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회 초. 점수는 4 대 1. 여기서 시라사키는 투수 교체. 아이나다.
“등번호 1인 애가 나왔다!”
“타격에서도 타구가 좋았지.”
“금발 좌완 거포 파이어볼러라니. 로망 덩어리잖아.”
“그런 것 보다, 멀리서 보기만 해도 치유되는 것 같아...”
어째서 던지기도 전부터 파이어볼러라고 확신하는가는 둘째 치고. 연습투구 때 부터 3루측 관중들은 점차 소란스러워졌다.
“빠르네. 선발로 내보내는게 맞지 않았을까?”
“맞아. 저 이시가미랑도 붙어볼만 한 거 같은데.”
“분석되서 후반에 공략당하면 안되니까. 1학년이니까 약점이 좀 있는 걸 거야.”
“투 피치 정도로 변화구가 적어서 패턴이 부족하다던가. 스테미나나 제구가 안정되지 않았거나 하겠지.”
이성을 유지하고 냉정하게 바라보는 일부 사람들.
“명탐정들 납시셨네...”
차마 반박은 하지 못하는 리에. 욕심을 부리자면 하위타순이기에 그대로 료를 쓰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리에도 사쿠타도.
[6번, 포수. 카네다 선수.]
하지만 눈앞의 여자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걸 아니까. 카나 쪽에 운이 다소 강하게 작용했다는 생각도 드는 리에다.
“120 오버의 좌완...온존할 가치는 있군요. 자세한 데이터 수집은 카네다에게 맡길 수 밖에 없어요.”
플레이 볼. 신게츠는 타이밍을 의식하며 배트를 강하게 쥐고, 리에는 그저 구종의 사인만을 냈다.
거의 등으로 타자와 마주하는 것 처럼 진입하는 상체. 축이 되는 왼쪽 다리는 무릎과 지면이 서로 속삭일 수 있을 정도로 깊게 내려가고. 다소 1루쪽으로 치우친 곳에 새겨진 체중의 흔적. 스파이크를 신은 발이 자연스럽게 정면을 향하며, 아이나는 그 힘에 저항하지 않는다.
소중하게 감춰둔 듯한 앞모습이 뒤집히는 종이처럼 단번에 드러난다. 정면으로 보이는 왼팔은 어깨부터 팔꿈치까지. 이윽고 그쪽에서 움직임이 있고.
“스트---라이크으!”
마치 아이나가 등진 태양에서 내려꽂힌 빛줄기처럼. 팔을 휘두르나 싶더니 이미 공이 코앞에 있었다. 한가운데 스트라이크. 카운트 0-1.
“빨라...”
전광판 기록은 123km/h. 관객들 사이에서도 숨을 삼키는 소리나 환호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행이다. 들어가서.”
반동 탓에 하늘 높이 왼다리를 들어올리며 안도하는 아이나.
물론 아이나의 제구는 그렇게까지 불안정하지는 않다. 걱정한 부분은 스스로의 멘탈.
‘이제는 보이지 않아. 어두운 코트도, 떨어지는 공도.’
연습 시즌 때는 집중하지 않으면 보였다. 츠바사를 비릇한 일부 3학년들의 표정이. 질책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응원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한 번 더. 망설이지 말고 꽂아!’
공을 보면, 잡으면, 당장이라도 끌고 갈 듯이 다가온다.
[선배랑 그런 사이라서 주전이 된 거야?]
어금니를 깨물어 부스듯 입을 닫으며. 투석기에 담긴 돌처럼 상체를 내던진다.
“스트라이크-투!”
카운트 0-2. 스텝을 밟으며 끝까지 지켜보는 신게츠다.
‘각도가 미쳤어. 어중간하게 때리면 분명히 쉬운 플라이가 되겠는데. 타이밍은 거의 예고 없는 기계. 등과 머리 뒤에서 튀어나오는 순간에 반응할 수 밖에 없어.’
그나마 다행이라면 템포가 상당히 느린 편이다. 투구 1구 1구마다 운동량이 크고 리에도 그걸 신경써서 천천히 리드하기 때문. 높은 집중력을 유지하기 위한 루틴 동작도 프로 타자들과 비슷한 수준의 시간이 소모되고 있다.
그렇기에 정보를 정리하며 사고를 심플하게 하는 신게츠. 자신이 리드한다면 다음에는 무엇일까.
