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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승지영원] 기억상실 - 영원앱에서 작성

공룡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9.21 04:29:37
조회 392 추천 19 댓글 3
														

웅성거리는 소리가 시끄러웠다. 복잡하고 요란한 소리, 그러나 내 귀에 제대로 닿지 않는 그것들은 수면 속에서 듣는 기분이었다. 깊은 바닷속에 잠긴 기분에 취하고 있자, 어쩐지 왼손이 유독 따뜻했다. 그 따뜻함이 좋아 난 눈을 떠보았다. 그러자 그곳에 아주아주 예쁜 얼굴이 나를 보며 울고 있었다.

'누구지?'

"흑... 영원아...! 영원아, 흑."

주변은 온통 새하얬다. 그곳이 어딘지 알아내려고 하려던 때, 하얀 옷을 입은 누군가 그 예쁜 사람을 내게서 억지로 떼어내기 시작했다.

"환자분! 환자분 상태가 아주 심해요, 그러니 어서 치료 받으세요!"
"안돼. 우리 애기 다쳤는데, 안돼...! 영원아, 정신이 들어?! 언니야, 영원아."

'아... 싫어. 내게서 저 사람 떨어트리지 마요. 그러지 마, 울잖아요. 울지 마요. 울지마...'

예쁜 사람이 내게서 멀어지며 내 의식 또한 멀어져 난 또 다시 잠이 들었다.

***

방금 전 멀어졌던 따뜻한 감촉이 다시 돌아왔다. 내 손을 전부 감싸주는 크고 부드러운 손이 기분이 좋아, 상쾌하게 아침을 맞이 하는 사람처럼 나는 눈을 떴다. 똑같이 하얀 사방과 웅성거리는 주변 그리고 내 손을 잡아주는 예쁜 사람. 그 사람은 나를 보며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영원아, 정신이 들어?"
"여기는..."
"병원이야, 사고가 나서... 그래도 괜찮아 이제 언니가 있으니까, 괜찮아..."

'병원? 사고? 언니...?'

모든 게 내 이해되지 않는 단어였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난 이해되지 않는 게 있었다.

"난 누구야?"
"뭐...?"
"난... 누구고, 그쪽은... 누구야?"

난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

나는 곧 정밀 검사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서 나온 진단은 약간의 찰과상과 기억상실증이었다. 다행히 머리를 다친 흔적이 없기에 사고로 인한 일시적 정신적 충격으로 금방 돌아올 거라며 그렇게 한동안 입원을 하게 되었고, 난 자신을 언니라고 칭한 여성과 같은 방의 2인실을 이용하게 되었다.

그 여성은 누가 봐도 아주 심하게 다쳐 있었다. 이마에는 벌써 핏자국이 새어 나온 거즈가 붙어 있고 팔과 다리에는 깁스를 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는 내가 누워있는 침대 옆으로 간이 의자를 끌고 와 앉으며 내게 빨대를 꽂은 우유를 건넸다. 

"영원아. 자, 아 해봐."

나보다도 우유가 필요한 것은 그녀라고 생각해 그것을 거절했으나, 자신은 우유를 못 먹는다며 기어코 내 입에 우유를 물려 주었다.

"영원아, 어디 아픈데 있으면 꼭 언니한테 말해줘야 해. 알았지?"
"네... 승지 언니."

난 그녀에게서 나와 그녀의 이름을 들어 알게 되었다.

"...그냥 언니라고 불러, 아니면 승지라고 편하게 불러도 되고."
"아... 네. 어... 언니."
"...그래."

승지 언니는 어딘가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것이 어쩐지 따스해서 난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기억을 잃은 난 궁금한 게 너무 많았다. 그리고 아까 전부터 느껴진 얼굴의 위화감이 난 너무 불편했다. 이런 내 생각을 승지 언니가 곧 알아차린 듯 내게 물었다.

"왜 그래?"
"아, 그게... 아까 전부터 얼굴이 당겨서요. 특히 입 쪽이..."

혹시 사고로 인해 얼굴을 다친 것일까 싶어, 난 내 상태를 알아내기 위해 입 주변으로 손을 뻗었고, 그것이 닿기 전 승지 언니가 내 손을 잡아 챘다. 그리고 그녀의 낯빛이 어두워지더니 내게 말했다.

"있지, 영원아. 그 전에 네가 알아야 할 이야기가 있어."

언니의 떨리는 목소리에 난 손을 내려 그녀의 말을 들을 준비를 시작했다. 그것을 본 승지 언니는 긴장한 얼굴로 말하였다.

"아마 지금 네가 말하는 그 느낌은 얼굴의 큰 흉터 때문일 거야. 그건 좀 예전에 다친 상처인데... 다 나 때문에 생긴 상처야. 나 때문에 너의 얼굴에 지울 수 없는 상처가 생기고, 청력에도 문제가 생기고 몸에 철심까지 박았었어... 내가 비겁한 탓에, 영원이 네가 너무 아팠었어..."

