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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악역 공작영애의 야망 PLUS - 1

BB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9.04 22:59:34
조회 560 추천 15 댓글 3
														

혹시라도 제가 숨쉬고 생각하는 이 세계조차 다른 누군가의 소설이라면,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엘라가이티아 왕국 동쪽 변방의 영지인 안펠트마운트의 초대 남작 루이스 맥나마라의 여식 카렌으로서 인사드립니다.


저희 아버지 대에야 겨우 말단 귀족의 작위를 받을 수 있었지만, 오랜 세월 이 곳을 다스린 가문의 영애로서 아홉 번째 생일 저녁이 되기 전까지 저는 나름 귀족 영애로서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의 아홉 번째 생일, 저희 아버지께서 왕국에 충성을 서약하는 것을 받겠다고 친히 국왕 전하께서 이 곳에 행차하신 날, 그 때문인지 낯선 곳의 풍토병에 걸려 앓아눕게 된 날, 저는 그 무의식 속에서 제 세계의 진실일지도 모르는 편린을 붙잡게 되었습니다.


제가 다른 삶에서 이 세계를 경험한 적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악역 공작영애의 야망. 그 삶의 어느 순간에 읽은 소설의 이름입니다. 올가 유스티아 엘프리트라는 공작가의 지체 높으신 아가씨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는 이 소설에서, 올가 아가씨는 아홉 번째 생일날 국왕 전하와 아버지를 따라 왕국 동쪽 끝으로 행차하다 사고를 당한 뒤, 무의식 속에서 "전생"을 기억해내고,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가 전생에 경험한 "게임"이라는 유희에서 묘사된 세계와 너무도 흡사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름은 기억할 수 없지만) 그 게임에서 올가 아가씨는 악역을 맡아 변방에서 온 하급 귀족 영애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괴롭히다가 "게임"에서 공략 대상으로 언급되는 왕자와 다른 귀족 영식들에게 단죄당하여 가문까지 엮여 파멸을 맞게 되지요.


이를 피하기 위해 올가 아가씨는 반대로 선역이 되어 자신의 파멸을 막으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은근슬쩍 부패한 부모님을 타일러 더러운 일에서 손을 떼도록 하고, 선행을 베풀고 주변인들에게 인망을 쌓으며, 그 "게임"에서 주인공으로 묘사된 영애를 최대한 피하는 등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은 끝에 마침내 파멸의 운명을 피하고 헨리 엘라가인 왕자와 혼인에 성공하면서도 다른 공략 대상들과 밀회하는 것까지 용인받는 관계가 됩니다.


하지만 소설에 악역이 없으면 곤란하겠지요. 그 게임의 원래 주인공은 세계의 억지력인지 뭐인지를 받아 마찬가지로 "전생"을 깨닫게 되고, 자신에게 승리가 약속되어있다는 사실에 자만하여 올가 아가씨를 괴롭히다 역으로 단죄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안펠트마운트 남작 영애 카렌 맥나마라.


네, 저입니다.


저에게는 파멸이 예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아니 왜????


생각해보니 너무 편의주의적인 설정 아닌가요? 악역이었던 캐릭터가 선해지니 다른 악역을 만들어야겠는데 그 역할을 히로인이 맡는다고요?? 그것도 억지력이니 뭐니 씨알도 안 먹힐 법한 설정으로? 이렇게 놓고 보면 그저 평면적인 히로인과 악역 영애의 관계가 역전될 뿐 아닌가요? 대체 여기에 무슨 카타르시스가 있다는 건가요? 악당인 줄 알았던 사람이 사실 선한 사람이라 뭇 사람들을 홀리는 갭이야말로 악역 영애물의 진가 아닌가요? 갑자기 히로인이 악해져서 똑같이 파멸을 맞는다면 처음부터 관계가 뒤집어진 작품을 만들면 될텐데 왜 굳이 원작이 있는 것처럼 얘기를 해서 저 같은 불의의 피해자를 만드는 건가요? 아... 아니, 이건 좀 과한 것 같군요. 작가도 설마 자기 소설이랑 같은 세계가 실존해서 그 중 누군가가 비극을 겪어야 한다는 건 예측하지 못했을테니, 그런 것까지 작가의 악의라고 하면 실례겠지요.


