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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악역 공작영애의 야망 PLUS) 1화

BB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9.10 23:14:13
조회 871 추천 27 댓글 6
														

혹시라도 제가 숨쉬고 생각하는 이 세계조차 다른 누군가의 소설이라면,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엘라가이티아 왕국 동쪽 변방의 영지인 안펠트마운트의 초대 남작 루이스 맥나마라의 여식 카렌으로서 인사드립니다.


저희 아버지 대에야 겨우 말단 귀족의 작위를 받을 수 있었지만, 오랜 세월 이 곳을 다스린 가문의 영애로서 아홉 번째 생일 저녁이 되기 전까지 저는 나름 귀족 영애로서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의 아홉 번째 생일, 저희 아버지께서 왕국에 충성을 서약하는 것을 받겠다고 친히 국왕 전하께서 이 곳에 행차하신 날, 그 때문인지 낯선 곳의 풍토병에 걸려 앓아눕게 된 날, 저는 그 무의식 속에서 제 세계의 진실일지도 모르는 편린을 붙잡게 되었습니다.


제가 다른 삶에서 이 세계를 경험한 적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악역 공작영애의 야망. 그 삶의 어느 순간에 읽은 소설의 이름입니다. 올가 유스티아 엘프리트라는 공작가의 지체 높으신 아가씨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는 이 소설에서, 올가 아가씨는 아홉 번째 생일날 국왕 전하와 아버지를 따라 왕국 동쪽 끝으로 행차하다 사고를 당한 뒤, 무의식 속에서 "전생"을 기억해내고,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가 전생에 경험한 "게임"이라는 유희에서 묘사된 세계와 너무도 흡사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름은 기억할 수 없지만) 그 게임에서 올가 아가씨는 악역을 맡아 변방에서 온 하급 귀족 영애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괴롭히다가 "게임"에서 공략 대상으로 언급되는 왕자와 다른 귀족 영식들에게 단죄당하여 가문까지 엮여 파멸을 맞게 되지요.


이를 피하기 위해 올가 아가씨는 반대로 선역이 되어 자신의 파멸을 막으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은근슬쩍 부패한 부모님을 타일러 더러운 일에서 손을 떼도록 하고, 선행을 베풀고 주변인들에게 인망을 쌓으며, 그 "게임"에서 주인공으로 묘사된 영애를 최대한 피하는 등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은 끝에 마침내 파멸의 운명을 피하고 헨리 엘라가인 왕자와 혼인에 성공하면서도 다른 공략 대상들과 밀회하는 것까지 용인받는 관계가 됩니다.


하지만 소설에 악역이 없으면 곤란하겠지요. 그 게임의 원래 주인공은 세계의 억지력인지 뭐인지를 받아 마찬가지로 "전생"을 깨닫게 되고, 자신에게 승리가 약속되어있다는 사실에 자만하여 올가 아가씨를 괴롭히다 역으로 단죄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안펠트마운트 남작 영애 카렌 맥나마라.


네, 저입니다.


저에게는 파멸이 예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아니 왜????


생각해보니 너무 편의주의적인 설정 아닌가요? 악역이었던 캐릭터가 선해지니 다른 악역을 만들어야겠는데 그 역할을 히로인이 맡는다고요?? 그것도 억지력이니 뭐니 씨알도 안 먹힐 법한 설정으로? 이렇게 놓고 보면 그저 평면적인 히로인과 악역 영애의 관계가 역전될 뿐 아닌가요? 대체 여기에 무슨 카타르시스가 있다는 건가요? 악당인 줄 알았던 사람이 사실 선한 사람이라 뭇 사람들을 홀리는 갭이야말로 악역 영애물의 진가 아닌가요? 갑자기 히로인이 악해져서 똑같이 파멸을 맞는다면 처음부터 관계가 뒤집어진 작품을 만들면 될텐데 왜 굳이 원작이 있는 것처럼 얘기를 해서 저 같은 불의의 피해자를 만드는 건가요? 아... 아니, 이건 좀 과한 것 같군요. 작가도 설마 자기 소설이랑 같은 세계가 실존해서 그 중 누군가가 비극을 겪어야 한다는 건 예측하지 못했을테니, 그런 것까지 작가의 악의라고 하면 실례겠지요.


