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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카논치사] 대충 체육 시간에 배구 하는 카논을 치사토가 바라보는

ㅇㅇ(121.159) 2020.09.30 02:15:00
조회 517 추천 25 댓글 5
														




  체육 시간이 싫다. 급하게 작품에 들어가 체중 관리가 필요했을 때도, 운동을 할 바엔 차라리 굶는 것을 택했던 나였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원체 몸을 움직이는 걸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게다가 여기에 최근 몇 가지 이유가 더 추가됐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이유는. 지금 코트 위에서 온몸으로 햇살을 받으며 뛰어다니고 있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

 

***

 

  굳이 의미 없는 동작을 반복해 땀을 흘리는 것도, 작은 공 하나에 여럿이 모여 사활을 거는 것도. 모두 맘에 들지 않았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맘에 들지 않는 것은 카논이 배구를 잘한다는 사실이었다. 문외한인 제가 보기에도 코트를 종횡무진 돌아다니는 모습은 못 하는 사람의 그것은 아니어서. 금세 알 수 있었다. 카논은 배구를 좋아하는구나. 왜 진작 물어보지 않았을까. 좋아하는 운동 하나쯤 미리 물어봤어도 좋았을 텐데. 자신도 얼마 전에야 알게 된 친구의 새로운 일면. 쳐다보지 않는 척 대본에 고개를 묻고 곁눈질을 하고 있었다. 사실은 대놓고 바라보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게, 나만 보고 있어도 아쉬울 장면인걸. 운동장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니. 직사광선을 바로 쐴 일도 없고, 좋은 거 아니야? 생각했던 제가 미워질 정도로. 코트 위 카논의 모습은 남들이 보기에도 멋있었다.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그러했다. 졸업식 이후로 불과 몇 개월이 지났을 뿐인데. 고등학생이 되며 키가 더 자라기라도 한 걸까. 평소보다 넓어 보이는 뒷모습을 눈으로 좇고 있었다. 느슨하게 한데 묶은 머리가 카논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물결처럼 찰랑거렸다.

 

  저러다 다치는 건 아니겠지... 강하게 찔러 넣은 상대편의 서브를 보기 좋게 받아내고. 폴짝 뛰어 스파이크를 때릴 때면, 아무리 잘한다 해도 매번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서. 제풀에 못 이겨 넘어지고 마는 순간도 있었다. 아야- 아픈 소리를 내면서도 늘 그렇듯 다시 해사하게 웃음을 지어 보여서. 그렇게 넘어질 거면 뛰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치사토는 공연히 가슴께에 저릿함을 느꼈다. 숨 쉬는 방법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후우. 기계적으로 심호흡을 했다. 들이쉬고 내쉬길 얼마간 반복한 끝에, 마저 읽던 대본의 첫 문단에 눈길을 고정했다. 지금 내 표정. 이상하진 않겠지? 부러 입꼬리를 올려본다. 살면서 가장 많이 지어봤던 표정이니까. 그리 이상하진 않을 거야. 대본을 쥔 작은 손에 힘이 들어가 바스락하고 구겨지는 소리가 났다.

 

  춘추복에서 하복으로 교복을 갈아입는 사이. 강당 사면에 난 창문 새로 비쳐오는 햇볕이 날로 따가워지고 있었다. 서서히 더워지는 날씨에 시원하게 묶은 머리 뒤로 훤히 드러난 목덜미. 말아 올린 소매 끝에 감춰진 가늘고 탄탄한 팔뚝과 점프할 때마다 얼핏 보이는 희고 매끈한 배. 체육복 바지 밑으로 곧게 뻗은 다리와 툭 튀어나온 복사뼈까지. 오늘의 카논을 구성하는 모든 것이 초여름의 햇살 아래 저마다 강하게 자기주장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너는 충분히 눈이 부신데도. -왠지 오늘 마츠바라 양, 멋지지 않아? 저만 그런 생각을 했던 건 아니었는지. 듣지 않으려 애를 써도 수군거리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라사기 양, 마츠바라 양은 배구를 정말 잘하네. 다시 봤어!”

 

  복도를 오가며 두어 번 인사했던가, 아마 옆엔 카논이 함께였던 것 같은데. 학기 초라 미처 이름을 외우지 못한 학생이 별안간 말을 건네왔다. 내가 왜 이런 말을 듣고 있어야 하는 거야... 칭찬이라면 본인에게 직접 해도 되잖아. 그야, 네가 카논의 가장 친한 친구니까. 그럼 친구가 칭찬을 받았으니, 일단 기뻐해야 하는 거 아냐? 누구 하나 빨리 대답하라고 다그치는 사람이 없었음에도. 팽팽 돌아가는 머릿속에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표정 관리. 표정 관리. 이 두 마디를 내뱉기 위해 얼마나 힘이 들었던지. 이상하리만치 뜸을 들인 치사토가 조용히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 고마워.”

