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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건전) 저것은 꽃을 파는 여자의 그림.

삼일월야공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12.06 15:56:14
조회 640 추천 17 댓글 3
														

통유리로 된 회전문에 비친 나를 바라본다. 닳아빠진 쟈켓으로 찬 바람을 겨우 막는 비루한 차림의 여자. 쓴 웃음도 나오지 않는다. 지하철 역은 백화점의 지하. 어쩔 수 없이 지나쳐가야는 고급 의류점. 실로 좋은, 다른 사람을 유혹하는 향수의 내음은 토가 나올 정도로 짙게 깔려 있다. 그런 사이에 있는 것은 실로 아름다운 사람들.


“글쎄 이번에 우리 애가…”


“어머, 정말? 언니 좋겠다…”


그런 샘플 앞에서 웃으며 이야기하는 저 사람들은, 분명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다. 저 사람들의 집은 어디에 있을까, 분명 떠오르는 햇살을 받으며 기지개를 켜겠지. 그들의 도로는 온전히 사람의 것, 하잘 것 없는 길고양이들이 울지도 않을 것 이다. 흐르는 음식물 쓰레기의 시뻘건 국물은 너무나도 먼 일이겠지…저들에게 비루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박살난 자존심을 쓸어담아본 적은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런 비굴한 조롱. 사정도 모른 채 다른 이를 사정없이 깎아내리기만 한다. 스스로의 처지에 웃음이 나오지만 참았다. 더더욱 추락할 것만 같아, 무저갱의 끝을 볼 것만 같아 웃을 수가 없었다. 나의 처지마저 내가 비웃어버린다면 그건 누구에게 존중받을까? 이미 그 누구에게도 존중받지 못하는 처지일까.


그저 갈길을 서둘렀다. 오늘 가야만 하는 장소로 발을 움직였다. 지하철을 탄 내가 향하는 곳은 순백의 오피스텔. 퀴퀴한, 내가 나고 자란 지하의 단칸방과 같은 냄새 나는 곳이다.


어쩌다 그런 곳을 발견했을까. 그런 사람을 찾았을까. 여느 때 처럼 길거리에 짙게 깔린 향수 냄새에 취해 토가 쏠리던 날이었다. 무익하게 행복한 이들을 조롱하며 길을 걷던 중, 그들의 가운데에서 비루한 자를 만났다. 그 사람은 분명 아름다운 옷을 입고 행복하게 웃고 있었지만...어쩔 수 없는 비루한 감상을 느꼈다. 자신의 처지를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웃고 있을 뿐이라고. 저 사람은 분명 나와 같은 인종이다. 묘한 흥분과 기대에 휩싸여 나는 어느새 그 사람의 뒤를 밟고 있었다. 닳아빠진 옷을 입은 나와 달리 번듯한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이 나와 똑같이 비루한 사람이라면, 저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인걸까. 지하철에 내려 출구 계단을 올라 그 사람이 향한 곳은 너무도 깨끗한 오피스텔. 비루한 사람이 있을 거라 생각할 수 없는 순백의 오피스텔. ...겉모습은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았다.


605호, 그 사람이 있는 방. 벨을 눌러 안에 있을 사람을 부른다.


“...당신, 왔어?”


문을 열어 마중나온 것은 실로 아름답지만 고결하지 않은 여자, 히아신스.


“오늘의 몫.”


그렇게 현찰을 쥐어주고 방 안으로 들어간다. 아름다운 히아신스, 그녀의 뒤에 펼쳐져 있는 것은 농밀한 정사의 흔적들. 제대로 버려지지 않은 용품들, 바닥을 나뒹구는 휴지. 그리고...결코 좋다고 할 수 없는 집의 냄새. 하지만 오히려 내 마음은 편해진다. 이런 장소여야말로 그녀에게 어울리는 장소, 그리고 나에게 어울리는 장소.


“저번이랑 같은 자세 취해줄 수 있어?”


그런 수라장 사이에 앉아 캔버스를 편다. 모델은 히아신스. 헐 벗은 채 침대 위에서 다리를 꼬는 그녀.


“원초적 본능이라 그랬나.”


“그래, 샤론 스톤이 그랬었던 것 처럼.”


뭇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성적인 컷. 배우를 섹스 심벌로 만든 상징적인 장면이다.


“변태적이란 말야.”

“...당신이 할 말인가.”