그녀의 말을 듣고 보니 확실히 귀가 잘 안 들리는 것 같았다. 그녀가 말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사실까지 들으며 난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절대 용서받지 못할 거 알아, 미안해."

승지 언니의 사과를 끝으로 난 침대 옆 선반에 놓인 작은 거울을 들어 얼굴을 바라봤다. 한쪽 입꼬리가 삐딱하게 올라갈 만큼 큰 흉터를 보자 너무나 흉해서, 난 말도 안 나왔다.

"...거짓말로 지어낼 수도 있었을 텐데."
"거짓말 안 하기로 약속 했었으니까..."
"이 흉터 엄청 아파 보여요..."
"응, 엄청 아팠을 거야."
"게다가 오래돼 보여요."
"그만큼의 시간 동안 난 네게 못 할 짓을 많이 했어."
"하지만 결국 전 언니를 용서 해 준 거죠?"

내가 용서한 지는 말하지 않았지만 아직까지 그녀와 있다는 점에서 난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렇담 지금의 저도 괜찮아요."

나와 그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내게 모든 것을 솔직하게 말해주는 그녀가 난 좋았고, 그래서 그녀에게 대답하는 난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그런 내 얼굴을 본 승지 언니는 촉촉해지는 눈망울로 다시 한번 내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은 차가운데 어쩐지 따스했고 그리웠다. 그러나 이 감상에 젖어 들기도 전에 그녀가 내 손등에 키스를 하는 바람에 난 정상적인 사고가 어려웠다.

연신 고맙다고 말하며 손등에 키스를 하는 승지 언니에게 나는 당황하였고 화제를 돌리기 위해 다른 질문을 던졌다.

"앗! 저 가족들은 혹시 연락이 됐나요!?"

그러나 나의 이 질문은 지뢰였던 듯했다. 승지 언니는 한참을 망설이더니 내게 말했다.

"사실 영원이 넌, 가족이 없어... 원한다면 네게 모든 이야기를 해줄 수 있어, 그런데 그 이야기들은 너를 무척 아프게 할 거야. 그래서 가능하다면 난 영원이 네가 기억이 없는 지금만이라도 그것을 몰랐으면 해. 그래도 이야기 들을래?"
"아..."

가족이 없다는 사실에 난 조금 슬퍼졌다. 심지어 그 이야기를 듣는 것이 나를 아프게 한다는 사실은 나를 비참하게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기억을 찾는데 도움이 될 지도 모르니까 가능하다면 들어보고자 생각했다. 그러나 승지 언니의 얼굴을 보니 그 모든 것이 망설여 졌다. 내가 더이상 아파하지 않길 바라는 그녀의 얼굴에 난 차마 듣고 싶다고 대답하지 못했다.

"내가 너의 유일한 가족인데, 그거론 안될까?"
"...알겠어요. 그럼 안 들을게요."

순간 그녀의 말에 난 숨을 삼켰다. 우수에 찬 눈빛이 너무 예뻐서 두근거렸고, 이후 지어주는 미소가 화려해서 눈이 부셨다. 그 탓에 한눈 팔린 것도 잠시 난 분명 그녀와 성이 다른데, 그녀가 '유일한 가족'이라고 말한 것에 의문이 생겨났다.

"저흰 성이 다른데, 그럼 친척 관계인가요?"
"아, 그런 건 아니고..."

그때 병실의 문이 열리더니 간호사 한 명이 들어왔다. 우리의 링거 교체를 위해 들어온 간호사는 엉망의 몸으로 침대에서 쉬고 있지 않는 승지 언니를 보며 꾸짖었다. 결국 도중에 대화가 끊긴 채로 승지 언니는 내게 "조금 있다 다시 올게."라고 속삭이며 침대로 돌아갔다.

내 링거를 교체한 간호사는 승지 언니의 얼굴이나 몸 곳곳에 있는 걸로 추정되는 상처를 소독하고 있었다. 언니와 나 사이에는 큰 서랍으로 인해 난 소리로만 언니의 상태를 알 수 있었다.

"환자분, 등 보여주세요.
소독할 거예요, 조금 따가워요.
주무실 때 옆으로 주무세요."

이 대화를 통해 난 그녀가 등도 다친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언니랑 함께 있었다는 데 왜 그녀는 저렇게나 다치고 난 이렇게 멀쩡한 지 의문이었다. 모르는 것투성이에 난처하고 있자니 나의 왼손 약지에 반지가 끼워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너무 화려하지도 않고, 조잡하지도 않는, 마냥 너무 예쁜 반지였다. 내가 누군가와 결혼 한 걸까 생각을 했지만 내게 다른 가족이 없었다고 했으니 약혼자가 있을 걸까 난 추측했다.

내가 딴 생각을 하는 사이, 간호사는 벌써 우리의 병실을 나갔고 승지 언니도 어느새 내게로 돌아와 물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 이거 반...!"

