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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용사 수용소 1화모바일에서 작성

현시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10.12 09:54:05
조회 472 추천 18 댓글 2
														

동료들이 죽은 것도 오래 전 일이다. 아, 이렇게 적어놓으니 뭔가 비극과도 같이 느껴지는데. 하긴, 죽음이라는 소재가 해학적이긴 어려운 것이니.

그래도 천수를 다하고 세상을 떠난 거라면 덜 비극적인 것이 아닐까. 그들 중엔 썩 좋지 않은 말년을 맞은 이들도 있었다. 가령, 집에 틀어박혀 있는 것은 좀이 쑤시다고 던전을 탐험하다가 느려진 손으로 함정을 해체하지 못한 도적이라던가, 술과 마약에 손을 댄 주정뱅이 음유시인이라던가. 그들을 빼면 그래도 대체로 평화로운 말년을 보낸 것으로 기억한다. 평범하게 신분을 숨기고 결혼하고, 아이도 낳고. 그녀도 그렇게 늙어갔다.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그때 일을 생각하면 민망함을 쓴웃음으로 얼버무리게 된다. 호숫가에 애꿎은 돌멩이를 던지면서 그녀의 얼굴을 떠올렸다.

젊을 때 불꽃처럼 타오르던 그녀는 항상 당차고, 한편으로는 생각이 깊었다. 일정한 주기로 인간계를 침공하려는 마왕의 이벤트를 막기 위해 결성된 용사 파티에서, 동료들의 불화을 가라앉힌 것은 그녀의 몫이 컸다.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그녀를 좋아하는 건 당연했겠지.

동성이었기에 망설였고, 그 사이에 그녀를 낚아챈 것은 비루한 말총머리 마법사였다. 힘도 약하고 비실비실한 인간이 뭐가 좋다고....... 이런 말은 그녀가 싫어할테니 그만하자.

어쨌든 그의 외모가 마음에 들었는지, 혹은 성격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녀는 모든것이 끝난 뒤에 녀석과 결혼했고, 나는 그녀의 결정을 부정하지 않았다. 멍청하게 마음 하나 곧이곧대로 말하지 않은 나에겐 그녀를 낚아챈 녀석에게 눈을 부라리며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않으면 죽여버릴 거라고 협박하는 선택지밖에 남지 않아있었다.

그렇게 그녀는 몇 달 뒤 아이를 낳고, 녀석과 함께 나이를 먹고, 그녀의 아이도 자라서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성인이 될 때쯤 숨을 거두었다. 입버릇처럼 더 추해지기 전에 주님의 곁으로 갈 수 있으니 기쁘다고 말했지만, 젊을 때 했던 고생으로 주름이 자글자글해진 모습도 전혀 추하지 않았다. 나무의 나이테와 다름없는 거라는 내 말엔 재밌다는 듯 웃으며 눈을 감을 뿐이었다.

그녀의 옆집에 머무를 이유가 없어진 내게 찾아온 것은 나라의 제약이었다. 숲으로 정처없이 떠나려는 내게 용사법을 들먹이며 찾아온 이들에게서, 통제할 수 없는 힘을 두려워하는 인간들의 아집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우리의 다음대, 다다음대 용사들도 전선에서 활약하고 있을텐데 굳이 퇴물을 전관예우라며 찾아온 것은 내 힘이 아직 위협적이라는 말이었겠지. 겉으로는 국빈을 모신다고 했지만, 껄끄러운 폭탄을 대하며 두려움을 감추는 모습들에서 나는 그 밑에 깔린 질척한 감정을 느꼈다.

어쨌거나 그녀가 지키려 했던 세상이니까 난동을 부리기는 싫었기에, 잠자코 이곳에 적을 두게 되었다. 선대 용사나 그 동료들이 가끔 지루하다며 뛰쳐나가거나 하는 곳이긴 했지만, 내겐 산책할 만한 숲과 호수가 있다는 것은 평화롭게만 느껴져서 좋았다.

실버타운이라고 했던가. 편의시설들과 병원, 그리고 장례식장까지 모여있는 이 마을의 배치는 노골적으로 늙은 괴물들에게 사고치지 말고 이곳에서 노후를 즐기다가 가라는 뜻이 느껴졌지만, 뭐. 인간들에 비해 긴 수명을 가진 엘프에겐 의미없는 대우겠지.

"아가씨, 혼자 오셨습니까?"

간혹 이렇게 이 마을에 사는 용사 파티의 누군가가 세상을 떠나고 장례식이 있으면,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고 말을 거는 사람도 있다. 모르니까 그러는 거겠지. 호수에 발을 담그고 앉은 채 나를 부른 사람을 물끄러미 올려다보니 징그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수행원도 없이 혼자 계신 걸 보면 울적한 일이라도 있으셨나보군요.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전사들의 우상이나 다름없던 맥케인 경이 과식을 하다 급체해 세상을 떠날 줄이야......."

