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마이너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창작] 아까,,글쟁이,,또왔읍미다,,,,,,,요것두 보구가!

dd(175.123) 2020.11.09 01:26:22
조회 1156 추천 42 댓글 23
														

생애 처음으로 백합 글을 써본 건데 이것도 한 3년 전에 쓴 걸듯

당시에 올리브영 알바하던 때라 거기에 영향 많이 받은 거 같아

3년 전이다 보니 저때 왓슨스가 지금은 랄라블라로 바뀌었더라..


아 그리고 중간에 2인칭으로 넘어가는 부분이 있는데 실험적으로 써본 거라

조금 혼란스러워도 그냥 1인칭이나 3인칭처럼 읽으면 똑같아

잘 봐줬으면 좋겠다


======


“서연님, 수고 많았어요. 다음 주에 봬요.”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OP님이 부러움 섞인 인사를 건넸다.


“네,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 뵐게요!”


백룸을 나와 다른 스탭 분들에게도 간단한 눈인사를 하고 나는 매장을 빠져 나왔다.


“휴.”


9시, 이미 주위는 어두컴컴했다. 단 30분을 제외하곤 계속 일어서 있었던 탓에, 발바닥이 몹시도 아려왔다.


“으…정말 힘들어.”


빨리 집 가서 쉬고 싶다, 머릿속은 온통 그 생각밖에 없었다.


정류장에 도착하자, 요행인지 내가 타야 할 버스가 곧바로 정류장에 진입하였다. 운도 좋아, 나는 생각했다. 자리에 앉고 주위를 둘러보니 커플이 많이 보였다. 손에는 저마다 크기도 제각각인 종이 쇼핑백을 들고 있었다. 그 중 고디바 로고에 시선이 머물렀다. 그래, 오늘은 발렌타인데이였지, 올리브영에서 초콜릿을 그렇게도 팔아 젖혔건만 새삼스레 또 한 번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러면서, 작년 이맘때의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나도 남부럽지 않게 애인이 있었고, 양 손 가득 초콜릿도 받았었지. 왠지 멋쩍어 나는 얼른 커플들로부터 시선을 거뒀다. 이제는 아무렇지 않은 그 이름. 적어도 상상 속에서는….


 


정류장에서 내리자, 한기가 온 몸을 감쌌다. 버스 안이 따뜻했던지 바람이 더 매섭게 느껴졌다. 2월이나 됐지만 아직 날씨는 많이 쌀쌀했다. 빨리 가야겠다, 하고 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길가는 아직 환했다. 발렌타인데이의 남은 밤을 즐기러 온 많은 커플들로 북적였다. 아랑곳 않고 걸어가던 차에, 문득 어떤 가게가 밖에 내놓은 매대에 눈이 갔다. 예쁘게 포장돼 있는 초콜릿들. 익숙한 모양새다. 에이, 흔한 포장인데 뭐, 라고는 생각했지만, 이상하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마법에 걸린 것처럼, 나는 그 예쁘게 포장된 초콜릿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안녕하세요, 즐거움이 있는 곳 왓슨입니다.”


왓슨스 매장이었다. 올리브영 알바생 신분으로 왓슨스에 들어오다니, 꼭 못된 짓을 저지르는 것 같이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렇게 충동적으로 구매하는 사람이 아닌데, 참 나답지 않다 생각하면서 계산대로 향했다. 매장이 바빠서 그런지 카운터엔 직원이 아무도 없었다. 한 직원이 후다닥 달려왔다.


“안녕하세요, 계산 도….”


그리고 눈이 마주쳤다.


낯익은 두 눈에 놀람이 가득 찼다.


어색한 정적이 흐른다.


그녀는 얼른 시선을 포스기로 돌렸다. 미세하게 떨리는 손으로 바코드 리더기를 들었다.


“…도와드릴게요.”


복잡한 기분에 휩싸였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애꿎은 초콜릿만 바라보고 있었다. 계산을 마치고 떠나려는데 그녀가 내 손목을 잡았다.


“나 곧 퇴근인데 잠시만 기다려주면 안될까?”


나는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 잡혔던 손목은 곧 자유로워졌다. 얘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싶었다. 그녀는 금방 풀 죽은 표정이었다. 그녀가 뭐라고 더 말하려던 참에,


“알겠어.”


