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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마녀의 여행 팬픽] 되찾은 루프 #2 (에스텔x셀레나)

따비따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12.03 18:39:33
조회 670 추천 24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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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찾은 루프 1편 링크






***



마녀가 되고 나서 로스트루프로 돌아온 지 어언 2년째.


요즘 들어 셀레나가 이상하다.


아니, 요즘 들어가 아닌가? 생각해보면 내가 마녀 수행을 마치고 별을 본뜬 브로치를 자랑스레 가슴팍에 달고 돌아왔을 때부터인지도 모르겠다. 평상시 셀레나 같으면 ‘드디어 해냈구나, 에스텔! 축하해!’라고 같이 기뻐해줬을 텐데. 내가 마녀가 된 날, 헐레벌떡 숙소로 돌아온 나를 반겨준 것은 다소 쌀쌀맞은, 미묘한 셀레나의 반응이었다.



“……와아. 축하해, 에스텔.”


“……?”



그 뒤에 곧바로 셀레나가 다급하게 웃음을 지으면서 저녁은 내가 원하는 걸 만들어주겠다고, 뭘 먹고 싶냐고 재촉해대는 바람에 유야무야 넘어가서 기억 저편에 묻어둔 사실이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셀레나치고 좀 수상한 반응이었다.


셀레나는 나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그게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마치 자신이 직접 겪은 것처럼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해주었다. 가령 마법 훈련에서 계속 실패해서 스승님의 잔소리 때문에 풀이 죽었을 때, 셀레나는 나에게 무릎베개를 해주고 섬세하게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면서, 


“분명 조바심을 내서 그런 거야. 천천히, 에스텔이 할 수 있는 걸 차근차근 해 나가면 금세 잘 할 수 있게 될 거야.”


라고 정성껏 위로해주었다.


마법을 능숙하게 조절할 수 있게 되어 스승님에게 칭찬을 받아 기뻐할 때도 셀레나는,


“대단해! 역시 에스텔이야. 오늘은 뭐가 먹고 싶어? 에스텔이 먹고 싶은 걸로 잔뜩 만들어줄게!”


라며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다. 이런 식으로 마녀가 되기 위한 수행을 받던 시절에 나를 뒤에서 지탱해주었던 셀레나다. 그러니까 그때 셀레나의 반응은 분명 어딘가, 수상했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그 수상한 반응이 요즘 셀레나가 이상한 것과 관련이 있는 걸까? 


정식으로 마녀가 된 나와 함께 로스트루프로 돌아온 셀레나는 멍하게 있을 때가 많다. 같이 얘기하다가, 장을 보다가, 요리를 하다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그 자리에 육신을 허물처럼 남겨두고 정신만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난 듯이, 갑자기 하던 일을 멈추고 초점이 맞지 않는 눈으로 어딘가를 응시한다.


최근에는 그 상태에서 입술을 달싹달싹 움직이며 “……까지……”, “……같……있을……”, “……지도 몰라” 같이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로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기까지 시작했다.


저번 주에는 셀레나가 요리를 하고 있는 와중에 그런 식으로 멍하게 있는 바람에 손가락을 깊게 베여서 난리도 아니었다. 여태껏 요리하면서 한 번도 실수한 적이 없는 그 셀레나가 말이다. 내가 바로 곁에 있어서 재빨리 치료마법을 걸어줬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하지만 그때도 셀레나는 손가락을 베인 것은 어찌 되도 상관없다는 듯 개의치 않고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치료마법을 걸어주면서 뭐라고 하는지 자세히 들어보려고 했지만, 셀레나는 입술만 옴질거리고 있을 뿐 소리로 나오는 말이 아니어서 결국 알아듣지 못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나는 로스트루프의 전속 마녀로서 이 나라에 기여하고 있기 때문에, 거리를 거닐고 있으면 많은 사람이 나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준다. 그런데 셀레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성별, 나이를 불문하고 어딘지 모르게 위협적인 미소로 인사를 받아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이 지긋한 노신사가 “오, 라벤더의 마녀님 아닌가. 덕분에 요즘 치안이 좋아졌어.”라고 인사를 걸어오면. 내가 인사를 받기도 전에 셀레나가 가로막듯이 앞장서서



“네, 라벤더의 마녀 에스텔은 지금 무척이나 바쁘답니다. 후후후.”



