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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의사는 달나라를 꿈꾼다-5

삼일월야공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11.29 02:50:12
조회 120 추천 10 댓글 2
														

“닥터 클라리스, 모쪼록 편안한 밤 되시기를…”


2층 외진 구석에 있는 방, 그렇다고 관리에 흠이 있는 것이 아닌 방을 소개받았다. 내게 방을 안내한다는 임무를 마친 엘리스는 미련없이 문을 닫고 떠났다. 홀로 남은 방, 아직도 나는 혼란에 빠져있다. 사실 벨라의 의도정도야 금방 알 수 있었다. 벨라는 때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지금 당장 그녀의 아버지를 죽이는 것이 아니니...환심을 사는 연기, 아버지를 사랑하는 딸의 가면을 뒤집어 쓴 것에 불과하다. 본심을 숨기기위한 연기. 내가 혼란스러운 것은.


‘늙다리에게 입맞춤한 게 역겨워서.’


그런 말을 하며 내게 입맞춤한 일. 나에 대해서 조사했다면 내가...내가 거리 앞 업소에 드나드는 것도 알겠지. 그것때문일까, 그걸로 나를 묶으려고하는 걸까.


“...됐다.”


이렇게 생각만해서는 나만 더 괴로워질 뿐. 애초에 벨라, 그녀는 제멋대로인 여자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와 터무니없는 의뢰를 하고, 터무니없는 보상을 이야기하는 그런 사람이다. 방금 있었던 일도 순간의 변덕이겠지. 내가 생각해야할 건 그런 사소한 일이 아니라, 내가 이 저택에 온 이유. 벨라는 언제 아버지를 죽이라는 신호를 줄까. 애초에 유예를 두는 이유는 무엇일까. 만약 물어본다면 답을 줄까?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 생각 중 돌연 휴대전화가 울렸다.


‘내일 아침 9시, 아버지의 방으로.’


짤막한 지시.


‘예.’

‘오늘처럼만 하라고.’


덧붙여진 나도 라는 말. 내일도 오늘과 같이 연기를 하기 위해 환자의 방에 들어간다. 얄궂은 운명, 환자를 죽이기 위해 때를 기다리는 이상한 의사.


“그래도 달은 가야지.”


개조가 없는 사람들의 터전, 마약에 찌들어 잠든 이는 없는 행복한 땅. 우주에 오른다면 실로 행복할테니까, 행복할테니까. 이상하게도 편히 잠들 수 있었다. 새로운 공간임에도 마치 이전에 있었던 것 처럼 침대에서 안식을 취했다. 늘 들리던 주정뱅이의 패악질도 들려오지 않았다.


“별다른 이상이 없네요.”


뭐든지 처음이 가장 힘든 것이다. 주사를 맞을 때도, 주사를 꽂을 때도. 날카로운 바늘이 몸에 들어오는 감각을 익힌다면, 사람을 찌른다는 감각을 기억하면 그 다음부터 문제될 건 없다. 오늘도 벨라는 그녀의 아버지가 들어가있는 키스에 사랑을 퍼부었다. 나는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대답을 들으며 스크린에 출력되는 환자의 건강상태를 체크했다.


“오늘은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고맙네, 닥터 클라리스.”


눈을 감은 채, 스피커로 흘러나오는 노이즈가 섞인 남성의 말. 그것을 뒤로하고 방을 나왔다. 복도에는 어제처럼 벨라가 서있었다. 역시나 어딘가 불만섞인 표정을 한 채로, 아버지에게 애교를 부릴 때와는 전혀 다른 표정으로.


“저런 거 보고도 아무렇지 않나 보네, 당신은.”


“저야 뭐...그래도 의사잖아요.”


“신기해.”


벨라에게 이끌려 정원으로 향했다. 정원에서, 보기 드문 꽃이라도 볼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그건 오산이었다. 벨라는 지금 연초를 태우고 있다. 안드로이드 수행원의 시중을 받으며, 불을 태우고 있다.


“담배 끊으세요.”


“신경 꺼.”


“건강에 안 좋아요, 그거.”


“마약이나 팔던 당신이 할 소리는 아니야.”


“그런 말, 엘리스 옆에서 해도 되는거에요?”


“얘는 부탁만 들어주니까. 스스로 말 못 해.”


그렇지, 라며 벨라는 엘리스를 돌아보았다. 엘리스는 어떤 반응도 표하지 않았다. 제대로 된 대답을 요구하지 않아서일까, 묵묵히 재떨이만 들고 있었다.


“봐, 귀찮은 기능은 이것저것 빼고 수동적으로 만들었다고.”


“...그래도 그 얘기는 이제 하지마요.”


공개된 장소에서 그 이야기를 꺼냈다가 만약 누군가 듣는다면, 앞으로의 일에 차질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것도 있고 그냥...이제는 옛날 일 같은 건 신경쓰고 싶지 않다.


“부끄러워서 그렇지?”


“...못 속이겠네요.”


“그거 알아? 어차피 우리 둘 다 나쁜 년이라는 거.”


