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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악역영애는 살고 싶다 -6-

ㅇㅇ(59.26) 2020.09.08 02:48:00
조회 1464 추천 50 댓글 12
														

아리시아에게는 약혼자가 있었다.


부모님을 잃은 아리시아를 거두고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던 친한 아저씨의 말이었다.


어느 날 학교를 찾아 온 그는 아리시아와 근황을 나누다가 뜬금없이 아리시아에게 약혼자가 있다고 운을 띄었다.


그가 말하길, 아리시아의 부모님에게 친구가 있었는데, 부모님과 그 친구가 약속을 한 가지 했다고 한다. 자식이 생기면, 그리고 각자의 자식이 이성이면 결혼을 시키자고.


부모님에 대한 생각이 각별한 아리시아는 부모님께서 하셨다는 약속을 깰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녀는 적어도 약혼상대와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약혼상대를 만났다.


부모님의 친구라는 사람은 견실하고 인망이 두터운 백작이었다. 그리고 그의 아들도 나름 준수하고 쾌활한 귀공자로 아리시아를 만나자마자 첫눈에 반한 것처럼 굴었다.


처음에는 부모님의 약속 때문에 그를 만나던 아리시아지만 점점 그에게 빠져들고, 어느덧 약혼식 날짜까지 잡을 정도가 된다.


그리고 약혼식날, 아리시아와 귀공자의 약혼식이 한창 진행될 때.


네 명의 남주가 난입한다.


브레톨리우스가 약혼식을 중단시키며 아리시아의 약혼자는 고위 마족이고 최면으로 사람들을 세뇌시켰다고 주장한다.


약혼자는 그 말에 웃지만 티자일이 그의 방에서 가져온 마족의 징표에 얼굴을 굳힌다.


이어서 클라우드가 진실 된 모습을 밝히는 보석을 던지자 그는 마족 본래의 모습을 드러낸다.


마족이 아리시아를 공격하지만 안시엘이 신성한 힘으로 그 공격을 막아낸다.


그 사이에 최면에서 풀려난 아리시아는 분노하여 마족을 공격하고 마족은 아리시아의 압도적인 마력을 이기지 못하고 소멸한다.


이 사건으로 아리시아와 네 명의 남주는 더욱 사이가 돈독해진다.


……원래 스토리는 그렇다는 것이다.


나는 벌렁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킨 후에 약혼식장에 들어갔다.


그리고 외쳤다.


“이 약혼 무효예요!”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몰렸다. 그 시선은 소심한 나에게는 독과 같았다.


기절할 것만 같은 느낌을 억지로 참아내며 나는 단상으로 올라갔다.


단상 위에는 주례와 아리시아의 약혼자, 그리고 아리시아가 있었다.


아리시아는 나를 보고 얼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쥴리아나?”


약혼식을 치르고 있는 아리시아는 여자인 내가 보아도 반할 것 같았다. 평소 소탈하여 자신을 거의 꾸미지 않는 그녀도 매력적이었지만 약혼식을 위해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한껏 단장한 그녀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 지금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어도 그것이 백치미로 승화되어 뭔가 마음을 간질였다.


아리시아의 약혼자는 나에게 물었다.


“레이첼란스 영애? 이게 무슨 짓입니까?”


그러게요. 제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걸까요?


내 본성에 전혀 맞지 않는 일을 하느라 반쯤 정신을 놓고, 남은 절반은 아리시아에게 팔려있던 덕분일까.


나는, 아니, 이 몸은 몸에 익은 데로 행동했다.


“어머나? 귀가 먹어서 못 들은 걸까요? 아니면 머리가 나빠서 못 알아들은 걸까요? 어느 쪽이든 귀찮네요. 저는 귀찮은 남자는 싫어해요.”


그렇게 말하고 나는 아리시아의 손을 잡고 단상 아래로 내려왔다.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된, 그리고 세뇌되어 있는 아리시아는 순순히 나에게 끌려왔다.


“멈춰!”


아리시아의 약혼자는 아리시아의 손목을 잡으려고 했다. 예상했기에 나는 아리시아를 확 끌어당겨 그 사태를 막았다. 아리시아의 가녀린 몸이 내 품을 가득 채웠다.