라고 죽은 눈을 하고 억지웃음을 지었다. 무섭다.


그저께 셀레나와 함께 저녁장을 보러 갔을 때, 이웃집에 사는 말 많은 아주머니가 말을 걸어왔다.


“어머, 에스텔하고 셀레나 아니야. 잘 지내고 있니? 그래, 에스텔은 하고 있는 일 잘 되가고 있고? 그 뭐야 저번에……”


아하하, 그렇게 웃으며 이건 상당히 길어지겠구나─하고 생각하고 있던 찰나, 셀레나가 살기 어린 붉은 눈동자로 아주머니를 쏘아보면서 입꼬리만 간신히 올린 채로 말했다.



“저희, 빨리 돌아가서 저녁 준비를 해야 하거든요.”


“어, 어머. 그래? 내가 눈치가 없었구나. 그래, 잘 가렴.”



솔직히 아주머니의 수다 트랩에서 해방된 것은 좋은 일이지만…… 아니, 진짜 무섭다.


이건 상당히 좋지 않다. 셀레나의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길 정도로 멍하게 있는 정도가 심해진데다가, 주위 사람들에 대해 기행이라고 불러도 좋을 셀레나의 태도와 행동이 계속 이어지면서, 마침내 주변 사람들이 우리를 피하기까지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셀레나를 피하고 있는 거겠지만…… 아무튼 이대로 가다가는 셀레나가 일상생활도 제대로 보내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고, 더 나아가 이 나라에서 고립될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셀레나가 이렇게 된 원인을 찾아서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짐작 가는 게 없단 말이지. 무엇이 셀레나를 저렇게 만들었는지 아무리 생각하고 고민해봐도 알 수가 없다. 그나마 내가 마녀 브로치를 하사받게 된 날, 셀레나의 미묘한 반응만이 아주 작은 위화감으로 불현듯이 내게 떠올랐을 뿐이었다. 나는 모자를 벗고서, 지금은 삼각모자 끝에 달아놓고 있는 별 모양을 본뜬 브로치를 만지작거린다.


여기에 뭔가 비밀이 있나……? 스승님이 나한테 주기 전에 주변 사람을 이상하게 만드는 마법을 걸어뒀다든지…… 아니, 스승님이 왜 그런 짓을 하겠어. 대체 그럼 무엇 때문에 셀레나는 그런 반응을 보였던 걸까. 평상시라면 엄청 기뻐해줬을 텐데…….


머리를 감싸고 끙끙거리며 고민해봤지만, 역시 답은 나오지 않는다. 셀레나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면 금방 해결될 테지만, 아쉽게도 나는 그런 종류의 마법을 쓸 수 있는 마녀는 아니다. 뭐, 쓸 수 있다고 해도 가장 친한 친구를 상대로 억지로 마음을 엿보는 치사한 행동은 하지 않을 거지만. 그렇다고 내가 재주 좋게 빙빙 돌려 말하며 상대의 본심을 캐낼 수 있는 화술의 달인도 아니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단 하나.



“셀레나. 요즘 멍하게 있고, 다른 사람들한테 조금, 그 공격적으로 대하는 건 왜 그러는 거야?”