나는 나지막이 대답하고는 매정하게 걸어 나갔다.


 


“왜 기다리라고 했어?”


날씨만큼이나 차가운 말투였다.


“우리 일단 좀 걸을까?”


개의치 않고 그녀가 말했다.


“잘 지냈어?”


걸으며 그녀가 말을 걸어왔다.


“응. 뭐 그럭저럭. 너는?”


“나…음…사실 잘 못 지냈어.”


그래, 그것 참 잘 됐구나, 하는 못된 마음이 피어났다.


굳이 왜냐고 되묻진 않았다.


“아까 네가 고른 그 초콜릿, 사실 내가 포장한 거야.”


“그래? 어쩐지 익숙하더라.”


“응. 너도 혹시 알바 해?”


“응. 올리브영.”


“신기하다. 둘 다 드럭스토어에서 일하네?”


“그러게.”


그녀와 다르게 나의 온도는 꽤나 미적지근했다.


“너네도 막 포장 같은 거 엄청 했겠다, 그치?”


그녀는 뭐가 좋다고 이런 반응에도 이렇게 들떠 있는지 도통 모를 일이었다.


 


“여기 진짜 오랜만에 와보지?”


우리의 발걸음은 마치 예전처럼 우리가 익숙했던 공원으로 이끌었다.


“응. 너랑 헤어지고 나선 한 번도 안 왔지.”


“아, 그래…?”


그녀는 머쓱한 듯 웃었다.


“일단 저기 좀 앉을까?”


그녀는 저 멀리 한적한 벤치를 가리켰다. 우리는 말없이 걸었다.


 


“벤치가 좀 차갑네.”


“혜린아,”


나는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


“…응?”


“오랜만에 만나서 즐거운 건 이해해. 근데 우리 이제 이럴 사이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나도 그녀를 봐서 반가운 마음은 백 번 천 번 양보해 조금이나마 들었다. 하지만….


“내가 차인 걸로 알고 있었는데, 이건 뭐야? 연민이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나의 입에서 뾰족한 말들이 마구 쏟아졌다.


“아니, 그게 아니라….”


“나 이렇게 너랑 대화하는 이 순간에도 내 속은 마구 뒤틀리고 있거든? 아직도 그때만 생각하면…진짜 미칠 것 같아.”


나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려왔다. 그녀는 퍽 조용해졌다.


모두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녀를 보자 다시금 활화산처럼 감정의 불구덩이가 폭발해버린 것이었다. 너는 그때 대체 왜 그런 말을…. 그렇게 우는 날 내버려두고 어떻게…. 내가 그렇게 잡았는데 왜…. 하지만 어떤 의문도 끝맺지 못했다. 미완의 의문문들은 그저 혀끝에서 맴돌 뿐이었다.


“…그냥…가 버려. 여기서 너네 집 가깝잖아.”


나는 애써 입을 움직여 차갑게 내뱉었다.


“서연아.”


“부르지 마.”


출렁이는 시야 속에서 참아왔던 감정이 끝내 흐르고 말았다. 싸늘한 뺨에 눈물은 함께 식어갔다.


“너랑 헤어지고 나서…내가…흑…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하긴, 모르니까…그렇게 웃으면서…아무렇지 않게 말을 거는 거겠지.”


비참했다. 나를 비참하게 만든 사람 앞에서 나약하게 눈물이나 보이다니. 우는 바람에 말도 똑바로 잇지 못하자 나는 말하기를 그만 두었다. 옆에서 그녀가 내 등 뒤로 팔을 두르는 게 느껴졌다. 내치고 싶었지만 그 따뜻함에 그럴 수 없었다. 그 점이 나를 더 짜증나고 비참하게 만들었다. 왜 꼭 그때처럼 따스한 건데?


“미안해. 내가 다 설명할게.”


내 눈에선 눈물만 하염없이 쏟아질 뿐이었다. 여태까지 힘들었던 모든 감정들을 게워내듯. 그녀의 미안하단 말만이 귓가에 맴돌았다.