이런 고민이 한창일 때, 아버지께서 누워있는 제게 다가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미안하구나... 카렌. 네 생일이 되기 전에 복잡한 절차는 모두 끝내고 왕국의 남작가 영애로서 생일을 맞게 하려고 했는데, 중도에 사고가 나서 미뤄질 줄이야... 일 년에 하루 밖에 없는 특별한 날을 이렇게 망쳐버라다니. 정말 미안하다..."


아버지께서는 제가 깨어있는 줄은 모르시고 하신 말씀이겠지만, 저는 덕분에 중요한 사실을 알았습니다. 국왕 전하의 행렬이 사고를 당했고, 그 행렬에 올가 님이 있어 전생을 각성했을 수 있다는 것.


이거 진짜 큰일인데요? 정말 저에게 파멸이 예정된 세계인 건가요 여기는??




생각을 정리해봅시다. 어차피 저는 갓 귀족이 된 한미한 집안의 여식, 상대는 웬만한 귀족은 감히 쳐다볼 수도 없다는 공작가의 영애. 단순히 제가 악역 히로인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감히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무례로 취급받아 무슨 꼬투리를 잡힐지 모르는 일입니다.


어찌되었건, 시간은 많습니다. 분명 원작의 원작에 해당하는 이야기의 시작은 제가 열세살이 되어 왕도에 위치한 고등 교육 기관에 입학할 때부터였지요. 올가 님(이 실존한다면)께서는 4년 동안 쌓을 업보를 미리 청산하고 선행을 베풀어 주변인들을 매료시키는 데에 한창일테니, 저는 정말로 올가 님이 전생을 각성하고 주변을 바꾸어나가고 있는지만 확인하면 될 일입니다.


왕도로 가는 심부름꾼에게 공작가인 엘프리트 가문에 관한 소식을 알려달라고 부탁해봅니다. 적당한 구실은 많습니다. 가령 "이제 섬기게 된 나라에서 이미 공작이라니 얼마나 대단하신 분일까요? 저도 알고 싶어요." 같은 이유를 대봅시다.


"그게... 그렇게 너무 기대하지는 말아주십시오 아가씨. 분명 실망하실 겁니다."


역시 뭔가 문제가 있군요 확실히 올가 님 때문일 것입니다.


"네? 그게 무슨 소리인가요?"


"오랫동안 후사를 보지 못하시다가 9년 전에 득녀하셨는데... 늦둥이라 그런지 응석을 너무 많이 받아줘서 성질이 아주 포악하다 하더군요."


"그게 공작 각하랑 무슨 상관인가요?"


"그런 따님에게 너무 오냐오냐 하다 보니, 몇 년 전부터 축재가 지나치다든가, 백성들을 못 살게 군다든가, 불만이 말이 아닙니다. 전하께서도 그간의 공적을 보셔서 어느 정도는 눈 감아 주시고, 공작 각하께서도 나름 눈치보시는 것 같습니다만, 영애께서 나이가 들어갈수록 성질이 더 나빠지고 있어서... 아가씨께서도 전에 국왕 전하께서 여기 오셨을 때 느끼지 않으셨습니까? 아버님께서 서임받으시고 저녁 만찬 때 누구든 다 알 수 있도록 못마땅한 눈초리로 째려보신 게 올가 유스티아님이십니다."


아, 그렇군요. 저야 뭐 그 당시에는 갑자기 먼 나라에서 왕자님이랑 공주님이 오신다는 느낌에 그런 악의는 별 신경쓰지 않았지만, 확실히 전생자로서 각성하기 전의 올가 님은 작정하고 악의가 들어간 것 같은 악인이었다고 하지요. 하기야, 그 원작 입장에서도 다른 사람이 만든 원작이라고 하니 책임 안 지고 맘껏 평면적인 인물을 만들 수 있었던 모양입니다. 분명히 그 소설의 올가 님께서 뭔 "똥겜"을 만들어놨냐고 절규하시던 장면이 기억납니다. 근데 똥겜이 뭐지?


"하여간, 제가 소녀의 꿈을 깨버린 꼴이 된 건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만, 아가씨께서도 열세 살이 되시면 그런 못돼먹은 사람과도 한 학교에 계셔야 한다니... 불쌍하기도 하지."


"그래도 한 번만... 알아봐주실 수 없나요? 사람의 소문이라는 건 원래 오가는 중에 이리저리 끊어지니까..."


"알겠습니다! 비록 한낱 심부름꾼이나, 본의 아니게 깨버린 아가씨의 환상을 되찾아드릴 수만 있다면 뭐든 해보겠습니다!"