그때 난 승지 언니의 왼손 약지에 나와 같은 반지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내 왼손을 황급히 숨겨 들었다. 어쩐지 알 수 없는 부끄러운 감정이 들었는데, 또 한 편으로 기쁜 마음이 들고 있어 난 안절부절못하였다. 

"왜 그래, 어디 아파?!"
"아, 아뇨..."

승지 언니가 말했던 유일한 가족의 의미를 난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이 매우 혼란스러운데 이상하게 기뻐하고 있는 자신에 의해 난 더욱 그녀의 눈을 바라보지 못했다. 승지 언니는 그런 나의 이마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영원아, 얼굴이 빨간데 괜찮아? 열 있는 거 아니야?"
"괜... 찮아요."

감춘 왼손의 반지를 조심스럽게 만지는 나의 모습을 승지 언니가 발견하자, 그녀가 눈치챘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아까 하려던 말, 우리 결혼했어."
"네?"
"너와 난 부부야."

또 한 번 미소 짓는 승지 언니의 얼굴은 너무나 예뻤다.

기억을 잃은 나에겐 아내가 있었다. 그것도 엄청 예쁜 아내.

***

우리의 병실에 승지 언니의 친구라는 희신이라는 사람이 찾아왔다. 그녀는 승지 언니의 부탁으로 생필품이 한가득 담긴 봉투를 챙겨 들어왔고 나의 안부를 먼저 물었다.

"영원아 얘기 들었어, 기억이 없다며? 나 희신인데 나도 기억 안 나?"
"아, 네. 죄송해요..."

나의 사과에 그녀는 괜찮다며 오히려 나를 격려해줬다. 승지 언니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그녀에게서 난 친근함을 느꼈다. 한편 희신 언니가 사 온 물건들을 정리하던 승지 언니가 말했다.

"야, 딸요는?"
"엉?"
"딸기요거트 말이야, 안 사 왔어?"
"딸요가 딸기요거트였어? 그건 안 사 왔는데."
"아, 왜 안 사와."
"그보다 그건 생필품도 아니잖아. 게다가 사고 당한 년이 뭘 그런걸 부탁해."
"우리 애기 그거 좋아한단 말이야!"

그 순간 난 희신 언니가 오기 전 승지 언니가 준 데운 우유를 마시던 것을 그대로 뿜을 뻔했다.

'혹시 지금 말한 애기가 나...?'

"뭐, 그럼 지금이라도 사 오랴?"
"그걸 말이라고, 당장 갔다 와. 자, 여기 카드."
"...진심?"

문병인을 제멋대로 굴리는 승지 언니에게 난 당황하며 말했다.

"앗, 아녜요. 저 안 먹어도 돼요."
"야 네가 빨리 안가니까 애기가 눈치 보잖아. 그거 먹고 기억 돌아올지도 모르는데. 그러니 빨랑 갔다 와."
"...에이, 시발."

내 기억을 들먹이자 희신 언니는 마음이 약해졌는지 결국 승지 언니에게 욕을 한 번 뱉고는 근처의 카페에서 금방 사 오겠다며 말릴 새도 없이 병실을 나섰다. 그녀가 돌아오면 제대로 감사 인사를 전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자 물건의 정리를 마친 승지 언니가 내게로 오며 말했다.

"희신이 금방 올 테니. 조금만 기다려, 애기야."

승지 언니의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나의 옆머리를 쓸어 내 귀 뒤로 머리를 정리 하였다. 그녀의 차가운 손 끝이 귀 끝에 스치듯이 닿는 게 난 어쩐지 기분이 이상했다.

"원래 그렇게 불러요...?"

내 질문의 요지를 금방 알아차린 승지 언니는 눈을 샐긋 접으며 말했다.

"말고도 애칭 많아. 강아지나 자기, 여보, 하늘에서 떨어진 천사... 뭐 그런 거."

그녀의 허스키한 목소리로 들려오는 애칭들에 낯부끄러워져 난 아랫입술을 살짝 말아 물었다. 부부라고는 들었지만 내게는 모든 게 낯설었다.

"애기도 나 애칭으로 종종 불러주는데. 자기나 여보 같은 거."

승지 언니의 말에 난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녀의 표정은 기억을 잃어서 그렇게 부르지 않는 나에 대한 안타까움이 담겨 있었다. 그것이 난 너무나 미안하였다. 그녀가 이런 표정을 짓는 게 난 원치 않았고, 그녀의 말대로 승지 언니를 애칭으로 불러 보기로 했다.
(사실은 거짓 표정이었지만 기억을 잃은 난 그것을 간파할 실력이 없기에 그대로 속아 넘어 갔다.)

"그... 자, 자기... 이렇게요?"
"응, 그렇게."

만족스러운 듯 입꼬리를 크게 올리는 언니의 미소는 보는 사람이 행복할 정도로 예뻤다. 그 미소에 정신이 팔려있자 그녀가 물었다.

"왜 그래?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어?"
"아니요, 그냥 너무 예뻐서요."

