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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하루라도 빠르게

삼일월야공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10.17 02:3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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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당장 세상이 끝난다면 어떨까, 문득 그런 고민을 하는 때가 있다. 그 유명한 말을 남긴 사람처럼 사과 나무를 심을까? 아니, 애초에 그 말은 자신만의 사이클을, 그리고 꾸준함을 강조하기 위해 세계 멸망을 인용한 것이다. 맥락이 없다면 아무런 가치도 없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언젠가 쓸 거라며 모아둔 돈 20만원으로 바라도 가는 게 좋으려나. 그것도 아니라면 시험이 끝나면 플레이할 거라며 모아둔 타이틀을 구동시키는 것도 나쁘지않겠지. 그것도 아니라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이런 상상을 하고 있자면 세계 멸망이라는 것도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즐거운 일은 있으니까.


“또 이상한 생각하고 있지? 세계가 멸망한다거나.”


등 뒤를 툭 치며 말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방금 생각했던 상대, 그 상대가 말을 걸어왔다.

“아냐, 그런 생각 안 했어.”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지민이의 시선을 피해 위를 올려다보았다. 유난히 반짝이는 태양.


“그렇게 사람 눈이나 피하고, 그리고 그렇게 하늘 보면 눈 아프잖아.”

“그러게, 참 바보같다. 나도.”


부끄러우니까 어쩔 수 없다고는 말 못한다. 쪽팔리니까. 만약, 세상이 멸망한다면 나는 지민이에게 고백할 수 있을까? 나의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


“그런데 유난히 덥지 않아? 햇빛도 강하고. 지금 9월인데.”


그런 생각은 접었다. 새가 지저귀고 있는 세상은 너무도 평화로우니까.


“아직 여름이 안 끝난거겠지.”


그래 그렇겠지, 라는 말을 하며 우리는 길을 걸었다. 학교로 향했다. 10분 뒤 아수라장이 될 학교로 향했다. 솔직히 태양이 낙하해서 지구에 충돌한다니 누가 상상이나 해봤을 이야기인가 그게?


“...무서워.”


지민이의 전화를 받으면서 내 세계 최후의 날이 시작되었다. 어머니는 첫 사랑을 찾아 고백하고 온다고 하셨다. 어이가 없어서 지금 하나뿐인 딸을 버리냐고 따졌지만 애초에 나는 한강 밑에서 주워 온 자식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도 저녁 전에는 돌아오겠다고, 밥이나 같이 먹자는 말을 남기긴 하셨다. 어머니의 자식이 아니라는 것, 어느 순간에나 들어도 마음의 상처가 될 법한 이야기였지만 기분은 생각보다 안정적이었다. 지구가 멸망한다는데 내가 엄마 자식이고 아니고가 중요한걸까.


“그럼 뭘 할까.”


잠깐 고민을 하다가, 모아두었던 돈이 떠올랐다. 서랍을 꺼내 노트를 펼친다. 노트의 사이에는 20만원이 있다. 언젠가 어른이 되면 칵테일 바에 가서 진탕 마실거라 다짐하며 모은 돈들. 내일이 지나면 불 타 재가 되어버리는 불쏘시개. 주머니에 쑤셔 넣고 거리로 향했다. 거리는, 아귀의 소굴이었다. 피의 냄새, 재의 냄새, 숨이 막힌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딱히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는 것. 으슥한 뒷골목 아래의 바로 향했다.


“어서오세요...어 너는 학생?”


지금이 그런 걸 따질 때인가.


“못 마시나요? 돈은 있는데.”

“...됐다, 한 잔 해라. 애초에 지금 네가 몇 살이건 뭔 상관이냐.”


“감사합니다.”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인은 사업을 망쳤다...그런건가 아니면 보증이라는 걸 잘못서서 망가졌다 그랬나. 여튼 잘 될 것만 같았었는데 한 순간에 무너졌다고 한다. 그래도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어떻게든 돈을 끌어모아서 이 바를 차렸다고 했다. 사실 세계가 망할 것만 같지는 않다고, 죽기 직전이었던 나를 어떻게든 살게 해준 세상이 설마 이리 어이없게 끝나는 건 용납되지가 않는다고.


“애초에 그런 생각으로 오늘 가게를 오픈했으면 미성년자한테 팔지를 말았어야죠.”


“...그래도 아가씨 아니면 와줄 손님이 없을 거 같았거든.”


“...애들이라도 부르는 게 어때요? 마지막 날이던 아니던 괜찮잖아요. 오늘 애들 학교도 안 갈텐데.”


“아가씨, 내 자식놈들은 다 결혼하고 독립했어.”


“거짓말.”


그렇게 실없는 소리나 하다가 20만원은 다 쓰지도 못하고 바에서 나왔다. 시간은 저녁 5시, 같이 저녁을 먹자던 前어머니에게서 온 문자 한 통.


‘그냥 서로 셀카 보내는 걸로 마무리 짓자. 적어도 마지막 순간은 사랑하는 사람과 보내고 싶어.’


이런 메시지와 함께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침대 위에 있는 어머니였던 여자, 그리고 그 뒤에 흐트러져 숨을 헐떡이고 있는 것 같은 보브컷의...여자.