 


모든 일의 시작은 지금으로부터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와 넌 고등학교 동창이었고, 우연히 같은 대학에 다닌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우리는 급속도로 친해졌다. 너는 경영학도에 미술에 대한 재능까지 겸비한 엘리트였고, 나는 그저 평범한 불어불문학과 학생이었다. 너의 재능은 나로 하여금 질투심과 부러움 대신 매혹적인 끌림을 불러일으켰고 너의 지적 섹시함은 나의 이성적 판단을 마비시키고는 너를 볼 때마다 괜스레 심장이 두근거리도록 만들었다.


우리는 꽤나 자주 함께 술을 마셨는데, 더위가 막 시작되던 그 날은 유독 너랑 더 오래 붙어있고 싶었다. 아마 남자친구가 아주 나쁜 놈이란 것을 깨닫고 뻥 차버린 탓에, 내 마음 한가운데가 너무나도 공허했기에 그런 게 아닌가 싶었다. 혹은 그날따라 눈앞에 아른거리는 한강이 더욱 더 내 마음을 요동치게 만든 걸지도 모른다.


“아니…그니까 장거리를 했는데…다른 여자를 막…마악…이렇게…어? 후리고 다녔다잖아…. 그게 ×발…사람이냐? 짐승이지…난 또 그딴 새끼가 또 좋다고 막…”


갓 스물의 마음으론 이 슬픔이 너무나도 버거웠는지, 뭐 이런 식의 잠꼬대 같은 말을 나는 쉴 새 없이 너에게 털어놓았었다. 꼬인 혀와 퉁퉁 부은 눈, 자꾸 들이키는 소주, 너는 이런 나의 모습이 참 안쓰러웠었나 보다.


“서연아,”


너는 말했다.


“…왜.”


너의 눈에서도 왜인지 한 줄기 눈물방울이 또르르 굴러 떨어졌다.


“너가 그딴 쓰레기 때문에 이렇게 슬퍼하는 거…난 너무 싫어.”


“…왜 너가 울어. 울지 마.”


“좋아해.”


“…뭐?”


“좋아한다고.”


너의 눈이 그렇게 단호함에 불타오르는 모습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내가 온 마음을 다해 좋아하는 사람이 슬퍼하는 모습이 너무 마음 아파. 근데 더 아픈 건 옆에서 나는 그저…그저 얘기를 들어주고, 같이 욕해주고, 기껏해야 등을 쓰다듬어줄 수밖에 없다는 거야.”


“…혜린아.”


“내가 그 놈 잊게 만들어주고 싶어.”


그러고선 너는 나를 꼭 껴안아주었다. 따스한 손길이 등 뒤로 느껴졌다. 찌르르한 온기가 마음 속 어딘가에서 퍼져와 차갑게 지친 마음을 덥혀주었다.


 


그 날 이후 달라진 건 크게 없었다. 사람이 있는지 주위를 살펴보고는 서로의 손을 꼬옥 잡는 것 빼고는. 아니면 한적한 골목에서 서로의 입술을 살짝 훔친다거나, 혹은 밥을 먹다 네 얼굴에 조금 묻은 소스를 발견하면, 묻었다는 말 대신 나의 손이 먼저 네 얼굴을 닦아주는 것. 서로의 눈길에 사랑이란 것이 조금 첨가된 정도.


사실 모든 것이 달라진 것이었다.


너와의 연애는 참 꿈결 같았다. 봄의 길가에서 맡는 아카시아의 내음처럼 코끝이 간지러웠고, 푸른 잎사귀에 찾아드는 여름바람처럼 산뜻한 떨림이 가득했다.


너는 종종 내 사진을 찍어가 일주일 뒤쯤 그림으로 선물하곤 했다. 수채화 속에 담긴 나의 모습도 좋았지만, 나는 4B연필 하나만으로 그린 연필화가 참 좋았다. 부담스럽게 큰 캔버스 대신 너는 작은 화폭에 나를 담아주어, 나는 손쉽게 작은 액자에 너의 섬세한 손길을 보관할 수 있었다.


침대 위에서 속삭이던, 불어를 배워보고 싶다던 네가 처음으로 배운, ‘Je t'aime’ 그 한마디에, 나는 얼굴이 빨개져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런 날 보고 너는 귀엽다며 뺨을 쓰다듬고는 짓궂게도 입술까지 훔쳐가곤 했었다.


