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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하룻밤만의 사랑, 그리고 하룻밤만의 연극

삼일월야공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11.28 03: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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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처음으로 마시는 블루 하와이라는 것은 너무도 달콤해서, 마시멜로우를 처음 먹어본 그 감각이 온몸으로 퍼지는 것만 같아 나의 몸도 어릴 적 그 시절로...그 시절로 향했다. 바라는 것도 많았고 할 수 있는 것도 많았고 원하는대로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었고, 나 스스로가 세상의 중심이던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 행복이 바로 곁에 있던 나날들로. 하지만 이런 건 보통 꿈. 잔에 비친 눈동자는 순수를 잃어버린 한 명의 여자.


‘이제...그만하자.’


한 마디에 모든 것이 무너져버린 너무도 연약한 어른은 잔을 비운다. 마음을 쓸어내린다. 그저 한 잔으로는 해묵은 마음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저기...”


“쉿, TV소리가 안 들려.”


우리가 정답게 이야기하며 웃은 것은 언제가 마지막이었을까. 나는 옆에 앉아 미지근하게 식어버린 맥주를 마신다. 김은 빠지고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하는, 그런 맥주로 목을 축인다. 맛없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는데. 그래도 그 때 샀던 돈이 아까워서, 정확히는 같이 골랐던 그 날의 기억이 아까워서 내 안에 받아들인다.


“맛없잖아, 그거.”


무심한 한 마디.


“그래도...그냥 마시는거지.”


“버리지 그랬어.”


이 때 확신할 수 있었다. 이미 우리의 길은 진작에 틀어져 있었다는 것을. 이 아이는 나와는 다른 길을 걸어갈 준비를 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여전히 교차로에 서성이는 대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아이처럼 남아 헤맬 뿐.


“너도 진작에 알고 있었잖아.”


“그래도…”


“이 이상 하기 힘들다는 거.”


예정된 이별의 때가 되어서도 나는 준비를 끝마치지 못했다. 떠나보낼 준비를, 이별의 때를. 시련은, 너무도 가혹해 상처입히는 고난은 내게 깨달음을 주었다. 결코 알고 싶지 않았던 추악한 세상의 일면을 억지로 주입한다. 내가 그렇게까지 비굴해질 수도 있다는 것을,


“그러면 그 반지도…”


“여기.”


이미 내 손을 떠난 일에 어리광을 피우는 것이,


“가지 마.”


“내가 미안해.”


“그런 사과는 필요 없으니까…”


나를 얼마나 해치는 일인 지를.


“그냥...내 곁에만 있어달라고…”


아, 정말 싫다. 이렇게까지 말하는 것 자체가 나를 상처입힌다. 하지만 말 할 수 밖에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런 투정뿐이니까. 이 사람을 잃고싶지 않으니까.


“그냥 우리 같이…”


“미안해.”


이렇게 우는 얼굴이 보기 흉해서 였을까. 자존심을 전부 내팽겨 친 내 모습이 꼴도 보기 싫어서일까.


“그래도 나는,”


“제발 그런 말은 하지 말아줘…”


“이제 너를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아.”

혼자 남은 방은 무척이나 넓어서 대자로 누워도 양팔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그 옛날 눈밭에서 하던 천사의 날개를 만드는 장난. 팔을 움직였다. 걸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걸리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다시금 눈물이 났다. 이 넓은 세상에 혼자 남았다는 현실이 너무도 잔인해서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같은 걸로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술을 마신다면, 흘려보낼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애초에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기억을 잃을 정도로 마실 각오같은 건 없었다. 결국 내가 마시는 것은 블루 하와이. 코코넛이 들어간 달콤한 음료.


흘려보낼 마음이 없어서일까, 정신은 더더욱 또렷해진다. 상처는 그대로 남아있는 채로, 쓰디쓴 마음은 변하지 않은 채로. 그런 차에 들리는 목소리.


“당신, 혼자?”


나를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그렇다면요?”


“같이 마시자고.”


쾌활하게 웃고 있는 멋있는 언니가 있었다.


“그냥 부르고 싶은대로 불러.”


“...언니.”


“좋네.”


그렇게 우리의 대화는 시작되었다. 시덥잖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알 수 있었던 것은…이 사람은 실로 괴로운 일도 쓰디쓴 술로 넘길 수 있는 어른, 나와는 다르게 모든 것을 잊어버릴 수 있는 어른이라는 것. 내가 동경하는 이상적인 모습이라는 것.


“무리해서 같은 걸 마실 필요는 없어, 술 못한다며.”


“아뇨, 그냥…”


“고집부리기는.”

이런 사람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그 아이를 잊을 수 있을까. 햇볕이 드는 창가에서 찬란히 빛나던 그 아이를, 나를 떠나 빛나고 있을 그 아이를 잊을 수 있을까. 섞인 보드카가 목을 태운다. 불에 타들어가는 듯한 고통.


“커흑...컼..”


“자자, 여기 물.”


“...감사합니다.”


“그러게 무리하지 말라니까.”


물을 마셔도 여전히 남아있는 아픔이 있어서 잔에 더 이상 손을 대지 못한다.


“애같죠?”


“그런 게 뭐 대수라고.”


그런 말을 하면서 잔에 입을 댄다. 저 사람의 목을 타고 넘어가는 한 모금.


“20살을 넘었다고 해서 어른인 것도 아니잖아. 그렇게 신경 쓸 필요 없어.”


그 말에 어딘가 마음이 움직였다.


“오늘...헤어졌어요…”


“저런,”

이 이상 말을 더 이어가기에는 고통이 더 필요해서, 잔에 남아있는 것들을 목으로 목으로 흘려보냈다. 원초적인 고통의 연속, 즐기는 것이 아닌 가학의 영역. 하지만 이러지 않고서야 제대로 토해낼 수 없을 것만 같아, 어째서 처음 만난 사람에게 내 마음을 토해내는 것인 지 모르지만 나는 잔을 전부 다 비웠다.