"모르는 인간과 이야기하고 싶진 않네요. 당신의 일행 곁으로 돌아가주세요."

"아, 실례했습니다. 저는......."

자기소개는 걸러서 들었다. 느끼한 모양새가 꼭 그녀를 낚아챈 녀석과 닮았기도 했고, 예전이었으면 이 자리에서 반쯤 죽여놨겠지만 그녀가 그런 걸 싫어했으니 참는 데 집중하는 게 나았다. 괜히 쓸모없는 것을 기억하기 싫기도 했고.

무시하며 다시 잔잔히 물결을 일으키는 호수를 바라보자 그는 몇차례 혼잣말을 계속하더니 자신이 누군지 모르는 것이 분명하다고, 이런 무례는 처음이라며 씩씩거리다가 사라졌다. 도발 축에도 못 끼는 말이었으니 딱히 참는다는 표현을 쓰기도 애매했다. 많이 무뎌졌나. 마왕의 사절이라는 녀석들이 입을 털 때면 지팡이로 패서 반쯤 죽이곤 했는데. 아예 명줄을 끊어놓으려 하면 마음씨 좋은 그녀가 부드럽게 안아주면서 말리곤 했다. 그게 좋아서 종종 과격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멍하니 그녀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면서 웃었다. 인간들은 이것을 추억이라고 했었지. 바람도 선선하고, 풀내음도 향긋하니 다 좋았다. 다 좋은데, 뒤쪽이 조금 소란스러웠다. 그 철부지가 일행을 데려온 모양이었다.

"네가 감히 도련님의... 헉!"

울그락불그락한 근육이 정장 위로까지 존재감을 뿜어내는 거한이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아까의 그 인간을 끌고 줄행랑을 쳤다. 나를 아는 사람일까. 저러면 또 실버타운의 관리인에게 항의가 들어가지 않을까.

아무래도 마왕을 잡고 살아남은 괴물들이 사는 마을이라, 관리인들은 대체로 그 은퇴 용사파티의 약점을 쥐고 있거나 애착의 대상인 경우가 많았다. 가끔 마주치는 늙은이들을 보면, 대개 그 가족이라던가 제자라던가 하는 사람들이 붙어있었고. 내겐 이렇다할 연고자가 없으니 사실상 방치된 상태나 마찬가지라 건드리면 안될 폭탄 취급을 하는 것도 이해는 갔다. 마왕을 잡기 위해 엘프 마을에서 추방당하는 것까지 감내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이런 요양을 위장한 감시시설이었으니 내가 딴 마음을 먹을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상상이 될 정도였다. 실상은 그녀를 보고 반해버려 가출한 거였지만.

어쨌거나 조문객이나 방문객들과 퇴물들 간에 트러블이 생기면, 그런 관리인이 잔소리를 하러 찾아오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내겐 정해진 관리인도 없고 괜히 긁어서 터질 일 있냐며 일절의 터치도 없던 터라 오늘도 그럴 줄 알았다.

그랬는데.......

"안녕하세요, 페아딜 님, 혹시 오늘 조문객 위협한 적 있으세요?"

그녀가 나를 찾아왔다.

붉게 타오르는 머리카락은 넘실대고, 같은 빛의 두 눈은 자신감을 담았다. 젊은 날의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멍하니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레이나?"

"네? 전 레이나가 아니라 레이첼인데요......?"

잠깐동안 그녀가 살아돌아온 줄 알고 착각했던 스스로를 질책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 그녀의 임종까지 함께해놓고 착각한다는 것은 그녀에게도, 앞의 이 아이에게도 큰 실례겠지. 명찰에도 '은퇴용사 복지공단 레이첼'이라 적혀있었다. 다른 사람이라는 깨달음에, 놀랐던 가슴을 가다듬고 차분히 사과했다.

"미안해요. 아는 사람과 너무 닮아서."

"헤에. 제가 증조할머니랑 그렇게 닮았어요? 초상화랑 비교하면 좀 다르다던데. 아, 이게 아니라! 좀 전에 민간인한테 막 협박했다고 민원이 들어왔어요. 그런 기억 안나세요?"

"이상한 사람이 있어서 무시한 적은 있는데. 글쎄요, 마법을 쓰거나 한 적은 없네요."

"그 사람들은 살기를 느끼고 도망갔다고 하던데......?"

"글쎄요."

오늘 만난 사람은 그 둘 뿐이고, 한명은 무시하고 한명은 눈만 마주쳤을 뿐이었다. 그렇게 말하자 레이나를 닮은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뺨을 긁적이는 모습이 레이나와 너무 똑같아 나는 애써 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으음....... 아무튼 민간인들은 페아딜 님이 무심코 휘두른 바람에도 숨이 넘어갈 수 있으니까, 조심해주세요. 솔직히 그 사람들 완전 진상이긴 했는데......."