 


사단은, 잠잠하게 지나갈 참이었던 22살의 봄에 벌어졌다. 따사로운 늦봄의 햇살을 받으며 산책로를 걷던 중, 너의 핸드폰으로 다급한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너의 부모님이었다. 너는 퍽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냐, 괜찮아. 그 대신 내가 너네 집까지 데려다줘도 될까?”


너를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었던 나는, 그렇게 말했다. 너의 난감한 표정은 어째선지 한층 더 짙어졌다. 너는 한참 고민을 하다 결국은 나의 동행을 승낙했다. 자취방이 아닌, 처음으로 너의 본가를 간다는 생각에 나는 우리가 이정도로 친해졌구나 하며 감격스러워했다. 너는 나를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부자 동네로 이끌었고, 수줍은 표정으로 널따란 대문 앞에서 너의 집을 처음으로 소개해줬다. 얕은 언덕배기 위 커다란 이층집. 나는 멍청하게도 그제야 네가 꽤나 잘 사는 집 딸이라는 걸 깨달았다.


 


나와 황급히 작별인사를 하고 너는 대문 속으로 들어갔다. 너는 현관으로 향하며 온갖 생각에 시달려야 했다. 우선은 나에 대한 불안감이었다. 이렇게 잘 사는 걸 보여줬다가 친구들이 곁에서 떠나는 것 따위의 일을 너는 빈번히 겪어왔기에, 너는 나를 잃을까봐 불안했다. 그리고 의아함이었다. 부모님이 이렇게 갑자기 호출하실 분이 아닌데 이렇게 갑자기 부르는 걸 봐서는 무언가 큰 일이 터졌을 거라 너는 막연히 추측해보았다.


“갑자기 불러서 미안하구나.”


어머니와 아버지는 소파에 앉아 계셨다. 너도 맞은 편 소파에 앉았다. 가정부 아주머니가 차를 권유했지만 거절했다.


“다름이 아니라, 저번에 김 회장하고 얘기를 나누다가 생각이 들었는데 너도 좀 외국에 나가서 공부도 좀 해보고 견문을 넓혀야 하지 않을까 싶었단다.”


너는 시선을 내리깐 채 아무 말 없이 듣고만 있었다.


“너도 이제 22살이고, 슬슬 경영에 관심을 가져야 할 나이라고 생각한다. 네 엄마도 언제까지고 경영권을 쥐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너는 이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란 것쯤은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어떻게든 너를 외국에 보내고 싶어 하시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커피 한 모금을 들이키셨다.


“미국은 9월에 1학기가 시작한다는구나. 이번 학기 마치고 준비해서 8월엔 출국했으면 좋겠다. 뉴욕주립대학교가 경영학을 공부하기에 좋다니 그리로 가보는 게 어떻겠니.”


너는 문득 서러웠다. 지금 이 순간까지 어머니, 아버지의 뜻대로 산 인생이었다. 부모님은 경영권 승계를 원하셨고, 결국 하고 싶은 미술을 포기하고 너는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애 같이 굴지 마라. 이게 다 좋은 기회가 될 게다.”


망설이는 너의 모습이 보였는지, 아버지는 싸늘하게 말했다. 마치 네겐 날 선 칼이 베고 지나가는 것 같이 아팠다.


어느 샌가 너는 울고 있었다. 고개를 푹 떨구자 치맛자락을 꼭 쥐고 있던 주먹으로 눈물이 떨어졌다. 아버지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는 소파에서 일어나셨다.


“혜린아….”


잠자코 계시던 어머니가 네 이름을 불렀다.


“언제까지…언제까지 이렇게 꼭두각시처럼 살아야 해요?”


난생처음 내는 큰 소리였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모두 놀랐다.


“아니, 이 녀석이….”


“경영이고 회사고 다 지긋지긋해요 정말. 엄마아빠 다 너무해요. 내가 뭘 원하는지, 내가 뭐에 관심을 가지는지…아니, 제가 나온 고등학교는 아세요? 두 분 눈에는 그저 제가 후계자로밖에 안 보이세요? 맨날 얼굴 보면 이런 얘기 밖에 안 하고…정말 지긋지긋하다고요.”


너는 정말 서럽게 울었다. 양 볼로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어머니가 다가와서 어깨를 감쌌지만 너는 뿌리쳤다.


“혜린아….”