그것은 무심코 나온 나의 발언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번복할 생각이 들 지 않을 만큼 승지 언니는 너무 예뻐서 난 그냥 나의 말에 그녀를 보며 싱긋 웃었다. 그러자 그녀가 내게 서서히 다가오며 나지막이 말했다.

"우리가 종종 하는 거, 다른 것도 해보지 않을래?"

그녀의 숨결이 내게 닿기 시작했다. 좀 더 가까이서 본 승지 언니의 눈동자는 칠흑같이 어두웠고 어딘가 차분히 가라앉은 서늘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언니에게선 좋은 향이 났다. 나의 눈이 서서히 감기려 할 때, 병실의 문이 열렸다.

"어때! 나 빨리 갔다 왔지?"

그것은 방금 전 음료를 사러 나갔던 희신 언니였다. 그녀의 등장에 내게 다가왔던 승지 언니가 다시 원래의 위치로 돌아가며 작게 혀를 찼다. 그것을 어리둥절하게 보는 희신 언니를 두고 승지 언니는 나중에 다시 하자며 내게 속삭였다.

희신 언니가 사 온 딸기요거트를 마시며, 난 한동안 승지 언니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

밤이 되어 난 잠이 들었다. 잠이 들 동안까지도 승지 언니는 내 곁에 머물면서 나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것이 너무나 편안하고 익숙하여, 난 그녀가 내게 이것을 종종 해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정말로 그녀가 나를 사랑한다는 게 느껴져서 난 좋았다. 내가 그녀 때문에 아팠다고 한 것은 승지 언니의 죄책감이 섞인 과장된 이야기 일 것이라 생각했고, 더 나아가 그녀의 잘못 같은 건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꿈을 꿨다. 그곳엔 나의 눈앞에서 반지를 빼며, 바닥에 쓰러진 나를 못 본 채 하는 승지 언니가 있었다. 나의 주변엔 무서운 사람들이 가득했고, 승지 언니 앞에 있는 중년의 여성을 보자 온몸에 식은 땀이 흐르며 난 두려웠다. 너무 무섭고, 지독할 만큼 화가 났다.

"영원아, 영원아."
"으... 응..."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난 눈을 떴다. 눈을 뜨자 병원 침대의 옅은 조명을 킨 채 나를 깨우고 있는 승지 언니가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어딘가 걱정스러워 보였다.

"괜찮아? 네가 갑자기 앓는 소리를 내서... 혹시 무서운 꿈이라도 꾼 거야?"
"꿈...?"

분명 방금까지 꿈을 꾼 거 같은데, 눈을 뜨자 그것이 기억나지 않았다. 어렴풋하게 느껴진 외로움과 차가움, 그리고 바다 냄새만이 고작이었다. 승지 언니에게 그것을 말하자 나의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아주며 더 묻지 않았다.

"영원아 조금만 옆으로 움직여 볼래?"

그녀의 말대로 옆으로 몸을 움직이자, 빈 곳에 승지 언니가 들어왔다.

"조금 좁겠지만, 참아줘."

그렇게 말하며 승지 언니는 깁스하지 않은 팔을 내 머리 밑으로 넣어 팔베개를 만들어 주었다.

"미안, 언니가 두 팔로 애기 안아주고 싶은데."

팔베개를 한쪽 팔을 살짝 접어 나를 더 품 안으로 넣는 그녀의 체온은 무척 따뜻했다. 또 한 번 그녀의 토닥임 아래 나는 이번에 아무 방해 없이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
"일단 언니가 가장 좋은 거로 해 달랬는데, 먹어보고 입맛에 안 맞으면 말해줘. 저번처럼 희신이한테 연락해서 뭐 좀 사 오라고 할게."
"앗 아녜요. 이것도 좋아요."
"그래? 다행이다."

우리 앞으로 온 아침 식사는 그녀의 말대로 병원 밥이라고는 생각 들지 않을 만큼 푸짐하게 나왔다. 우리의 병실엔 큰 소파와 테이블이 있어 승지 언니의 요구에 따라 그곳에 나란히 앉아 식사를 하게 되었다. 밥을 먹으려고 하자 난 오른팔에 깁스를 한 그녀가 신경 쓰였다.

"왜 그라?"
"언니 오른팔 다쳤는데, 먹을 수 있어요?"

기억을 잃은 내겐 당연 그녀가 왼손잡이 인 것을 몰랐고 그녀 역시 그것을 알려주지 않은 채 내게 말했다.

"자기가 나 먹여줄래?"

승지 언니의 애칭에 난 부끄러웠으나, 그렇다고 승지 언니를 가만 둘 수 없기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복스럽게 먹는다는 게 이런 거라는 걸 알 수 있을 만큼 내가 주는 음식들을 넙죽넙죽 잘 받아 먹었다. 그 모습이 보기 좋아 난 괜히 그녀에게 물었다.

"어때요?"
"자기가 먹여줘서 너무 맛있어."

