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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만남

legaldrug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10.25 02:3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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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lilyfever&no=613592


======


11


 "야."


 복도를 지나가던 중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이주희잖아?'


 같은 반이었지만 같이 얘기해 본 적도 없는 데다가 이주희는 전형적인 모범생 스타일에 조용한 애라 나랑은 다른 부류였다. 순간 내가 아니라 다른 애를 부른 건가 싶었지만 이주희는 나를 향해 똑바로 걸어왔다.


 "왜?"


 "이거 떨어뜨렸어."


 이주희가 내게 내민 것은 라이터였다.


 '뭐지, 얘는?'


 아무리 학생이라도 라이터를 무슨 용도로 쓰기 위해 들고 다니는지는 뻔했다. 그게 소문이 안 좋은 학생이라면 더더욱. 그런데 얘는 같이 말도 섞어본 적 없는 애가 떨어뜨린 라이터를 못 본 척하거나 쌤한테 넘기는 게 아니라 굳이 따라와서 돌려주려고 하고 있었다.


 "니 거 아냐?"


 "아, 맞아."


 당황해서 쳐다만 보고 있다가 이주희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라이터를 받으며 얘는 내가 누군지 모르는 건가 물어보고 싶었지만 무슨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나 알아?' 라고 물어보기 좀 그랬다.


 "근데 내 이름 모르냐? '야.' 라길래 다른 사람 부르는 줄 알았잖아."


 "이름 아는데? 이슬이잖아."


 이주희는 무표정한 얼굴로 뭘 새삼스럽게 그런 걸 묻느냐는 듯이 대답했다. 한심하다고 생각하거나 혐오하는 표정은 아니었지만 잘 알지 못하는 애라서 불안했다. 소지품 검사라도 하게 되면 가방 안에 숨겨둔 담배를 들킬 게 뻔했다. 차라리 그쪽에서 엮이기 싫다고 생각해주는 게 편했다.


 "쌤한테 이르면 뒤진다."


 "그럴 거면 애초에 주워주지도 않......"


 위협에도 무덤덤하게 대답하던 이주희는 갑자기 내 뒤쪽을 보더니 표정을 찡그리고는 돌아서서 복도 반대쪽으로 갔다.


 '뭐야, 엮이기 싫었으면 안 주웠으면 될 거 아냐.'


 뒤에 쌤이라도 있어서 같이 있는 걸 보이기 싫었던 건가 싶었지만 뒤를 돌아보니 학생들밖에 없었다. 이쪽으로 걸어오는 한 무리의 학생들이 보였지만 난 잘 모르는 평범한 2학년들이었다. 도대체 뭘 보고 자리를 피한 건지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한다고 알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대로 복도를 지나 계단을 올라가면서 걔는 교실과 먼 동쪽 계단으로 갔다는 걸 깨달았지만 점심시간에 교실로 바로 돌아가지 않을 수도 있으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평소 오지랖이 넓은 건지, 아무 생각이 없는 건지.....'


 어느 쪽이든 나한테 별로 관심 없어 보이는 듯했고, 그 점이 다행이었다. 그리곤 어차피 이런 우연이 아니면 부딪힐 일도 없는 애라 생각해서 한동안 잊어버리고 있었다.


12


 "아~ 선배님~ 좀 더 모범을 보이셔야죠."


 "으윽."


 그 일이 있고 일주일쯤 지난 날, 학교 뒤편 쓰레기장 근처에서 친구들이 한 선배를 패고 있었고, 난 좀 떨어져서 구경하고 있었다.


 "씨발, 가정교육도 제대로 못 받은 것들이, 윽!"


 "와, 선배님이 패드립 치시네."


 "야, 이슬, 저거 니 얘기하네."


 "지랄."


 놀리는 친구에게 엿을 날리고, 담배를 찾아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이젠 저런 말을 들어도 별 감흥은 없었다. 담배가 땡기긴 했지만 2학년 일진이랍시고 가오 잡으려다가 역으로 밟히고 있는 꼬라지가 우스울 뿐이었다. 휴지에 돌돌 말아서 숨겨둔 담배 한 개비를 찾았지만 휴지를 펼쳐보니 부러져 있었다.