“몰라요, 부르지 마세요.”


너는 빽 소리치고는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의미 없는 반항이었을 테다.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었다. 자취방으로 돌아온 너는 침대에 털썩 엎드렸다. 집에 대한 설움이 지나가자 찾아온 건 나에 대한 걱정이었다. 나에게 선뜻 연락을 할 용기는 없었다. 이미 장거리에 한번 데인 나에게 다시 장거리를 하자고 하는 건 너로서는 못할 짓이었다. 그렇다면 남은 건 하나였다. 3개월 시한부 커플. 나와 헤어진다는 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너는 눈물이 마구 쏟아졌다. 하지만, 달리 어떤 묘안도 떠오르지 않았고, 이미 우리 커플의 미래는 정해진 것이었다. 너무 슬픈 마음에, 너는 4B연필을 집어 들었다. 그림을 그리다보면 좋은 생각이 떠오를 거야, 하며 너는 이젤 앞에 앉았다. 뿌연 시야에는 오로지 텅 빈 캔버스만이 또렷하게 보일 뿐이었다.


 


그 날 이후부터 너는 부쩍 눈물을 보이는 날이 많아졌다. 너는 어떻게 네가 떠난다는 걸 잘 말해야 할지 항상 신경 쓰였다. 나로서는 참 답답한 심정이었다. 울음의 이유를 모르겠으니 달래줘도 늘 뒤숭숭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자주 싸웠다. 서로의 마음을 이해해주지 못했기에, 번번이 서로에게 서운했다. 너는 차라리 이대로 우리가 틀어져서 내가 널 잊어주기를 바랐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네가 너무나 좋았기에 그럴 일은 절대 있을 리 만무했다.


 


8월의 어느 날, 유달리 길었던 해는 저물었고, 우리는 걷고 있었다. 이미 한바탕 전투를 치른 후라 우리 둘 사이엔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야, 넌 내가 없어져도 상관없지?”


너는 말했다. 나는 괜한 자존심 때문에, 입술을 앙다물곤 아무 말도 않았다.


“우리, 헤어지자.”


아무런 예고도 없이, 너의 입에선 무심하게도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내 심장이 고동치는 게 느껴졌다. 우리는 걸음을 멈췄다. 저물녘의 보도에 우리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뭐라고?”


나는 너를 바라봤다. 장난이겠지, 떠보는 거겠지, 내가 대답을 안 해줘서 그런 거겠지, 하고 나는 생각했다.


“헤어지자고.”


“왜 그래, 혜린아.”


“나 장난 아니야. 이제 지겨워.”


나는 고개를 푹 떨궜다. 그런 나의 모습에 너는 마음 한 쪽이 아파오는 걸 느꼈다. 하지만 너는 마음을 다 잡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내가 다 잘못했어. 정말 미안해.”


너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에 나는 바들바들 떨리는 두 손으로 핸드백의 어깨끈을 꼭 쥐었다. 왠지 너의 표정이 무시무시할까봐, 이 모든 상황이 진심인 걸 알게 될까봐 고개도 들지 못했다.


“어차피 계속 또 싸우는 날의 반복일 게 뻔해.”


“아니야…내가 더 노력할게.”


“내가 노력하지 않는다면?”


너의 그 차가운 말에 얼어붙어버린 건지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너는 계속 말을 이었다.


“어차피 결론은 똑같아. 지금 헤어지나, 안 헤어지나 어쨌든 헤어지게 될 거야, 언젠간.”


나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그럼…지금까지 우리가…이렇게 사귀었던 건…다 뭔데? 뭐였냐는 말이야….”


너는 잠시 머뭇댔다. 하지만 이내,


“아, 그거. 미안한데 진심 아녔어.”


하고는 내 마음에 비수를 꽂았다.


“여자랑 사귀는 거, 신기하잖아. 그래서…그냥 꼬셔 본 거야.”


무언가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숨이 가빠지는 게 느껴졌다.


“이제 너 갖고 노는 것도 싫증났어.”


너라는 세계의 종말이었다. 나는 마치 거대한 대재앙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서 있는 것만 같았다. 너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태풍이, 또 지진이 되어 내 마음을 부수고 있었다.


“그 동안 즐거웠어. 잘 살아.”


