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르페코! 오라휠-!! "
마리의 지시를 들은 모르페코가 제자리에서 열심히 발을 놀리자, 오색빛의 에너지 덩어리들이 쳇바퀴의 형태로 모인다. 파직, 파직 소리를 내며 위협적으로 발광하는 오라 휠이 공기를 찢으며 빠른 속도로 날아간다. 목표물은 시야를 가득 메운 거대한 수룡, 갸라도스다.
" 갸라도스, 얼음엄니로 맞받아쳐! "
우리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갸라도스가 거대한 입에 냉기를 한껏 머금는다. 그리고, 쇄도하는 오라 휠을 말 그대로 물어뜯었다. 모르페코의 주특기인 오라휠은 제대로 타격을 입히지도 못하고, 갸라도스의 엄니에 부딪혀 그 형체를 잃고 사라졌다.
" 뭐!? "
다음 지시를 기다리며 발을 동동 구르는 모르페코. 그러나 마리의 머리는 정지 상태였다. 어째서, 전기 기술에 4배의 타격을 입는 갸라도스가 오라 휠을 일격에......
" 갸라도스-!! 폭포오르기-!! "
어느새 물의 에너지를 전신에 한껏 두른 갸라도스가, 놀랍도록 빠른 속도로 모르페코를 향해 돌진했다. 집채만한 덩치와 맞지 않는 폭력적인 속도였다.
" 모르- "
뒤늦게 지시를 내려 보는 마리. 그러나 이미 승부는 났다. 폭포오르기가 명중했고, 모르페코는 그대로 기절했다.
" 모르페코, 전투 불능. 갸라도스 승리! 따라서 승자는, 펄롱마을 출신의 가라르 챔피언, 우리-!! "
지쳐 쓰러진 모르페코를 볼에 집어넣으며,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문다. 애초에 가라르지방 챔피언을 상대로 이길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굴욕적인 패배가 또 있을까.
' 분명 유리한 타입 상성에, 모르페코는 내 에이스 포켓몬이었는데..... 거기다, 오라휠을 그렇게 쉽게...... '
자신도 하나의 마을을 담당하는 어엿한 체육관 관장. 납득이 가지 않는 패배를 당한 것이 마리는 분했다. 그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저 멀리서는 귀여운 초록 베레모를 쓴 여자아이가 마리 쪽으로 총총 뛰어왔다.
" 마리~! 오늘도 시합, 재밌었어! 모르페코는 여전히 귀엽더라. 너도, 네 포켓몬도 잘 지내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
" ......그러셔. 너도 건강한 것 같네. 배틀 잘 했어. "
평소 같았으면 웃으며 받을 인사였지만 마리는 우리에게 악의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괜히 화가 났다.
' 가스나, 우리 모르페코는 그냥 귀엽고 끝이가? '
무려 4배라는 불리한 타입 상성이었는데도, 마치 자신의 모르페코가 하나도 위협이 되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는 생글생글 웃고 있다.
" 응! 마리랑 배틀하는 거, 정말 재밌으니까! "
' 그거야, 우리 네가 늘 이기니까 그렇겠제... '
" 나도, 재밌었어..... "
" 어라, 마리. 몸 상태가 안 좋아? 안색도 그렇고, 목소리도... 병원이라도 같이 가 볼래? 나 아머까오 데려 왔으니까, 공중날기로... "
" ...됐어. "
둔감한 주제에 이런 것만 눈치가 빠르다. 꾹꾹 밀어붙이는 호의를 잘라내자니 내가 나쁜 사람이 되는 것만 같고, 넙죽 받아들이자니 체면이 서지 않는다. 마리는 별것도 아닌 일에 괜히 어린아이처럼 짜증이 났다.
" 되긴 뭐가 돼! 정말 안 좋아 보이는데! 그러지 말구, 나랑 같이... "
" 가스나, 됐다고 안카나!! "
저를 잡아끄는 우리의 손을 탁, 소리가 나게 밀쳐내며 마리가 쏘아붙인다. 올망졸망한 우리의 갈색 눈동자가 금세 당혹감으로 물드는 것을, 마리는 똑똑히 보았다.
" 그, 그러니까...! 내, 내 말은, 내가 분명 괜찮다고 했잖아! 그럼, 그럼 내 말을 듣는 척이라도... 하... "
이유도 없이 낸 짜증이니만큼 당연히 자기변호도 제대로 될 리가 없다. 답답한 마음이 가슴 위로 올라와서, 아예 목구멍을 틀어막은 기분. 쳐내진 손을 거둬들이며, 우리가 머쓱하게 웃는다.