저녁 식사 시간, 나는 바보 같을 정도로 솔직하게 셀레나에게 물음을 던졌다. 돌려 말하는 것은 성미에 맞지 않는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말해달라고 하는 것이 나 에스텔이다. 나의 돌발적인 질문에 셀레나는 허리까지 기른 파란 유리색 머리카락을 오른쪽 어깨 너머로 늘어뜨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아니, 그 왜 지난주에 멍하니 있다가 크게 다칠 뻔 했잖아? 게다가 셀레나 요즘 나한테 인사 걸어오는 사람들한테, 뭐랄까, 다가오지 못하게 하려는 듯한? 그런 분위기를 내뿜고 있으니까 뭔가 문제가 생긴 게 아닐까 해서.”


“그으…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째서 존댓말? 셀레나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눈을 돌렸다. 그렇다는 것은 자신의 행동에 자각이 있다는 건가?


이건 조금 더 집요하게 물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셀레나. 말해 줘. 나 셀레나에게 항상 도움만 받았잖아. 무슨 문제가 있는 거라면 나에게 말해줬으면 해. 난 셀레나의 힘이 되어 주고 싶어. 그러니까, 응?”


“…………”


“셀레나?”


“……도움만 받은 건 내 쪽이야.”


“응?”



셀레나의 선명한 붉은 노을 같은 눈동자가 이쪽을 향했다. 셀레나는 미간에 주름을 만들고 조금 괴로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7년 전 그날, 에스텔에게 구원 받고 난 에스텔을 위해 살아가기로 결심했어.”


“구원이라니…… 그건 너무 과장한 거 아니야?”



셀레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매끈한 곧게 뻗은 머리카락도 고개의 움직임에 맞추어 사라락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아니, 맞아. 난 에스텔에게 구원 받은 거야. 말로 잘 설명은 못하겠지만, 아마 그때 에스텔이 날 부모님과 떼어놓고 억지로 끌고 나가지 않았다면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 거야.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상상하기도 싫은 아주 끔찍한 일.”



비록 셀레나는 구체적으로 ‘끔찍한 일’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았지만,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아마 셀레나도, 나도, 그리고 주변 사람들도 불행해지고 마는, 무척 참혹한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나 역시 구체적으로 설명하라면 잘 모르겠지만, 그런 기분이 든다. 아무리 그래도 구원이라니, 조금 쑥스럽다.


셀레나는 내 반응을 잠시 살피다가 눈을 내리깔고 담담히 말을 이어나갔다.



“어쨌든, 에스텔을 따라 외국으로 나가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서 했어. 요리, 가사, 아르바이트. 에스텔이 숙소로 돌아왔을 때, 안심할 수 있도록, 여기가 내가 안심하고 쉴 수 있는 곳이구나, 하고 생각이 들도록 열심히 했어.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야.”


“응. 그래서 나야말로, 셀레나에게 구원받았다고 생각해. 셀레나가 없었다면 마녀가 되기 위한 수행을 진작 포기했을지도 몰라.”



나는 진심을 담아 대답했다. 그도 그럴게 사실이니까. 가혹한 수행을 마치고 석양빛을 등으로 받으며 숙소로 돌아왔을 때, “어서 와, 에스텔”이라는 셀레나의 배웅과 함께 따뜻한 열기와 함께 크림스튜의 냄새가 반겨주었다.


아무리 힘들고 지쳐도, 셀레나의 무릎 위에서 눈을 감고 내 머리카락을 정성스럽게 쓰다듬는 그녀의 손길을 음미하고 있노라면, 나는 여기서 쉴 수 있구나, 이곳이 내가 돌아올 곳이구나, 하는 편안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셀레나에게 도움을 받았다, 아니, 그녀의 표현을 빌리자면, 구원을 받았다.


그에 반해서 내가 셀레나를 위해 한 행동은 최선의 방법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빌어먹을 부모라고 하지만, 그렇게 강제로 떨어뜨려 놓고 나를 따라오게 한 것이 옳은 일이었을까? 마음 한편에서 무의식적으로 셀레나를 독차지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 악마가 고개를 쳐들고 나를 부추긴 건 아니었을까? 내가 한 행동이 과연 그녀의 행복만을 바라고 한 일이었을까? 