서둘러 이곳을 뜨려는 너를, 나는 손목을 잡아 멈춰 세웠다.


“…진짜야?”


너는 아무 말 없이 서있었다.


“…네가 한 말들…진짜냐고.”


그래도 너는 묵묵부답이었다. 그러더니 너는 나의 손을 기어이 내팽개치고는 성큼성큼 멀어져갔다. 다시금 뿌옇게 흐려지는 시야 속에서, 오로지 너의 뒷모습만이 아른거렸다. 나는 그 자리에서 꼼짝 않은 채 펑펑 울었다.


그 때 나는, 너의 뒷모습도 사실은 흐느끼고 있었단 것을 미처 알지 못했었다.


 


너와 그렇게 작별을 고하고, 너의 연락두절에 지칠 때쯤 나는 너에게서 그림 한 장을 받았다. 빨간 꽃 한 송이가 그려져 있었다. 꽃잎의 모양이 하트를 닮은 그 꽃은 리치니스라고 하였다. 뒤에는 작게 휘갈겨 쓴 글씨로 <Désolée. S'il vous plaît recevez ma sincérité.>라고 적혀 있었다. 미안하다고? 나의 진심을 받아달라고? 웃기시네. 네가 했던 모든 말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는데, 진심? 무슨 개똥같은 심보지? 분노가 느껴졌다. 나는 커터칼을 갖고 와 그 그림을 찢어 버렸다. 그러다가도 별안간 찾아드는 서글픔에, 나는 속절없이 눈물을 짓고 말았다. 찢어진 캔버스 위로 눈물방울이 툭 떨어졌다.


 


너는 결국 원치 않는 유학을 갔다. 유학을 가서도 미친 듯이 내 생각만 나던 너는, 나를 잊기 위해 그림을 그렸다. 어딘가 애잔해 보이는 파란 꽃잎을 간직한 물망초. 너는 그걸 그리며 항상 ‘나를 잊지 말아요.’하고 되뇌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너의 유학 생활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한 학기를 갓 마쳤을 무렵, 어머니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너는 부랴부랴 한국으로 돌아왔고, 어머니의 병세보다 먼저 접하게 된 건 네가 이제 후계자 수업을 받아야 한다는 통보였다.


 


문득 그녀는 말을 멈췄다. 촉촉이 젖어든 그녀의 눈가가 보였다.


“…그랬구나.”


나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사실 네 작전은 실패했어.”


나는 말을 이었다.


“왜?”


“나는 네가 그렇게 말했어도 계속 너 생각이 났거든. 미련하게도 말이야.”


이미 어두워진 하늘로 눈을 돌렸다.


“이 공원 그 이후로 안 왔다는 거, 거짓말이었어. 혹시라도 너를 만날 수 있진 않을까 하고 가끔 찾아오곤 했었지. 그렇게 말할 사람이 절대 아닐 텐데,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붙잡고 물어보고 싶었거든. 사실 지금 와서 이런 말 하는 것도 웃기지만 뭐랄까…곰곰이 생각해봤었는데 너의 그런 말에 별로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았었어. 무언가를 숨기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했고.”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진작 알려줬으면 좋았을 텐데. 너는 항상 그런 식이야. 혼자 생각하고 혼자 앓고. 그 놈한테서 데인 거, 네가 치료해주기로 해놓고선 이렇게 상처주고 떠나버리면 어떡해. 장거리가 뭐 별거라고.”


지금에 와서야 모든 오해가 풀린 게 무척 서운했기에, 나는 그녀에게 뾰로통하게 말했다.


“미안해. 내가 바보였어.”


그녀는 애꿎게 손가락만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됐어. 이제 그때 말 진심 아닌 거 알았으니까, 앞으론 무슨 일 있으면 뭐든지 나랑 상의하기로 약속해. 절대 혼자 끙끙 앓지 말고. 알겠지?”


“응, 꼭 그럴게!”


그러다 그녀는 문득 놀랐다.


“그럼 이제 우리 다시…사귀는 거야?”


나는 싱긋 웃어 보였다. 그리고는 가방에서 아까 산 초콜릿을 꺼내며 벌떡 일어났다.


“한혜린 씨, 저랑 사귀어 주시지 않을래요?”


