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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카논치사] 연애의 이해(8)

ㅇㅇ(121.159) 2020.10.21 15:29:30
조회 192 추천 13 댓글 3
														

뱅드림 걸즈 밴드 파티 마츠바라 카논 x 시라사기 치사토


둘이 평범한 대학생과 아역배우 출신 연기자로 교양 과목에서 만났다는 설정이고

요새 백갤에 금손들 많아져가지고 이틈을 틈타 슬쩍 올려본다ㅋㅋㅋ

백갤에는 5화까지 올렸었고 6, 7화는 아래에 링크 달아둘게...!


6화: http://posty.pe/9p6moy

7화: http://posty.pe/1rdg2s




---


8. 연영과 주점, 취중진담


  오래된 가로등이 지지직거리며 마주 선 두 사람을 축복하듯 비추고, 한 뼘 남짓 떨어진 얼굴 사이로 서로의 고른 숨결이 느껴졌다. 그때 공연이 끝나자마자 홀연히 사라져버린 카논을 찾아 경영관 근처까지 넘어온 후배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논 선배~ 어디예요?”


  둘만의 세계에 빠진 것처럼 여전히 꼭 달라붙어 있던 두 사람이 그 소리에 흠칫 놀라 몸을 떨어뜨렸다. 갑자기 깨져버린 고요에 촘촘히 얽혀있던 손가락이 얼마간의 여운을 즐길 새도 없이 엇갈리고. 치사토의 외투 주머니에서도 자신을 찾는 진동이 아까부터 끊이지 않고 울리고 있었다.


“…이제 그만 가봐야죠. 저도 연락할 데가 있어서요.”

“그래도 이렇게 헤어지긴 아쉬운 걸요…….”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점점 커져 오는데도 카논은 걸음을 뗄 생각이 없는지 치사토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이러다간 정말 오늘 안에 헤어지지 못할 것 같아 치사토가 되려 웃는 낯으로 입을 열었다.


“후후. 내일은 저 주점 일 돕는 거 보러 와요. 연영과 주점, 인문대 앞이에요.”


  남은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걸 직감한 치사토가 조금은 과장된 몸짓으로 아직도 망설이고 있는 카논의 등을 떠밀었다.


“…오늘 정말 즐거웠어요, 시라사기 씨!”


  멀리 가버리는 것도 아니고 고작 몇 발자국 앞으로 나서는 것뿐인데. 마치 지금 헤어지면 영영 못 볼 사람들처럼. 얼마 못 가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카논에게 치사토가 조용히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



  축제 둘째 날, 인문대 앞. 미사키와 함께 연영과 주점을 찾은 카논이 예상과 달리 벌써부터 붐비는 주점 내부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일부러 가장 바쁠 것 같은 시간을 피해서 왔음에도, 올해는 시라사기 치사토가 직접 서빙을 한다는 소문에 예년보다 훨씬 많은 인파가 몰린 듯했다.


“…카논 선배. 우리 이거 들어갈 수나 있는 거예요?”

“아하하…. 그래도 금방 자리 나지 않을까?”


  이미 주점 내부는 얼큰하게 술에 취한 사람들로 만석이었고, 식사 시간도 지나버려 기약 없이 기다릴 수만도 없는 노릇이라. 우선 인사라도 하고 미사키와는 따로 학교 근처에서 식사라도 하고 돌려보내야겠다고 생각한 카논 앞에 타이밍 좋게 치사토가 나타났다.


“마츠바라 씨!”

“…아, 시라사기 씨.”


  ‘주식회사 A연영’이라는 컨셉에 맞게 결재서류철로 보이는 메뉴판을 품에 안아 들고, 세미 정장 스타일로 구두까지 갖춰 신은 치사토의 모습에, 갈 곳을 잃은 카논의 두 눈이 말 그대로 핑핑 돌기 시작했다. 평소와 달리 다소 격식을 차린 옷차림이 어색하기도 했지만, 허벅지에 딱 달라붙어 다리가 훤히 드러나는 저 짧은 기장의 H라인 스커트가 제일 문제였다.


“마침 한 자리 비었는데. 잘됐네요. 두 분 다 들어와요.”


  우여곡절 끝에 자리에 앉아 메뉴를 고르려던 카논 일행의 앞으로 주문을 받는지 종종걸음을 서두르는 치사토의 인영이 스쳐 지나갔다. 큰 소리로 말하지 않으면 가까운 거리에서도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소란스러운 주점 안. 주황색 조명 아래 일을 돕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으면서도, 어렸을 때부터 갈고 닦아온 프로 의식이 어디 가지는 않는지 최선을 다해 접객을 하고 있었다.


“-하나 추가하시는 거, 맞나요?”


  단순히 주문을 확인하는 것뿐인데. 저렇게 상냥한 말투로, 가까이에서 되물어야 하는 건지.


