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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건전] 복권 당첨

진정한진정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12.02 05:21:10
조회 433 추천 25 댓글 6
														

지루한 일상 속에서 찾은 소소한 재미.


금요일의 퇴근길에는 항상 들리는 복권 매장. 매주 금요일이면 하루도 빠짐없이 오후 7시에 매장에 들려 복권을 몇 장 구매한다. 하지만 딱히 작은 확률에 기대어 높은 금액에 당첨되기를 바라며 복권을 구매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매주 여기에 오는 이유는 단 하나.


"혜진 씨! 빨리 가서 같이 긁어요!"


복권을 구매하자마자 옆에서 지켜보던 한 아담한 체구의 여성이 내 오른팔을 붙잡고 환한 미소와 함께 나를 책상으로 이끈다. 갈색으로 염색한 반 묶음 머리. 옷은 저번 주에 내가 어울린다고 칭찬한 것과 똑같은 패션으로 베이지색 목폴라 니트 원피스를 입고 있는 그녀. 오늘도 역시나 패션 포인트로 오른쪽 귀에만 물방울 귀걸이를 끼고 있다.

항상 이렇게 금요일 저녁이면 나에게 화사한 미소를 지어주는 그녀는 이미 내 삶의 활력소가 되어버렸다. 이름은 모른다. 나이도 모른다. 하지만 마치 약속이라도 하는 듯 매주 금요일, 이 시각에 이 매장에서 만나 나란히 앉아 복권을 긁는다.


"이번엔 혜진 씨가 먼저 긁을 차례죠?"

"네? 네에……"


그녀는 정말이지 에너지가 넘친다. 처음 만난 그날에도 자신의 또래 여성이 복권을 사러 오는 건 처음 본다며 먼저 말을 걸어주었으며 마치 오랜 친구였던 것처럼 붙임성 있게 나를 대해주었다. 반대로 낯을 가리던 나는 아직도 그녀의 이름을 물어보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녀의 말에 나는 미리 준비한 백 원 동전을 하나 꺼내어 복권을 긁어보았다. 첫 번째 한 장은 꽝. 당연히 꽝일 가능성이 큰 복권인지라 크게 실망스럽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 옆에 앉은 그녀는 눈에 보일 정도로 크게 실망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이내 미소를 지으며 나를 위로한다.


"괜찮아요~ 아직 네 장이나 남았잖아요? 분명 이 중에 1등짜리가 있을 거예요!"

"1등……? 꿈이 크시네요……"


그녀는 항상 긍정적이었다. 내가 긁든지 아니면 그녀가 긁든지 간에 매번 다음 장에는 반드시 1등이 있을 것이라 기대를 한다. 물론 1등에 당첨될 확률은 극악이라 당첨될 리가 없지만, 이것 또한 그녀의 매력. 나는 그런 식으로 항상 긍정적이었던 그녀에게 빠져버린 것이다.

내가 한 장을 긁은 다음에는 그녀는 미리 사둔 복권을 긁기 시작한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항상 혓바닥을 내밀면서 열심히 그리고 꼼꼼히 복권을 긁는 그녀. 하지만 극도로 운이 나쁜 그녀는 딱 한 번 1,000원에 당첨되었고 나머지는 전부 꽝이었다. 이번에도 역시 꽝. 정말로 운이 없는 여자다.


"아아~ 정말! 이번에는 당첨될 줄 알았는데~"


나라를 잃은 듯한 표정으로 크게 실망하는 그녀. 하지만 언제나 긍정적인 그녀, 곧장 미소를 지으며 나를 쳐다본다. 이젠 그녀가 딱히 말을 하지 않아도 나는 남은 복권 한 장을 긁는다. 내가 복권을 긁기 시작하자, 옆에서 지켜보던 그녀는 멀뚱히 나를 쳐다보다가 넌지시 질문을 하나 하였다.


"오늘 하루는 어땠나요?"

"네? 아 뭐어…… 언제나 똑같아요."

"혜진 씨를 보면 항상 피곤해 보여서 걱정이에요."


그녀는 공감하는 능력이 아주 뛰어나다. 게다가 표정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나인데도 불구하고 뭔가 안 좋은 일이 있는 날이면 곧장 눈치를 채고는 나를 위로해 준다. 내가 슬픈 일이 있는 날이면 함께 슬퍼해 주고, 내가 화나는 일이 있으면 함께 화내주고, 내가 기쁜 일이 있으면 함께 기뻐해 준다. 그래서 나는 그런 그녀와 함께하는 이 시간이 일주일 중에 가장 소중한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풍부한 감정과 공감 능력은 지루하고 피곤할 뿐인 내 일상에서 빛이 되어주었다.