“...”


내 마음은 아는 걸까, 아까처럼 물을 권하지도 제지하지도 않았다. 가만히 내가 말을 하기 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고통의 너머에 있는 것, 그것은 믿을 수 없는 환영의 영역. 나도 믿을 수 없는…’내’가 되는 장소.


“...예쁜 친구였어요.”


망설임없이 이야기를 이어간다.


“분명 그럴거야.”


“있죠, 사실 반에서 인기 좋은 애는 따로 있었는데 저만...저만 그 아이가 너무 좋았어요. 이따금 그 아이가 앉아있는 창가로 눈을 돌리면, 햇살에 조금 눈이 따가워 인상을 찌푸리는 그 모습조차 너무 아름다워서 넋을 잃고 바라봤어요…어느샌가 늘 제 눈은 항상 그 아이를 쫓았고, 그게 사랑이라는 걸 알기까지는 얼마 걸리지도 않았어요. 그래도 말 한 마디 붙이지 못했어요. 학교 안에서...서로 사귄다는 소문은 돌았었는데. 그니까 선배랑 후배랑...있잖아요. 둘이 동아리나 어디서든 함께 있다가 사랑하다는 그런 이야기.”


“우리 학교에도 있었으니까.”


“그런 이야기, 근데 저는 차마 용기를 내지 못했어요. 접점도,무엇도 아무것도 없는 우리 사이는 그저 나의 짝사랑이라고. 그저...바라보기만 하면 괜찮다고. 거짓말이었죠. 사실은 너무...너무도 원하고 있었는데. 글쎄, 하늘이 도와준걸까, 어느 날 제게 말했어요. 전부터 사랑했다고.”


“아름다운 이야기네.”


“그 날부터는…”


아름다운 기억이 내게 스며든다. 아파트 옥상에서 남몰래 입맞추었던 우리, 부끄러움에 조금 시선을 돌렸지만 맞잡은 두 손은 놓지 않았던 우리. 그렇게 하루하루 사랑을 쌓아나갔던 아이들의 기억, 그리고 어른의 기억.


“학교를 졸업하고선 둘이 자취했어요. 작은 방에서, 그래도 둘이니까.”

“너희 둘이니까.”


“그 마음 변치않고 살았어요. 앞으로도 그렇게 있을 줄 알았는데. 그냥...그냥 제 착각. 아무것도 모르는 제 착각.”

처음 만난 사람의 앞에서 술에 취해, 신세 한탄이나 하고, 그리고 눈물을 흘린다.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 없지만 그래도...그래도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어서 언제까지고 그럴 뿐이었다. 그런 나의 등에 느껴지는 것은 사람의 온기. 정말 느끼고 싶었던...타인의 손길.


“있잖아요.”


“...”


“집까지 바래다 줄 수 있어요?”


“물론.”


어쩌자고 이런 제안을 한 건지 모르겠다. 이게 다 술에 취해서일까, 독한 그 한 잔에 흘러 나는 처음보는 사람을...집에 들인걸까.


“언니…”


“왜?”


“이름 물어봐도 되나요?”


자연스레 웃옷을 벗으며 말했다.


“하룻밤이면 끝날 사이야.”


내 목을 깨무는, 감각이 있었다. 아프지 않고 오히려 자연스러운 감각.


“그러면...제가 부르고 싶은대로 불러도 되나요?”

“...정 부르고 싶다면.”


“시아, 시아 언니.”


이시아, 그것은 나의 이름.


“제 이름은 희, 라희.”


한라희, 그것은 내가 사랑하는 그 아이의 이름.


“...라희, 좋은 이름이야.”


만약 잊을 수 없다면, 내게 남아있는 라희의 흔적을 지울 수없다면 나는 행복한 우리를 상상한다. 이 언니처럼,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라희를 사랑해주는 나를 그린다. 그런 나의 사랑을 받아주는 라희를 생각한다. 이것은 가짜 사랑, 하룻밤의 얄팍한 인연 위에서 춤을 추는 연극. 나는 각본가이자 배우, 무대 위에서 춤을 추는 예인. 이 무대가 끝나면 우리의 사랑은 끝난다. 아침이 밝으면 나와 라희 사랑은 사라진다.


“고마워요.”


그러니까 적어도 해가 뜨기 전까지는, 무대의 막이 내리기 전까지는 지금 이대로...지금 이대로…


“아침정도는 대접해드리고 싶었는데.”


“더 있으면 정들어서 안 돼.”


아침이 밝아 언니는 나갈 채비를 한다. 그렇게 문밖으로 나서려는 사람에게 나는 다른 말을 건네지 못한다. 간밤에 몸을 섞은 사이면서도, 할 수 있는 말은 그저.


“잘 가요.”


“...잘 지내.”


라는 단순한 인사말. 문을 닫고 볼 수 있는 건 아무도 없는 빈 방. 나는 다시 또 혼자가 된 방 안에 누워버린다. 혼자있기엔 여전히 차고 넘치는 공간. 그렇게 누운 채 몸을 움직일 때 팔에 무엇인가가 걸렸다.


‘대리 김인화’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힌 명함. 간밤에 떨어진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그것도 아니라면…


‘하룻밤이면 끝날 사이야.’


모든 것을 흘려내릴 수 있는 어른이라면, 그런 생각을 하며 명함을 곱게 접어 휴지통에 집어넣었다. 몇 시간의 추억과 함께.


그렇게 연극의 막이 내린다.


_________________________



타케우치 마리야 - plastic love

진짜 명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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