하지만 이런 생각을 연거푸 이어나가봤자, 어린 시절에 앞뒤 생각 안 하고 무턱대고 일을 저지른 일의 동기를 명확하게 구분해내기는 어려운 일이다. 아마, 시간역행 마법을 이용해 당시의 나를 찾아가 물어봐도 제대로 된 설명을 기대하기는 어렵겠지. 그러니까 나의 의문이 해결될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런 의문이 존재하는 이상, 역시 셀레나가 자신을 구원해줬다는 나의 행동은, 내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과대평가를 받고 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진심으로, 한 점 거짓도 없이 셀레나에게 내가 셀레나를 구원한 게 아니고, 셀레나가 나를 구원한 거야, 라고 셀레나의 눈을 똑바로 마주보며 말했다.


그러자 셀레나의 얼굴은 그녀의 붉은 눈동자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내 자만일지도 모르겠지만, 셀레나는 나와 있을 때 남들에게 보여주지 않는 표정을 자주 보여주곤 한다. 지금 이런 표정도 그 중 하나. 보고 있으면 꽤 즐겁다.


그런 내 감상을 뒤로하고, 셀레나는 허둥지둥 시선을 왼편으로 돌리고선 나의 다소 부끄러운 대사를 떨쳐내듯이 다그치는 투로 말했다.



“아, 아, 아무튼!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런 게 아니야. 솔직히, 이런 말을 꺼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에스텔에게 내 마음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이 더 참기 괴로우니까…… 이 기회에 말할게.”


“응.”



셀레나가 각오를 다진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기에, 나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말하기 무척 힘든 일인가. 하지만 난 그녀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해낼 것이다. 그러니까 괜찮아.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약간 긴장한 자세로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 이런 거 말하기 창피한데…… 에스텔이 떠날까봐 무서워.”


“응…… 응?”



얘가 뭐라는 거야? 나는 셀레나의 생각지도 못한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채 귀에 날아 들어오는 목소리를 받아들일 뿐이었다. 내가 셀레나 곁을 떠나?



“내가, 셀레나 곁을 떠날까봐 무섭다고?”



그리고서도 이해가 되지 않아 결국 말로 꺼내어 그녀에게 되물었다. 내가 잘못 들은 건 아닐까. 하지만 내가 잘못 들은 건 아닌 모양인지, 셀레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역시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 셀레나는 어째서 그렇게 생각한 거야?”


“그치만, 에스텔이 마녀가 되고, 나라에서 인정받아서 로스트루프 전속 마녀가 되고, 이 나라에 기여하고…… 그건, 기뻐, 기쁜 일이야. 정말 자랑스러운 일이야.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에스텔이 모두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있구나, 하고 그런 걸 느낄 수 있으니까.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동시에 에스텔이 내가 서있는 곳과는 다른, 너무 먼 곳으로 가버린 기분이 들었어.”


“…………”


“에스텔이 마녀가 되었을 때, 솔직히 말해서 실감이 안 났어. 그도 그럴게 에스텔은 13살이었으니까. 나는 우리가 좀 더 어른이 되고난 후에, 에스텔이 마녀가 될 줄 알았어.”



셀레나는 거기까지 말하고 나서 막 떠올린 듯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앗, 아니 에스텔이 마녀가 되지 않길 바라고 있었다는 건 아니야. 어디까지나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얘기였어. 그러니까, 에스텔이 마녀 브로치를 들고 왔을 때는 기뻤어. 물론 기뻤지만…… 사실, 에스텔이 내게서 멀어지는 게 그 이상으로 무서웠던 것 같아.”



거기까지 들었을 때, 나는 어렴풋이 셀레나가 그때 왜 그런 반응을 보였는지 이해했다. 이유야 어찌됐든, 셀레나를 위해서 열심히 노력했던 게, 결국 그녀를 불안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내 생각이 이런 결론에 다다랐을 때, 나는 가볍게 충격을 받았다.