‘직구인 건 확실해.’
싸운다는 것은 단순히 데이터로만 나타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상성은 물론이요 그 순간의 기세라는 것이 있으니까. 단판이라면 기세가 높은 쪽이 몰아붙일 수 있다.
그리고 아무리 위닝샷이 강력해도 가장 공격적인 구종은 언제나 포심. 심플하게 타격 가능 시간이 짧고 구위가 강력하니까.
간파했다. 타이밍이라면 어떻게든 맞출 수 있다.
‘즉 파워 대 파워야.’
자세를 높이며 우타석 쪽으로 붙는 리에. 고개를 끄덕일 것도 없이 늘어트린 왼팔을 회수하며 상체를 일으키는 아이나.
아이나의 오른발에서 진한 갈색의 흙이 떨어져내린다. 신게츠는 완벽한 임전태세.
130 오버도 쳐 봤다. 전국 클래스의 팀과의 교류전을 통해 지켜보고 때렸다.
칠 수 있다. 칠 수 있어야 하는데.
‘높아. 멈춰야...!’
쌓아올린 훈련과 맞먹는 본능이 냉정한 대처를 허락하지 않는다. 타석에서의 아이나와는 비교할 수 없는 중압감이 덮쳐오는 상황에서 자신의 스윙을 유지하지 못하고.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인 하이 스트레이트! 등번호 1번 아야나미, 처음 상대하는 타자부터 삼구삼진!]
전광판 기록은 124km/h. 베트는 공의 궤적보다 낮은 곳을 힘없이 지나간다. 삼진으로 원 아웃에 주자 없음.
[7번, 중견수. 미유키 선수.]
그 소리를 들을 때까지 차마 미트에서 공을 놓지 못하는 리에.
“나이스 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목소리와 함께 마운드로 던진다.
‘최고야. 스피드의 문제가 아니라 회전수와 코스가 절묘해. 폼도 전혀 흐트러지지 않아서 아이나의 진가가 전부 발휘되고 있어!’
한편 신게츠는 아쉬워 하는 시간도 없이 서둘러 덕아웃을 향한다.
“장신에 더해져서 폼까지 내려꽂으니까 수직 무브먼트가 보통이 아니야. 공이 마치 떠오른다고. 내가 본 건 아마 전부 직구. 공이 언제 나올지도 알 수 없어서 상상 이상으로 빠르게 보여.”
“디셉션의 효과가 유의미한 걸 넘어서 확실한 차이를 내는 건가요.”
“맞아. 스트라이드를 내딛는 방식도 약간 크로스가 가미돼서 몸쪽에 붙이는 얍력이 강해. 유메, 구속은 어떻게 돼?”
“123, 119, 124km. 평균적으로 그 정도가 나온다고 볼 수 있겠어요.”
“124? 마지막 거는 거의 130km 이상은 되는 것 같았다고?!”
그녀의 정보에 벤치 멤버들도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한편 시합은 계속 진행되고 있고.
“스트라이크-투!”
베트가 존을 지나는 것은 공이 이미 미트를 두들긴 뒤. 그 구속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굉음이 스윙의 바람소리를 잠재운다.
‘뭐야, 이게?!’
에마가 타격에서 가장 저평가 받는 것은 변화구 대처. 그래도 직구만큼은 다른 벤치 선수 정도는 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코스 같은 건 신경쓰지 마. 지금 그대로, 네가 하고 싶은 대로 와!’
3구는 또 인 하이.
“배터, 아웃!”
겨우 스치는 배트. 두 타자 연속 삼구삼진. 투 아웃에 주자 없음.
[8번, 2루수. 아사다 선수.]
타유가 준비를 마치자마자 아이나는 와인드업. 과연 사인 교환이 있었을까 싶은 타유였다.
“스트라이---크!”
초구는 인 로우. 가운데에 가까운 어설픈 위치지만 휘두르지 못했다.
“파울!”
한가운데. 앞선 타석들을 보고 코스를 노리고 들어왔기에 명중했다. 하지만 타구라기 보다 배트에 튕긴 듯한 공은 앞으로 날아가지 못하고 곧바로 벽을 직격. 카운트 0-2.
유효타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을 넘어 다른 문제가 있었다.