" 으응, 그렇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은 다들 있는 법이니까. 난 이만 가 볼게. 마리도 잘 지내, 또 배틀하러 올게! "
" 자, 잠깐. 우리야, 그러니까 나는.... "
마리가 붙잡을 새도 없이, 아머까오가 스파이크마을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방금까지 우리가 웃던 자리에는 어느새 까만 깃털 하나만이 남았다. 아머까오의 단단한 강철 깃털을 주워서 어루만지고 있자니, 마리는 마치 그 깃털에 가슴이 쿡쿡 찔리는 기분이 들었다.
*
" 마리, 그 소식 들었어? "
여느때처럼 도감의 진척도를 보고하러 찾은 매그놀리아박사의 연구소에서, 소니아가 마리를 잡아세웠다.
" 무슨 소식이요? "
" 글쎄 우리 걔가, 다른 지방으로 여행을 떠날 지도 모른대. "
" ...네? "
날벼락같은 소리에, 마리는 그대로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 이번에 하나지방 물풍경시티라는 곳에서, 각 지방의 유명한 트레이너들이 모이는 토너먼트 대회가 열렸잖니. 거기에 참가하고 나서 뭔가 동기부여를 받은 모양인지... 하나지방이나 신오지방 쪽으로 여행을 해 보고 싶다더라. "
" ...하나, 신오? "
스파이크마을에서 나고 자란 마리에겐, TV 속 화면으로만 보던 이름들이다. 그런 곳으로 여행을 간다니, 그것도 우리 혼자서...
" 갑자기... 가라르 챔피언 방어전은 어떻게 하고. "
" 방어전은 1년까진 뒤로 미룰 수 있으니까... 우리야 뭐 방어전을 못 치루게 되어서 챔피언 자격을 박탈당한다고 해도, 그렇게 신경쓸 것 같지도 않지만. 단델이 배틀도 없이 우리에게서 타이틀을 뺏어오는 것에 만족할 것 같지도 않고, 후후. "
속 편하게 얘기하는 소니아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마리의 머리는 복잡했다. 우리가 떠난다니...... 그런 건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 ...그렇네요. 저는 가 볼게요, 건강하세요. "
" ...어라!? 마리, 도감은 보여주고 가야지~! "
*
침대에 쓰러지듯 누워서, 마리는 제 방 천장을 한참이나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잠깐 몸을 일으켜서 창문 너머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어린 시절부터 늘 보던 스파이크마을. 똑같이 음침한 거리, 늘 보던 익숙한 사람들.
마리의 가라르리그 활약 이전에는 방문객도 별로 없던 우범지대였던 이 마을에도 점차 생기가 돌고 있다지만, 그래봤자 스파이크마을이었다. 변방의 조그마한 마을이 마리 하나의 노력으로 사람들이 바글대는 엔진시티나 슛시티가 될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래도, 마리는 이 마을이 좋았다. 오빠의 자리를 이어받아서 스파이크마을에 남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마리는 이 마을, 나아가 이 지방을 떠날 생각을 조금도 하지 못했다. 마을의 발전을 돕고, 리그에도 꾸준히 얼굴을 비춰서 이름을 알리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우리와 만나게 되었다.
처음 만남부터 우리가 특별한 아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심지어 배틀도 그 아이에게 한 번도 이기지 못했지만... 우리가 제 옆에 꾸준히 있어주는 것에 마리는 의미 모를 안도감을 느꼈다. 그렇게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와 발을 맞추어 걷고 있으면, 나도 조금 느리지만 똑바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러니까, 우리에게 특별한 감정을 품게 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 그런데, 우리 너는 다른 곳을 보고 있었구나...... '
마리는 핸드폰을 켜고 동영상 스트리밍 사이트에 접속했다. 그리고 올해 열린 물풍경시티 토너먼트의 준우승자 인터뷰 영상을 클릭했다.
" 정말, 정말정말 대단했어요!! 처음 보는 포켓몬도 많고...! 배틀 방식도 각자 다양해서! 하나지방은, 기회만 되면 정말 꼭 한번 여행해보고 싶네요! "
화면 속에서 빛나는 우리의 눈빛이 왠지 제 속을 긁는 것만 같아서, 마리는 신경질적으로 핸드폰을 벽에다 던져 버렸다. 그렇게 기대에 물든 우리의 표정을 난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 샤크니아의 새끼는 결국 잉어킹 떼와는 같이 헤엄칠 수 없다는 걸까.