우리 가문의 심부름꾼은 주책이긴 해도 꽤 믿을 만한 사람입니다. 영지에서 왕도로 가는 첫 번째 서한을 품고 가는 영광을 누리는 것도 그 때문이지요. 안펠트마운트에서 왕도까지는 엿새, 왕도에서 사흘을 묵고 다시 엿새를 걸려 저택의 문을 열고 들어온 심부름꾼은 저와의 약속을 잊지 않은 것으로 보였습니다.


"기뻐해주십시오! 아가씨의 환상을 다시 고쳐서 가져왔습니다!"


우리 가문의 심부름꾼은 정말 착한 사람입니다. 너무 주책이라 윗사람이 내리신 공무보다 저 같은 어린아이와의 약속을 먼저 지키러 오는 사람이긴 하지만요. 바로 아버지께 야단을 듣느라 본의 아니게 제 기대감(혹은 위기감)을 증폭시키는 효과를 내고 말았습니다.


사정은 이렇습니다. 심부름꾼이 이번에 왕도에 다녀오기 전까지만 해도 엘프리트 공작 각하에 대한 원성이 하늘을 찔러 언제 폭발할지 모를 정도였다고 하는데, 갑자기 멋대로 빼앗았던 서민들의 땅이나 재신을 돌려주느라 바쁜 모습이었다는 것. 수 년동안 무엇에 홀렸다가 다시 돌아온 게 아닌가 생각하는 백성들이 많았지만, 조금 더 궁정 사정에 익숙한 사람들은 금방 그럴듯한 답을 냈다고 합니다. 온갖 투정으로 주변 사람들을 못살게 군 올가 유스티아 영애가 갑자기 사람이 바뀌었다는 것이죠. 굳이 무엇에 홀렸다고 한다면 공작 각하보다는 공작 영애쪽이지 않겠느냐는 게 결론이었지만, 이걸로 저도 확실하게 제가 처한 상황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올가 유스티아 엘프리트 공작 영애가 그 "전생"이라는 것을 각성했다는 것입니다.


순간 소설의 한 대목이 다시금 떠올랐습니다. 올가 님은 자기가 처한 상황이 어딘가의 게임 속 세계이고, 자신에게는 파멸만이 예정되어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죽고 싶지 않은 것인지 혹은 그 전까지 미움샀던 일들을 후회하는 것인지 몇날 며칠을 흐느끼면서 연신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하죠. 전생의 올가 님은 의외로 착하면서도 여린 분이라, 자기가 왕자에게 버림받아 먼 곳으로 유배간다든가, 언젠가 원한 때문에 죽어버린다든가 하는 것보다도 자기가 남한테 원한을 산다는 사실 그 자체를 못 견뎌하는 분이다고 해요.


소설에 따르면, 올가 님은 아버지인 엘프리트 공작 각하께 직접 서민들에게 사과할 기회를 달라며 몇 번을 졸라댔고, 울상인 채로 백성들 앞에 나와 직접 고개를 숙이고는 "제발 미워하지 말아주세요" 따위의 막나가는 말이 나오는 것을 간신히 참아가며 울먹인 채로 사과를 했다고 합니다. 공작 영애가 직접 나와서 고개까지 숙이는데 어쩌겠나요? 이런 저런 불편함이 있었다고 해도 공작가에서 다 보상해준다니 올가 님 개인을 향한 증오 같은 건 순식간에 녹아 없어졌습니다.


사실, 그렇게 울먹이면서 사과하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노라니 꽤나 귀엽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 올가 님에게서 "제발 미워하지 말아주세요" 같은 말을 했다고 생각하면, 뭔가 위험한 쪽의 감각을 자극받는 느낌도 듭니다. 올가 님께서 혼신을 다해 그런 말이 나오려는 걸 참지 않으셨다면 공작 영애의 사과를 듣고 있던 서민들도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괴롭히고 싶다든가... 아니, 어쩌면 제가 올가 님을 괴롭힌다는 게 그런 의미였던 걸까요? 소설에서 주인공이 아닌 인물은 심정이 제대로 묘사되지를 않으니 알 수가 없네요.




