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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건전]풀꽃

Lya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12.05 09:06:02
조회 521 추천 18 댓글 4
														

  반달이 건물 너머에 걸렸다. 가슴이 뛰었다. 오늘도 언니를 만나는 밤.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시간. 차가운 벤치에 엉덩이를 놓았다. 길거리를 드문드문 비추는 가로등 아래도 텅 비었다. 이파리가 문드러진 나뭇가지를 훑는 바람이 정적을 집어삼켰다. 11 53. 휴대폰도 손도, 코트 주머니로 들어갔다. 역시 겨울밤은 못 견디도록 추웠다. 빛도 온기도 없는 정적은 언제 깨지련지.

  시간을 잊고 입김을 세었다. 하나 둘, 삼백, 사백. 몇 번이나 세었는지 숫자를 잊을 때쯤 또각또각, 가벼운 소리가 들렸다. 달도 이미 도심 아래로 잠들어 어두워지고 나서야. 탁한 노란빛 아래 실루엣. 또각또각또각. 급하게 발소리에 나도 몸을 일으켰다.


  왔어요?”


  일어나 손을 흔드니 안심하는 한숨 소리가 들렸다.


  춥진 않았어?”


  나보다 조금 큰 그 여자, 내가 사랑하는 은하 언니. 손으로 뺨을 만지니 깜짝 놀랐다.


  다 얼었네! 어디 들어가있지.”


  나도 언니도 알았다. 여긴 아무것도 없어서, 아무도 없단 걸. 우리가 있을 유일한 장소란 걸. 그런데도 미안함으로 목소리가 떨렸다.


  매일 아침 일찍 나가면서 밤늦게 찾아오는 사람만 할까요.”


  꼭 잡힌 손을 빼냈다. 서로 나눌 온기도 모자랐으니. 그 온기라도 지키도록 주머니에 손을 돌려주었다. 차가운 점퍼에 머리를 기대니 그 위에 따듯한 숨결이 얹혔다.


  보고 싶은 걸.”


  언니는 뺨을 마주 비비고 몸을 세웠다. 얼마나 찬 바람을 맞았는지 따듯한 곳이 없었다.


  일단 걸어야겠네요.”

  “그러게. 몸 좀 데워야겠다. 엄청 차가워.”


  불빛조차 모자란 새벽 공원에선 겹친 발소리가 울렸다. 우리는 맞닿은 옷을 줄 삼아 이인삼각을 하는 셈이었다. 또벅, 뚜각, 뚜걱, 또박. 두꺼운 옷 너머에서도 떠는 몸은 또렷했다. 걸음이 빨라졌다. 찬 공기에 콧속이 아렸다. 파고드는 한기에 기침하니 언니는 옆에 바로 멈춰 섰다.


  좀 따듯해졌어?”

  두 번 따듯했다간 죽겠네요.”


  또륵 흐른 눈물에 얼어붙은 소매가 스쳤다.


  뺨 얼면 안 되니까.”


  찬 바람에 눈물 자국이 선명해졌다. 따듯하긴커녕 찬 공기를 잔뜩 들이켜 몸이 식은 기분이었다.


  그럼 천천히 걸을까.”


  부르르 몸을 떠는 게 차라리 나았다.


  또 엄청 일찍 와서 기다렸으려나?”


  머리 위에 머리가 얹혔다.


  할 거 다 끝내고 오거든요.”

  “나 때문에 너무 고생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무게감이 사라졌다.


  저도 낮에는 바쁘거든요?”


  그치. 다행이네. 그래도 여기선 얼굴도 제대로 안 보여서 아쉬운걸.”

  들키면 우리 둘 다 쫓겨날 걸요. 비슷한 소리만 나와도 기겁하신다면서요.”


  동그란 실루엣을 더듬고 당긴다. 부드럽지만 차갑고, 달콤하지만 거칠었다.


  얼마나 피곤하면 입술이 다 텄어요.”


  언니는 나를 꽉 끌어안고 토닥였다. 나도 마주 안았다. 스치는 칼날에 손등이 아려도 괜찮았다. 언니도 같을 테니까.


  네가 문제지. 몸도 작아서 추워도 네가 더 추울 텐데.”


  고개를 저었다. 옷이 귓가에서 바스락거렸다.


  아쉬워도 얼른 들어가야겠다. 너 지금 무지 차가워.”


  그런가 보다. 꽁꽁 얼어 붉어졌을 손이 이마에 닿았는데도 따듯했으니까. 우리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었다. 낡은 공원 끝, 첫 가로등 앞에서 적막이 새겨졌다.


  추우니까, 너 먼저 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인데.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알았어요.”


  같은 마음이기에 태연한 척 걸음을 떼었다.