‘맞췄을 뿐인데, 손이 저려...’
싸우지 못할 정도의 통증은 아니다. 동글동글한 눈으로 필사적으로 아이나를 노려보며 배트를 고쳐잡는다.
“날아다니는군, 아야나미.”
리듬이 무너지는 걸 경계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지켜보는 것에 신경이 쓸리는 카에데.
“역시 내 풍경은 이게 좋아.”
카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여름 태양의 열기도, 흐르는 땀도, 옷의 감촉도, 심지어는 후각도 미각도. 그저 아이나를 볼 뿐.
공을 받을 때 부터 투구까지의 일련의 동작을 매일 듣는 애청곡처럼 반복해서 즐긴다.
“흥분하는게 보이네, 리 짱.”
“저 포수, 표정이 제대로 폈어.”
이번에도 미트가 겨누어진 곳은 타자의 가슴팍.
‘역시 나는.’
지평선 너머에서 날아오는 포격 같은 기세의 공. 발사염처럼 뜨겁게 빛을 발하는 태양 아래에서 반짝이며 휘날리는 백금발. 허공을 휘젓는 배트 너머에서 거칠게 휘둘러진 좌반신을 거칠게 회수하는 모션.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또 삼구 삼진! 시라사키의 등번호 1번 아야나미, 5회 초 등판 직후 삼자 연속 삼구 삼진! 류오 학원을 상대로 공 9개 삼자범퇴!]
타이밍 상 완전한 헛스윙은 아니었으나 이번에도 배트는 공의 아래를 허무하게 가를 뿐. 이걸로 쓰리 아웃 체인지.
‘이제 아이나 말고 다른 사람의 공을 받고 싶지 않아. 아이나가 좋아. 진짜 좋아해.’
자신도 모르게 마운드로 달려갈 뻔 했지만 아직 지고 있는 상황. 자중하고자 하며 덕아웃으로 뛰어가는 리에다.
“나이스 피칭, 아이나짱!”
“절호조잖아, 아야나미!”
“믿고 있어, 에이스!”
“사랑해, 아이나!”
리에의 역할을 대신 하듯 아이나를 애워싸며 돌아오는 야수들. 카나는 아예 왼팔에 매달렸다.
선두타자인 리에가 서둘러 보호구를 벗기 시작할 때 겨우 도착한 아이나.
“나이스 피칭.”
“예.”
“하지만 특정 위치를 노릴 땐 아직 코스가 어설퍼.”
“예.”
“뭐, 그건 하루 이틀로 고쳐지는 게 아니니까. 전력으로 달리자. 기세로 눌러버리는 거야.”
“예!”
있는 힘껏 미소지으며 리에의 등 뒤로 돌아가는 아이나. 정성껏 잠금을 풀어 몸통과 다리의 프로텍터를 벗긴다.
“혼자서도 괜찮은데...”
벤치 위에 포수 세트를 내려놓고 다리에 손을 두르며 발목 보호대도 씌운다.
“리에가 좀 더 편하게, 힘내 주셨으면 하니까요.”
등에 이마를 맞대며 말한다. 일어나며 두 손은 리에의 어깨로 향한다.
“...다녀올게.”
지금까지 시합 전개 중 기세는 최고조. 무너트리고 싶지 않았다. 그런 생각으로 사적인 감정을 억누르는 리에다.
시합은 5회 말. 슬슬 맥주가 바닥나서 한 잔 더 주문하기 시작하는 관중들이다.
[9번, 포수. 타카하시 선수.]
류오 덕아웃의 관심은 타석에 있지 않았다.
“대체 어디서 저런 투수가...”
“어디 중학교, 어디 팀인지 아는 사람 있어?”
“유메가 모르는 아이를 우리가 알 리가...”
유메는 5회 초 투 아웃 시점부터 앉은 그대로 몸을 떨 뿐.
‘타격이 좋다고는 빈말로도 말하지 못해. 빠른 공 위주로 카운트를 잡고 슬라이더로 마무리 할까.’
미트를 몸쪽에 겨누는 신게츠. 사인은 포심.
‘그래. 그렇겠지. 나는 결국 보이는 대로 휘두를 뿐이야!’
전광판 기록은 122km/h. 크게 휘두르는 리에지만 공은 3루측 벽으로.
“파울!”
카운트 0-1.
