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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건전] Lose All

ㅗ가ㅜ(1.229) 2020.12.07 22:26:38
조회 188 추천 12 댓글 1
														


Prologue


“다녀올게!”


이브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에레인도 힘차게 손을 흔들어 화답했다. 이브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에레인은 재빨리 야외복으로 옷을 갈아입을 준비를 했다. 그러나 옷을 채 갈아입기도 전에 문이 쾅 열렸다. 


“오스틴 선배, 문 부서진다고 했잖아요.”


그 순간 화약 냄새와 피 냄새가 연하게 풍겨왔다. 에레인은 이 냄새가 의미하는 바를 대충 알고 있었다. 


“……벌써?”


오스틴은 문을 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조직이 우리를 찾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아예 국경을 넘어야 할 지도 모른다. 


“일단 내가 대충 처리했으니까 몸 좀 녹일 시간은 되겠지. 오늘까지는 별 일 없었지?”


오스틴은 모닥불 앞의 소파에 앉아 불을 쬐며 말했다. 


“네.”

“진짜 아무 일 없는 거 맞지?”


에레인은 아무 말 없이 오스틴을 쳐다봤다. 오스틴은 에레인의 눈을 피하며 괜히 머리를 긁적였다. 


“미안. 부담스러운 거 아는데 괜히 불안해서 그래.”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순간 얼음장같은 침묵이 실내를 감쌌다. 오스틴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 때도 그렇고 저랑 이브의 관계만 얽혀 있으면 감정적으로 변하세요. 아무 이유 없이 그러는 사람 아니잖아요. 무슨 일 있었는지 알려주세요. 저라도 도움이 되어 드릴게요.”

오스틴은 한숨을 쉬었다. 

“네 눈에 보일 정도였구나. 미안하다. 그래, 알려줄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01



내게 세레나는, 신이자 어머니였으며, 구원자이고 인생의 설계자였다. 그녀가 없었다면 나 또한 전쟁터에서 스러져 간 수많은 목숨들 중 하나였을 것이며, 그렇기에 세레나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내게는 계시와 같아, 그걸 거역한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세레나는 언제나 자비가 없었다. 배신자에게는 특히나 더. 그녀를 배신한 사람을 죽이는 건 내 몫이었다. 잔혹한 고문 끝에 설령 죽더라도 나는 그녀의 분이 풀릴 때까지 야구방망이로 그 시체를 곤죽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만.”


야구방망이 휘두르는 걸 멈추고 나서 주변을 둘러보면 언제나 바닥과 벽이 피와 뇌수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붉은 바다 한가운데에서 세레나를 바라보고 있으면, 그녀는 기특하다는 듯 나를 쳐다봤다. 

일이 끝나고, 종종 그녀는 내게 입맞췄다. 입을 벌리고, 그녀의 혀를 받아들이면, 얼굴에 튄 액체가 입안으로 흘러들어왔다. 그 비릿한 맛에 구역질이 나도 내색할 수 없었다. 


수십 번을 겪었을 터인데도, 잘 때는 악몽을 꿨고, 깨어있을 때는 환청을 들었다. 언제쯤 적응할 수 있는 걸까. 언제까지 나는 이런 삶을 살아가야 하는 걸까. 어디선가 종소리가 들렸다. 그 잔향을 따라 들어가니 누군가 성모 마리아 상 앞에서 기도하고 있었다. 그 장면을 마지막으로, 털썩 소리와 함께 눈앞이 깜깜해졌다. 



오랜만에 악몽을 꾸지 않은 채 푹 잘 수 있었다. 



02



따뜻한 햇살에 눈이 부셨다. 눈을 떠보니 푹신한 침대에 감싸여 있었다. 


“깨어나셨네요.”


작은 새가 지저귀는 듯한 목소리였다. 고개를 돌려 보니 백금발의 수녀가 나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종소리가 온 몸에 퍼지는 듯, 머리는 맑고, 몸은 개운했지만, 속이 울렁거렸다. 이런 분위기는 나에게 맞지 않아. 불안했다.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리가 핑핑 돌았다. 수녀가 당황해서 내 팔을 잡았다. 


“좀 더 쉬셔도 돼요.”


수녀를 바라봤다. 어지러움은 멈추지 않고, 가슴은 계속 뛰고, 균형을 잡을 수 없었다. 수녀의 어깨를 잡고 있던 손을, 미끄러트리듯, 껴안는 형태로 그녀에게 기댔다. 


“열도 나는 것 같은데. 얼굴도 빨갛고. 푹 쉬어도 되는데.”

“안 돼요. 그러면 큰일날 수도 있어요.”


문을 열면서 물었다. 


“…이름이 어떻게 돼요?”

“마리예요. 힘들면 언제든지 찾아오세요.”



나와 연관되면 마리도 불행해질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다시 시작되는 악몽과 환청을 이길 수 없어 성당을 다시 찾아갔다. 신기하게도 마리를 처음 만난 그 날처럼, 나를 괴롭히던 것들이 사라졌다. 그 후로 일을 끝마친 후 매번 마리의 성당에 찾아가게 되었다. 마리의 품 안에서는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으니까. 