' 어쩌면, 우리는 벌써 질려버린 걸까... 가라르지방에도, 챔피언 타이틀에도, 스파이크마을에도... 나에게도. '
" 큐잉~ "
어느새 발치에 다가온 모르페코가 무언가를 건넨다. 마리의 분홍색 스마트폰이다. 먹구름이 낀 듯 복잡하기만 했던 마음도 아양을 떠는 모르페코 덕에 조금 풀리는 듯 하다.
" 주워 와줬구나. 고마워. "
금세 특성 [꼬르륵스위치] 로 폼이 바뀐 악 타입 모르페코가 핸드폰을 줄까 말까 하며 짓궂은 장난을 친다. 킬킬대는 모르페코에게 딱밤을 먹이고는, 핸드폰을 다시 받아들었다. 오늘 따라 더 보고 싶지 않았던 초록색 신규 메시지 알림과 함께.
[ 우리 : 마리, 몸은 좀 괜찮아? 혹시 시간 있어? 오늘 전해야 할 말이 있어서. ]
*
스파이크마을의 저녁은 밖보다 빨리 찾아온다. 제멋대로 들어선 보랏빛 건물들이 지평선보다도 먼저 지고 있는 태양을 가려 버리기 때문이다. 오후 5시인데도 벌써 어둑해진 하늘을, 마리는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 마리~!! 늦었다, 미안! "
한 손으로 베레모가 날아가지 않게 붙잡은 우리가 아머까오의 날개 위에서 폴짝 뛰어내린다. 아까 그렇게 면박을 주고 쫓아보내다시피 했는데도 신경도 쓰지 않는 우리. 그런 우리의 상냥함이 마리의 마음을 조금 더 무겁게 했다.
" ...불러놓고 늦는 건 잘나신 챔피언의 특권이라는 거니. "
" 에헤헤, 나 약속에 잘 늦는 거 알잖아. "
마리의 시니컬한 인사에도 사람 좋게 웃던 우리의 입술이, 갑자기 떼었다 붙었다를 반복한다. 마리에게는 그것이 사망 선고를 내리기 직전의 의사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 할 수만 있다면, 귀를 막고 도망가버리고 싶었다.
" ......되잖아. "
" ...응? "
" 그렇게, 그렇게 떠나고 싶으면 그냥 훌쩍 떠나버리면 되잖아... "
" ...에엣? "
" 왜, 굳이 이 지경에 와서 내 얼굴을 보고 그런 얘길... 떠나려면, 그냥 바로 가 버리라고 안카나!! "
" !? "
영문을 모르겠다는 것처럼 잡아떼는 우리가 마리는 그저 서운하고 얄미웠다. 저, 저 폭슬라이같은 가스나. 나한테 상의도 안하고 떠나버리려고 했으면서, 심지어 떠나가 직전에 나한테 일방적으로 통보하려고 했으면서...
" 니 신오나 하나 지방으로 여행 가려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았나!? 가스나, 니 내한테 이러는 거 아이다!! 어차피 가 버리려면, 저, 정말 확 떠나버리라고 했제...!
" 왜, 마음도 다 먹었으면서, 옛저녁에 떠나기로 결정했으면서, 마지막에 여지를 주는데...... 사람 가지고 노는 것도 아니고, 뭐하는 건데, 이게...... "
우리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사실 내 잘못인데. 너를 혼자서 좋아하고, 혼자서 상처 받은 내 잘못인데..... 목소리에 물기가 어리고, 시야가 이중 삼중으로 흐려진다. 좀처럼 표정이 바뀌는 법이 없던 마리의 양 볼에 눈물 자국이 그려진다.
" ...마리. "
" 됐다!! 가스나, 이제 내 앞에 나타나지 마라!! 잘나신 챔피언들이랑, 그놈의 토너먼트인지 우주 포켓몬 마스터인지 니 다 해먹어버리고 예쁜 애인도 사귀어서 아들 딸 둘씩 낳고, 평생 오래오래 잘 살아라-!!!! 우리 이 나쁜 기지배야, 폭슬라이같은 기지배야!! 흑, 으앙, 흐아앙.... 우리, 우리 이 나쁜 것아, 나쁜 것아..... "
흐르는 눈물을 하염없이 닦아내던 마리의 손목이, 우리의 작지만 굳센 손에 확 이끌린다. 놀란 마리의 눈이 염버니처럼 동그래진다.
" 가, 가스나 지금 내 손목 잡아끌고 뭐하는데!? 챔피언이니까 아무도 모르게 나 한대 때리겠다 이거가 지금!? 와, 여기 가라르리그 채, 챔피언이 사람 치네!! 동네 사람들-!! 스파이크마을 사람들-!! 이거 X튜브에 올려버릴, 이익...!! "
그러거나 말거나, 마리는 우리의 손에 끌려가다시피 해서, 우리의 아머까오에 올라탄다.