‘의외로 타구가 강한데.’
‘무거워. 제대로 회전하고 있는 거겠지. 하지만 나도 아이나랑 실전으로 싸워봤으니까.’
연습 시즌에 종종 사쿠타가 받아주는 것으로 아이나와 야수들 간의 라이브 배팅을 가졌었다.
장타를 뽑아낸 것은 유우키와 료 뿐. 마야와 리에는 상대전적 1안타에 그친다.
하지만 그 연습의 의의는.
‘몸쪽에 커터. 배트 안쪽을 파고들어서 파울이나 범타가 되도록.’
커터, 컷 패스트볼은 변화가 적은 슬라이더 같은 움직임을 보이는 변형 패스트볼. 반대손 타자의 배트 손잡이쪽을 맞아 배트를 잘 부러트린다고 해서 cut fastball이다.
장점은 빠르면서 동시에 무브먼트. 그리고 제대로 구사된다면 포심과의 구분이 거의 안 된다는 점.
'평소보다 공을 길게 잡고 있어. 온다!'
그렇지만 투수의 동작과 빠른 공을 끝까지 지켜볼 수 있게 된 것이 그 라이브 배팅의 의의다.
"볼!"
허리쪽으로 파고드는 공을 걸러내는 리에. 카운트 1-1이다.
'역시 쿠세가 있어.'
시라사키 측은 시합 전에 히나를 선발로 예상했다. 작년 가을에는 불펜에서만 나왔지만 봄에는 선발 기용되는 일이 제법 있었고 하사미 감독의 신뢰를 받으니까. 흔히 두 번째 투수에게 주는 등번호 11번이 그 신뢰의 증표다.
이에 대한 대항책은 간단했다. 유의미한 구사율을 가진 구종을 전부 영상자료를 뽑아내어 반복 시청을 한 것이다.
타자와 투수의 상성 관계는 특정 구종에 대해서도 성립한다. 같은 투수의 직구에는 맥을 못 추지만 커브는 열에 아홉은 때려낸다거나, 반대의 경우도 말이다.
반복해서 눈에 새기는 방법으로 자신이 노릴 공을 처음부터 좁히고 들어간 시라사키 나인이었다.
거기에 뒤따른 부수입이 쿠세를 알아낸 것. 리에와 토도 자매가 눈치챈 바에 의하면 변형 패스트볼을 던질 때 다른 때보다 릴리스 타이밍이 늦는 버릇이 있다. 마야는 체인지업의 경우는 오히려 빠르다고 얘기했다.
사실 그렇게까지 차이가 선명하지는 않다. 지금까지 해 온 훈련 덕분에 하나 정도는 거의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는 거다.
"볼-쓰리!"
3구째의 투심과 4구째의 커브를 참아내며 카운트 3-1.
'너무 얕봤나.'
직구 사인. 몸쪽. 확실하게 존에 넣을 것을 강조하는 신게츠.
"스트라이크-투!"
전광판 기록은 121km/h. 낮게 탄착군이 형성되다가 갑자기 들어온 인 하이에 대처하지 못한 리에. 이로서 3-2, 풀카운트다.
'마무리는 뭘로?'
'이 포수, 눈이 좋은 상태야. 유인구는 잘 먹히지 않겠지.'
그런 판단에서 신게츠가 요구한 것은 가운데에서 몸쪽으로 흘러가는 커터. 집중력이 올라가 있다고 해도 리에는 근본부터 요령있는 배팅과는 거리가 멀다. 지켜보고 삼진 당하던가 땅볼을 치던가 하라는 이지선다다.
밀려 들어오는 궤적. 구종은 판별됐다. 평소와는 다르게 큰 레그킥과 함께 크게 휘둘러오는 리에.
"파울!"
3루 베이스의 입장에서 바로 오른쪽 옆을 때리는 타구. 타이밍은 맞았지만 히팅 포인트를 빗겨갔다. 카운트는 그대로.
'노리고 쳤는데...!'
역시 통쾌한 안타는 자신의 몫이 아닌 건가 생각하는 리에다.
'노림수를 모르겠군. 지금까지 그녀들이 크게 휘두른 건 직구 직구 체인지업 커터. 빠른 공에 덤벼든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아이하라는 체인지업 타이밍에 제대로 맞춰서 쳤어. 정통으로 맞았으면 위험했지.'