어찌되었건 열 세살이 되어 왕도에 있는 교육 기관의 입학일이 될 때까지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악역 공작영애의 야망"은 저의 "전생"에서 제법 인기를 끌었던 물건으로, 거기에 감명받은 사람들이 그 소설의 여러 부분을 뜯어고쳐 자기 이야기를 하는 일도 성행했었지요. 하지만 그 초점은 언제나 올가 아가씨에게 맞춰져 있었던지라, 카렌이 뭔가를 해서 이야기의 흐름을 바꾸는 일은 없었답니다. 카렌은 어떤 이야기에서는 그저 세상 물정 모르고 주변인들에게 이용당했을 뿐인 철부지이기도 했고, 역하렘을 만들어보겠다고 제 멋대로 사고를 치다가 왕실에 요주의인물로 찍히기도 하며, 혹은 나라를 통째로 집어삼키려는 매국노로 표현되기도 했습니다.


어째 제 취급이 완전 장난감 수준이라 기분이 살짝 나쁜데요, 하여간 제게 활로라고 한다면 그 "악역 공작영애의 야망"의 원작에 해당하는 "게임"에서처럼 정석적인 여성향 히로인의 역할을 연기하여 어떤 루트든 타는 것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아, 근데 그 게임은 올가 님이 불합리한 악역으로 나오는 똥겜이었는데 그러면 올가 님이 좀 불쌍해지네요. 게다가 올가 님은 애저녁에 "전생"을 각성했으니 이건 벌써 지나갔군요.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습니다. 올가 님께 최대한 밉보이지 않는 학창 생활을 해나가는 수밖에요! 물론 올가 님이 제게 신경을 쓰지 않아주신다면 가장 좋겠지만... 아, 저기 딱 봐도 엄청 눈에 띄는 분이 있군요. 온갖 색의 드레스와 정복으로 치장한 사람들이 한 사람을 구심점으로 해서 몰려다니고 있는 것 같은데, 그 중심에 있는 사람은... 저 분이 올가 님인가봐요.


손을 댄 흔적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검은 머리는 허리에는 못 미치는 정도로 죽 뻗어 있고, 추종자들(?)의 색색이 드레스나 정복들과 대비되는 순백 일색인 드레스에는 아무 장식도 붙어 있지 않습니다. 심지어 프릴도 다른 이들의 것에 비해 훨씬 짧고 단촐하군요. 살짝 아래로 처진 눈매는 순한 인상을 넘어서 살짝 우수마저 느껴지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올가 님의 이런 수수해보이는 외양이야말로 사람을 끌어당기는 올가 님의 진정한 매력을 감추기 위한 장치인 것을 범인들은 알아보기 힘들...다는 설정이긴 한데, 이건 정말 아무리 눈치 없어보이는 사람이라도 알아보겠네요. 오토메 게임인 만큼 아무리 악역이라고 해도 외모가 받쳐줘야 사람들에게 인기를 끄니 당연한 것이겠군요. 포악한 성격으로 그나마 밸런스를 맞춰서 카렌이 묻히지 않도록 설계한 모양인데, 지금은 전생을 각성한 올가 님이 성격마저도 순백이 되어버려서 밸런스가 붕괴되고 만 셈입니다. 너무 눈부신 모습인지라 저 사람을 이길 자신이 없습니다! 제가 뭔가 밉보이더라도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요!


"거기 당신, 왜 이 쪽을 빤히 쳐다보는 건가요?"


이런, 저 쪽에 있던 사람들 중 하나가 이쪽을 향해 소리칩니다. 뭔가 꼬인 것 같은데요, 생각해보니 저는 올가 님을 감히 쳐다보는 것조차도 함부로 하면 안되는 신분인 것을 잊고 있었습니다. 곧이어서 저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져가네요.


"당신, 그러고보니 최근에 본 기억이 없는 것 같은데, 어디서 온 사람인가요?"


"혹시 저 변방의 하급 귀족이면서 올가 님을 함부로 빤히 쳐다보는 건가요?"


"저희처럼 올가 님을 항상 수행하면서 다닌 사람들도 감히 해볼 엄두를 내지 못하는 그런 은혜로운 짓을 서슴지 않고 하다니!"


아니 무슨, 은혜라니, 이 사람들 정말 올가 님한테 푹 빠졌어.


올가 님을 둘러싼 무리가 어느덧 저를 둘러싸고, 이런저런 날카로운 (또는 올가 님에게 푹 빠진 스스로를 어필하는) 말들이 저를 찌르던 도중, 그 모두를 압도하는 한 마디가 울리면서 그 모든 것들이 멈춰섰습니다.


"잠깐!"


