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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자급자족할 수 없는 소녀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10.25 15:41:18
조회 450 추천 13 댓글 2
														

병실에 누워 매일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매일 같은 약을 맞는다. 이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일련의 과정을 벌써 몇십, 몇백 번이나 반복한 걸까. 현진의 신체리듬은 간호사들의 일정에 알아서 맞추고 있었다. 약효가 떨어져 잠을 설친 경험이 숱해 검게 그림자가 드리운 두 눈 덕분에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이 정해진 규칙대로 돌아가는 이 곳에서 현진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진선이란 사람의 존재였다. 현진이 막 응급실에 실려왔을 때만 해도 금전적 문제를 제쳐두고 살 가망이 없는 절망적인 기로에 놓여있었지만, 그런 그녀를 거둬들인 사람이 진선이었다.

병원에 입원하고나서 현진은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특히 진선이란 사람이 머릿 속에서 지울 수 없었다. 자신과 같은 반이라는 것과 가끔 말을 섞은 것이 전부일 터인데, 어째서 저렇게 나를 챙겨주는 것 일까.

현진이 아닌 사람이 보더라도 진선의 걱정은 가히 병적이었다. 병문안이라는 것이 그 대상이 가족이라도 오래가긴 쉽지 않았다. 적어도 현진은 병문안을 '당하는' 입장이 되어보니 그 점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그런데도 이 진선이란 사람은 내 혈육보다 오래 나를 지켜봐주고, 나를 위해 마음 한 구석에 자리를 내어준다. 도데체 무엇 때문에......? 하지만 오늘도 어김없이 그런 잡념은 잊으라는 듯이 그녀가 병실 문으로 얼굴을 내비쳤다.

"현진아! 잘......많이 아프겠다."

진선은 주렁주렁 걸려있는 링거를 맞는 중인 것을 보고 하던 말을 무르고 현진을 걱정해주었다. 썩 좋지 못한 안색에 진선은 현진의 손에 자신의 손을 겹처 체온을 나눠주었다.

"현진아, 푹 쉬어. 말하기 힘들잖아."

고맙다고 입을 열어 성대를 울리려고 낑낑대는 현진을 진선은 손사래를 치며 속삭였다. 현진은 저번에 약이 어쩌고 머리가 어쩌고 진선에게 툴툴댔던 걸 떠올렸다. 당사자도 기억을 못하는걸 잊지 않고 배려해주는 진선의 상냥함에 현진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울지 말라는 듯이 진선이 손가락으로 빰을 쓰다듬으려고 팔을 들어올렸다.

"보호자분 잠시만요."
"아, 네!"

갑작스러운 간호사의 방문에 현진과 진선은 너나할것없이 얼굴을 붉혔다. 눈물을 소매로 문질러 닦으며 현진은 예측할 수 없는 것에 간호사도 넣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너 간호사 왔을때 표정을 너도 봤어야 하는건데."
"뭐?! 너도 눈 팅팅 부어가지고 간호사 표정이 예술이더라!"

현진은 피식 웃었다. 이런 가벼운 입씨름을 학교를 가지 못해도 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진선도 그걸 아는지 같이 웃으며 먼저 사과했다.

"미안. 내가 좀 말이 심했지?"
"이런걸로 사과하면 괜히 더 민망하잖아. 그도 그럴게."

말을 마치기도 전에 현진의 눈에서 닭똥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입원한 뒤로 현진의 감정은 상당히 예민해져있었다. 현진 자신도 가끔 당혹스러울 정도로. 몰아치는 감정에 머리가 지끈거려 고개를 도리질쳤다. 지금까지 진선이 자신에게 부은 애정이 모조리 미안함으로 바뀌어 눈물로 토해냈다.

"흑, 너, 너가아, 그런, 흑, 거로, 하, 하아, 미안,해 하면, 나는...!"
"앞으로 조심할게."

잠자코 현진의 눈물을 닦아주며 기다리던 진선은 평소에도 오래 말하진 못하던 현진이 걱정되어 말을 잘랐다. 무리한 현진이 걱정되어 침대를 조금 젖히고 담요를 덮어주었다. 거칠게 오르내리던 가슴도 조금씩 진정되기 시작하자 현진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오늘은 무슨 일 있었어?"

진선은 기다렸다는 듯이 현진의 머리를 빗어넘기며 얘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현진은 이렇게 진선을 통해 듣는 소식이 즐거웠다. 진선은 그녀답게 얘기할 주제를 현진이 좋아할 만한 것들로 언제나 맞춰주었다.