해맑게 웃는 그녀의 미소에 난 가슴이 간질거렸다. 그것이 어떤 감정인지 난 고민할 새도 없이 알 수 있었다.

'나, 이 사람을 정말로 사랑하는 구나...'

그것을 깨닫고 나자, 난 한 없이 기쁘기만 했다.

"왜, 웃어?"
"그냥, 너무 좋아서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이 참 좋았다.

***

내 마음을 알아차리고 나자 승지 언니에 대한 내 감정은 좀 더 솔직해졌고, 그녀에 대해 궁금한 게 많이 생겨났다.

"우린 어디서 처음 만났어요?"
"부산에서."
"누가 먼저 좋아했어요?"
"...내가 먼저."
"앗, 거짓말."
"미안, 근데 그건 너무 오래돼서... 대신 결혼 하자고는 내가 먼저 말했어."
"아, 그렇구나."

결혼이라는 단어를 듣고 나니 가슴이 간질거렸다. 내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매만지고 있자, 승지 언니가 나의 손에 자신의 손가락을 엮어 깍지를 끼며 말했다.

"더 궁금한 거 없어, 영원아?"
"아, 그러면 언니는 뭐 좋아해요?"
"영원이."
"아니이... 그런 거 말고."
"그러면?"
"음, 음식 중에?"
"...치케?"
"식혜요?"
"응, 그거!"

보기와 달리 정말 안 어울리는 것을 좋아한다 생각을 하며 어리둥절한 얼굴로 되묻자 승지 언니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난 그녀가 저렇게 웃을 정도로 식혜를 좋아한다는 사실에 놀라며, 한편으로 그녀에게 식혜를 사주고 싶다고 생각 들었다. 그래서 난 그것을 사기 위해 복도에 있는 자판기를 찾아가고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가?"
"식혜 사러요, 좋아한다면서요."
"같이 가."

성치 않은 몸으로 일어나려는 그녀를 다시 앉히려 했으나, 자연스럽게 내 손을 잡는 그녀에게 난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다행히도 복도의 멀지 않은 자판기에는 식혜가 있었고 난 그것을 뽑아 승지 언니에게 주었다. 그것을 받은 언니는 정말로 좋아하는 지 그 자리에서 캔을 따고 한 번에 들이켰다. 그리고 다 마신 후 나의 얼굴을 보는데, 그녀가 다 마신 모습이 기뻐 나도 모르게 미소가 그려졌다.

"역시, 영원인 영원이야."

승지 언니가 나를 보며 중얼거린 그 말의 뜻을 난 알 지 못했지만 아무렴 상관 없었다.

***

난 또 꿈을 꾸었다. 그곳은 병원이었다. 바다의 냄새가 났고, 피비린내가 났다. 또 으슬으슬 몸이 추웠다. 그런데 그런 것보다도 더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사무치게 외로운 감정이었다.

'왜 찾으러 오지 않는 거야.'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누구를 기다리는 지 기억나지 않았다.

'승지야.'

생각났다.

***

"영원아, 어디 아파? 오늘따라 안색이 안 좋아 보여."

일어나서 한 마디도 하지 않는 나를 보며 승지 언니는 걱정 어린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곧 그녀는 내가 좋아하는 과일을 주겠다며 냉장고에서 씻어둔 딸기를 꺼내어, 작은 과도로 그 꼭지를 잘라냈다. 과도를 쓰는 그녀는 왼손잡이였다.

"거짓말 안 한다더니..."
"응? 뭐라고?"

그녀가 의도한 거짓말이 아닌 것쯤은 안다. 더욱이 나쁜 의도를 가지고 한 거짓말이 아닌 것도 안다. 하지만 그날의 꿈을 꾼 이상 난 그녀가 너무 미웠다.

"저 기억 조금 돌아왔어요."
"그래?! 다행이다! 얼마나 돌아왔어? 나 누군지 기억해?"
"네, 기억나요. 병원에서, 그토록 기다린 사람."

기억이 완전 돌아온 것은 아녔다. 그저 단편을 잠시 보았던 것 뿐이었지만, 그 단편은 너무나 괴롭고 처절했다.

"저 왜 안 찾아왔어요?"
"영원아..."
"제 이름 부르지 마요."

그 순간의 내가 너무 처절했고, 그 순간의 승지 언니가 너무 미워서 난 그녀를 증오했다.

"당신이... 죽었으면 좋겠어..."

***

그녀에게 잔인한 말을 뱉어낸 후로도 승지 언니는 나의 곁을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내게 말을 걸고, 내가 좋아하는 먹을 것을 주고, 나의 상태를 수시로 확인했다.

"영원아, 오늘 날씨 좀 봐. 하늘이 너무 예뻐."
"영원아, 너 좋아하는 딸기 먹어봐."
"영원아, 몸은 좀 어때? 어디 아픈 덴 없어?"

내게 열심히 말을 거는 승지 언니, 그런 그녀에게 나는 한마디도 섞지 않았다. 그녀가 곁에 있으면 있을 수록 돌아오는 나의 기억들은 그녀에게 배신을 당한 기억 뿐이었다.