이런 고민이 한창일 때, 아버지께서 누워있는 제게 다가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미안하구나... 카렌. 네 생일이 되기 전에 복잡한 절차는 모두 끝내고 왕국의 남작가 영애로서 생일을 맞게 하려고 했는데, 중도에 사고가 나서 미뤄질 줄이야... 일 년에 하루 밖에 없는 특별한 날을 이렇게 망쳐버라다니. 정말 미안하다..."


아버지께서는 제가 깨어있는 줄은 모르시고 하신 말씀이겠지만, 저는 덕분에 중요한 사실을 알았습니다. 국왕 전하의 행렬이 사고를 당했고, 그 행렬에 올가님이 있어 전생을 각성했을 수 있다는 것.


이거 진짜 큰일인데요? 정말 저에게 파멸이 예정된 세계인 건가요 여기는??




생각을 정리해봅시다. 어차피 저는 갓 귀족이 된 한미한 집안의 여식, 상대는 웬만한 귀족은 감히 쳐다볼 수도 없다는 공작가의 영애. 단순히 제가 악역 히로인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감히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무례로 취급받아 무슨 꼬투리를 잡힐지 모르는 일입니다.


어찌되었건, 시간은 많습니다. 분명 원작의 원작에 해당하는 이야기의 시작은 제가 열세살이 되어 왕도에 위치한 고등 교육 기관에 입학할 때부터였지요. 올가님(이 실존한다면)께서는 4년 동안 쌓을 업보를 미리 청산하고 선행을 베풀어 주변인들을 매료시키는 데에 한창일테니, 저는 정말로 올가님이 전생을 각성하고 주변을 바꾸어나가고 있는지만 확인하면 될 일입니다.


왕도로 가는 심부름꾼에게 공작가인 엘프리트 가문에 관한 소식을 알려달라고 부탁해봅니다. 적당한 구실은 많습니다. 가령 "이제 섬기게 된 나라에서 이미 공작이라니 얼마나 대단하신 분일까요? 저도 알고 싶어요." 같은 이유를 대봅시다.


"그게... 그렇게 너무 기대하지는 말아주십시오 아가씨. 분명 실망하실 겁니다."


"네? 그게 무슨 소리인가요?"


"오랫동안 후사를 보지 못하시다가 9년 전에 득녀하셨는데... 늦둥이라 그런지 응석을 너무 많이 받아줘서 성질이 아주 포악하다 하더군요."


"그게 공작 각하랑 무슨 상관인가요?"


"그런 따님에게 너무 오냐오냐 하다 보니, 몇 년 전부터 축재가 지나치다든가, 백성들을 못 살게 군다든가, 불만이 말이 아닙니다. 전하께서도 그간의 공적을 보셔서 어느 정도는 눈 감아 주시고, 공작 각하께서도 나름 눈치보시는 것 같습니다만, 영애께서 나이가 들어갈수록 성질이 더 나빠지고 있어서... 아가씨께서도 전에 국왕 전하께서 여기 오셨을 때 느끼지 않으셨습니까? 아버님께서 서임받으시고 저녁 만찬 때 누구든 다 알 수 있도록 못마땅한 눈초리로 째려보신 게 올가 유스티아님이십니다."


아, 그렇군요. 저야 뭐 그 당시에는 갑자기 먼 나라에서 왕자님이랑 공주님이 오신다는 느낌에 그런 악의는 별 신경쓰지 않았지만, 확실히 전생자로서 각성하기 전의 올가님은 작정하고 악의가 들어간 것 같은 악인이었다고 하지요. 하기야, 그 원작 입장에서도 다른 사람이 만든 원작이라고 하니 책임 안 지고 맘껏 평면적인 인물을 만들 수 있었던 모양입니다. 분명히 그 소설의 올가님께서 뭔 "똥겜"을 만들어놨냐고 절규하시던 장면이 기억납니다. 근데 똥겜이 뭐지?


"하여간, 제가 소녀의 꿈을 깨버린 꼴이 된 건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만, 아가씨께서도 열세 살이 되시면 그런 못돼먹은 사람과도 한 학교에 계셔야 한다니... 불쌍하기도 하지."


"그래도 한 번만... 알아봐주실 수 없나요? 사람의 소문이라는 건 원래 오가는 중에 이리저리 끊어지니까..."


"알겠습니다! 비록 한낱 심부름꾼이나, 본의 아니게 깨버린 아가씨의 환상을 되찾아드릴 수만 있다면 뭐든 해보겠습니다!"