세레나에게는 따로 말하지 않았지만, 아마 짐작하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오히려 더욱 거리낌없이 배신자를 처단할 수 있었으니 세레나 입장에서도 더욱 좋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지만, 묘하게 세레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치였다. 

내가 좀 더 적극적으로 예전처럼 귀여워해달라고 세레나에게 다가가도 세레나는 내 머리를 쓰다듬고 끝날 뿐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세레나는 배신자의 처리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성당을 더욱 자주 찾아가게 되었다. 하루하루 행복했다. 이 행복이 계속되기를 간절히 빌었다. 


03


명령은 간단했다. 마리를 죽여라. 세레나에게 항의해 봐도 바뀌는 건 없었다. 


“이번 건은 내 명령이 아니야. 나보다 윗사람이 너를 특별히 지목해서 내린 명령이야. 나로서는 아무것도 바꿔줄 수 없어.”



선택의 기로에서, 나는 마리를 선택했다. 바로 조직을 뛰쳐나와 성당에서 마리의 손목을 잡았다. 그러나 성당 밖에서 이미 세레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세레나는 마리에게 총을 겨누며 말했다. 


“네가 죽이는 게 조금 더 낫지 않겠어?”


나는 마리에게 총을 겨눴다. 마리의 애절한 눈빛에 덜덜 떨다 결국 나는 손을 떨어트렸다. 


“……못하겠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레나가 내게 천천히 다가왔다. 


“지금 네 행동이 뭘 의미하는 지 알아?”


나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세레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모르는 것 같으니까 알려줄게. 지금까지는 내가 네게 단독으로 내리는 명령이었으니까 내가 어떻게든 해줄 수 있었어. 하지만 지금은 달라. 네가 실패한다는 건 나까지 실패한다는 뜻이고, 네가 배신한다는 건 나 또한 죽는다는 뜻이야.”

그래도, 저 애를 살리고 싶어?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둘 다 살릴 방법은 정녕 없는 걸까? 털썩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타는 듯한 머릿속, 절박함. 나는 툭 내뱉었다. 


“같이 도망쳐요.”


세레나는 피식 웃었다. 


“고마워. 하지만.”


세레나의 검지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네가 못하겠다면 내가 할게.”


눈을 감았다. 머릿속으로 끝없이 비명을 질렀지만, 귓가에 울려 퍼지는 총성을 막을 수는 없었다. 나는 눈을 뜨고 뒤를 돌아봤다. 마리가 손에 든 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옆에서는 세레나가 쓰러져 있었다. 

마리는 언제나처럼 환한 웃음을 지으며 세레나를 향해 몇 발을 더 쐈다. 정신이 현실을 따라오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총을 들어 마리를 겨눴다.  마리는 내게 다가오면서 속삭였다. 


“너는 날 못 죽일 거야.”


너는


나를


나는 방아쇠를 당겼다. 


사랑하니까……. 


현실을 인식하기 전에 몸이 움직여버렸다. 마리는 미간에 구멍이 뚫린 채 쓰러졌다. 내 발목을 잡는 손이 느껴졌다. 세레나가 입술을 달싹이고 있었다. 나는 세레나의 입술 가까이에 내 귀를 댔다. 


“미안해. 내가 너를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어.”


그녀의 입맞춤, 나를 볼 때마다 살짝 스쳐가던, 슬픈 눈빛, 부드러운 손길, 그제서야 머릿속을 스쳐가는 장면들. 세레나의 눈물 위에, 내 눈물이 떨어졌다. 



내게 세레나는, 신이자 어머니였으며, 구원자이고 인생의 설계자였다. 그녀가 없었다면 나 또한 전쟁터에서 스러져 간 수많은 목숨들 중 하나였을 것이며, 그렇기에 세레나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내게는 계시와 같아, 그걸 거역한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 계시를 어긴 대가로 나는 모든 것을 잃었다. 



Epilogue



모든 이야기를 들은 에레인은 자신이 내뱉은 말을 후회했다. 도움이 될 수도 있으리라 말해서는 안되는 거였는데. 그녀에게는 너무도 무거운 이야기였다. 


"미안해."


그러나 사과한 건 오히려 오스틴이었다. 


"네 마음 속에 의심의 싹을 틔우고 싶지 않았어.”


에레인도, 그 때 오스틴이 그랬던 것처럼,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젓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네게 그리도 모질게 굴었던 것도, 그렇게 집요하게 의심했던 것도, 어쩌면 네가 그 때의 나처럼 보여서 그런 지도 몰라."


너희는 다를 거라고, 내가 희망을 가져도 되는 거지? 에레인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브 데리러 다녀 올게.” 


그렇게 말하며 문을 열고 나가는 오스틴의 그림자는, 하얀 설원 탓인지 더욱 진해 보였다. 


-

너무 못 썼네요.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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