" 아머까오, 공중날기로 올라가줘, 지금 두 사람 탔으니까 조심히... "
" 무, 무슨 놈의 공중날기-!! 우리 니 내가 우습나!? 전기 포켓몬으로 니 갸라도스도 못 이겨서 우스운거 맞제!? 니 아머까오 띄우면 나 진짜, 진짜...... 고, 고소할 거다!! 이거 납치다, 납치!! "
그러거나 말거나, 아머까오는 칠흑빛의 날개를 펼치고는 금세 구름이 손에 잡힐 듯한 높이로 비상한다. 방금까지 있던 마리네 집 옥상도, 스파이크 마을도, 마치 장난감처럼 보일 때까지...
" 마리, 아직 화났어? "
" ...... "
사실 이제는 화났다기보다, 어울리지도 않게 화를 너무 많이 내서 살짝 부끄러워진 마리였다. 나름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라고 팬들이 써준 프로필에도 올라와있는데, 우리가 보면 코웃음을 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저기, 석양 예쁘다. "
눈길을 우리의 손가락 끝으로 옮기자, 새빨간 석양이 한눈에 들어왔다. 가라르 지방의 드넓은 평원이 온통 빨강, 주황, 노랑 빛으로 타들어가는 듯 했다. 그 숨막히는 경치에, 우리도, 마리도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 하나지방은, 저어기 쯤에 있대. 비행기 타고 10시간 쯤. 그리고 신오지방은 저기. 이건 몇 시간인지 까먹었다. 아하하... "
그러면서 잘도 가려고 하네. 자랑이다, 가스나야. 마리는 다른 지방 얘기가 언짢아서 괜히 입술을 내밀었다. 좋은 경치 보여주면 마음 풀릴 줄 아니, 어림도 없어. 다시 서운함이 살며시 얼굴 위로 올라오려는 마리였다.
" ...마리, 나랑 같이 여행 안 갈래?
그러니까 같이 주말에 영화나 보러 가자는 느낌으로 그런 말을 하는 우리를, 마리는 갑자기 얼빠진 표정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헤? "
" 갑자기 다른 지방으로 가려고 하니까 말이지... 나 하나나 신오에 아는 사람도 하나 없고, 가서 뭐 의식주는 어떻게 하나 싶기도 하고~ 말이 안 통하면 어쩌나, 뭐 그런 것들... 에헤헤. 외국어는 나 할 줄 모르고. "
" ...그런 거면, 현지 가이드 고용하면 되잖아. 돈도 많으면서. "
" 그리고, 외로울 것 같아서... "
" ...하!? "
" 가라르에서는, 너랑 늘 같이 여행하다시피 했으니까. 배틀도 하고, 캠핑도 하고, 이런저런 일도 있었고... 솔직히 나 은근히 기다렸거든. 너랑 또 마주치는 거. "
" 뭐, 뭐라카노 니 지금...!? 니 여행하면서 우리 같이 지낸 게 뭐 얼마나 많다고, 하, 참... 하... "
어이없다는 듯 대꾸하면서도,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애써 고정하려는 마리. 그런 마리가 귀엽다는 듯, 우리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마리를 꼭 껴안는다.
" 그, 그만 놔라!! 여기 하늘이다 하늘!! 우리 니 미쳤나!? 그러다 떨어지면, "
" 그러니까 나한테 붙어있어, 마리. 밑으로 떨어질라. "
결국, 뒤에서 백허그를 당하다시피 하는 자세로 아머까오 위에서 우리에게 안기게 된 마리였다.
' 가스나, 평소에도 뭐 고기 말고 나무열매만 먹고 사나. 햐, 향기도 달콤하네... 시, 심장이야.... 후... 하... '
" 처음엔 챔피언이고 뭐고 미련 없이 떠나려고 했는데, 마리 네 생각이 계속 나더라. "
귓가에 닿을 듯 속삭이는 우리의 달큰한 목소리가, 고막에 그대로 꽂히는 느낌. 얼굴이 다 빨개진 마리는 그저 치맛단 위에서 손가락만 꼬물거릴 뿐이다.