  언젠가 서로를 알기 전 스크린에서 봤던 장면처럼, 예쁘게 미소 짓는 치사토에게 카논은 공연히 물밀 듯 서운함이 차올랐다. 서운해할 일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는데도, 한 번 요동치기 시작한 마음은 적당히 멈출 줄을 몰라서. 오히려 의식하고 나니 더는 신경 쓰고 싶지 않아도 신경이 온통 저쪽으로 쏠리는 것만 같았다.


“카논 선배, 오늘은 과음하지 마세요.”

“…응? 무슨 뜻이야, 미사키 쨩?”


  미사키의 걱정 어린 당부에도 카논의 잔이 저번 뒤풀이 때처럼 꽤나 빠른 속도로 비워지고 있었다. 액체가 계속해서 들어가는데도 속이 타는지 저도 모르게 잘근거린 아랫입술이 가여워 보일 지경이었다. 채우면 채우는 족족 비워지는 투명한 잔 너머로 모르는 사람들에게 웃어주는 치사토의 옆얼굴이 물결처럼 일렁였다.


  자신을 보고 곱게 눈을 접어가며 웃어주는 것과 저 사람들 앞에서 지어 보이는 웃음이. 분명 다른 의미라는 것 또한, 저는 알고 있을 텐데.


‘시라사기 씨도 참…, 죄 많은 여자네.’


  착잡한 표정으로 연거푸 잔을 비우는 카논을 지켜보던 미사키가 그렇게 생각하던 때에, 별안간 동아리 단체채팅방 알림이 요란스럽게 쌓이기 시작했다. 신입 기수끼리 모여 술자리를 갖던 중에 미사키를 찾는 사람이 있다는 것 같았다. 뒤늦게 메시지 내용을 확인한 카논이 어쩔 줄 몰라 하는 미사키에게 먼저 말을 꺼냈다.


“미사키 쨩. 얼른 가봐. 애들 기다리겠다.”

“선배 혼자 두고 어떻게 가요. 아…….”

“으응. 아니야. 나도 금방 일어날 거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어림짐작일 수도 있겠지만 요전부터 미사키가 은근히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이래 봬도 선배는 선배니까. 더 이상 후배에게 걱정 끼치는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고 싶지도 않았고.


  카논의 성화에 떠밀려 꾸역꾸역 자리에서 일어난 미사키가 주점을 빠져나가며, 카운터 겸 주방으로 쓰이는 널따란 테이블에 기대어 서 있던 치사토를 찾았다.


“저기….”

“마츠바라 씨 일행분이죠? 벌써 가시는 거예요?”

“급한 일이 생겨서요. 카논 선배 혼자 두고 가기가 그래서…, 혹시 괜찮으시면 선배 좀 보러 가주세요. 부탁드릴게요.”



***



  미사키의 전언 이후로 치사토는 남들이 보기엔 얼추 익숙하게 주문을 확인하고 메뉴를 나르면서도, 왁자지껄한 가운데 홀로 앉아있을 얼굴이 눈에 선해 도통 집중을 못하고 있었다. 삼십 분 남짓한 공연을 함께 봐준 대가로 자신의 노동을 치환하기엔 이미 충분히 차고 넘치는 것 같았고. 슬슬 자체적으로 휴식 시간도 가질 겸 상태를 살피러 가야겠다고 다짐한 치사토가 바삐 발걸음을 옮겼다.


“…….”


  주점 앞에서 마주쳤을 때부터 오늘따라 분위기가 이상하더라니.


  눈이 마주친 것 같은데도 별다른 반응 없이 무미건조한 카논에게 치사토가 의아함을 느꼈다. 같이 왔던 일행이 먼저 자리를 비워 기분이 가라앉아 그런 것이리라 안일하게 넘겨짚은 게 패인이라면 패인이었다.


“마츠바라 씨, 일행분은 먼저 돌아간 거 같던데.”

“…동아리에서 찾는 거 같아서. 먼저 가보라고 그랬어요.”


  평소보다 늘어지는 목소리와 엇나가듯 이어지는 문장들. 비뚠 고개를 들어 자신을 쳐다보는 카논의 안색을 살피는 치사토의 눈동자가, 딱 카논이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만 재빠르게 움직였다.


“있죠….”

“응. 왜요?”


  담담하게 운을 띄웠어도 의중이 묻어나는 음성에 치사토가 긴장한 기색을 숨기려 애써 태연하게 대답했다. 전에도 생각했었지만 이런 순간에는 자신이 연기에 능하다는 사실이 고마워지기도 하는 것이었다.


“저기 분홍 머리 여성분…, 누구예요? 잘 아는 사이예요…?”


  어깨에 힘을 줘가며 긴장했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치사토는 이걸 기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쉬이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래도 우리 사이에 괜한 오해를 사는 것이 싫어 아야와 나눈 약속을 순순히 털어놓았다.


“아야 쨩은 그냥 과 동기예요. 정확히는 과대고, 어제 공연 같이 보는 대신 주점 일을 돕기로 해서요.”


  그냥 과 동기, 정확히는 과대, 이보다 더 담백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싶던 치사토에게 카논이 성미에 차지 않았는지 이번엔 호칭을 물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둘이 엄청 친해 보여서…, 막 서로 이름으로 부르던데. 치사토 쨩, 이라고….”