으음…… 내 나름대로 평상시에 셀레나를 향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한다고 한 게 부족했나? 최근에는 감사의 마음을 넘어서 요리하는데 뒤에서 조용히 껴안거나, 소파 위에서 나란히 앉아 손깍지를 끼거나 하는 둥, 객관적으로 보면 애정표현에 가까운 행위까지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까지 해도 셀레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면, 역시 내 능력부족이라는 거겠지. 하지만 이제 곧 ‘그게’ 완성된다. 언제 건네줄까 고민하고 있던 참인데, 마침 잘 됐다. 좀 더 일정을 앞당겨 볼까.


그래서 나는 입을 다물고 불안하게 눈을 치켜뜨고 있는 셀레나에게 후후후, 하고 의미심장하게 웃어 보였다.



“좋아. 그런 셀레나 씨에게는 내일 저녁을 기대하시라, 고 한 마디 예고를 해드리죠.”



셀레나는 과장하여 연극 투로 말하는 나를 눈썹을 치켜 올리며 의문스럽게 바라보았다.



“내일……? 내일 무슨 날이야?”


“으응? 특별한 날은 아닌데…… 굳이 말하자면, 내가 특별한 날로 만들고 싶은 날이야.”


“……?”


“어쨌든, 내일 저녁 기대해.”



셀레나의 수상하다는 시선을 뒤로 한 채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깔끔하게 비워진 접시를 들고 싱크대로 갔다.



***



에스텔이 수상하다.


저녁 장을 보고 돌아가는 길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사실 가끔 엉뚱한 행동을 하고는 한다. 예를 들어 요리를 하고 있는 도중에 에스텔이 돌아와서 손을 떼지 못하게 되었을 때, 



“어서 와. 오늘 힘들었지? 지금 요리하고 있는 중이니까 잠깐 앉아서 쉬고 있으면─”



나는 뒤에서 덮쳐든 무게감으로 인해 말을 끝맺지 못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싶어서 뒤를 돌아보려는데, 내 오른쪽 어깨에 에스텔이 턱을 대고 있는 바람에 하마터면 돌아보는 도중에 충돌사고가 일어날 뻔 했다. ……조금 아깝다. 아니, 아무튼 에스텔은 소리도 없이 내 뒤로 다가와서 나를 끌어안은 것이다.



“저, 저기? 에스텔? 지금 뭐하는……”



에스텔을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으응……”하는 신음소리를 낸 뒤,



“오늘은 지쳤으니까…… 셀레나 충전 중……”



이런 의미를 알 수 없는 한 마디를 내뱉었다.


또 어느 날은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는데, 마침 휴일이라 집에 있던 에스텔이 내 옆으로 다가와 앉더니 내가 읽던 부분에 스윽-하고 책갈피를 끼우고, 억지로 덮었다. 무엇을 하려고 그러는지 에스텔을 보려는 찰나 에스텔의 환하게 웃는 얼굴이 내 시야 가득 들어와서 깜짝 놀랐다.



“에, 에스텔!?”


“흐흥, 나 오늘 쉬는 날이란 말이지.”


“……? 어, 응. 그렇지.”


“잠깐 손 좀 빌려줘.”


“응?”



에스텔은 그렇게 말하고 손깍지를 꼈다. 으으응……?



“하, 이거야, 이거.”


“저기……? 뭐가?”


“으음, 안심이 돼.”


“아, 그렇구나.”


“응. 잠깐 이러고 자고 싶으니까 어깨 좀 빌려주라.”



……정말, 심장에 무리가 가니까 돌발적인 행동을 하기 전에 말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천재는 모두 어딘가 돌발적인 면이 있는 걸까…… 덕분에 그날은 미묘한 자세로 꼼짝도 하지 못한 채 에스텔이 일어날 때까지 버티고 있던 바람에 한동안 어깨가 결렸다.