내게 나이를 속인 기억, 내게 밀수입의 담배를 빼돌려 속인 기억, 내게... 사랑한다고 하고선 배신하고 찾아오지도 않은 기억.

그런 기억들 아래, 지금 와서 하는 그녀의 모든 행동들은 속셈이 있는 행동일 것이라고만 생각이 들고 의심되었다.

'이젠 안 속아.'

계속 내게 말을 거는 승지 언니에게 난 이불을 당겨 머리 끝까지 덮었다. 그제야 그녀의 듣기 싫은 목소리도 끝이 났다.

더는 난 속지 않을 것이다. 당하지 않을 것이다. 아프지 않을 것이다. 나의 굳은 결심은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다.

***

"환자분 기억은 어떠세요. 돌아오고 있나요."
"네, 많이 돌아왔어요."
"어디까지 돌아왔나요?"

나의 상태를 보러온 의사는 내게 여러 질문들을 던졌고, 나의 대답에 귀를 쫑긋이는 승지 언니가 거슬렸지만 그렇다고 의사의 말을 무시할 순 없었기에 난 그에 대답했다.

내 대답을 차트에 받아 적으며 그가 말했다.

"기억이 되돌아오는 과정이 순조롭네요. 이대로면 금방 전부 돌아올 거예요."
"정말 감사합니다!"
"아, 아뇨. 제가 한 게 뭘 있다고요... 아무튼 지금은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푹 쉬는 게 최선이에요."
"네!"

의사의 말에 나 대신 대답하는 승지 언니의 얼굴은 매우 밝고 기뻐 보였다.

"다행이다 영원아."

저 모습도 거짓된 모습일 거라 생각하니 난 그녀가 가증스러워 참을 수 없었다.

"거짓말 정말 잘하시네요. 하긴 그러니까 첫 만남 때부터 그렇게 자연스럽게 했겠죠."
"아... 영원아."

그때 내 담당의가 나가고 이번엔 승지 언니의 담당의가 병실을 들어왔다. 침대에서 얌전히 있지 않고 내 옆에 있는 모습에 담당 의사는 그녀를 꾸짖었다. 그 탓에 결국 다시 침대로 돌아간 승지에게 난 눈길을 주지 않으며 내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눈을 감자 겨울날의 컨테이너 창고가 생각이나 다시 눈을 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자 승지 언니와 의사의 대화가 엿들렸다.

"환자분 제발 가만히 침대에 누워 계세요. 뼈가 붙질 않잖아요. 게다가 등 좀 보세요. 의자에 기대서 상처만 더 벌어진 거 알기나 하세요? 도대체 기대지 않으면 앉지도 못하는 의자는 왜 계속 앉습니까!"

어느새 언성이 높아져 호통을 치고 있는 의사에게 승지 언니는 침대 안이 답답하다는 변명을 하였다. 그러자 의자는 안 답답하냐고 따지는 의사에게 난 연민의 감정까지 생겨 들었다. 승지 언니에게 한 번만 더 침대를 벗어나면 밧줄로 꽁꽁 묶어 둘 거라고 협박까지 마치고서야 의사는 우리의 병실을 나갔다.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또 다시 내게 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영원아 혼자 있느라 심심했지? 별것도 아닌데 의사는 참 호들갑이라니까."

다시 한번 간이 의자를 펼치며 거기에 앉는 그녀는 의사의 말대로 등받이에 기대지 않는 이상 가만히 앉아 있는 것 조차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그건 내가 신경 쓸 일 따윈 아녔다.

"아, 목마르지 않아? 우유 마실래? 잠깐만 기다려봐 언니가 빨대 꽂아서 줄게."
"그냥..."
"응?"
"그냥 침대에 가만히 좀 계세요."

그녀가 아픈 건 내가 신경 쓸 일 따윈 아니다.

"하지만 그러면 자기랑 떨어지잖아..."

그녀가 아픈 건 내가 신경 쓸 일 따윈 아니다.

"아, 진짜...! 제가 언니에게 갈게요."

딱 이번만 그녀의 요구를 충족 시켜주기로 생각했다. 딱 이번만이다.

***

침대에 올라가 몸을 어기적어기적 움직이는 그녀를 무시하며 침대의 오른쪽에 의자를 펼쳐 앉자, 승지 언니는 깁스를 한 오른팔과 오른 다리가 있는 방향으로 몸을 눕혔다. 거기에 난 깜짝 놀라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겠다는 것도 깜박 잊고 물었다.

"왜 그쪽으로 누워요. 다쳤잖아요."
"네가 여기 있잖아."

될 대로 되라지, 그녀의 상처가 안 낫는 것쯤은 내 알 바가 아니니까. 라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그녀의 얼굴은 골절된 부분의 고통을 참고 있는 얼굴이었다.

"아 진짜..!"