나는 아리시아의 약혼자를 노려보며 말했다.


“말했죠? 저는 귀찮은 남자는 싫어한다고. 그런데 저는 그것보다 더 싫어하는 게 있어요.”


나는 아리시아를 지키기 위해 더 강하게 그녀를 안으며 말했다.


“마족. 그것도 사람의 정신을 조종하는 저질스러운 마족을 특히나 싫어해요.”


“무슨 말도 안 되는……"


그렇게 말할 줄 알았기에 나는 아리시아의 약혼자를 향해 증거를 던졌다.


그는 그것을 낚아챘다. 그리고 얼굴을 굳혔다. 우연으로라도 그릴 수 없는 뒤틀린 문양이 새겨진 손바닥 크기의 금속조각. 마족의 징표였다.


물론 내가 직접 방에 들어가서 가져온 것은 아니었다.


도둑길드의 여러분들이 수고해주셨습니다. 이야, 악역영애라서 그런가? 그런 쪽으로 인맥이 있더군요.


……정말 최선을 다해서 악역을 맡기 위해 노력했잖아, 쥴리아나. 그 노력 좀 좋은 데에 쓰지.


내가 속으로 쓰게 웃는 동안, 아리시아의 약혼자는 험악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어디서 이런 것을 구해서 저를 모함하려고 하시는 겁니까!”


“아, 그래요? 그러면 이건 어떤가요?”


나는 진실 된 모습을 밝히는 보석을 던졌다.


보석이 아리시아의 약혼자의 몸에 닿자 파열하며 밝은 빛을 흩뿌렸다.


눈부셔!


그 빛을 정면으로 본 나는 순간적으로 눈이 멀었다.


빛이 사그라졌다. 그리고 조금 지나 내 눈도 정상적으로 회복하자.


“크으으윽! 네 이년!”


아리시아의 약혼자의 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거대한 바퀴벌레를 봐도 저것보다는 덜 무서울 거라고 확신할 수 있는 이형의 괴물이 서 있었다.


상상한 것 이상으로 무서운 데요!?


소설에서 자세한 묘사를 안 한 이유가 있었구나! 자세히 묘사하면 독자들 나가떨어지니까!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감사합니다. 저 대신 비명 질러주셔서.


하객들 사이에서 비명소리가 난무했다.


나도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공포가 너무 커서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나의, 나의 과업을 향한 일보가……. 조금만 더 있었으면 이루어질 수 있었는데……너 같은 보잘 것 없는 년 때문에!”


아리시아의 약혼자, 아니. 이제는 흉측한 마족이 된 그는 팔이라고 생각되는 뒤틀린 무언가를 추켜올렸다.


딱 봐도 나를 공격하기 위한 몸짓이었지만 나는 그것을 피할 수 없었다. 다리가 덜덜 떨려서 당장이라도 자리에 주저앉아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마족이 팔을 내리쳤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아리시아를 감싸 안았다.


“크아아아아아아악!”


마족이 비명을 질렀다.


예상했던 고통이 가해지지 않자 나는 살짝 눈을 떠 마족의 상태를 살폈다.


마족은 팔이라고 생각되는 부위를 부여잡고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리고 우리와 마족 사이에는 희미한 둥근 막이 쳐져 있었다.


그제야 내가 마냥 아무런 대책 없이 이곳으로 쳐들어온 것은 아니라는 것을 떠올렸다.


“나의 주이시여! 당신의 어여쁜 아이들을 보호하소서!”


“나의 주이시여! 우리는 당신의 뜻을 받들어 당신의 의지를 이행하나이다!”


“나의 주이시여! 존재만으로 당신을 모욕하는 피조물을 멸하여 당신을 찬양하나이다!”


예식장을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는 하객들을 거슬러 올라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소수였지만 다수인 하객들에게 전혀 밀리지 않고, 오히려 다수인 하객들을 몰아붙이며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가벼운 복장을 입고 있었지만 옷 위로 근육의 형태가 드러날 정도로 무시무시하게 단련된 몸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신성기사단이었다.


내가 도둑길드 사람들에게서 받은 마족의 징표를 곧장 신전으로 가지고 달려가니 출동한 사람들이다.