“아니, 첫 사랑이 여자였냐고.”


솔직히 어이가 없었다. 첫 사랑이 여자인것 보다도, 그래도 십 몇 년 자식으로 키운 정이 있지 않은가? 그런 정조차 이 여자한테는 없는걸까? 아니면, 아니면 어머니와 자식의 정보다 사랑이 더 중요했던 걸까, 춘정이 더 중요했던걸까. 머리가 점점 복잡해진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거기 중고 매물 남아있어요?”


전화를 받지 않길래 매장에 가보니 매장 문은 부숴져있었고, 안은 난장판이었다. 세상이 망해도 가지고 싶은 건 변하지 않는걸까, 아니면 죽기 전의 소원이 그랬던걸까. 나도 비슷하니까 이렇게 매장에 온 거겠지. 깨진 유리를 밟으며 매장 안을 빙 돌았다. 최신형 기는, 겨우 한 대 남아있었다. 운도 좋지. 거기에 더해 타이틀을 몇 개 더 챙겼다. 나가기 전, 카운터에 20만원을 남겼다. 양심의 마지막 발악일까.


“...어떤 자신감으로 집 밖에 나온거야?”


“아니 뭐, 나는 엄마 자식이 아니라길래 홧김에.”

웃으며 적당히 무마하려고 했지만 생각해보니 웃으며 할 이야기는 아니었던 것 같다.


“농담이고 그냥...게임이나 같이 할까 싶어서.”

사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다. 바깥은 아비규환의 불바다, 내일이면 지구는 멸망. 이런 상황에서 게임이나 하자고 자기 집에 오는 친구가 이 세상 어디 있겠는가?”


“그래...게임 좋네, 뭐.”


낙하하는 태양이 판단력을 흐린걸까, 스무스하게 지민의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부모님은, 안 계셔?”

“아니 뭐 그냥 마지막이라고 서로 싸우시다가.”


“서로 싸우시다가?”


“부엌에 사이좋게 누워계시지.”


“미치겠네.”


“내가 할 소리야.”


그런 소름 끼치는 광경은 보기 싫어서 부엌을 지날 땐 발걸음을 조심히, 살금살금 움직였다. 그렇게 들어간 지민이의 방, 모니터가 있어서 게임을 할 수 있었다.


“어떤 게임 가져왔어?”


“어...잠입 액션 게임이랑 격투 게임이랑 뭐 눈에 보이는 거 이것저것?”


둘이 같이 게임을 하는데 혼자서 플레이 하는 게임을 트는 건 조금 도리가 아닌 것 같아 격투 게임 디스크를 넣었다. 인트로가 지나가고 등장한 타이틀. 그 순간, 연기를 내며 게임기가 다운되어버렸다.


“아니 지금 이 순간에 고장나버린다고?”


“...푸핫, 뭘 가져온거야 대체, 아 웃겨.”


당황한 나를 보며 지민이는 웃는다. 바닥에 누워, 한참을.


“...재밌네.”


“도둑질 한 벌일까 몰라, 이거.”


맥이 빠져 자연스럽게 드러누웠다. 바닥에 누워 천장을 바라본다. 형광등 빛이 일렁거려 눈을 핑핑 돌게 만든다. 무엇인가 최면에 걸린 것 처럼, 알 수 없는 편안함이 밀려온다. 이런 평화가 세상에 또 어디있을까.


“...세상이 멸망하니 마니 도저히 실감이 안 나네.”


“너희 부모님이 부엌에 저러고 계신 거 보면 느낌이 팍 오지만.”


이제 곧 태양은 중력권에 급속도로 낙하한다. 원리는 모른다. 과학자가 하는 이야기, 어쩌니 저쩌니 이해도 되지 않아 제대로 듣지도 않았다. 그나마 아는 건 우리 모두는 타올라 재가 된다는 것.


“사실 세상이 멸망한다면 너에게 고백하고 싶었어, 지민아.”


“그래.”


“아무 반응 없으면 무안해지잖아, 나름 용기 낸건데.”


“나도 그랬었어, 똑같이. 친구 이상이 되어서.”


나와 같은 마음, 너무도 기쁜 말이지만 내색할 수가 없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우리의 사랑은 곧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리는 것이라고. 아, 지민이도 이런 마음이었던 걸까.


“어차피 곧 끝나버리는 사랑이구나.”


“...”


“있잖아, 우리가 조금이라도 더 빨리...?”


“지금은 그런 말보다는 키스를 퍼부어줘, 있는대로.”


그런 말을 한 지민이는 두 팔을 벌리고 있었다. 말을 멈추고, 나도 곧 두팔을 벌려 있는 힘껏 안아주었다. 그러고는 잠깐 눈을 맞추고, 가볍게 눈웃음을 짓고, 천천히 입을 맞추었다.


‘달콤하다.’


아마 지민이도 같은 생각을 할까. 세계 최후의 날, 마지막 순간을 나와 함께해서 행복하다고 느낄까. 아니, 절대 그렇지않을거야. 하루라도 빨리, 우리가 말을 했다면. 하루라도 빨리, 우리가 사랑을 했더라면. 하루라도 빨리, 키스를 했다면 우린,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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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다고 생각하면 가장 늦은거라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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