 "아, 씨발. 야, 담배 있냐."


 "교실 사물함에."


 "간 큰 새끼."


 "어차피 들고 다니나, 사물함에 넣고 다니나, 소지품 검사하면 들키는 건 매한가진데 뭐. 비번 알지? 나중에 갚아라."


 "오오냐."


 교실로 가기 위해 학교 앞쪽으로 나왔다. 수업이 끝난 지 좀 지난 학교의 운동장은 한산했지만 중앙 현관 쪽으로 걸어가면서 연못 쪽에 누가 있는 걸 보았다.


 '이주희?'


 가까이서 본 이주희는 연못 분수대 사진을 찍고 있었다. 평소의 힘 없는 얼굴과는 달리 희미하게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고, 그런 이주희를 나도 모르게 멍하니 쳐다보았다.


 ".....이슬?"


 "뭐 해?"


 인기척을 느꼈는지 이주희는 내 쪽을 보고 이름을 불렀고, 난 얼떨결에 뭐하냐고 물어봤다.


 "와서 볼래?"


 "뭘?"


 "거기선 안 보일 걸?"


 딱히 이쪽으로 오라고 잡아끌진 않았지만 호기심에 바로 옆까지 걸어갔다. 그 호기심이 뭘 보고 있는지에 대한 것이었는지 이주희라는 애 자체에 대한 것이었는지 애매했다. 분수대 쪽을 바라보자, 이주희가 무지개 사진을 찍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무지개?"


 "응."


 "큼."


 무슨 초딩도 아니고...... 웃음이 나올 뻔한 걸 헛기침을 하면서 참았다.


 "무지개 좋아하냐?"


 "예쁘잖아. 이 시각 즈음에 이 각도에서 잘 보여."


 "무지개야 뭐, 거울을 물에 담가도 볼 수 있잖아."


 "그래도 왠지 보고 싶은 날, 밖에서 보면 뭔가 더 기분 좋잖아?"


 "그러냐."


 무지개가 보고 싶은 날 같은 건 없었기에 잘 모르겠다. 대화가 끊겨서 이주희를 보니 앨범에 들어가서 사진이 잘 찍혔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너 뺨이 왜 그래?"


 "응?"


 그제야 심하게 부은 건 아니었지만 한쪽만 빨갛게 변해있는 뺨이 눈에 들어왔다. 쌤이든 학생이든 얘가 맞을 만한 일을 했을 거라 생각되지 않아서 당황했다.


 "아, 이거. 맞았어."


 자신의 갈색 머리카락을 잡아당겨 슬쩍 가리며 넘어졌다는 진부한 변명이 아닌 짧은 진실을 말하고 이주희는 입을 다물었다. 꺼리거나 깔보지 않고 평범하게 대한 애는 너무 오랜만이라 잊고 있었는데 이런 걸 캐물을 만큼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어색하게 냉찜질이라도 하라고 말한 뒤 중앙 현관으로 걸어갔다.


 '이상한 애.'


 흡연 욕구는 조금 줄어들었지만 뭔가 답답한 기분이라 원래 하려던 대로 교실까지 가서 담배를 챙기고, 손수건을 찬 물에 적셔서 가지고 나왔다. 다시 중앙현관으로 나왔을 때, 이주희는 사라지고 없었다.


13


 쿵!


 "으윽....."


 뭔가 부딪치는 소리에 눈을 떴고, 소리가 난 바닥을 보려고 고개를 들었다. 주희가 침대에서 떨어졌는지 바닥에 누워 표정을 찡그리며 발을 잡고 있었다.


 '어? 아, 맞다. 여기 기숙사지.'


 잠이 덜 깨서 어리둥절해 있다가 여름학기 학점 교류를 신청해서 지수대에 왔고, 우연히 주희와 같은 기숙사를 쓰게 되었던 게 떠올랐다.


 "하아, 으으....."