 

  견학조가 구석에 앉아 연습경기를 관전하는 중에도 코트 안에선 치열한 랠리가 한창이었다. 산발적으로 코트에 운동화 밑창이 쓸려 끼익- 하고 신경을 긁는 소음이 울려 퍼지던 때. 마이볼!!! 제 쪽으로 공을 올려달라는 카논의 기합 소리가 터져 나왔다. 제 이름을 부르는 나긋한 음성과 같은 사람이 냈다고는 믿기 어려운. 코트 뒤쪽에서부터 성큼성큼 스텝을 밟아 오른쪽 사이드로 돌아 나온 카논이 곧장 마지막 공격을 성공시켰다. 무릎을 힘차게 굴려 네트 가까이 뛰어올라 정확히 공을 때리고 머리칼을 나부끼며 착지하던 일련의 동작과. 열린 창문 틈으로 불어온 산들바람이 카논의 앞머리를 장난스럽게 헝클어뜨린 그 찰나를. 치사토는 실로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만 같았다.

 

치사토 쨩!”

 

  결정타를 날린 카논이 제법 뿌듯한 표정으로 저를 보며 웃었다. 주변에서 자신을 보고 웃은 거 아니냐며 설레발을 쳤지만. 분명 내 이름을 불러줬는걸. 마치 방금까지 경기하던 사람과는 아주 다른 사람 같이. 내가 아는 너의 모습 그대로. 시합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리고. 자기편 학생들이 무어라 말을 걸려던 것 같았는데. 너는 그것도 전혀 개의치 않고 단걸음에 달려왔다. 천천히 걸어와도 될 텐데. 항상 이렇게 저를 기다리지 않게 해준다는 점이. 뭐 보고 있었어? 이런 상황에서도 나를 먼저 골라주는구나... 알 수 없는 안도감. 혹은 어떤 만족스러움. 있지. 난 고등학생이 되면, 조금은 어른에 가까워지는 게 아닐까 생각했어. 기대했던 것이 정말 무색하게. 다정한 네 말에 꿍했던 기분이 사르르 녹아내린다.

 

  응, 대본을 읽고 있었어. 아직 분석이 다 끝난 건 아니지만. 카논만 괜찮다면 들어볼래? ! 와아, 기대된다- 가까이 붙어 어깨를 나란히 한 고른 숨소리를 들으면서. 치사토가 실은 몇 번이고 곱씹었던 대사를 읊기 시작했다. 이해하고 싶어서. 아니, 이해하기 싫어서. 답지 않게 휘갈겨진 메모와 형광펜으로 난도질 된 밑줄이. 너덜너덜해지기 직전인 페이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처음엔 단순히 동경의 감정을 착각하는 거라 생각했다. 가까이에 있던 친구가 멀어지는 모습을 보며 괜히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히고 마는 건. 비단 주인공만의 처지는 아니었으니까. 동성 간에 이다지도 애틋한 감정이 싹틀 수 있다고는. 겪어보기 전까진 상상해본 적조차 없었으니까.

 

***

 

  역시 나는 체육 시간이 싫다. 구석에 앉아 바라보기만 할 뿐인 시간이. 생기 넘치는 너의 모습을 빼앗겨 버리는 것만 같아서. 유치한 내 마음이 아직도 너무 어리다는 걸 깨닫곤 하니까. 그런데도 네가 나를 보고 웃어줘서, 먼저 다가와 줘서. 아무렇지 않은 말 한마디에 널뛰는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어서. 결국엔 기대하게 되잖아. 어쩌면 너도 나와 같은 건 아닐까 하고... 카논은. 배구 잘한다는 얘기, 자주 들었겠어. 으음? 평범한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후후. 그게 평범한 편일 리가 없잖아. 그런가? , 당연하지-




---


중3에서 고1로 넘어간 어느 늦은 봄 이런 이야기도 있지 않았을까 해서 날조해봄

오늘 뱅드림 연성이 많이 올라오네. 여러모로 부족한 글이지만 재밌게 읽어줭


백붕이들 즐거운 연휴 보내고 맛있는 거 많이 먹어서 돼지 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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