다른 이곳 주민들에게 관리인들이 투정부리는 것을 익히 들어 알만했다. 은퇴한 괴물들에겐 대놓고 뭐라 못하니 저렇게 관리인들에게 횡포를 부리는 거겠지. 딴에는 높은 위치에 있으니 그들에게 상한 자존심을 저렇게 챙기는 것이리라. 중간에 낀 사람은 저렇게 스트레스를 받겠구나 싶었고.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내게 자신이 들은 폭언을 재잘재잘 하소연하던 그녀는 털어놓으니까 속이 좀 후련했던지 표정이 밝아졌다. 마지막에 가서야 실수했다는 듯이 아차하며 울상을 짓는 그녀에게 궁금한 것이 생겨 물었다.

"한가지 물어봐도 괜찮을까요?"

"네, 뭐든지요!"

"그럼 레이첼이 앞으로 제 담당이 되는 건가요? 아직 한 번도 제게 찾아온 여기 사람이 없어서요."

"앗, 제 이름은 어떻게 아셨어요? 역시 떡잎마을 의 대마밥사신가봐요!"

덜렁대는 것 마저도 그녀를 닮아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부러 조금 전에 그녀가 직접 이름을 말했다는 것은 말해주지 않기로 했다. 가느다랗게 웃고만 있으니 레이첼은 애매한 답변을 내놓았다.

"으음, 제가 될 수도 있구요. 듣기론 제가 적임자일 거라고 하던데, 이유는 못 들었어요. 확정난 것도 아니구."

"그렇군요."

"앗, 단장님이 호출하셔서 이만 가볼게요. 좋은 하루 되세요!"

"레이첼도요."

산뜻한 웃음을 남긴 레이첼은 그대로 뒤돌아 힘차게 걸어갔다. 점점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올라갔던 입꼬리를 점점 내렸다. 외모로 나이를 추정해보면, 레이나의 증손녀뻘이 될까. 손녀가 생겼단 소식 이후로는 레이나가 세상을 떠나고 들은 적이 없으니, 증손녀가 생겼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세월이 참 빠르구나. 인간 연합의 속사정이 너무나도 뻔해 어금니를 지긋이 물었다. 애착이 가는 인연을 붙여 하나 둘 제약을 붙이려는 것이겠지. 레이첼을 보고 놀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어쨌든 내가 그녀에게서 레이나를 투영할 정도로 멍청한 것도 아니고

문득 이 마을에 입주했던 선대 용사가 이곳의 직원과 제 나이도 무시하고 눈이 맞았다가 복상사를 했다던 우스갯소리가 떠올랐다. 다들 도둑놈이라며 잘 죽었다고 장례식장에서 농담을 했었지. 내게도 종종 추근대던 인간이라 여색에 미친 놈이라고 지팡이로 두들겨패곤 했었지만, 그것 말곤 성격 자체는 괜찮았던 사람으로 기억한다.

우리끼리 도는 소문이 있다. 연합에선 은퇴한 용사들을 다른 곳에서 사고치지 않게 여기에 모아 관리하고, 어느정도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죽인다고. 당연히 공단에 물어보면 아니라 하겠고, 피해망상 가득한 말이긴 했지만 의심할만한 일이긴 했다. 대개 용사와 그 동료들은 육체를 단련해 수명이 길고, 나처럼 수명이 긴 종족들이 끼어있곤 하니까. 비용이 꽤 많이 들겠지.

엘프 마을에 돌아가고 싶지도 않고, 레이나가 없는 이상 방랑을 할 생각도 없었으니 나라의 요청대로 이곳에 머무르곤 있지만 레이첼을 이용해 내게 무언가 강제하려 한다면 가만히 있을 생각은 없었다.


ㅡㅡㅡ

조아라에도 연재할 예정인데, 제목을 짓기가 어려워서 도움을 주십사 하고 왔어요
일단 이게 1화구요
보시다시피 저번에 질문했던 나이가 꽤 차이나는 글이에요
짐작하셨다시피 주인공이 레이첼을 보고 레이나가 떠올라 마음이 흔들리는 거라며 반한 것을 부정하기도 할 거구요
나중에 증조할머니의 정체를 깨달은 레이첼이 자신을 보고 증조할머니를 생각하고 만나냐며 갈등이 생길 거구요
그 밖에도 세계관상 이러저러한 갈등이 있겠지만 뭐 그런건 짧게 퉁치고 넘어갈 거에요
나이차이와 누군가에게서 누군가를 투영하는 것에 대한 감정이 메인이지, 그 외엔 조미료니까요

혹시 제목을 같이 지어주실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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