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잠이 오지 않았다. 네 잘못을 원망하고, 네 매몰참을 비난하고, 네 분노를 깎아내렸다. 내 노력을 칭찬하고, 내 사랑을 옹호하고, 내 슬픔을 찬양했다. 네가 왜 떠나갔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네 마지막 한마디, 더는 못 하겠다는 말을 견딜 수가 없었다. 전날 까지도 우리는 사랑을 고백하고 가장 내밀한 살결을 뒤섞었다. 그게 너의 이별 선물이었을까? 나는 그걸 견딜 수 없었다. 네 마음이 하루 만에 돌아선 것 같아서, 이해할 수 없었다.

  작은 원룸, 얇은 매트리스 위에 웅크려 하루를 되새겼다. 얄팍한 천들을 뚫고 오는 한기가 기억을 더 차갑게 만들었다. 별다르지 않았던 것 같았다. 반가워 입 맞추고, 얘기를 나누며 걸었다. 식사는 즐거웠고, 휴식은 달콤했다. 그렇지만 너는, 헤어지며 이별을 고했다.

“더는 못 하겠어.”

  그 말에 붙들려서, 기억이 멀리 뻗어가지 못했다. 달콤한 걸 좋아하는 너를 위한 카라멜 마키아또, 향기로운 크림이 올라간 와플, 그런 너를 바라보며 머금은 산미가 강했던 에스프레소, 코코아 가루가 씁쓸했던 티라미수. 약간 소란스러웠던 카페에서, 잔을 비운 네가 그렇게 말했다. 와플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티라미수는 반이 비어있었다.

“다시 말해야 해? 언니랑은 이제 안 되겠다고!”

  네 말은 미치도록 차가웠다. 뜨거운 커피를 홀짝여도 가슴이 녹질 않았다. 입술까지 얼어붙어 뻣뻣해 움직이지 못했다.

“지쳤어. 눈치도 없고, 뭘 해봐야 관심도 없고, 그냥 다 좋다는 그게, 그게 진짜 싫어.”

  꽉 다물린 입술에서 끈적한 용암이 새어 나왔다. 덜컥, 하고 몸이 떨어졌다.

“왜?”

  어울리지 않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네 말은 전혀 들어오지 않았으니까. 그런 것도 싫었던 걸까.

“그래, 그런 거.”

  너는 자리를 박차고 떠났다. 나는 자리에서 멍하게, 씁쓸한 티라미수를 깨작였다. 그걸 다 먹어 치우고 에스프레소의 바닥까지 비웠을 때도, 집에 돌아와서도 나는 너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난 그저 너를 사랑하려 했다. 그래서 언제나 입 맞추고, 끌어안고, 속삭였다. 네가 무엇을 하더라도, 어떻게 있더라도 나는 그랬다. 다를 건 없었다. 땀이 흐르다 못해 속이 비칠 거 같은 옷을 입어도, 눈보라도 모자라 시선 한끝 마저 막아낼 정도로 옷을 싸매도, 너는 너라고 생각했으니까. 흐드러진 머리가 바람에 감겨도, 밝은 햇살이 파르스름한 머리에 비추어도 너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입술을, 체온을, 목소리를 나누었다.

  그렇지만, 부족했던 모양이다. 숨을 내뱉지 못하도록 입을 막고, 쉬지 못하도록 몸을 조이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요란해야 했던 모양이다. 그렇지만, 그럴 이들은 없을 거였다. 모두를 해 줄 사람은 없을 거였다. 그들에게 희망을 잊고 너는 나에게 돌아와 줄 거다. 나는 그날 밤새 베갯잇을 씹었다.

  그런 마음이 무색하게도, 너는 돌아오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연락은 되지 않았다. 가끔 스쳐 지나간 너는, 아니 너일지도 모르는 누군가는 나를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눈에 네가 담긴 날마다 나는 그날을 되새겼다.

  자꾸만, 헤어지던 그때의 향기만 코끝에 맴돌았다. 바라봐야 할 곳은 보이지 않는다. 빈자리만이 너무나 크게 느껴진다. 그날, 그것들을 먹지 말았어야 했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그 카페에서 달콤한 마키아또와 향긋한 와플을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