『성녀에게 이겨내지 못할 고난은 없습니다.』 작중에서는 최후반부 최종 보스와 싸울 때에 모습을 드러내는 인간병기들이었다.


아니, 설정 같은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고. 어서 와서 우리들 살려줘요!


하지만 그들도 열심히 인파를 헤치고 올라오고 있었지만 사람들이 다칠까봐 함부로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그냥 저 사람들이 먼저 들어가겠다고 했을 때 그냥 들어가라고 할 걸. 괜히 스스로 아리시아를 구하겠다고 나서서!


살려고 발버둥치다가 그게 독이 되어 죽게 생겼구나!


“쥴리아나?”


벌써 천사가 보여!


천사가 나를 올려다보고 있어!


그런데 천사가 인상을 찌푸리네?


이 악역 영애 얼마나 못돼 먹었길래 천사조차 인상을 써?


천사가 말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거죠?”


아, 천사가 아니라 아리시아였다.


세뇌가 풀렸나보다.


나는 다급하게 말했다.


“저 마족이 당신 세뇌했어요!”


마치 친구의 악행을 일러바치는 어린아이처럼 마족을 삿대질을 하며 말했다.


아리시아가 내 품에서 몸을 돌려 마족을 바라보았다.


그 사이에 태세를 정비한 마족은 다시 공격을 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방금 전의 육탄전과는 달리 무슨 불길한 기운을 모으고 있었다.


“이렇게 된 이상……내가 가질 수 없다면 다 부숴버리겠다!”


마족이 모으고 있던 불길한 기운이 자그맣게 응축되었다. 검붉은 그것은 색이 진해지더니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부르르 떨었다.


그것을 본 신성기사단 사람이 외쳤다.


“사람들을 지키시오, 형제들이여!”


신성기사단은 성호를 긋고 기도문을 외웠다. 그러자 푸른 기운이 하객들을 둘러쌌다. 


우리는!?


내가 그렇게 외치려는 찰나.


“……역겨워.”


아리시아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손짓했다.


하얀 빛이 세상을 감쌌다.


방금 전과는 달리 단지 눈을 가릴 뿐 눈에는 자극적이지 않은 빛이었다.


하지만 마력을 느낄 수 있는 나의 육감은 끝을 알 수 없는 막대한 마력을 감지했다.


잠시 후 빛이 사라졌다. 마력도 희미해졌다.


그리고 마족도 사라져 있었다.


흔적도 없이. 다른 것들에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고.


우와.


이게 주인공의 힘?


이런 사람을 끝까지 괴롭히다니. 쥴리아나, 너 제정신이니? 나는 절대로 거스르지 말자는 생각밖에 안 드는데?


내가 쥴리아나에 대한 비뚤어진 존경심을 느끼고 있을 때.


“언제까지 저를 끌어안고 있을 건가요!”


아리시아가 나를 밀쳤다.


나는 벌러덩 바닥에 넘어졌다.


아리시아는 넘어진 나를 한참 내려다보다가 몸을 돌려 예식장 출구로 향했다.


화는 나지 않았다. 절대로 거스르지 말자고 마음먹은 게 방금 전이니.


하지만 억울하기는 했다.


나 은인인데!


나 없었으면 아까 그 흉측한 마족한테 세뇌된 채로 약혼하고, 결혼하고, 얼레리꼴레리 했을지도 모르는데!


……물론 나 없어도 남주들이 나서서 활약했겠지만.


그리고 억울하면 어쩔 건데. 억울해도 살려면 이렇게 발버둥 쳐야지. 쥴리아나가 한 짓이 얼만데.


“…….”


친구 보증 섰다가 친구가 잠적해서 친구의 빚을 갚아야하는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전 이런 친구 둔 적 없는데요!



* * *



-아리시아 side-


아리시아는 쥴리아나에 대한 분노를 불태웠다. 지금까지 쥴리아나가 자신에게 행했던 불합리한 폭력들을 상기하여 활활 타오르고 있는 분노를 더욱 키웠다.


아리시아는 그 분노의 불길이 꺼지지 않도록 혼신의 힘을 다했다. 혼신의 힘을 다해야했다.


아리시아는 그렇게 끊임없이 쥴리아나에 대해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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