  언니도 서둘러 들어가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내 표정이 이상했으니까. 멀리 저 멀리, 또각또각. 나는 더 빨리 걸었다. 엘리베이터에서 입술을 닦아냈다. 소매에 묻은 희미한 분홍색에서 달콤한 향이 났다. 향기를 몇 번 깊게 빨아들이고 소매를 마저 비볐다. 집 안은 차갑고 고요했다.

  옷을 던져놓고, 휴대폰을 들었다. 잘 자, 라는 간단한 밤인사. 우리는 그렇게 오늘도 끝냈다. 언제까지 이럴 수 있을지. 우리가 만나는 게 옳은지도 알 수 없었다. 기쁘지만 괴로웠다. 사소한 흔적이 단서가 될까. 말 한마디가 우릴 낚아 올릴까. 지우지 못하는 이 메시지를 누가 읽을지도 몰랐다. 그럼 모든 게 부서지겠지. 집 안의, 품 안의 예수가 원망스러웠다. 저는 그들의 이웃인가요.

  날은 점점 더 차가워졌다. 눈이 내리고 웅덩이가 얼었다. 깨끗한 어둠 속에서, 우린 더는 손을 잡을 수 없었다. 입술을 맞추면 얇은 피부가 얼어 터졌다. 결국 일이 났다. 내가 앓아누웠다. 열이 펄펄 끓어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조금 아파서, 미안해요] 이게 내가 남길 수 있었던 마지막 말이었다. 그다음 휴대폰은 꺼 버렸으니까.

  어질한 머리로 약을 먹고 누우면 엄마는 내 손을 잡고 기도했다. 미안해요, 엄마. 엄마네 하나님은 날 싫어할지도 몰라. 잠이 들고, 잠이 깼다. 억지로 죽 몇 모금을 삼키고 나면 어김없이 쓰러졌다.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땐 일주일이 지나 있었다.

  엄마는 하나님이 보우했다고 기도를 드렸다. 나는 잘 모르겠다. 기분 나쁜 땀을 따듯한 물로 씻어 내렸다. 머리를 말리며 휴대폰을 켰다. 메시지가 잔뜩 쌓여 있었다. 죄다 걱정이었다. 마지막 말은 뭔진 몰라도 나아지면 얘기해 달라는 거였다.


  [미안해요. 감기가 좀 심하게 들어서]

  [그러길래 몸조심 좀 하라니까]


  답은 순식간에 돌아왔다. 웃음이 나왔다. 걱정이 기뻤다.


  [이젠 괜찮아요]


  한참을 누워서 힘이 빠진 건 어쩔 수 없어도, 몸은 이제 건강했다.


  [못 본 지도 한참인데 언제 볼래요?]

  [주말, 그리고 좀 일찍 보자]

  [일찍요?]

  [그냥 저녁때. 5, 6시쯤?]


  의문은 잠시. 이유는 금방 떠올랐다. 밤은 추웠으니까. 조금이라도 더 따듯하게.


  [같이 저녁 먹고 너무  추워지기 전에 들어가고]


  입술을 짓씹었다. 심장이 아렸다. 내가 아파서. 들킬지도 모르는데.


  [그럼, 6시에 거기서 봐요]


  거절할 수가 없었다. 알면서 태연한 말이 무거웠다. 하루가 멀다 하고 보던 걸 며칠이나 미룬 것도 나 때문일 테니까.


  [그래. 옷 꼭 따듯하게 입고. 얼굴 반쪽이면 안 된다?]


  아픈 얼굴로 만나 좋을 건 없었다. 기운 빠진 모습도 그랬다. 산책을 하고, 잠을 자고. 그렇게 주말을 기다렸다.

  날은 충분히 어둡지 않았다. 하필 밝은 보름달이 하늘에 걸려 더 그랬다. 차갑지만, 시리지 않은 벤치에 앉아 하늘을 보니 걱정만 되었다. 바보 같은 언니.


  미안, 늦었지?”


  5 58. 언니는 숨을 몰아쉬었다. 어떻게 저런 힐로 뛰어올 수 있는 건지.


  어디서 먹을 거예요?”


  아무렇지도 않게 입을 열었다.


  한 군데 알아봐 뒀지.”


  언니도 그랬다. 많이 생각해 뒀는지 걸음은 당당했다. 조금 떨어져 걷자니 주머니의 손이 이끌려 나왔다.


  , 뭐해요!”


  태연하게 손을 쥐고 걸어갔다.


  이러다 누가 보기……..”

  친한 줄 알겠지.”


  언니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힘은 더 강해졌다.


  여자애들끼리 원래 자주 잡고 다니잖아.”

  “그래도…”


  언니는 웃으며 걸었다.


  그렇게 의식하면 더 이상해 보일걸. 난 손 안 놔줄 거야.”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왜 내가 더 안절부절못하는 지 알 수가 없었다.


  추워서 못 잡는 건 질렸는걸.”