그렇게 나와 그녀의 시간이 시작된다. 헐 벗은 여인을 그리는 헤진 차림의 여자. 그녀는 다리를 꼰 채로, 도도한 표정을 한 채로 꽂꽂이 앉아있다. 나는 그런 그녀를 응시하고 스케치하고 지우고. 일련의 과정은 계속 반복된다. 히아신스의 초상은 그렇게 완성되어간다.


“이상한 사람.”


아름다우면서도 내가 살고 있는 집처럼 역겹고 비루한 사람, 히아신스는 스스로를 팔고 있었다.


“돈 벌려고 하는 거지, 뭐 다른 이유 없잖아.”


조금 더 복잡한 사정이 있을 줄 알았지만 히아신스의 경우는 간단했다. 내가 무어라 할 말이 없어질 정도로.


“의외로 쉽게 말하네.”


“이야기하는 게 뭐가 어렵다고.”


연기가 퍼지는 그 담배의 이름은 아이스 블라스트.


“그러는 당신은 왜 찾아온 거야?”

“...당신이 아름다워서. 그리고,

"그리고.”

“이거 사실대로 말해도 되나.”

“뭐, 별별 소리 다 들으며 사는데 당신이 어떤 말을 할까.”


그래서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처음 만났을 때의 감상을.


“나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어. 그렇게 고급진 옷을 입고, 좋은 향수를 뿌려도 당신한테서 어쩔 수 없는 비루한 감상을 느꼈어.”

“...지랄하네.”


최악의 첫 인사. 그래도 나는 때가 되면 그녀의 방에 와 그녀의 그림을 그린다. 돈으로 맺어진 계약 관계. 자신의 몸을 모델로 내놓는 창부, 그리고 그런 창부를 그리는 나.


“좀만 쉬었다가 해도 되지?”

“상관 없어.”

프로 모델도 아닌 사람에게 긴 시간 동안 자세를 유지하는 걸 요구하는 게 더 이상한 일이다. 편히 앉은 채로 히아신스를 담배 한 대를 태운다.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고 있을 때 눈 앞에 들이밀어진 담배 한 대,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는 같이 불을 붙였다. 방 안을 가득 메운 담배 연기. 괴롭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향 중 하나였으니.


“별 나, 당신은.”


“뭐가.”


"술마시고 어쩌다 했을 때 빼곤 안아달라는 소리도 없고, 그냥 그림만 그리잖아."


“우리 사이는 이 정도가 적당한거야.”


히아신스는 혀를 차곤 담배를 한 모금 크게 빨아들인다. 그에 비례해 더욱 짙게 깔리는 담배 연기.


“처음에 왠 여자가 뒤쫓아 오길래 그냥 어떤 미친 레즈인 줄 알았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사이코여서 더 좇같다고.”


시덥잖은 이야기로 휴식은 끝이 난다. 히아신스는 다시 포즈를 잡는다. 고혹적으로, 누군가를 유혹하듯 눈을 치켜 뜬 채로. 그 눈빛은 결코 나를 향한 것이 아닐 것임에도 조금 두근거리는 가슴이 있다. 나는 그런 히아신스를 눈에 새겨 캔버스에 그려넣는다. 너무도 아름다운 그 모습을, 하지만 결코 숨길 수 없는 비루한 현실을 그려넣는다. 내가 히아신스를 빌린 2시간. 그 시간이 다 하기 전 까지.


“오늘의 그림은 이걸로 끝?”

"...아직 미완성이야.”

"그러면 연장을 하지.”


"없는 돈 쪼개서 오는 거 알잖아."


"놀리는거야."


"성격 참 더러워."


그렇게 웃는 히아신스를 뒤로하고 오피스텔을 빠져나온다. 밖에서 다시 돌아봤을 땐 역시 순백의 너무도 깨끗한 곳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 안은 인간의 정념과 탐욕이 들끓는 불구덩이일지라도, 겉으로는 고고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마치 히아신스처럼.


정녕 그녀는 저런 곳에서 일을 해야하는 여자일까? 그녀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웃는 그 얼굴에는 분명 내가 느껴보지 못한 행복이 있다. 천박하다면 천박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라지만 이런 세상에 천박하지 않은 사람을 찾기가 더 힘들지 않은가? 그런 아름다운 사람이 나와 같이 살고 있다. 비루한 곳에 자신의 몸을 내던진다.