아버지를 죽여달라는 딸, 그리고 그 의뢰를 덥석 받아들인 의사. 그렇게 일그러져 버린 사람들의 만남. 그런 것에 고민하던 찰나 벨라는.


“그리고말야 이 라이터가 우리 어머니의 유품이라, 그래서 담패 피는거야.”


참으로 곤란한 말을 꺼냈다.


“...그런 말을 하면 저는 뭐가 되는데요.”


“아무렴 어때, 그냥 그렇다고. 그럼, 내일 봐.”


엘리스를 이끌고 벨라는 정원을 떠났다. 따라 방으로 돌아갈까 했지만 발이 떼지지 않았다. 아직 해가 지기까지는 꽤 긴 시간이 남아있어, 선인장이 아닌 꽃이 피어있는 정원이란 아름다운 것이어서 움직이기 너무 아까웠다. 내리쬐는 빛에 반사되어 차오르는 색색의 만화경.


“...의사 선생님.”


넋을 놓고 바라보기를 얼마간이었는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 자리에 있는 것은 벨라와 닮았지만, 조금은 작은 사람.


“시에로 씨...였죠?”


어제 이 저택에서 만난, 벨라의 여동생. 어제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프릴이 달려 하늘하늘한, 아직 불완전한 느낌을 주는 드레스를 입고있었다. 하지만 다른 점이라면, 품 속에 무언가를 안고 있었다는 것.


“잠시 자리를.”


“아, 예.”


옆으로 피해 공간을 만들었다. 시에로는 그 옆에 앉아, 내가 그랬었던 것 처럼 정원을 바라보았다. 이따금 품에 안고 있는 것을 살피며.


“...아이인가요?”


“여동생이에요.”


제, 여동생. 그런 말을 덧붙였다. 시에로의 품에서 편안히 잠든 아이. 마치 어머니의 품에 있는 것처럼,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안전한 요람에서 잠이든 아이.


“아이의 이름은 혹시 어떻게 되나요?”


“도로시, 이 아이의 이름은 도로시.”


도로시, 잠들어있는 이 아이의 이름은 도로시. 벨라와는 얼마나 차이가 나는걸가, 그리고 지금 이 아이를 소중히 품고있는 시에로와도 얼마나 차이가 나는걸까. ...나이가 들어서도 변하지 않는 부부관계인걸까. 하지만, 분명 어머니는 없다고 들었는데.


“귀여운 아이로군요.”


굳이 물어보지는 않았다. 설사 숨겨진 사정이 있더라도, 그것을 굳이 들추고 싶지는 않았다.


“...예, 무척이나.”


그런 말을 하면서도 어딘지 쓸쓸해 보이는 시에로의 눈. 지금 우리가 있는 장소는 꽃이 만개한, 행복한 장소임에도.


“있죠, 의사 선생님.”


“예.”


“분명 언니를 따라오신 거죠.”


불현듯 시에로는 내게 물었다.


“예, 그분이 저를 고용하셨죠.”


“언니가 저희 가족에 대해 이야기해주던가요?”


“아뇨, 별다른 말은…”


“다행이네요. 이야기를 들었더라면 지금 저와 말도 붙이지 않았을테니까.”


그것은 어딘가 슬픈 말이 되어 나에게 다가왔다. 나를 상처입히는 말이 아닌 자신을 상처입히는 시에로의 말. 내가 그렇게 느낀 것처럼 시에로는 눈물을 감추려는 듯 고개를 돌렸다. 굳이 말을 걸지 않았다. 외부인인 내가 어떻게 할 수는 없는 집안의 사정. 잠깐의 침묵이 지나고 시에로가 입을 열었다.


“내일이면 어머니가 집에 오실거에요.”


어머니, 분명 이 자매의 어머니는 돌아가셨다고 들었는데. 그러지않고서야 벨라가 유품을 가지고 있을리는 만무하니.


“벨라 씨는 분명 어머니가…”


“새 어머니에요, 새 어머니.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곧바로 재혼하셨죠.”


원체 혈기왕성한 분이셨으니 라고 농담조로 덧붙인 말. 하지만 웃지 않는 표정에서 증오를 느낄 수 있었다.


“그 사람을 조심하세요.”


시에로는 돌연 경고의 말을 한다. 어떤 의미로 갑작스레 경고의 메시지를 남기는 지, 스치는 불안감이 머리를 마비시켜 이해하지 못했다. 벨라의 동생은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 만약 모든 것을 알고있다면, 정말 그 새어머니라는 사람은...어떤 사람인 것일까.


“안녕히, 이제 곧 해가 질 거에요.”


홀로 남은 정원에서 멍하니 지평선 너머를 바라보았다. 불안감이 도저히 머릿 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 사람을 조심하세요.’


시에로는 아군인가, 적인가. 만약 모든 것을 알고있다면 그녀의 목적은 어떤 것일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때가 다가오기를. 극독을 캡슐에 주사할 순간이 오기를 기원하는 것 뿐이었다.


_________________


뭔가 좋은 곳 살 수록

뒤가 구린

그런 진부한 생각이 들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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