  테이블도 몇 개 없는 작은 라멘집. 조용한 음악이 흘렀다. 낡아 보이는 나무 벽엔 요리하는 주인의 사진이 붙어있었다.


  따듯하겠어요. 확실히.”


  언니는 기쁘게 웃었다. 냄새도, 맛도 깔끔한 두 그릇의 시오라멘. 국물로 몸을 데우고, 면으로 배를 채우고, 목소리로 귀를 간지럽혔다. 주인 혼자 운영하는 작은 가게, 둘 뿐인 공간은 따듯했다.


  이렇게 보는 건 진짜 오랜만이다. 그치?”

  봐도 얼굴은 못 봤었죠.”


  실루엣이 아닌 얼굴. 바람 없는 정적. 따듯한 손. 기분이 좋았다. 우리는 국물까지 마시고도 모자라 한참을 앉아 얘기를 나눴다. 아팠던 것. 그동안의 걱정. 미안함. 옛날. 첫 만남. 사고들. 바깥의 손님 탓에 주인이 헛기침할 때야 우리는 놀라 일어섰다.


  미안해요. 분위기가 좋아서.”


  특별하지 않았다. 우리도 그냥 별것 없는 손님이었다.


  으아, 추워라.”


  바깥은 완연한 어둠이었다. 춥다는 말에 언니는 날 뒤에서 끌어안았다.


  누가 보면…….”

  어둡잖아. 괜찮아.”


  그래도 가로등은 많았다. 충분히 숨겨지지 않았다. 우리는 실랑이를 했다. 매서워지는 밤바람에 언니가 졌다. 우리는 겨우 외투만 맞대었다. 하루의 끝은 또 그 공원이었다. 보름달 덕에 실루엣이라도 뚜렷했다.


  일찍 보내려고 했는데.”


  그게 되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어깨를 기댔다. 차가운 벤치. 차가운 외투, 차가운 머리카락. 따듯한 건 기분뿐. 우리는 떨어지지 못했다. 입김이 얼어붙는 추위에서 따듯함을 갈망했다. 실루엣 너머에 담겨있는 그 온기를.

  서로 같은 생각이었을까. 입술이 맞닿았다. 차갑고, 거칠고, 말랑한 입술. 더 깊게, 따듯한 곳까지. 새어 나오면 순식간에 식어버리는 축축한 온기였다. 우리는 빈틈 없이 맞닿았다. 서로의 온기를 마구 빼앗고, 넘치도록 부었다.

  우리는 소리 내어 웃었다. 얼마 안 되는 온기라도 나눈 게 기뻤다. 땅속에서 겨우 몇 걸음 나왔을 뿐인데, 너무나 따듯했다. 우리는 거기 중독되어갔다. 작은 구멍에 댐이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땅으로 기어 나온 두더지는 농부의 갈퀴에 맞아 죽을 뿐인데.

  우리는 이제, 태양 아래에서도 만났다.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는 주말. 모두를 밝혀주는 햇빛. 단단한 마음도 녹아버렸다. 우리는 하루종일 달라붙고, 조그맣게 사랑을 속삭였다. 맛있는 음식, 따듯한 입술, 말랑한 피부. 몰래 입술을 맞출 때도 있었으니까.

  한쪽 시야가 어두워졌다. 뺨이 뜨거웠다. 귓가에서 치과 드릴 소리가 울렸다.


  세연아!”


  언니가 휘청이는 나를 끌어안았다.


  , 네년이,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아저씨!”


  두 사람이 뭐라고 말다툼을 하는 걸까.


  뭘 하길래 길에서 아빠도 못 알아보나 해서 왔더니. 내가 자식 농사를 잘못 지었지…….”


  반쪽짜리 시야에 씨근덕대는 중년의 얼굴이 보였다. 하나님 아버지. 저는 이웃이 아니었나봐요. 미안해요, 언니.

  뺨은 한참을 낫지 않았다. 연락도 할 수 없었다. 연락은 까발려지고 집 안에 갇혔으니까. 부모님은 나를 계속 윽박질렀다. 어디 한동안 나갈 생각 말라고. 그 집에도 단단히 얘기해뒀으니 둘 다 다신 볼 일이 없을 거라고. 숨이 막혔다.

  나는 뛰쳐나왔다. 지갑만 챙겨 아무 생각 없이 언니에게 달렸다. 가장 추운 시간. 해가 고개를 들기 직전에 우리는 거리를 빠져나왔다. 먼 곳의 작디작은 방 한 칸. 그곳이 우리의 보금자리였다. 낮에 헤어지고 밤에 만나는 우리만을 위한 공간.

  둘만의 시간. 어느새 꽃샘추위가 다가왔다. 개나리는 서둘러 노란 꽃을 피웠다. 썩어가는 두더지의 시체에서도 무언가 피어날까. 우리는 어두운 거리에서 지는 달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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