‘돈 벌려고 하는 거지, 뭐 다른 이유 없잖아.’


...분명 이게 그녀에게 있어 최선의 방법이었을까? 다른 수가 있지 않았을까. 그러면서도 나는 내 마음에 드는 안도감을 감출 수 없다. 만약 그녀가 이런 일을 하지 않았다면 내가 히아신스를 만날 수 있었을까? 그런 아름다운 자와 이야기 할 수 있었을까. 언제나처럼 나는 그녀를 조롱하고 지나쳤겠지. 마음에 끓어오르는 열망을 짓밟아 꺾어버린 채로, 그저 지나쳐.


고양이는 언제나 시끄럽게 울고 있다. 파먹은 쓰레기 봉투에서는 못내 고인 물이 새어 시멘트를 적시고있다. 그것이 해에 끓어,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익을 때 쯤이면 고양이는 다시 그 날카로운 이빨로 봉투를 뜯어버릴 것이다.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서, 그리고 그런 곳이야 말로 나의 집이 있는 곳이다. 어느 골목길 사이에 있는 낡은 건물. 깨진 시멘트 계단을 내려 문을 연 나를 맞이하는 것은 눅눅한 장판이 깔린 지하의 단칸방.


등에 맨 캔버스를 세워두고 이부자리에 눕는다. 습기가 찬 바닥은 영 찝찝하기만 하다. 히아신스가 있는 그 마룻바닥에 비할 바가 되지 못한다. 하지만, 여기만큼 편히 쉴 수 있는 곳은 없다. 나에게 가장 어울리는 건 이런 불완전한 공간. 비루한 내게 어울리는 쉼터. 그런 공간에서 잠을 청한다. 하루를 갈무리한다.


20일, 돈이 통장에 들어온 날. 은행에 가 출금을 하고 오피스텔로 향한다. 히아신스가 있는, 썩어빠진 605호로 향했다.


“오늘은 좀 더 있네?”

“그림을 마무리하려고.”

“돈만 있다면야, 좋을대로.”


언제나처럼 캔버스를 꺼내들어 그릴 준비를 한다. 그에 맞춰 히아신스도 자세를 잡는다. 샤론 스톤의 그 상징적인 다리 꼬기를. 언제봐도 실로 풍만한 그런 몸을 자랑하며.


“있잖아, 당신. 언제나 같은 옷만 입고 다니던데.”


문득 그녀가 말을 걸었다.


“이 날씨에 이 옷만큼 좋은 건 없어.”

“옷 한 벌 사줄까?”

“...기둥서방 노릇은 하기 싫은데.”


“그런 노릇할 기둥도 없는 주제에.”


그런 말에도 묵묵히 펜을 들었다. 캔버스 위에 선을 그리고, 그 선을 모아 입체감 있는 한 사람을 만들어낸다. 실로 아름답지만 나와 같이 비루한 여자를 그린다. ...이런 처지가 아니라면 절대 만나지 못할 그런 여자를 그린다.


“그 그림을 다 그리면 말야, 그 다음에는 어쩔거야?”

“...다른 그림을 그리지 않을까.”

“그래, 그렇구나.”


어딘가 의미를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으며 히아신스는 입을 닫았다. 이 그림을 다 그린다면, 이제까지 그런 것을 물은 적은 없었다. 애초에 나중의 일같은 건 생각하지 않았으니. 눈 앞의 이 여자는 어떤 대답을 바랬던걸까. 그러면서 어느새 그림은 완성되었다. 오늘 내가 히아신스를 빌린 시간은 4시간, 아직 30분 정도가 남아있다.


“어우, 답답해서 죽는 줄 알았네.”


“한 대 펴.”


“아니, 그 전에.”


그런 말을 하며 손을 쭉 뻗었다.


“한 번 만 보여줘.”

“여기.”

건네받은 그림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젓고 그러기를 얼마 간, 다시 캔버스를 돌려주며 입을 뗀다.


“가슴이 좀 작은 거 같은데?”


“뭐라고?”


“농담이야, 그런 표정 지을 거 없다고.”


평소와 같은 시덥잖은 말이었다.


“아마 당신이 여기서 날 보는 거 오늘이 마지막일거야.”


그런 말로 시작하는 것은 갑작스러운 이별의 인사.


“애초에 돈만 생기면 그만둘 일이기도 했고.”