그 청아한 고함의 목소리의 진원은 방금까지 제가 눈을 떼지 못했던 사람의 얼굴이었습니다. 방금 전에는 약간의 우수가 섞인 것 같은 무감정한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난처함 속에 두려움이 섞인 느낌이군요. 아마도, 올가 님 또한 제가 "운명"의 그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챈 것 같습니다.


"...안펠트마운트 남작 영애 카렌 맥나마라."


간신히 정신을 가다듬고 나름의 예법에 따라 스스로를 소개합니다. 저와 올가 님이 마주칠 때 일어날 파장을 최소화해야 합니다. 머리를 숙이고 가까스로 말을 이어나갑니다.


"...라고 합니다. 공작 영애의 얼굴을 감히 똑바로 쳐다보려고 한 방금 전의 무례를 용서해 주세요."


"무..."


응?


"무, 무무무무무 무례라니!! 당치도 않아요! 제가 알아보지 못한 탓입니다.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말아주세요."


"역시, 올가 님!"


"아무리 낮은 신분의 사람이라도 함부로 윽박지르지 않으시는군요!"


올가 님은 명백히 당황한 목소리로 제 사과를 받아넘기고는 게속해서 말씀을 이어나갑니다. 그리고 주변의 추종자들이 올가 님을 칭찬하는 소리까지. 아-하, 올가 님은 이런 식으로 떠받들여지고 있던 거군요. 그럼 그 친위대(라기에는 확실히 수가 많지만)는 올가 님의 인성을 강조하려고 일부러 악역을 연기했던 것인가?


"저는 엘프리트 공작가의 영애 올가 유스티아라고 합니다. 카렌 님도 왕립학교에 입학하신 건가요?"


카렌 "님"을 입에 담을 때 주변에서 탄성이 흘러나옵니다. 이거 진짜 적응하기 힘든데요.


"네...네! 왕도에 온 건 오늘이 처음이라 온갖 게 새로워서 무심코 그런 무례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의식하지 않으려고 해도 시선이 자연스레 가게 되어서... 아, 그리고 님이 아니라 그냥 카렌으로 불러주실 수 있으신가요?"


대조적으로 제 목소리는 가면 갈수록 기어들어갑니다.


"그렇다면... 오늘 말고도 카렌과는 자주 뵙게 되겠네요. 방금 같은 난처한 일은 없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제 잘못인데 올가 님이 자세를 낮추시다니요! 저는 괜찮습니다. 앞으로는 행동을 삼가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서로를 높이는 (허나 실제로는 서로에게 밉보이지 않으려는) 대화가 오갈 때마다 주변의 반응은 더욱 고조됩니다. 그러고보니 제가 히로인 위치에 있던 걸 잊었네요. "그림이 된다"는 걸까요? 그래도 겉으로 오가는 말이라도 자연스러웠으니 된 게 아닐까요?


원만하게 올가 님과 처음 대화를 마친 뒤에는... 자연스레 수긍하게 되었습니다. 저런 사람이라면 어떤 남자라도 후릴 수 있을테고 어떤 사람이라도 홀릴 수밖에 없지요. 이런 사람을 못 알아보고 싸움부터 건 "소설"의 카렌은 대체 왜 그걸 인정하지 못한 것일까요?...해답은 간단했습니다. "열등감". 이런 사람과 싸운다면 도저히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않으니 거기에 흠집이라도 내보고 싶어지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지요. 하지만 그랬다가 파멸을 맞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지금의 저로서는 다른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소설"의 올가 님은 카렌에게 밉보이는 것을 두려워했다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오늘 제게 이상할 정도로 친절하게 말을 걸어주신 것도 그런 이유인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저도 올가 님도 서로를 적대하지 않는 우호적인 관계가 되는 것은 어떨까요? 서로 마음의 부담을 덜 수 있다면 해피 엔딩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 관계를 뭐라고 해야 할까요... "추종자"? 아니, 그것보다는 더 그럴듯한 이름이... 아 맞아요! 저 카렌 맥나마라는, 올가 유스티아 엘프리트 공작 영애와 감히 "친구"가 되어 이 세계에서 해피 엔딩을 맞겠습니다!



악역 영애물에 전생했다는 설정의 악역 영애 x 그 영애물의 세게에 전생한 히로인 백합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며칠 동안 컨디션이 엉망이라서 시간 텀이 너무 차이가 났지만 오늘부터 진짜 연재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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