아무튼, 이런 식으로 가끔 돌발 행동을 하곤 하는 에스텔이지만, 이번에 보인 수상한 행동의 방향성은 결이 다르다고 해야 할까, 뭔가 각오를 굳힌 수상함이라고 해야 할까. 조금 소름이 돋기까지 했다. 게다가 에스텔이 오늘 저녁을 기대하라고 예고했다. 으음……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게 틀림없는데, 대체 나는 에스텔에게 무슨 일을 당하는 걸까? 어제 분위기를 타고 무심코 내질러버린 내 속마음이 문제였나…… 말하지 않은 편이 좋았던 거 아닐까? 하지만 에스텔에게 내 마음을 숨기고 지내고 싶지는 않았다. 이건 어떻게 해도 타협이 되지 않았으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정답을 알 수 있을 리 없는 생각으로 끙끙대고 있자니 어느새 나는 에스텔과 둘이 살고 있는 집 앞에 도착했다. 문을 열기 전에 나는 침을 꼴깍 삼키며 각오를 다졌다. ……무슨 일이 있어도 놀라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아니, 사실 어떤 일이 있어도 놀라지 않을 자신은 없다. 예컨대, 에스텔이 나더러 서로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으니 따로 살자고 하거나, 먼 나라로 파견을 가서 한동안 돌아오지 않을 예정이라거나……내가, 사실은, 짐이 된다거나……


에스텔이 평상시에 나에게 달라붙어 오는 걸 생각하면, 그리고 평상시에 그토록 나에게 감사의 말을 끊임없이 전해주는 것을 생각하면 내가 느끼고 있는 이 감각은 터무니없는 상상이고, 그녀에게도 실례인 망상이다. 하지만…… 에스텔이 마녀가 된 이후로, 그때부터 마음 한편에 어두운 곰팡이 같은 것이 자라나서 조금씩, 조금씩 내 마음을 좀먹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에스텔은 천재 마법사, 나는 평범한 소녀. 그녀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나는? 나는 그런 그녀의 옆에 설 자격이 있는 걸까? 내가 에스텔의 족쇄가 되어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빼앗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에스텔은 착하니까, 분명 내가 가지 말아달라고 하면, 아니 내가 그렇게 말을 하지 않아도 에스텔은 자신의 미래를 포기하고서라도 내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에스텔은 그런 아이니까. 하지만 그런 에스텔의 인내심에도 한계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인내심의 한계를 넘어서면, 나는……


나는 고개를 좌우로 세차게 흔들었다. 길게 자란 푸른 유리색 머리카락이 내 고개의 움직임을 따라 물결쳤다. 아직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일에 마음 쓰지 말자. 그리고 혹시라도 에스텔이 나를 떠나 앞으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웃는 얼굴로 보내주자. 7년 전 에스텔이 나를 구원해주었을 때, 나는 에스텔을 위해서 살겠다고, 분명 그렇게 결심했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새로이 결심을 하고 문손잡이를 돌렸다. 실내는 어두웠다. ……? 분명 에스텔이 집에 있었을 텐데. 설마, 쪽지 한 장만 남기고 이미 어딘가로 떠나버리는 그런 결말은 아니겠지…… 아하하.


나는 다급해져서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내질렀다.



“에스텔? 에스텔!”



그러자 내 고함소리에 맞추어 집안 전체에 은은한 촛불 같은 불빛이 ‘퐁’하는 소리와 함께 줄지어 여기저기 나타났다. 갑작스레 정체를 알 수 없는 불빛이 튀어나와서 당황했지만, 불빛이 만든 길다란 통로 끝에 에스텔이 웃으며 서있는 모습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에스텔…… 이게 다 뭐야?”


“음…… 서프라이즈?”


“어제도 물어본 것 같은데, 오늘 무슨 날이야?”