"오늘도 상사에게 까였어요. 저는 덜렁이에 사람 대하는 법을 잘 몰라서 이런 식으로 매번 혼이 나요."

"그렇지 않아요! 덜렁거리는 건 제가 더 심하고, 저도 분위기 못 읽는다고 친구들에게 항상 웃음거리가 되는걸요!"

"하긴, 그럴 거 같아요."


이런 식으로 은근슬쩍 놀리면 입을 삐죽 내밀면서 토라진 모습이 너무 귀여운 그녀. 물론 그 긍정적인 마인드 덕에 바로 언제 그랬냐는 듯 싱글벙글 웃는다.

그렇게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복권만이 남았다. 그녀와 내가 지금까지 긁은 복권은 전부 꽝. 어째서 제일 당첨되기 쉬운 1000원조차 당첨되지 않는지, 괜히 기분이 나쁘지만 지금 내 옆에 처절할 정도로 절망하고 있는 그녀를 보니 웃음만 나온다.


"사실 저 운이 없는가 봐요…… 5등조차 당첨되지 않다니……"

"아직 한 장 남았는걸요? 지금까지 저희 두 명이 8번 꽝이었으니 이번에 큰 게 있는 게 아닐까요?"


그런 나의 한마디에 그녀는 다시 기운을 차리고 내가 복권을 긁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본다. 하지만 기대했던 것과는 다르게 5등이라도 당첨될 줄 알았던 복권은 꽝. 이로써 9번 연속 꽝이다. 이 정도면 왠지 복권회사에 사기를 당한 기분이다.


"경찰에 신고할까요?"

"아… 아직 한 장 남았으니까……"


마지막 남은 그녀의 복권 한 장. 9번 연속 꽝이라는 진기록을 남기고 당첨 확률이 높아진 마지막 복권이다.


"이게 1등 복권!"

"5등이라도 당첨되면 다행이겠죠."

"그럼 긁겠습니다!"


엄청나게 신중하고 진지하게 복권을 긁기 시작하는 그녀. 나는 그런 그녀를 지긋이 쳐다보았다. 지금 이 시각이라면 그녀를 얼마든지 볼 수 있었다. 그녀가 마지막 복권을 긁는 그때. 온갖 신경을 복권에 쏟아붓는 그녀는 내가 이런 식으로 쳐다보고 있다는 것도 모르겠지. 그렇게 어느 한 곳에 열중하고 있는 그녀의 구석구석을 훑으면서 나는 나만의 비밀의 힐링 시간을 갖는다.

전혀 복권에 눈이 가지는 않는다. 내 시선은 오로지 그녀에게 향해 있다. 그녀가 얼마에 당첨되는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그저 이 시간이 조금 더 오랫동안 유지되기를 바라며, 조금만 천천히 긁어줬으면 하는 작은 바람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조금의 시간이 지났을 때. 그녀는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같은 숫자에요! 당첨!"

"네? 정말요? 얼마에요?"

"1,000원이요."

"네에……?"


하긴, 운이 없는 그녀가 큰 금액에 당첨될 리는 없지. 하지만 천원이라도 당첨된 것에 기뻐하는 그녀. 사실은 나도 그녀가 당첨돼서 기뻤다. 왜냐하면 그 복권으로 다시 한번 한 장을 더 긁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 복권을 긁는 그녀를 지켜볼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양손에 복권을 쥔 채 나를 바라만 보고 있다. 그리고 미소와 함께 나에게 당첨된 복권을 내미는 그녀.


"음~ 이거 혜진 씨가 바꾸실래요?"

"네? 왜요?"

"선물이에요. 오늘 기운이 없어 보여서 제가 한 장 양보해 드릴게요."


딱히 필요는 없는데, 오히려 복권을 긁는 그녀를 지켜보는 것이 더 좋은데. 하지만 그녀의 배려를 사양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녀가 양손으로 내미는 1,000원에 당첨된 복권을 받아들인 나는 다시 한번 카운터로 가서 그것을 복권 하나로 바꿔왔다.


"빨리 긁어봐요. 혜진 씨!"

"1등에 당첨돼도 다시 달라고 하지 마세요."

"아니에요~ 이건 혜진 씨 거니까. 당첨돼도 혜진 씨가 가져야죠."

"무르기 없기에요."

"알겠다니까요~ 빨리 긁어요. 제가 운을 불어넣었어요."


재촉하는 그녀에 나는 다시 100원짜리 동전을 들고 복권을 긁기 시작했다. 천천히. 정성스럽게. 이미 당첨이 정해진 복권이지만 마치 이렇게 정성스럽게 긁으면 당첨될 확률이 높아질 것처럼 정성스럽게……


"어?"

