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마이너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창작] [카논치사] Sinking down

ㅇㅇ(121.159) 2020.09.09 02:05:37
조회 522 추천 22 댓글 5
														






  이따금 그 애의 다정이 나를 익사하게 만든다는 기분에 사로잡힌다. 코끝까지 차오른 물살에 숨을 쉴 수가 없어 입을 닫고 발버둥을 쳐봐도, 어느새 폐부 깊숙이 스며든 그 다정이 공기 없이도 나를 숨 쉬게 해서.

 

 

Sinking down

 

 

  발악이라도 하는 것 같은 매미 울음이 학교 전체를 떠나가랴 울리던 어느 날, 2-A 교실 안은 끝나가는 방학을 아쉬워하는 학생들의 말소리로 한바탕 떠들썩했다. 아직 해치워야 할 방학 숙제가 산더미 같다던가, 이번 여름엔 어디 바다의 집에 놀러 갔다 왔다던가. 몇 주 만에 만난 아이들은 저마다 가득 쌓인 말을 쏟아내듯이 입을 놀리고 있었다. 개중에 단연 화제가 되는 것은 곧 다가올 이웃 마을의 불꽃 축제에 관한 이야기였다.

 

  개울 하나를 사이에 둔 이웃 마을은 매년 근방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불꽃놀이 축제를 여는 것으로 유명했다. 물론 이 축제가 가까워 온다는 건 여름방학도 곧 끝이 난다는 걸 의미했지만, 친구와 혹은 연인과 불꽃놀이를 구경할 생각에 그런 걸 신경 쓰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매년 펼쳐지는 축제였음에도 올해는 유독 카논에게 특별한 축제가 될 것이었다. 중학생 때부터 알아 온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와 연인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관계를 시작한 지도 어언 삼 개월. 서로의 생일은 친구로서 축하해주었으니 어쩌면 이번 축제가 사귀게 된 이후로 맞는 가장 큰 이벤트가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치사토 쨩, 그날은 오프려나…….’

먼저 말해봐야겠다!’

 

  같은 교실에서 같은 교복을 입고 지낸 시간이 환상이었다는 듯 최근 치사토는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새로 시작한 아이돌 밴드 유닛이 인기를 얻기 시작하며 학기 중에도 오후 수업에 빠지는 날이 늘어나더니, 한 달 만에 학교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임시등교일에도 결국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서운한 마음이 아예 들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자신의 목표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는 연인의 발목을 붙잡을 순 없었다. 보고 싶은 마음은 틈틈이 주고받는 메시지로, 그리운 목소리는 잠들기 전 잠시 하는 통화로.

 

  그래도 이번 방학은 꽤나 많이 참았으니 분명 그녀도 그날만큼은 자신을 위해 시간을 내주리라고.

 

치사토 쨩. 오늘도 수고했어! 피곤하지?”

후후. 그래도 카논 목소리를 들으니 힘이 나는걸.

혹시이번 주말에 만날 수 있을까? 이웃 마을에서 불꽃 축제가 열린다고 해서, 치사토 쨩만 괜찮으면 같이 구경 가고 싶었거든

사람이 붐비는 곳은 어렵겠지만, 이웃 마을이 보이는 공원에서라면 괜찮을 것 같은데? 그날은 미리 오프로 빼놓을게.

! 기대된다. 정말 기뻐. 치사토 쨩.”

. 나도 무척 기대되는걸. 얼른 보고 싶어, 카논.

헤헤주말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를 닷새가 지나고 돌아온 주말, 두 사람은 물이 담긴 작은 양동이와 막대 폭죽을 챙겨 공원으로 향하는 완만한 산책로를 오르고 있었다. 양동이 손잡이를 사이좋게 나눠 들었음에도 신장이 더 큰 카논에게로 무게가 쏠리는 것이 치사토는 못내 속상했다.

 

  스러져가는 여름에 서운해하기도 잠시 선선한 바람과 풀벌레 소리가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길을 오르는 두 사람을 반기고 있었다. 카논은 치사토를 만나지 못했던 그동안 밴드 멤버들과 버스킹 공연을 했던 일, 우연히 찾은 카페에서 맛봤던 홍차의 감상 등을 늘어놓고 있었다. 치사토는 노래하듯 듣기 좋게 이야기하는 카논의 말소리를 잠자코 듣고 있을 뿐이었다. 네가 없는 동안 제가 겪었던 일들은 그다지 즐거운 이야기는 아니었기에, 실로 오랜만에 만난 연인에게 우울한 넋두리를 하고 싶진 않았다.

 

  제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시선이 마주치면 으레 시원하게 미소 짓는 말간 얼굴이 가슴을 벅차오르게 해서. 만나지 못했던 날을 만회라도 하겠다는 듯 모든 순간 저를 눈에 담을 기세로 바라보는 연인의 눈길이 더없이 따스했다.

 

치사토 쨩! 여기 봐봐. 마을이 한 눈에 보여!”

