중얼거리니 해맑게 그치? 하며 웃는 명지를 왠지 마주보기가 어색하고 부끄럽다. 가까워서 그런 거겠지. 괜시리 가지런히 모은 무릎과 발끝을 내려다본다.

"얍."

"간지러워. 하지마."

가만히 있는 게 어색하긴 명지도 마찬가지였던 걸까. 살살 발로 정강이를 간지럽혀온다. 슬금슬금 물러서도 대야 자체가 그리 크지 않아서 물러설 곳이 없다. 아니, 물러선 만큼 명지가 앞으로 다가온다.

"아, 맞다. 나 오늘 저녁에 소개팅 있는데."

지나가듯 넌지시 말하며 하는 물장난에 그 뜻을 한박자 늦게 알아들었다.

"어....... 어? 누구랑?"

"다른 과 남자애랑. 이름은 뭐였더라......."

이름을 바로 생각해내지 못하는 걸 보면 큰 관심은 없던 모양이다. 하지만 괜시리 불안해진다. 어디서 온 불안감일까. 나만 남겨두고 연애를 하러 다니는 명지? 아니, 어쩌면.......

"안가면 안돼?"

불쑥 튀어나온 본심에 나도 모르게 입을 가리려다 참는다. 괜히 진담인 것처럼 굴었다간 분위기만 이상해지겠지. 부러 뒷말을 덧붙인다.

"나만 솔로로 남겨둘 거야?"

"에이, 명색이 대학생인데 연애 좀 해봐야지. 이러다가 나 졸업할 때까지 솔로면 은서 네가 책임질 거야?"

"응."

"진짜지?"

명지는 꺄르르 웃기만 한다. 나도 그에 전염돼 따라 웃으며 속내를 감춘다.

진심이었는데.





명지는 저녁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덕분에 간만에 명지가 그렇게 싫어하는 라면을 끓였다. 명지가 말릴 때 만큼은 그렇게 먹고싶던 라면이, 딱히 맛있단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예전 같았으면 먹었으니 물만 부어놓고 설거지는 다음 끼니때나 했을텐데, 엄마같은 명지의 잔소리에 그새 몸에 배인 것인지 손에 물이 묻자마자 반사적으로 수세미에 세제부터 묻힌다.

평소같았으면 설거지가 끝나고 바로 눕는 그런 사치는 부리지 못하겠지만, 명지도 없는데 이정도 일탈은 괜찮잖아. 침대에 누워서 허전함을 달래려 휴대폰을 잡는다.
슬슬 늦는데. 소개팅이 잘 되기라도 한 걸까. 연락도 없이 늦을 애가 아닌데. 슬슬 애가 타다가 내가 걔의 뭐라도 된다고, 하며 메시지를 썼다가 지웠다 한다. 그래, 다 큰 어른이니까 맘 맞으면 집에 안들어가고 같이 있을 수도 있고 그런 거지.

그렇게 손에서 놓친 휴대폰 액정에서 메시지 입력칸의 커서가 깜박이고 있을 때, 명지에게서 먼저 문자가 도착한다.

뭔데 뭐 보내려다 지우고 그래? ㅋㅋ

평소에 자기관리만큼은 철저하던 그녀였기에 오타없이 멀쩡한 글자들을 보며 내심 안심한다. 동시에 몰래 하던 짓을 들킨 것 같아 괜히 찔끔해진다.

그냥 뭐, 좋은 분위기 안망치려고 보내려다 말았지. 많이 늦네.

그렇게 답신을 보내자 곧바로 명지가 대답해온다.

ㅋㅋ 완전 별루였음
집 거의 다 왔어

별로였다, 라. 좋게 끝난 건 아니었구나.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무거워진다. 이기적인 거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영화나 소설 속 짝사랑들을 보면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되더라도 그의 행복을 바라면서 물러서곤 하던데, 난 그렇게 착한 사람이 아니다.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현관에서 들리고, 문이 열리자 명지가 비틀거리며 들어온다. 많이 취했구나. 처음 보는 흐트러진 모습에 지금이 놀릴 기회다 싶다.

"맨날 나보고 과음하지 말라더니, 정작 네가 고주망태가 됐는데?"

"히히. 나 술 먹이고 어떻게 해보려던데 어림도 없지!"

오면서 취기가 더 도졌던 걸까. 명지는 딴소리를 해댔다. 하지만 그것 나름대로 소득이었으니까.

"그럼 또 만나거나 할 일은 없는 거야?"

확인차 물어본 말에 명지는 배시시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운다.

"당연하지이~."

"그럼....... 나도 기회가 있는 거야?"

"뭐래. 언니는 우리 은서한텐 항상 오픈인데."

농담엔 농담이다, 그런 투였다. 그래, 여자끼리는 역시 안되겠지.
술 마신 건 명지인데 왜 내가 취한 느낌일까. 발그레한 명지의 얼굴이 왠지 색정적으로 느껴진다. 침을 꿀꺽 삼키며 애써 욕실로 부축해준다.

"자더라도 씻고 자....... 여름이야."

"혼자는 싫은데."

문을 닫고 나가려는데 명지가 나를 끌어당긴다.
웃는 얼굴이 가까워지고, 당황해 뒤늦게 상황파악을 했을땐 명지가 포개진 입술로 술내음을 가득 채우고 떨어진 뒤였다.

"같이 씻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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