그녀 앞으로 초콜릿을 내밀었다. 그녀의 입가에 금방 웃음이 만개하였다. 어여쁜 봄의 모습이었다.


“…좋아요.”


그녀는 수줍게 초콜릿을 받아들었다. 나는 앉아있는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사랑해, 한혜린.”


꼭 껴안고는 그녀의 귓가에 가만히 속삭였다.


“나도 사랑해.”


코끝을 간질이는, 봄의 대답이었다.


우리는 서로 마주보았다. 슬며시 눈물이 흘렀다. 서러운 기쁨의 눈물. 아카시아의 꿀을 탐하듯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감미로운 봄, 너는 온통 봄이었다.


 


우리는 함께 걸었다. 내 손은 어느새 네 손으로 가득 찼다. 그 모습에 느닷없게도 가슴이 벅차올라 잡은 손을 공연히 앞뒤로 한번 흔들어 보았다.


“혜린아, 그럼 너 앞으로 일정은 어떻게 되는 거야?”


“유학 같은 거 말이야?”


“응.”


“음, 글쎄 아마 안 나갈 거 같긴 해. 인계 받으려면 이것저것 많이 배워야 하고, 또 왓슨스 말단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일 배우면서 올라가는 걸 부모님도 바라시고 있어서….”


“아니 그럼 네가 왓슨스의 회장 딸이란 말이야?”


“으응.”


“정말 신기하다. 왓슨스의 딸이라니.”


“서연이는 올영 딸?”


우리 둘은 큭큭 웃었다.


“근데 서연아,”


“응?”


“아까 얘기 했던 것 중에 좀 궁금한 게 있어서 말이야.”


“뭔데?”


“음, 그게, 내 말이 진심 아닌 거 알았다면서 내 리치니스 그림은 왜….”


예상치 못한 질문에 민망함의 웃음을 터뜨렸다. 그림 찢은 게 못내 서운했나보다.


“아니, 또 그 그림을 받으니까 왠지 화가 나 갖고…아니 그 막 기분이 이랬다저랬다 했잖아…근데 그때가 또 화나는 때…였고…또 그게 나 혼자 추측한 거니까…확신도 없고….”


내가 더듬거리자, 그녀는 빙긋이 웃었다. 그러더니 내 뺨에 살짝 입을 맞췄다.


“여전히 귀엽네.”


“뭐야, 부끄럽게….”


“너무 귀여운데 재결합 기념으로 우리 집에서 라면 먹고 갈래?”


“그럴까…?”


우리는 마주 보고 웃었다.


이젠 무슨 일이 있어도 너와 잡은 이 손, 놓지 않을 거야, 다시는.


=========


아이피 다른 건 신경쓰지 마

본가에 있다가 자취방으로 와서 올리는 거라..