 

  산등성이 중턱에 올라 바라본 전경은 백색으로 빛나는 마을의 야경과 그 위로 피어오르는 형형색색의 불꽃이 배경이 되어, 마치 다른 시공간에 툭 하고 떨어진 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웠다. 사람 하나 없는 공원의 적막함이 저 멀리서 피어났다 사라지는 불꽃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고 있었다.

 

  마을의 야경과 그 위로 떠오르는 커다란 불꽃을 뒤로 두 사람은 준비해 온 막대 폭죽에 불을 붙여 공원 정자에서 둘만의 작은 불꽃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비록 마을 축제에서 쏘아 올리는 폭죽보다는 못하겠지만 치이익 소리를 내며 주황색으로 우수수 떨어지는 불꽃이 제법 운치가 있었다.

 

  친구에서 연인으로, 알고 지내던 시간의 이름을 덧쓰게 됐지만 친구였을 때와 둘의 관계가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사귀기 전부터 워낙 친밀했던 두 사람이었기에 어찌 보면 예견된 일이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치사토는 카논을 생각하면 아득히 불안한 마음이 먼저 고개를 치켜들고는 했다.

 

  일 년에 한 번밖에 열리지 않는 불꽃놀이조차 자신은 이렇게 평범하게 보러 갈 수가 없는데, 다른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누리는 것을 함께 할 수 없는 사람인데. 더 많은 걸 누릴 수 있고, 누릴 자격이 있는 너를, 사랑이라는 이유로 속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없이 제게 다정한 카논을 떠올릴 때면 치사토는 과분한 사랑에 숨이 막혀 매 순간 가슴 한편이 먹먹해짐을 느꼈다.

 

치사토 쨩. 오늘 이렇게 같이 올 수 있어서 기뻐너무 예쁘다. 그치?”

정말 그러네…….”

 

지금 이 순간이 끝나지 않는다면 좋을 텐데.’

 

  자신이 이렇게 애타는 마음으로 매일을 보내는 만큼 내 옆에 있는 너도 나를 원하는지, 친구일 때와 별반 다를 것 없이 순탄히 지속되는 관계에 치사토는 카논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흔들리지 않을 확인을 받고 싶었다.

 

  머리로는 알아도 마음으로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일들.

 

  물이 담긴 양동이에 어느새 다 타버린 막대 폭죽이 여러 개 떠다니고 있었다. 이윽고 한참 동안 말을 아끼던 치사토가 입을 열었다.

 

있지, 카논. 때로는 확실히 표현해주지 않으면 난 자신이 없어져

, 치사토 쨩?”

너는 늘 누구에게나 다정하니까더 불안해진다면 내가 너무 이기적인 걸까?”

…….”

 

  막바지에 다다른 불꽃놀이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불사르겠다는 듯이 더 크고 화려한 불빛을 피워내고 있었다. 얼마간 불편한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펑펑 터지는 불꽃 소리만이 두 사람을 에워싸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내 마음이 전해지겠어, 치사토 쨩?”

 

  올곧은 시선으로 저만을 담고 있는 눈동자에 치사토는 카논의 옷자락을 쥐고 있던 제 손을 들어 카논의 손을 감쌌다. 옷감이 스쳐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치사토가 카논의 손을 제 볼에 갖다 대었다. 서늘한 치사토의 손끝이 잘게 떨고 있는 것이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카논은 못 본 새 눈에 띄게 해쓱해진 치사토의 볼을 말없이 쓰다듬다 그대로 치사토의 볼에 입술을 묻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제게 다가오는 카논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치사토는 두 눈을 감아버렸다. 조금은 달뜬 주변의 공기와 여전히 제 몸을 태워내는 불꽃의 울음만이 가득했다.

 

  맞닿은 입술이 너무나 따뜻해서 치사토는 이유 없는 속울음이 났다. 자신의 옆에 있는 연인에게는 절대 들리지 않았으면 하는 울음이.

 

 

***

 

 

  물속에서 한 번 들이켠 숨은 두 번은 어렵지 않아 결국엔 그 다정 없이는 더는 살아갈 수 없는 나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네가 내게 더 다정히 대해줄수록, 그 손끝이 더 붉게 물들어갈수록, 나는 더 많이 더 오래도록 원하게 되는걸.

 

 

  너무나 상냥한 그 애의 다정이 나를 숨 쉬게 한다. 그리고 끝을 알 수 없는 심해로 가라앉힌다.




---


여름의 막바지 둘만의 작은 불꽃놀이 총3,746자

출처: https://baeknamoo.postype.com/post/7838805


태풍도 아닌데 울 동네 갑자기 천둥번개 치고 난리다...

첨부한 비지엠이 넘 좋아서 손 가는대로 써봤음

나만의친구 최고존엄 갓컾 카논치사 많이 사랑해줘~!!!