에스텔은 대답 대신 성큼성큼 내게로 다가왔다. 그리고 에스텔은 내 앞에 딱 멈춰서더니 뚜껑이 열린 하얀 반지케이스를 내밀었다. 반지케이스 안에는 에스텔의 머리카락 색을 닮은, 연보라빛 보석이 박힌 반지 한 쌍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니, 에스텔이 먼저 입을 열었다.



“실은 말이야, 전부터 셀레나한테 이걸 주려고 준비하고 있었어. 이건 둘이 서로 한 쌍의 반지를 끼고 있으면 마력을 공유해서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도 마법을 쓸 수 있게 되는 반지. 내 오리지널, 즉 세상에 단 한 쌍밖에 없다는 소리지. 셀레나가 간단한 마법이라도 썼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한 번 만들어 봤어. 아, 완성 자체는 수행 시절에 했는데, 안전성이나 이것저것 검사하다보니 늦어지고, 언제 건네주면 좋을지 잘 몰라서 말이야……아, 그러니까……”



에스텔이 횡설수설하며 말의 폭포를 쏟아내고 있지만,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에스텔이 지금 어떤 말을 하고 있고, 어떤 마음을 나에게 전하려고 하는지는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 사실이, 너무 기쁘고, 행복하고, 사랑스러워서.


나는 그만 그 자리에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고 주저앉았다. 정말, 심장에 무리가 간다니까. 조금이라도, 귀띔이라도 해주면 좋지 않을까. 뭐, 에스텔은 항상 이런 식이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흘러넘치려는 감정을 애써 꾹꾹 눌러보았지만 헛수고였다. 주르륵, 하고 눈에서 따뜻한 눈물이 흘러나왔다.


에스텔도 내가 지금 흘리는 눈물이 어떤 의미인지 눈치 챘는지, 내 앞으로 조용히 한쪽 무릎을 꿇고,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말했지? 오늘을 특별한 날로 하고 싶다고.”



그리고 에스텔은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덧붙였다.



“팔 아픈데 얼른 받아주실래요, 셀레나 씨?”



정말, 에스텔은. 울고 있던 나였지만 그만 웃음이 나올 뻔 했다. 누군가, 이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제3자가 있다면 지금 나는 무척 정서불안정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나를 이렇게 만든 에스텔에게 조금 복수를 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나는 얼굴을 덮고 있던 양손을 내리고, 그대로 에스텔의 목 뒤로 팔을 감았다. 에스텔이 움찔하며 뒤로 살짝 물러섰지만, 나는 빈틈을 놓치지 않고 에스텔과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그대로, 상냥하고 부드럽게 에스텔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눈을 감고 있어서 에스텔의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 에스텔을 껴안고 있는 팔, 몸, 입술 전체로 에스텔이 깜짝 놀라 굳어있다는 느낌이 전해져 왔다.


충분히 긴 시간 동안, 아니 어쩌면 짧은 시간일지도 모르지만, 내가 느끼기에 만족할 만큼 충분한 시간동안 입맞춤을 하고, 천천히 에스텔에게서 떨어졌다. 그에 맞추어 천천히 눈을 뜬 내 앞에는, 나의 눈동자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홍당무처럼 새빨갛게 물들어 있는 에스텔의 얼굴. 키스하는 동안 숨을 참고 있었던 탓인지, 에스텔도 나도 호흡이 정돈되지 않아 조금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득의양양한 얼굴로 새빨개진 에스텔을 바라보며 덧붙였다. 행복과 사랑과 장난기를 담아서.



“어때? 조금은 특별한 날이 됐어?”




***




에스텔과 셀레나가 행복해지는 이야기 2번째. 에스텔 셀레나 못 잃어..


72835123번째 마녀의 여행 세계관에는 이런 곳도 있을지도 모름


암튼 이 자리를 빌어 이런 긴 똥글을 읽어주신 분들,


다른 망글 읽어주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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