너무 생각하면 자멸한다. 일단 지금의 리에가 타이밍이 빠르다는 건 학실한 정보. 그렇다면.
'체인지업!'
여기서부터는 오로지 리에 자신과의 승부였다. 절묘한 코스에서 바깥쪽으로 떨어지려는 서클 체인지업. 참을 수 있을까.
스텝은 이미 밟았고, 연동되듯이 허리가 돌아간다. 리에는 밸런스를 포기했다. 휘둘러지려는 우반신을 억제하기 위해 축발인 왼발을 최대한 타석 바깥쪽으로 당기며 브레이크를 건다. 결국 정말 순간적으로 존에 들어간 배트가 회수된다.
신게츠는 스윙이 아니냐고 신호를 보내지만 1루심은 번복하지 않고.
"볼! 볼 포!"
"좋았어!"
선두타자로서 제 역할을 해냈다. 던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배트를 내려놓고 1루로 향하는 리에. 이렇게 노 아웃에 주자 1루.
"나이스 저지, 리에!"
"나이스 출루!"
주자가 나갔다. 베이스가 3개나 있는 야구에선 별 거 아닌 것 같을지 몰라도 투수에게는 천지 차이다. 즉 이변이다.
[1번, 유격수. 혼죠 선수.]
'귀찮은 일이 일어나버렸군.'
아웃카운트를 잡지 못한 채로 현제 2타석 2출루의 카에데. 거기에 다음 타자는 배팅 에이스 나카무라 유우키.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 또한 가능하면 리에도 진루시켜선 안된다.
'그런 순간의 초구를 두들긴다!'
가운데로 몰린 투심. 망설임 없이 휘두르고 제대로 중심에 맞춰보이는 카에데.
타구는 2-3루간. 3루수 케이가 다이브하지만 늦다. 살짝 앞에서 공을 기다리던 루이도 달려가며 글러브를 내린다.그러나 역동작을 취하는 시야 끝에서 바운드하는 타구를 지켜볼 뿐이고.
[내야를 뚫는 통렬한 안타! 5회 말, 아웃카운트가 올라가지 않은 채로 주자 1-2루의 찬스를 잡는 시라사키 고교!]
"대체 뭐야, 이 팀?"
한 이닝 전과는 너무나도 다른 전개에 포커페이스가 무너지는 히나. 땀을 훔치는 그녀에게 다가가는 신게츠다. 타임아웃.
"히나. 아무래도 볼 배합이 읽힌 것 같아. 내 탓이야."
"으응. 방금 건 실투잖아, 카네짱."
그리고 히나로서도 짚이는 점이 있었다.
"아무래도 나를 잡으려고 제대로 준비한 것 같은데. 봄에도 유라한테 제대로 당했잖아. 데이터 야구인가 뭐시긴가."
그녀의 단점이라고 하면 역시 결정구의 부재. 탈삼진율이 낮고 통계상 풀카운트 승부에서 피안타율이 높다.
"그때도 3점으로 막아내고 이겼잖아. 점수야 줄 수도 있어. 중요한 건 아웃카운트를 잡아내는 거야."
"역시 나만의 위닝샷이 필요한 걸까."
"그런 말 하지 마. 우리 둘이서 얼마나 아웃을 쌓아왔는데. 이번에도 할 수 있어."
그래도 히나의 표정에는 불안이 남아있다. 신게츠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돌리며 말한다.
"2점."
"응?"
"2점까지로 막아내면, 상, 줄테니까..."
그녀의 뺨이 붉어지는 걸 본 히나는 겨우 웃는다.
"즉 카네짱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거?"
"그렇게까지는 말 안했잖아, 바보."
"부끄러워 할 거 없잖아. 서로 안 보이는 점 위치까지 다 알면서."
결국 때린다. 제대로 배 중앙에 들어간 보디 블로에 콜록거리는 히나.
"이제 좀 살만한가 보지? 상대는 그 사나다를 공략한 나카무라야. 제대로 집중해."
해산. 시합 재개다.
[2번, 1루수. 나카무라 선수.]
2타석 1안타 1볼넷. 완벽하기야 하지만 타점이 없다. 유우키도 전혀 티가 안 나지만 스트레스가 있다.
"이번엔 거르지 말아줘~."