결국 난 아까 때처럼 그녀에게 못 이겨 자리를 바꿔 그녀의 왼쪽에 앉았다. 그리고 나를 따라 그녀는 몸을 왼쪽으로 돌아 누웠다.

"히히."
"왜 웃어요."
"너무 좋아서."

그녀의 밝은 미소에 순간 난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나 곧 그 미소에 속았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난 다시 냉정함을 되찾았다.

"...당신은 제가 어제 그런 말을 했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아요?"
"너의 진심이 아닌 걸 알아."
"진심이에요."
"지금은 아니야."

그녀는 단호하게 내 말을 부정했다. 무슨 확신이 있어서 저런 말을 하는지 난 기가 차기만 했다. 한편으로 내 얼굴을 아까부터 빤히 쳐다보는 그녀가 난 조금 부담스러웠다.

"왜 자꾸 봐요."
"예뻐서."

그녀는 또 한 번 해맑게 웃었다. 정말 어이가 없다.

***

기억이 돌아오는 것이 어느 순간 끊기기 시작했다. 하이안에 들어가 일을 시작한 것까지 기억이 났으나 더는 나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 승지 언니를 다시 만났고, 어떻게 해서 그녀를 죽이지 않고 아직까지 살려뒀는지 나는 의문이었다.

죽이지 않은 걸까, 죽이지 못한 걸까.

한편 승지 언니의 몸은 빠르게 회복이 되었다. 침대에서 얌전히 쉰 덕일까, 팔다리의 깁스를 푼 그녀는 이젠 멀쩡해 보였다. 충분히 퇴원해도 괜찮아 보였으나, 아직 완전히 나은 게 아녀서 좀 더 입원을 해야 한다고 그녀가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말이고 아마 나와 있기 위해 퇴원을 미루고 있는 것일 거다.

오늘은 희신 언니가 병문안을 찾아왔다. 또 한 번 승지 언니의 부탁으로 이것저것 사 온 그녀는 이번엔 꽃다발까지 사 왔다. 그러나 그녀의 꽃을 본 승지 언니의 얼굴은 마음에 들지 않는 얼굴이었다.

"내가 부탁한 건 백합인데 이건 백합이 아니잖아."
"그거 없대서 병문안용으로 딴 거 달라고 했어."

승지 언니는 입을 비죽 내밀며 아쉬운 티를 팍팍 내었다. 그에 희신 언니는 부탁하는 사람의 태도가 그게 뭐냐며 그녀를 핀잔했으나 그럼에도 꿋꿋하게 승지 언니는 투정 부리듯 말했다.

"그 날 애기가 준 건 백합이었는데..."

장미와 안개꽃으로 꾸며진 꽃다발의 포장을 재정리하며 승지 언니가 그것을 내게 건네었다.

"다음엔 더 예쁜 거 줄게."

갑작스럽게 꽃을 건네받은 난 조금 얼떨떨 하였다. 처음 받아 본 꽃 선물이라 그랬을까 아니면 내가 승지 언니에게 백합꽃을 주었다는 기억 없는 사실을 들어서일까, 그것이 어떤 것이든 받아든 꽃은 예쁘고 향기로웠다.

"난 줄 거 다 줬으니 이만 간다."
"아, 잠깐만."
"응?"
"아... 나 팔다리 때문에 엑스레이 찍어 봐야 한다 해서, 그동안 우리 애기랑 같이 좀 있어 줘. 병원에 혼자 있으면 쓸쓸할 테니까."
"그래 알았어."

승지 언니는 금방 돌아오겠다며 병실을 나갔다. 갑작스럽게 희신 언니와 둘만 남게 된 난 처음보다도 더 그녀가 불편했다. 그것을 알아차린 듯 그녀가 말했다.

"들었어, 너 기억 일부 찾았다는 거."
"아, 네..."
"난 너희 둘의 과거에 대해선 사실 잘 몰라."
"......"
"근데 지금 너희 둘은 잘 아는데, 권승지 쟤 진짜로 너 엄청 좋아해... 그것만 믿어줘."

난 희신 언니의 말에 아무 대답하지 못했다. 그것은 그녀의 말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마음 한편에서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있어서였다. 아직도 이런 생각을 하는 난 스스로 여전히 바보 같다 생각했다.

엑스레이만 찍고 온다는 승지 언니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희신 언니도 그렇게 느꼈는지 그녀는 잠시 승지 언니를 찾으러 가겠다며 병실을 나갔고 얼마 후 다시 돌아왔다.

"권승지... 엑스레이 실에 없어."
"네?"

6년 전의 기억이 살아나는 듯했다. 춥고 어두운 창고에서 나를 두고 가고, 병원에 찾아오지 않은 채 나를 떠나간 그녀. 그 날의 악몽이 내게 다시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나와 희신 언니는 병실을 나와 승지 언니를 찾기 위해 병원을 돌아 다녔다.

또 다시 나를 떠나간 그녀를 왜 찾으려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복수 하기 위해? 죽이기 위해? 아니... 난 여전히 그녀를 사랑해서 그녀를 놓을 수 없었다. 바보 같았다.