“그래서 아까 다음 그림 이야기를 한 거야?”


이런 내 말에 고개를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맞아, 그리고말야 마냥 그림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야, 당신있잖아...나랑 만나 볼 생각이 있어?”

그것은 전혀 예상치못한 의외의 이야기였다. 애초에 히아신스같은 사람이 대체..왜…


“왜 나랑 만난다는 이야기를 하는거야?”


“아니, 의외로 맘에 드니까. 이상한 헛소리나 하는 사람도 아니고 귀찮게구는 사람도 아니고...그리고 뭔가 당신이랑은 잘 맞는 거 같아서.”

분명한 유혹, 하지만 내 머릿 속에서는 이 만남의 결말이 그려진다. 실로 아름다운 히아신스의 곁에 선 나. 나에게 그럴 자격이 있을까? 평범한 히아신스의 옆에 내가 함께 있을 수 있을까.


“...미안, 그건 무리일 거 같아.”

“왜?”


정말 매력적인 사람의 순수한 호의. 하지만 못난 나 자신이 그녀의 호의를 부정한다.


“...내가 이런 일을 했던 게 문제야?”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야…”


나는 결코 히아신스가 있는 위로 올라갈 수 없다. 내게 어울리는 건 지하의 단칸방. 나는 언제나 아래로, 아래로 향하는 사람.


“나는 너를 만날 자격이 없어.”


그럴 이유가 있어, 라며 도망치듯 오피스텔을 빠져나왔다. 다른 좋은 수가 분명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되뇌어도 이미 때는 늦었다. 허름한 쪽방 한 구석에 나를 가둬놓는다. 이곳이야말로 나에게 어울리는 장소라고 스스로에게 되새기며. 잊지 못해 걸어둔 그림은 끝까지 보지 않는 채로.


다음 날, 일어나 똑같이 닳아빠진 바람막이를 입은 채 길거리를 걷는다. 그런 무의미한 시간 속에 도달하는 곳은 날지 못하는 새들이 음식이나 받아먹는 공원의 한복판. 햇볓 사이로 물끄러미 그들을 바라본다. 저들은 날아오르는 법을 잊었다. 땅에 묶여버린 자신의 처지에 매여 하늘로 날아오르지 못한다. 뭇사람들이 쥐어주는 것만을 받아먹고 살며, 그런 생애에 만족한 채로. 그런 짐승과 나는 어디가 다를까.


나는 자격이 없다. 히아신스를 만날 수 없다. 평범한, 히아신스는 내게 어울리지 않는 아름다운 사람. 그렇기 때문에 역겨운 오피스텔의 안에서만 나는 그녀를 만날 수 있다. 그런 처지의 그녀가 아니고서는 나는 나와 그녀 사이의 깊이를 견딜 수 없다. ...사람을 만날 때 그런 처지를 따지는 내가 가장 역겨운 생물이겠지.


언젠가 그녀와 몸을 섞은 적이 있다. 새하얀 몸은, 갈가리 찢긴 상처가 있는 내 몸과 달라 그 앞에서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다. 갈라 찢어진 나의 몸이 닿을 때마다 그녀를 상처입히는 것만 같아 마음이 더더욱 괴로워져만 갔다. 그러면서도 그런 육체를 탐하는 내가 있어서, 그런 내가 너무도 싫어서 눈물을 흘렸다.


“지금까지 힘들었지…”


그것은 순수한 연민이었을까, 값싼 동정이었을까. 이제는 만나지 못할 너라면, 그것은 분명 값싼 동정이었기를. 내가 너를 미워할 수 있도록, 이제는 아름답게 빛나는 너를 저주할 수 있도록 그것은 분명 값싼 동정이었기를. ...허름한 방 안에 걸린 저것은 꽃을 파는 여자의 그림. 내가 사랑했던 여자의 그림.


_______________________


꽃값, 화대, 꽃을 꺾다 같이 꽃과 관련된 표현이 곧 매춘을 완곡히 이르는 말이고

봄을 판다는 건 어디 일본식 표현이랍니다

자존감 박살난 사람은 남 깎아내리는 거 아니면 도저히 살 수가 없더라구요

상대방의 처지가 나보다 조금이라도 나으면 마음 속에 나쁜 마음 들어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음


다음편 - https://m.dcinside.com/board/lilyfever/659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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