 주희는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엄지발가락을 뒤로 꺾어 누르고 있었다.


 "괜찮아?"


 "으으..... 그냥 쥐난 거야."


 "근데 뭐 해?"


 "이러면 좀 나아져."


 저게 민간요법인지 진짜 효과가 있는지 알 수 없었으나 주희의 표정이 점점 풀어졌고, 곧 바닥에서 일어났다. 이른 아침, 갑자기 일어난 일에 당황해서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었지만 주희는 익숙한 일이었는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다시 침대에 누웠다. 그 모습을 보고 시간을 확인해 보니 아직 6시였다.


 "이제 안 아파?"


 "응, 시끄럽게 해서 미안."


 무릎 꿇고 벌 서다가 다리에 쥐 난 적은 있어도 저렇게 자다가 쥐가 난 사람은 처음 봐서 정말 괜찮은지 헷갈렸다. 침대에서 떨어진 것도 비몽사몽 한 상태로 너무 아파서 놀라 몸부림치다가 그렇게 된 게 아닌가 의심이 들었지만 너무 졸려서 그 생각을 하던 중 잠들어 버렸다.


 따르르릉!


 "으으...."


 알람 소리에 다시 깼을 때 주희는 옆 침대에 없었다. 주희 알람 소리는 못 들은 것 같은데 벌써 일어나서 씻으러 갔나 싶어 다친 발목을 조심하며 샤워실로 갔다. 씻는 동안엔 어제 기숙사로 돌아와서 했던 얘기를 떠올렸다. 묻고 싶은 건 많았지만 정작 중요한 얘기는 하지 못하고, 넌 무슨 수업 듣냐, 아침은 먹냐, 수업하는 건물 여기가 맞냐 같은 질문만 하다가 피곤해서 잠들었었다.


 '같은 수업 듣는 데다가 오늘은 과외가 없다고 했으니 나중에라도 얘기할 수 있겠지.'


 문제는 주희가 예전 얘기를 하는 걸 꺼리는 것도 꺼리는 거지만 나도 그런 주희 앞에서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도 다시 만났으니까 시간은 걸리더라도 예전과 같은 친구 사이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품었다.


 '자제 못할까 봐 걱정했는데 그건 아니어서 다행이다..... 응?'


 씻고 돌아왔는데 방 문이 열리지 않았다.


 '아 맞다, 출입증!'


 도어락이 자동으로 잠기니 화장실 갈 때도 출입증을 꼭 챙기라는 말을 어제 들었는데도 깜빡했다.


 '설마 주희가 벌써 수업 간 건 아니겠지? 으아아, 난 핸드폰도 방에 있는데? 이 꼬라지로 수업 가야 하나? 아님 수업 첫날부터 땡땡이 각인가?'


 오만 생각을 하며 애꿎은 손잡이만 덜컥덜컥 돌리던 중 갑자기 문이 열렸다.


 "어? 안에 있었네?"


 "씻고 방에 와 있었지."


 "아, 살았다. 진짜 이대로 첫날부터 째야하나 했어."


 "내가 없더라도 사감실에 가서 호실 번호와 이름을 대면 열어준다고 어제 말했잖아."


 "아, 맞네..... 깜빡했다."


 당황해서 떠올리지 못했던 사실을 듣자 호들갑 떨었던 것 때문에 괜히 민망해졌다. 그런 날 보고 주희는 힘없이 피식 웃었다.


 '아.....'


 고개를 얼른 돌렸지만 붉어진 얼굴을 주희가 봤을 것이다. 그래도 수업 첫날부터 출입증을 깜빡한 것 때문에 민망해하고 있었으니 그것 때문이라고 생각할 것 같았다. 자제가 돼서 다행이라니, 착각이었다. 겨우 옅게 웃는 모습 한 번 봤다고 이렇게 들뜨게 될 줄은 몰랐다. 주희가 괜찮아질 때까지 잘 참을 수 있을지 속으로 걱정하며 수업 갈 준비를 했다.


=====


담배는 2D면 괜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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