"...그랬더니..."

현진의 체력으론 도저히 수마를 거스르지 못하고 무방비하게 잠에 빠져들었다. 진선은 담요를 현진의 목까지 끌어와 덮어주었다.







언제부턴가 현진은 진선의 이야기를 듣는게 거북했다. 처음엔 답지않게 자신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다른 사람의 얘기를 하는 진선의 모습이 낯설었다. 현진은 그저 사랑에 빠진 소녀같은 반응을 보이는 진선이 마냥 신기하고, 자신이 그녀의 애인의 시간을 뺏고 있는 것 같아 미안했다. 하지만 진선이 이야기를 거듭하면 할 수록 현진의 불안은 쌓여만 갔다. 그리고 쌓여만 가는 불안감은 어느 기점으로 확신으로 바뀌었다.

진선의 애인은 현진을 빼다박았다. 도플갱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았다. 내가 보여준 모습도, 내가 진선이와 섞은 말 조차 얼마 되지 않는데, 심지어 다친 것 까지도 똑같을 수가 있단 말인가. 이내 현진은 한가지 가설에 도달했다. 진선은 자신을 대체할 새 장난감을 찾은 것이라고. 제 생각에 놀라 숨을 몰아쉬는 현진에게 한결같은 진선의 병문안은 마음을 더 어지럽혀 놓기만 했다.

"현진아, 안색이 너무 안좋아. 조금 쉬는게 어때?"

진선의 말은 현진에게 닿지 못했다. 숨길 수 없을 정도로 긴장한 현진은 애써 파르르 떨리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말이 안되는 점 투성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거금을 들이며 자신을 치료해 준 이유. 그저 돈이 썩어 넘쳐서 돈으로 할 수 없는 일을 찾아다니다 나를 발견했다고 하면 모든 걸 설명할 수 있었다. 부모보다 지대한 공을 들여 자기만을 바라보는 사람을 만든다. 마치 온실 속의 화초를 키우는 것 처럼. 그리곤 관계에 싫증이 날 때 즈음에 새 대체품을 찾으면 끝나는 사이인 것 이다.
"무슨 걱정이라도 있는거야?"

진선의 부드러운 손이 현진의 뺨을 조심스럽게 쓸었다. 그 상냥함에 현진이 몇번이나 구원받았을까. 눈물이 뺨을 타고 진선의 손을 적셨다. 어쩌면 내가 너무 넘겨 짚은게 아닐까, 설령 사실이라 한들 일방적으로 받기만 한 주제에 생명까지 구해준 진선을 나무랄 자격은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들이 현진의 머릿 속을 더 헤집어놓았다.

"현진아?"
"버리지 말아줘."

현진의 입을 겨우 비집고 나온 말은 본능에 가까운 말이었다. 현진을 떠나려는 진선에 대한 분노도, 지금까지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미안함도 아닌 순수하게 진선과 계속 함께하고 싶다는 바램이었다. 현진은 주체할 수 없이 떨리는 목소리에 진선의 말을 무시하고 다급하게 문장을 토해냈다.

"내가 아픈게 좋으면 다치게 해도 좋아. 울라고 하면 울고 자라고 하면 잘게. 그리고....."

네 두 번째가 되어도 좋으니까 제발 날 두고 가지마. 그 말이 목구멍을 꽉 틀어막은 듯이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원망스럽게도 두 눈에선 애써 참았던 눈물이 다시 쏟아졌다. 끅끅대며 억지로 말을 이어가려는 현진의 모습에 진선이 한숨을 푹 쉬며 손수건을 내밀었다.

"혹시나 해서 하는 얘긴데 최근데 한 얘기는 전부 네 얘기거든?"

토끼눈이 되어 진선을 쳐다보는 현진의 모습에 진선은 민망해서 눈을 돌렸다.

"그, 반 친구가! 좋아하는...사람한테 본인 얘기를 다른 사람인 양 들려주면 질투한다고 그러길래. 아! 내 입으로 말하게 할래!"

현진은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얼굴을 붉힌 채 더듬거리며 말하는 진선의 모습에 현진은 긴장이 탁 풀렸다.

"......나쁜새끼."

갑작스러운 욕설에 놀라 고개를 돌린 진선은 현진이 진선의 손수건을 물걸레로 만들 기세로 펑펑 우는 것을 보았다. 지치지도 않고 우는 그런 현진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진선은 현진의 볼에 입을 맞췄다.






어제 자급자족이란 단어에 갑자기 회로돈거 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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