" 그러니까, 정말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가득이었는데... 마리 네 생각을 할 때마다 미련이 생겨. 남을까, 하고... "
" 그럼 차라리, 마리를 데리고 여행에 가버리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어때, 이 아이디어? "
" 야, 이 철 없는 가스나야... 너는 가라르 챔피언이고, 나는 스파이크마을 체육관 관장인데 니가 나랑 같이 야반도주를 해버리믄... "
" 챔피언은 나중에 돌아와서 다시 도전해도 되고, 스파이크 마을에는 마리네 오빠도 있으니까. 나, 나름대로 이것저것 생각해서 제안한 건데... "
그 대목에서, 늘 자신감있던 우리의 목소리가 조금 주춤하는 것을 마리는 느꼈다.
" 마리는 있잖아, 혹시 나랑 여행 가는 거, 별로야...? 이러니저러니 해도 마리가 싫다면, 어떡하지 하고... 아하하... "
인정하긴 싫지만 가슴이 쿡쿡 하고 기분 좋게 아려왔다. 우리도 나에 대해서 이것저것 고민하곤 하는구나.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배에 두른 우리의 팔을 마리는 꼭 껴안았다. 부드러운 우리의 회색 스웨터를 한참을 만지작대다가, 입을 열었다.
" 그, 그럼 약속 하나 하든가. "
" 아, 여행 경비는 뭐하면 내가 다 부담할 테니까...! "
" 그런 거 말고!! .......그, 그럼 우리 니... 나, 나 좋아하는 거 맞제 지금!? "
" 응!? "
" 나 조, 좋아하는 거 맞냐고! 좋아해서 여행 같이 가자고 하는 거 맞제! 응!? "
" 으, 응. 좋아해...... "
어느새 넘어가려는 석양보다 붉어진 우리의 뺨을 보는 것이 즐거워서, 우리의 당황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즐거워서, 마리는 한참이나 우리의 볼을 만지작거렸다.
" 흐흥, 흐흐흥... "
" 우, 우으, 마뤼이~ "
" 솔직히 나, 질투도, 집착도 많고, 밤낮 우리 니 생각만 하다가 운 적도 많다. 우리야, 이래도 나 좋으면 나랑 같이 여행 가든가, 시, 싫음 딴 여자 찾든가. 알아서 하래이...... "
" 조, 좋아! 그래서 더 좋아! "
" 그, 그럼... 여행하믄서, 나보다 예쁘고 배틀 잘 하는 여자한테 자꾸 눈길 주고 그럼, 나 두 말 않고 비행기표 끊는다, 알았나!? 어디를 가도, 서로 얼마나 떨어져 있어도 지금부터 우리 니 애인은 나니까...... "
" 지금부터 마리를 세상에서 제일 좋아할게, 그리고 평생 곁에 있을게... "
" 그리고, 그리고...! "
자꾸만 조잘대는 마리의 입술을 우리가 제 입술로 막는다. 마리가 떨어지지 않도록 제 쪽으로 확 끌어안고서는, 상냥하게 입을 맞춰온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입맞춤.
" ...... "
" 이제 안 불안하지? 에헤헤... "
" ...집에 가면 sns에 올릴 거야. 가라르 챔피언은, 여자 친구를 공중날기로 납치해서 하늘 위에서 키스하는 위험한 성벽이 있다고. "
" 프흐흐, 마리 다시 사투리 안 쓰네? 귀여웠는데. "
" 이, 이 가스나 뭐라카노-!! 읏...... "
*
" 우으으, 마리이~! 우리 여행 언제 가? "
" 우리 니는 참말로 아무것도 모른다 안카나. 지금 뭐 하루이틀 바캉스 가는 것도 아니고! 하나지방 비자는 받아 놨나? 포켓몬센터 등록은? 숙소는? 나 데리고 비박할 건 아니제? 근처 관광지도 가능하면 들러 보고 싶고, 구름시티는 복잡하니까 지도도 눈에 익혀두고... 뭐 하나라도 해 놨나? "
" 그냥, 가서, 어떻게든, 열정이랑, 바디랭귀지랑, 포켓몬으로... "
" 이 가스나, 지금 보니까 포켓몬 배틀 말고 뭐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네!! 그러고 혼자 여행가려고 했나!? 국제 미아 되려고! "
" 지금은 마리랑 같이 가니까, 후후... "
" 그, 그래... 매사 덜렁대는 우리 너한테는 역시 내가 있어야겠네, 그렇제...? "
" 응, 마리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
" 흐흥, 흥... 가스나 말은 잘하네... "
팜플렛을 넘기는 마리의 손길이 가볍다. 창 밖에선 마리의 모르페코도, 갸라도스의 넓은 등 위로 올라타서 미끄럼틀을 즐기느라 여념이 없다.
*
우리마리 방순마리 최고, 새벽에 손 가는대로 써서 뭔가 어색한 부분이 있을지도... 마리 사투리라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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