말투는 평온하지만 사실 협박이다.
"걱정하지 마. 히나짱이라면 이길 수 있으니까."
일단 냉정하게 상황을 정리해보는 신게츠.
'주자 1-2루. 타카하시는 몰라도 혼죠는 그렇게 느리지 않아. 나카무라를 상대로 병살을 기대하기는 어렵지. 좌익수 쪽에서 잡게 하는게 이상적이야.'
초구는 아웃 로우 슬라이더. 유우키는 부동. 카운트 1-0다.
2구는 같은 코스 투심. 잘 들어간 공은 1루측 관중석에 직격이다. 카운트 1-1.
'이걸 잡아당겨?'
파워에 감탄하며 휘파람을 부는 히나.
'그쪽이야말로 제법인데.'
자신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제구에 칭찬하고픈 유우키.
'타이밍을 흔들어볼까.'
신게츠의 주문은 커브. 존 가운데에서 볼로 빠지는 코스.
유우키는 노리는 구종 같은 건 없었다. 노리는 건 오직 장타.
공 한 개 정도 벗어나는 좋은 유인구. 하지만 유우키를 상대로 그런 공을 던진 것은 어설픈 판단이었다.
"센터!"
내야는 타구를 본 직후 정지. 곧바로 커버 위치로 향한다.
우중간을 가르는 라인드라이브성 타구. 넘어가나 하는 관중도 있었지만 발사각이 조금 모자랐다.
전광판 아래의 울타리를 코앞에 두고 떨어지는 펜스 직격. 내로라 하는 홈런 도둑들도 물리적으로 처리할 수 없는 타구다.
중견수 에마가 벽에 튕긴 것을 노 바운드로 캐치. 하지만 그 시점에서 리에는 3루를 돌았다. 카에데도 뒤이어 3루 베이스를 박찬다.
유격수 루이가 커버. 원 바운드 송구를 받아 곧바로 유우키의 발목을 노리지만 늦었다.
[2학년 나카무라의 2타점 적시타! 4 대 3. 단 3명의 타자로 점수차는 다시 1점! 이대로 역전할 수 있을 것인가!]
"나이스 배팅, 유우키!"
"성공했네요, 전진 속공 타순!"
"그래. 밀어붙여, 클린업!"
생환 주자와 대기 타자들이 섞여들며 점수는 이제 4 대 3. 노 아웃에 주자 2루 상황이다.
"벌써 날아갔어, 2점."
"약한 소리 말고 일어나. 지금부터 무실점이면 세이프잖아?"
사실 그렇게까지 상심한 것은 아니다. 상대가 나카무라니까. 승부한 걸로 만족한다는 마인드로 마음을 다잡는 히나다.
[3번, 2루수. 오오토리 선수.]
카나는 슬슬 직감할 수 있었다. 오늘은 크게 휘둘러서 되는 날이 아니다.
'아이나. 보고 있어 줘.'
그렇다면 정교함을 노린다. 그거야말로 오오토리 카나의 정체성이니까.
유우키를 홈으로 부를 수 있을만한 위치를 몰색하던 도중이었다.
"세이프!"
능숙한 견제. 한 걸음 더 리드를 벌리자마자 히나가 등을 돌리고, 가까스로 귀루하는 유우키.
'시간을 들여서라도 확실하게. 존 구석을 빠른공으로 집요하게 노리자.'
고개를 끄덕인 뒤 한 번 더 2루를 보는 히나. 사실 히트 앤 런도 염두에 두었기에 찔리는 구석이 있는 사쿠타, 리에, 마야였다.
'노린다면 우익수 앞. 1루수의 머리를 겨우 넘기는 이미지로.'
카나는 인코스를 노리고, 신게츠는 아웃 로우를 지시.
"스트라이크!"
바깥쪽 꽉 차는 직구. 스트라이크라는 것은 알았지만 노리는 공이 아니기에 걸렀다. 카운트 0-1.
'커터. 빠지도록.'
커터의 매력은 같은 손 타자에게 슬라이더 대용으로도 쓸만하다는 것. 구속과 무브먼트가 동반되는 메이저리거들은 삼진이 필요할때 던져서 제대로 헛스윙을 끌어낸다.
"볼!"