우리 가문의 심부름꾼은 주책이긴 해도 꽤 믿을 만한 사람입니다. 영지에서 왕도로 가는 첫 번째 서한을 품고 가는 영광을 누리는 것도 그 때문이지요. 안펠트마운트에서 왕도까지는 엿새, 왕도에서 사흘을 묵고 다시 엿새를 걸려 저택의 문을 열고 들어온 심부름꾼은 저와의 약속을 잊지 않은 것으로 보였습니다.


"기뻐해주십시오! 아가씨의 환상을 다시 고쳐서 가져왔습니다!"


우리 가문의 심부름꾼은 정말 착한 사람입니다. 너무 주책이라 윗사람이 내리신 공무보다 저 같은 어린아이와의 약속을 먼저 지키러 오는 사람이긴 하지만요. 바로 아버지께 야단을 듣느라 본의 아니게 제 기대감(혹은 위기감)을 증폭시키는 효과를 내고 말았습니다.


사정은 이렇습니다. 심부름꾼이 이번에 왕도에 다녀오기 전까지만 해도 엘프리트 공작 각하에 대한 원성이 하늘을 찔러 언제 폭발할지 모를 정도였다고 하는데, 갑자기 멋대로 빼앗았던 서민들의 땅이나 재신을 돌려주느라 바쁜 모습이었다는 것. 수 년동안 무엇에 홀렸다가 다시 돌아온 게 아닌가 생각하는 백성들이 많았지만, 조금 더 궁정 사정에 익숙한 사람들은 금방 그럴듯한 답을 냈다고 합니다. 온갖 투정으로 주변 사람들을 못살게 군 올가 유스티아 영애가 갑자기 사람이 바뀌었다는 것이죠. 굳이 무엇에 홀렸다고 한다면 공작 각하보다는 공작 영애쪽이지 않겠느냐는 게 결론이었지만, 이걸로 저도 확실하게 제가 처한 상황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올가 유스티아 엘프리트 공작 영애가 그 "전생"이라는 것을 각성했다는 것입니다.


순간 소설의 한 대목이 다시금 떠올랐습니다. 올가님은 자기가 처한 상황이 어딘가의 게임 속 세계이고, 자신에게는 파멸만이 예정되어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죽고 싶지 않은 것인지 혹은 그 전까지 미움샀던 일들을 후회하는 것인지 몇날 며칠을 흐느끼면서 연신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하죠. 전생의 올가님은 의외로 착하면서도 여린 분이라, 자기가 왕자에게 버림받아 먼 곳으로 유배간다든가, 언젠가 원한 때문에 죽어버린다든가 하는 것보다도 자기가 남한테 원한을 산다는 사실 그 자체를 못 견뎌하는 분이다고 해요.


소설에 따르면, 올가 님은 아버지인 엘프리트 공작 각하께 직접 서민들에게 사과할 기회를 달라며 몇 번을 졸라댔고, 울상인 채로 백성들 앞에 나와 직접 고개를 숙이고는 "제발 미워하지 말아주세요" 따위의 막나가는 말이 나오는 것을 간신히 참아가며 울먹인 채로 사과를 했다고 합니다. 공작 영애가 직접 나와서 고개까지 숙이는데 어쩌겠나요? 이런 저런 불편함이 있었다고 해도 공작가에서 다 보상해준다니 올가님 개인을 향한 증오 같은 건 순식간에 녹아 없어졌습니다.


사실, 그렇게 울먹이면서 사과하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노라니 꽤나 귀엽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 올가님에게서 "제발 미워하지 말아주세요" 같은 말을 했다고 생각하면, 뭔가 위험한 쪽의 감각을 자극받는 느낌도 듭니다. 올가님께서 혼신을 다해 그런 말이 나오려는 걸 참지 않으셨다면 공작 영애의 사과를 듣고 있던 서민들도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괴롭히고 싶다든가... 아니, 어쩌면 제가 올가님을 괴롭힌다는 게 그런 의미였던 걸까요? 소설에서 주인공이 아닌 인물은 심정이 제대로 묘사되지를 않으니 알 수가 없네요.



악역 영애물의 전생자라는 설정의 악역 영애 x 그런 악역 영애물 속에 전생한 히로인 백합을 의도로 단편으로 쓰려고 했으나


글 쓰다가 현기증 와서 여기서 중단


2편을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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