  어딘가 필사적으로 매달려오는 본인도 부끄럽다는 자각은 있는지, 눈썹을 팔자로 휘어가며 커다란 눈알을 도르륵 굴려대고 있었다. 술이 들어가서 그런가 솔직하다 못해 고집을 피우는 탓에 치사토가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지금 이거. 취해서 이러는 건 아니죠?”

“아, 아니에요! 이 정도로 취하지는 않는다구요. 진짜 궁금해서 그런 거니까…….”


  말끝을 흐리는 게 늘 잊지 않고 고수하던 존댓말에 반말이 섞여 들리는 것도 같고, 이대로 놀려먹다간 저 큰 눈망울에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쏟아낼까 내심 걱정이 되기도 해서. 잠시 숨을 고르려 고개를 내리깐 치사토의 사야에 쓰러진 빈 병 옆으로 이제는 조명만이 찰랑거리는 유리잔이 들어왔다.


  아무래도 이렇게 술이 많이 고플 만큼 속상할 일이 있었다는 건데, 이런 걸로 솔직히 기쁜 마음이 전혀 없지는 않다면 혹자는 분명 너무하다 할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무얼 생각하고 있었는진 몰라도.”

“…카논이 생각한 그런 건 아니니까. 안심해.”


“…….”

“응, 치사토 쨩.”


  몰랐던 단어를 새로 배운 아이처럼 카논이 자신의 이름을 몇 번이고 입안에서 굴려보는 바람에, 치사토는 원래도 열이 많은 몸에 피가 끓는 듯 더운 기운이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실은 자신도 카논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보고 싶었다. 이름에서 오는 특유의 친근한 울림. 입술을 세로로 크게 벌렸다가 혀끝이 윗니와 입천장 사이를 가볍게 튕기는 그 이름을. 몰래 불러본 적이 있었으니까. 어쩌면 너도 나와 같은 심정으로 내 이름을 불러본 적이 있지 않을까. 좋을 대로 생각했던 날들이.


  굳이 예명으로 활동하지 않은 것에 남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새로 지어내야 할 정도로 어감이 나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평생을 안고 살아온 이름에 애착이 강하지도 않았지만. 매번 시라사기 씨, 하고 웃으며 저를 부르던 목소리가 지금 치사토 쨩, 이라고 저를 불러주니. 시라사기 치사토가, 날 때부터 수없이 불린 이름이 내 이름이어서 다행이라고.


  세상 사람 모두가 저를 팔불출이라고 놀린다 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



  모처럼의 여유에 내일은 무얼 할 거냐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찰나 사람이 빠지나 싶던 주점이 금세 다시 북적이기 시작했다. 한 번에 몰려든 손님들을 안내하던 아야가 힘에 부쳤는지 다급하게 치사토를 찾았다.


“다시 가봐야 할 거 같아. 미안해, 카논.”

“으응. 미안할 게 아닌걸. 어서 가봐, 치사토 쨩.”


  걸음마다 아쉬움을 뚝뚝 흘리며 입구로 돌아서는 치사토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카논이, 방금까지 해사하게 웃었던 사람과는 아주 다른 사람 같이, 무언가 제 살을 에는 결심을 한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누구나 카논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런 얼굴도 할 수 있구나 싶어 놀랄 터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접객 내내 카논이 앉아있던 테이블 쪽을 곁눈질하던 치사토 역시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아야 쨩, 혹시 아까 나랑 같이 있었던….”


  친구, 라고 해야 할까. 순간 일선을 넘었다고 느낀 건 저뿐이었을까. 카논을 부를 말을 고르던 치사토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떠올랐다.


“아~ 아까 짐 챙겨서 나가시는 거 같던데? 한 십 분 정도 지났으려나?”


  혼자인 게 괜찮을 리가 없었다. 적어도 자신은. 자신이 카논의 곁을 지켜야 했다.


  수 분 차이로 카논을 놓친 치사토가 무어라 덧붙이는 아야의 말을 뒤로하고 곧장 주점을 뛰쳐나왔다. 어제까지만 해도 사이좋게 손을 잡고 함께 걸었던 캠퍼스 그 어디에도 카논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눈에 띄는 차림을 해서인지 사람들이 저를 보고 수군대는 게 느껴졌지만 그런 걸 일일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심하게 경사진 캠퍼스를 구두를 신은 채로 뛰어다니니 발뒤꿈치에 뭉근한 통증이 퍼지는 듯했다.


‘앗, 아니에요! 저는 이 근처에서 자취하니까 역까지 바래다 드리려구요.’


  처음 만났던 날, 후문 근처에서 자취한다던 카논의 말을 떠올린 치사토가 급히 방향을 틀어 후문 내리막길로 내달렸다. 이미 다른 곳에서 시간을 많이 지체한 터라 더는 꾸물거릴 새가 없었다. 뭉근하다 못해 뾰족하게 저를 찔러오는 날 선 아픔이 섬세하지 못한 자신을 나무라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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