자동등록방지

추천 비추천

22

고정닉 8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자동등록방지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말머리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2863 설문 시세차익 부러워 부동산 보는 눈 배우고 싶은 스타는? 운영자 24/05/27 - -
1072518 공지 대세는 백합 갤러리 대회 & 백일장 목록 [23] <b><h1>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11.27 24136 14
1398712 공지 [링크] LilyDB : 백합 데이터베이스 사이트 [22] 샤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4.03.17 5318 45
1331557 공지 대백갤 백합 리스트 + 창작 모음 [17] 샤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1.30 12746 25
1331450 공지 공지 [30] 샤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1.30 10004 43
1331461 공지 <<백합>> 노멀x BLx 후타x TSx 페미x 금지 [10] 샤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1.30 7058 25
1331471 공지 대세는 백합 갤러리는 어떠한 성별혐오 사상도 절대 지지하지 않습니다. [9] 샤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1.30 8607 32
830019 공지 삭제 신고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9.29 92264 72
828336 공지 건의 사항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9.27 40860 27
1456633 일반 카노는 너무 당근만 줘서 맛없었나봄 호떡쿼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3 16 0
1456632 일반 근데 유키가 마유 꾹꾹이하는건 [5] 천사세이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2 40 0
1456631 일반 문득 백합은 파인애플 피자같다는 생각이 드네 [3]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0 38 0
1456630 일반 방본만) 이웃집흡혈귀 8권 [5] 삐걱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9 33 0
1456629 일반 오늘의 집사냥이 짤털 [7]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9 66 8
1456628 일반 의외로 니나가 제일 정상인이네 [2] 호떡쿼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8 44 0
1456627 일반 이거보니까 나에사 글로벌 인기가 확실히 체감되네... [2] ㅇㅇ(124.59) 23:08 46 1
1456626 일반 "빨리 나를 임신시켜줘!"라는 뜻인 대사 [7] 멘토스맥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8 60 0
1456625 일반 걸밴크양키들한테 인기많네 [6] 000066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6 95 0
1456624 일반 카노 엄마 아가리술 개쩌네 다시봐도 [2] ㅇㅇ(125.177) 23:06 48 0
1456623 일반 갤러리 순회열차가 도착했습니다. [3]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6 60 0
1456622 일반 애니평가 신뢰도 높은 사이트는 없지 않나 [4] 사에치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5 54 0
1456621 일반 파인애플김치 찌개 머거어야지 봊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5 14 0
1456620 일반 하스동 사야카 새로 나온 카드 스킬 웃기네 토마토햄버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4 25 0
1456619 일반 어떻게 다시보니 선녀같다 기준이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3 54 2
1456618 일반 갑자기 존나 정신병자같은 회로 돌아감 [9] dapara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2 248 16
1456617 일반 1화만 해도 왜 스바니나인지 몰랐는데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2 35 0
1456616 일반 세이카ㅋㅋㅋㅋ [4] 천사세이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59 74 0
1456615 일반 성우라디오의속사정재밋음??? [5] 은랑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58 80 0
1456614 일반 근데 해파리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거야 [3] ㅇㅇ(125.177) 22:57 62 0
1456613 일반 근데 주간 애니메이션 랭킹 같은 건 [6] ㅇㅇ(220.87) 22:57 85 0
1456612 일반 검중약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56 36 0
1456611 일반 그런데 이 와중에도 [1] 백합백문학과교수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56 49 0
1456610 일반 보빔무리 애니화 빠게졌었다는 뇌피셜 있지 않았나요? [1] ㅇㅇ(116.39) 22:55 72 2
1456609 일반 일주일 클래스메이트 개맛있더라 [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55 40 0
1456608 일반 파르실을 더 다오. 그렌라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54 33 0
1456607 일반 적어도 마지막까지 방영은 다 마친 새끼... [4] 딜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54 110 2
1456606 일반 왜 하와이안 피자 같은걸... [4] ㅇㅇ(222.106) 22:52 50 0
1456605 일반 동화공방 <- 얘네가 유리히메의 힘을 뺏은거 아님? [5] 자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52 121 0
1456604 일반 새삼 일정펑크 안낸 종트가 대단하네 [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51 65 0
1456603 일반 이것은 사사코이 본편에 던지는 '시련'이다... [1] ㅇㅇ(218.148) 22:51 76 0
1456602 일반 지금 일본 놀러가면 개꿀인 이유 [5] ㅇㅇ(211.208) 22:50 138 4
1456601 일반 메로가 카노 엄마 좋아하는 이유가 뭘까 [3] μ’sic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49 76 0
1456600 일반 슬프게 사사코이 떡밥 돌리지 말고 [3]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47 116 0
1456599 일반 누가 카노랑 안욱이 글카스좀 써다오... [2] o신참자o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46 59 2
1456598 일반 밴드 가수 따로 쓴 작품 ㄷㄷ 사에치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46 36 0
1456597 일반 부끄러워할 거 없어 [11] 9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46 168 10
1456596 일반 와타오시는 그래도 건질건 잇엇는데 [2] 자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46 82 0
1456595 일반 오산만 삐걱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45 32 0
1456594 일반 만화가가 전해주는 애니화 과정 [1] 쿠즈시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43 86 2
1456593 일반 이럴거면 그냥 애니화하지말고 [2] 천사세이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42 118 1
1456592 일반 휴방해서 일정하게 퀄리티 나온 코마리가 선녀네... 이토시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42 56 0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