정말 같은 코스에서 급격히 휘어나간다. 하지만 바깥쪽 공을 노리는 건 몰렸을 때. 그렇게 정해놓은 카나는 움직이지 않는다. 카운트 1-1.
'체인지업. 확실하게 볼로.'
신게츠는 몸쪽으로 고쳐 앉고.
"파울!"
드디어 카나의 스윙이 나왔다. 존에서 절묘하게 무릎쪽으로 꺽이며 떨어지는 공을 맞춰낸다. 카운트 1-2.
'슬라이더. 몸쪽에서 바깥쪽으로 궤도가 존에 형성되도록.'
카나의 노림수를 어느정도 읽은 리드다. 패스트볼에 반응하지 않으니 휘두르게 하려는 의도도 있다.
'그렇게 간단히는 당하지 않아.'
무슨 일이 있어도 유우키는 진루시킨다. 그 일념으로 히팅 포인트에 직격시킨다. 밀어친 타구는 거울에 빛이 반사되듯이 던졌을 때와 같은 각도로 좌측을 향하고.
"서드!"
3루수 케이의 점프 캐치. 젓가락으로 콩을 집는 것처럼 겨우 글러브와 닿아있는 공.
"아웃!"
3루수 직선타로 아웃. 이제서야 원 아웃. 원 아웃에 주자 2루다.
"으으윽..."
여러모로 복잡한 감정인 카나다. 분하고, 분함을 느낄 수 있는 야구가 즐겁다. 그리고 덕아웃에서 아이나를 보자 우울해진다.
"1점이라도 더 선물하고 싶었는데. 미안, 아이나."
"괜찮아요.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니까."
"그래도."
"정말, 괜찮아요. 저, 카나를 믿고 있으니까요."
대기타석으로 향하며 조용히 전한 말에 카나는 더 이상 반문할 수 없었다. '어린애냐!' 하고 스스로 태클을 걸면서도 솔직하게 기쁜 것이다. 이런 결과에도 믿어주다는 것이.
[4번, 중견수. 스즈키 선수.]
료는 확신했다.초구로 끝날 거다.
'체인지업부터 시작하자.'
료가 선호하는 건 초구 속구. 역이용해서 먼저 카운트를 벌고, 체인지업을 경계시켜 빠른 공을 제대로 못 치게 하고자 하는 생각이다.
문제는 본인이 그걸 짐작했다는 것이고.
"라이트!"
좋은 소리를 낸 타구는 우측으로. 하지만 타이밍이 완벽하지 못해 얕게 떠오르고.
"아웃!"
우익수 플라이. 투 아웃에 주자 2루. 비거리가 부족해서 터치업 하지 못한 유우키.
[5번, 투수. 아야나미 선수.]
하위타선부터 공격이 시작되서 클린업에서 아웃카운트가 쌓여 투 아웃.
'끝내자. 인 로우 슬라이더.'
분위기를 탄 순간에 이닝을 넘기고 싶다. 그런 생각의 승부수.
등 뒤에서 나오는 듯한 아슬아슬한 공을 깔끔하게 받아치는 아이나지만.
"아웃!"
중견수 에마가 다이브 캐치. 뛰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자빠지듯이 뛰어들어 건져낸다.
[쓰리 아웃 체인지! 초반에는 연속 안타를 허용했으나 끝내 동점은 허용하지 않는 스기노! 점수는 4 대 3. 양팀의 남은 공격은 4이닝! 시합의 행방은 어떻게 흘러갈까요!]
"나이스 피치!"
"나이스 수비!"
이제는 시합 중반의 끝을 고하고 종반으로 나아가는 터닝 포인트. 여기서 새로운 바람이 다시금 불었다.
"스기노. 잘 던졌다."
고개를 끄덕이며 어깨에 손을 얹는 하사미. 뒤이어 언제 그랬냐는 듯 몸을 돌린다.
"미츠키."
"네."
"어깨를 데워둬라."
이제는 패를 꺼낼 때. 하사미와 유메의 의견이 겨우 일치하는 순간이었다.
*백붕이 사정이 있어서 다음 화는 확정적으로 다음주야.
댓글 영역
획득법
① NFT 발행
작성한 게시물을 NFT로 발행하면 일주일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최초 1회)
② NFT 구매
다른 이용자의 NFT를 구매하면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구매 시마다 갱신)
사용법
디시콘에서지갑연결시 바로 사용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