"어딨어... 승지야."

그때 스쳐 지나간 치료실에서 그녀의 모습을 발견한 듯하여 난 발걸음을 되돌렸다. 그러자 그곳엔 정말로 승지 언니가 있었다. 치료실의 문패엔 작게 드레싱룸이라고 쓰여 있었다.

"승지야."
"영원아...!"
"왜 여기 있어?"

그때 나를 발견한 다른 간호사가 내게 말했다.

"지금 환자분 피가 안 멎어서, 지혈 중이에요. 곧 끝날 테니까 밖에서 기다려 주세요."
"네?"
"영원아, 내가... 이따가 설명해줄게."

간호사의 말이 무슨 말인지 난 알기 어려웠다. 조심히 뒷걸음질로 나가는 나의 시야에 승지 언니 옆에 놓인 피에 절은 상의가 하나 보였다.

'영원아!!' 그 순간 승지 언니의 외침이 들렸다. 그러나 승지 언니는 내게 외치고 있지 않았다.

치료실을 빠져나가 근처의 의자에 앉는데 복도의 텔레비전에서 자동차 소리가 들렸다. [콰과광!!] 그때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아무것도 부딪히진 않았다.

이 느낌은 분명 이전에도 느껴본 감각이었다. 그것은 처음 기억을 되찾았을 때와 비슷한 감각이었다.

"영원아, 승지 찾았어?"

그때 나와 함께 승지 언니를 찾던 희신 언니가 내게 왔다. 난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으로 치료실을 가리켰다. 희신 언니도 예상치 못 한 장소에 놀란 눈치였다.

곧 그곳을 나온 승지 언니는 희신 언니에게 나중에 설명해주겠다며, 나와 함께 있을 시간을 달라고 하였다. 반드시 설명해 달라며 쉽게 물러간 희신 언니를 두고 우린 우리의 병실로 돌아갔다.

"영원아..."
"옷 벗어."

드레싱룸에서 보았던 그녀의 피투성이 상의를 떠올리며 난 그녀의 상의를 벗을 것을 재촉했다. 결국 뒤돌아 단추를 풀어 상의를 내리며 드러낸 등에 난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가 퇴원을 하지 않던 것은 나와 있기 위한 거짓말이 아녔다. 그녀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했던 의사의 말은 호들갑이 아녔다. 그녀의 등은 투명한 밴드 아래 날카로운 것에 베여 찢어진 것 같은 무수한 상처들로 에워싸여져 있었다.

영원아!!' [콰과광!!] 그 순간 방금 전 들렸던 소리가 또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기억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죽을 때까지 네 편만 들어줄게. 나랑 있어. 네 옆에 있고 싶어.' '우린 아플 일 없이 행복할 거야.' '매일 언니 생각만 했어.' '사랑해.'

'맞아, 난 승지와...'

그 순간 가장 최근의 기억. 내가 기억상실증에 걸리게 된 날의 기억이 돌아왔다.

그날은 날씨가 좋아 승지에게 장을 보러 가자고 했고, 차를 끌고 가지 말고 택시를 타고 가자고 했다. 그리고 뒷좌석에 승지와 나란히 앉아서 가고 있던 중, 갑작스러운 사고가 일어났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승지는 등에 깨진 유리 조각이 무수히 박혀 피투성이의 모습으로 나를 감싸고 있었다.

그날 내가 승지에게 나가자고 해서, 그날 내가 승지에게 택시를 타자고 해서, 그날 승지가 나를 지키려고 해서. 승지는 나 때문에 피투성이가 되었다.

"아, 아. 안돼. 승지야...! 승지... 언니 어떻게...! 흐윽. 많이 아팠지... 나 때문에... 흑 미안해 승지야."

바닥에 힘 없이 주저 앉으며 난 눈물을 쏟아내었다. 그리고 그것을 소매로 닦아보았지만 눈물이 멈추지 않는 탓에 그것은 어느새 축축하게 젖어버렸다. 그런 나를 승지는 옷도 제대로 여미지 못한 채 나를 감싸 안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기억 돌아왔구나... 아니야, 하나도 안 아파. 영원이만 무사하면 언니는 다 괜찮아."

나도 그녀를 안아 주고 싶었지만 혹여나 그녀가 아플까 겁이나 갈 곳 잃은 손으로 그녀의 옷을 쥐었다.

나의 기억이란 단순한 추억 같은 게 아니다. 그것은 승지와의 영원한 사랑을 맹세해주는 서약과도 같은, 절대 잃어서는 안되는, 내게 유일하게 남은, 그녀와 함께 할 수 있게 해 주는 나의 모든 것이다.

난 다시는 그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 그녀의 옷깃을 더욱 강하게 쥐어 당겼다.

몇번을 아프더라도 이 손을 다시는 놓지 않을 것이다.

***


낙차 발매기념 밤샘 글
갓차 미쳐 절대 승지영원

급하게 써서 마무리가 좀 아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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