아무도 신경 안 썼다고? 미안

자동등록방지

추천 비추천

42

고정닉 14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본문 보기
자동등록방지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말머리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 설문 스타보다 주목 받는 것 같은 반려동물은? 운영자 25/10/20 - -
- AD 은퇴한 걸그룹 출신 엑셀방송 출연 후 수익 공개 운영자 25/10/24 - -
- AD 월동준비! 방한용품 SALE 운영자 25/10/23 - -
1641564 공지 [링크] LilyAni : 애니 중계 시간표 및 링크 [72] 샤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5.03.26 51272 100
1398712 공지 [링크] LilyDB : 백합 데이터베이스 사이트 [38] 샤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4.03.17 40952 120
1072518 공지 대세는 백합 갤러리 대회 & 백일장 목록 [30] &lt;b&gt;&am.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11.27 37202 21
1331557 공지 대백갤 백합 리스트 + 창작 모음 [28] 샤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1.30 36787 33
1331461 공지 <<백합>> 노멀x BLx 후타x TSx 페미x 금지 [18] 샤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1.30 23341 39
1331471 공지 대세는 백합 갤러리는 어떠한 성별혐오 사상도 절대 지지하지 않습니다. [18] 샤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1.30 24586 68
1331450 공지 공지 [39] 샤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1.30 29138 53
1758962 공지 삭제 신고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5.08.24 6579 10
1758963 공지 건의 사항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5.08.24 4990 7
1817897 일반 시오세츠는 살아있다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50 4 0
1817896 일반 시마무라의 칼날까지 읽었음 [2] 파운드케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49 17 0
1817895 일반 엥? 줄자가 이렇게나 많이 남는다고? ㅇㅇ(210.223) 20:49 13 0
1817894 일반 나백일은 진짜 쩌는거같아 고뇌하는스미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48 12 1
1817893 일반 와타타베 2권 읽는 중인데 두라두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46 19 0
1817892 일반 마이의 화살표가 전반적으로 문제가 있음 [2] 만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45 37 0
1817891 일반 루리메구 많네 [4]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45 22 0
1817890 일반 쓰레기 재수생 마키노씨 왤케 불쌍해 아삭ASK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44 20 0
1817889 일반 포켓몬za 스포) 뭐지 미친년인가 [8] 토마토햄버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41 64 1
1817888 일반 ㄱㅇㅂ 백붕이가 레전자 플탐20시간으로 클리어할수있다해서 [6] 네코야시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41 30 0
1817887 일반 레나카호 유우스즈 아논타키 레이클레 [9] 13FC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40 50 1
1817886 일반 토모리는 얀데레 집착 속성이 추가되면 개맛있어 [1] 타이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40 38 1
1817885 일반 다른거 찾다가 1권 초창기 일러봤는데 이건 좀 심하네;; [13] 여아땅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40 81 0
1817884 일반 키타 뭐하는데 [1] 공혜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38 48 0
1817883 일반 마이랑 카호 이거 해야함 [6] 여아땅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36 66 1
1817882 일반 백뉴비 와타타베 3권까지 봤는데 [1] ㅇㅇ(1.229) 20:35 30 0
1817881 일반 정식 발표는 언제나는거야그럼 [2] 만월을찾아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34 48 0
1817880 일반 샤프트 50주년 전시회 티켓 샀음 [3]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34 58 0
1817879 일반 얀데레 여동생 미쳤네 [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33 69 5
1817878 일반 프리오케 짱 재밌네 쥰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33 14 0
1817877 일반 토모리랑 첫레섹을 일부러 어버이날로 잡는 소요 [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32 39 0
1817876 일반 찐백합애니 추천해줘 [10] 치요치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32 59 0
1817875 📝번역 레나코에게 안긴 사츠키 [2] lam82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31 92 7
1817874 일반 갓컾이면 저녁 치킨먹음 [1] ㅇㅇ(61.77) 20:31 27 0
1817873 일반 사 츠 키 유 출 [1] 착한말만쓰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30 53 1
1817872 일반 “음침이 장례식 몰카에서 오열하는 갸루” 특징이 뭐임? [2] ㅇㅇ(175.122) 20:29 38 0
1817871 일반 부농이 정실은 노랭이가 아닌 거 같음 [4] ㅇㅇ(1.221) 20:28 53 1
1817870 일반 뭐가 유출된건데 [6] plyf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 110 0
1817869 일반 오늘은 한화승 번역이 안올라오네 ㅋㅋㅋ [3] 여아땅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 108 1
1817868 일반 요즘 백붕이들이 응애백붕콘 적게 쓰는거 같아서 슬프데 [16] 베어커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3 71 0
1817867 🖼️짤 lyy 아논소요 후일담 [4] 연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 151 12
1817866 일반 이거 안본 사이에 왜 이렇게 됨... [6] 히후미짱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 117 1
1817865 📝번역 뒤떨어진 후르츠 타르트 114화 [2] 산소jam의배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 73 11
1817864 일반 갸루랑 얘기할때 미드에만 시선고정된 음침이 [2] 베어커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8 38 0
1817863 일반 지금 떡밥 뭐임 [4] 치요치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7 73 0
1817862 일반 와타나레 이해 안 되는 게 [8] 백합백문학과교수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7 92 3
1817861 일반 음침이 갸루보고싶어하면 어떡함 [4] 앞으로읽든뒤로읽든야마토마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7 33 0
1817860 🖼️짤 카호레나 다음단계 떳다 !!!! [3]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7 78 5
1817859 일반 야가키미 극장판이면 좋겠다 ㅇㅇ(1.221) 20:17 22 0
1817858 일반 내 최애는 악역영애 애니 볼 생각인데 [3]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6 46 0
1817857 일반 마여 2기는 정녕 안나옴? [8] 베어커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6 47 0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