"와?!"


당첨됐다. 3등, 10만 원.


솔직히 얼떨떨하다. 10만 원은 나름 큰돈. 그리고 상당히 작은 확률. 혹시나 잘못 본 것은 아닐까 해서 긁지 않은 부분을 깨끗이 긁은 다음에 다시 한번 확인해 보았다. 하지만 분명히 당첨된 10만 원. 옆에서 손뼉까지 치며 환호하는 그녀를 보며 나도 모르게 환한 미소가 지어진다.


"봐요! 당첨됐어요! 축하해요. 혜진 씨!"

"고마워요~ 어, 음 그러니까~"

"아! 수아에요. 윤수아."

"아, 수아 씨"


드디어 들었다. 그녀의 이름. 윤수아.

자신이 양도한 복권으로 10만 원에 당첨되어도 그녀는 전혀 아쉬워하는 내색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당첨된 것처럼 크게 기뻐하며 나에게 축하를 해주었다. 그리고 복권에 당첨된 기분과 함께 밝은 에너지를 내뿜는 그녀에게 동화되었던 것인지 나 또한 평소와는 다르게 텐션이 올라간 것 같은 기분이 느껴진다. 나도 이렇게 웃을 수 있구나.


"뭐할 거에요? 10만 원으로!"

"글쎄요. 세금 떼면 7만 얼마인데……"


이제 와서 느끼는 거지만 순 도둑놈이네! 이거. 그나저나 정말로 뭐하지? 꽁돈이라 평소에 절약한다고 사지 못했던 거나 살까? 아니면……


"응?"


당첨된 복권을 손에 쥔 채 그녀를 지긋이 쳐다보았다. 그러자 고개를 갸웃거리는 수아. 지금은 말할 수 있을 거 같다. 어쩌면 내가 그녀에게 가장 하고 싶었던 말. 아주 사소한 말이지만, 용기를 내지 못해 하지 못했던 말.


"수아 씨. 저랑 주말에 밥 한번 드실래요?"

"네?"

"복권 당첨된 돈으로…… 안되나요?"

"아……"


두 눈이 휘둥그레지는 그녀. 하지만 이내 평소와도 같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요. 그런데 괜찮아요? 저랑 밥 먹는 것에 그 돈을 써도?"

"물론이에요. 그리고 수아 씨가 준 복권인걸요? 저희같이 맛있는 거 먹어요."


드디어 말했다. 그리고 막상 말하고 보니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떨리지도 않았고, 거절당할까 봐 무섭지도 않았다. 그냥 조금 더 자신을 갖고, 당당하게 그녀와의 약속을 잡아보았다. 흔쾌히 허락하는 수아. 나는 기쁜 감정을 숨기지 않은 채 그대로 그녀에게 지어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잠깐 멍해진 표정을 짓다가 평소보다도 더 밝은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리고 나에게 건네는 한 마디.


"뭐에요. 웃으니까 훨씬 더 예쁘시잖아요. 앞으로는 제 앞에서 자주 웃어주세요. 혜진 씨"


그녀의 칭찬에 부끄러워져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다. 그리곤 부끄러운 이 대화에서 벗어나고자 황급히 화제를 바꾸어 그녀와의 약속을 명확히 하였다.


"그럼, 내일 볼까요? 아니면 일요일에 볼까요."

"내일 봐요! 혜진 씨, 혹시 영화 좋아하세요?"

"네? 영화요?"

"점심 먹고 영화도 볼까요?"

"네! 좋아요."

"그럼 내일 점심에 봐요. 그리고 전화번호도 가르쳐줘요."

"네, 저기 죄송한데. 혹시 나이가……"

"아, 전 스물여덞이에요. 혜진 씨는요."

"헉…… 전 스물넷……"

"제가 언니네요. 그럼 편하게 수아 언니라고 불러요."

"네에…… 수아 언니……"

"말 놓아도 되죠?"

"네! 물론이죠!"

"아 그리고~"


………………
…………
……






1년이 지난 지금.
그리고 그녀와 연인 사이가 된 지금.

우리는 가끔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며 함께 복권을 사러 가기도 했다.

물론 그 이후로도 꽝의 연속이었지만, 복권을 긁으면서 우리는 그때의 추억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복권을 긁을 때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였다.

그날 내가 당첨된 것은 과연 단순히 10만 원이 아니라고.

내가 당첨된 것은 10만 원보다도 더 큰 가치.

내가 그녀와 함께 있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고.



____________________

치킨 먹고 싶다.

____________________


사실 이건 출품하려고 쓴 소설은 아님
그냥 써보고 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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