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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건전] 마지막 소원

IdolaCircus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12.09 21:19:01
조회 897 추천 20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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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괜찮아?"

벽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
단단한 콘크리트 벽면과 뼈들이 충돌하고, 곧 누르는 힘에 의해 우드득,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으스러진다. 방금 내 앞으로 문을 열고 갑자기 나타난 괴물을 그렇게 만든 소녀는 자신의 오른손에 들린 고깃조각 따위에는 별로 관심도 없다는 듯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나의 안위를 묻는다.

"응, 괜찮아, 하루야. 그냥 좀 놀라서 그래."

하루가 조금만 늦었어도 몸이 으스러진 건 저 괴물이 아니라 나였을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내 다리는 이미 풀린 채 바닥에 주저앉아 경련하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머리는 너무 태연하다. 이런 일들은 지금까지 수도 없이 있었던 일이다. 너무 많은 위기를 겪은 뇌는 본능을 무시한 채 공포에 무덤덤해져 버린 것이다.

곧 다리의 경련도 멎는다. 나는 주저앉은 자리에서 손을 탁탁 털고 일어선다. 그리고 정말 아무런 상처도 없다는 것을 하루에게 안심시켜주듯 보여준다.

"정말이지?"

"응, 정말이네!"

하루는 활짝 웃으며 그제서야 한 손에 든 괴물의 목을 바닥에 떨어트린다. 걱정 때문에 더욱 손에 힘이 많이 들어가 버렸는지 괴물의 목은 이미 목뼈까지 으스러져 너덜너덜해져버린 상태다.

이 괴물도 원래는 인간이었겠지만, 안그래도 감염되며 이지러져버린 형태는 긴 충격으로 인해 더이상 인간의 형상으로는 보여지지 않았다.

"여긴 꽤 오래 전에 뚫린 모양이네. 괴물들의 변이가 너무 심각해."

"그래도 괜찮아. 여기가 좋아."

"응, 그건 나도 그래. 하루가 있으면 괜찮을 테니까."

하루는 대답 대신 활짝 웃으며 마음을 대변했다.
하루와 나는 다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
.
.

"쉿."

나보다 조금 더 앞서서 계단을 오르던 하루는 자세를 약간 낮추며 팔로 나의 경로를 막았다. 그러자 나와 하루의 발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던 괴물들의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끊기며 들렸다.

"한 5층쯤 위에 있어. 언니는 여기 있을래?"

"아니. 갑자기 문 열고 나오면 어떡하게."

"알았어. 같이 가자."

하루와 나는 조용히 발을 떼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다행히 우리가 그들에게 접근했을 때까지 그들은 우리를 알아채지 못한 것 같았다. 계단 저 위편에 정면을 바라보며 가만히 서있는 괴물이 하나 있었다.

하루는 바닥에 굴러다니는 유리조각 하나를 주워 그 괴물의 머리 위로 던졌다. 괴물이 잠깐 고개를 돌린 사이 하루는 계단을 뛰어올라가 괴물의 목을 잡고 콘크리트 벽에 그었다. 괴물의 머리가 눌려 부셔졌다.

"앗"

소리가 너무 크게 나버렸는지, 갑자기 위층에 있던 괴물들이 몰려 내려오기 시작한다. 다행히 그들 중 가끔가다 보이는 이상한 변종은 없었던 것 같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줄지어 계단을 내려오던 괴물들이 지금은 전부 뭉개져 하루의 발 밑에 엎어져 있었다.

"괜찮아?"

반층 계단 아래에서 지켜보고 있던 나는 상황이 종료된 듯 보이자 계단 위로 뛰어올라갔다. 사실 지금까지의 여행 중의 정황으로 봤을 때는 괜찮은 게 당연하지만 그래도 물어봤다.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기 때문에!

"당연하지!"

하루는 활짝 웃으며 대답한다. 그 웃음에 걱정은 눈 녹듯 사라진다. 다행이다.

"다행이다."

"그런데 왜 여기 이렇게 몰려 있었던 거지."

"그러게."

하루와 나는 조금 더 계단을 올라가자 바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비상계단이 끊어져 있던 것이다.

"아, 여기구나. 벌써 여기까지 올라왔네."

이 건물은 쌍둥이 타워로, 두 건물이 다리로 연결된 마천루다. 하지만 두 건물 중 하나는 반쯤 무너져내렸고, 우리는 무너져 내린 쪽 건물로 올라가 다리를 건너 반대쪽 마천루로 꼭대기 층까지 올라가려는 계획을 세웠었다. 반대쪽 건물의 1층은 마치 폭탄 실험이라도 한 것처럼 모든 부분이 무너져 있었기 때문에 이 쪽으로 올 수밖에 없었다.

하루는 비상계단의 문을 열었다. 전체적으로는 어두웠지만 창문이 곳곳에 있어서 조금씩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반대쪽 건물로 갈 때까지 살아있으면 좋을 텐데.

나는 가방을 열어 랜턴을 꺼냈다. 이제 배터리도 거의 남아있지 않았지만 그다지 상관은 없었다. 반대쪽 건물까지만 갈 수 있다면. 나는 불을 켰다.

"내가 들까?"

"아냐, 내가 들게. 하루는 무슨 일이 생기면 지켜줘야 하잖아."

"으응, 그렇지."

하루는 약간 아쉬워하는 기색이었다.

.
.
.

다행히 그 층에는 특별이 위험한 변종은 없었다. 하루와 나는 중간에 나타난 몇 명의 괴물들을 치우고, 두 건물을 잇는 유리로 덮인 다리까지 안전하게 도달했다.

유리면 바깥으로 우리가 살던 도시가 내려다보인다. 1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바쁘게 돌아다니고 어느 곳에도 조명이 꺼지지 않던 활기 넘치는 도시는 죽어버렸다. 바이러스의 전염, 괴물들의 활개, 그리고 군의 폭격, 그럼에도 전혀 죽지 않은 괴물들의 창궐. 그곳에 남은 것은 무엇보다도 차갑고 싸늘한 도시의 주검이었다.

앞에서 말없이 걷고 있던 하루의 눈에서 약간 눈물이 맺혔다.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나는 이미 눈물이 멈추지 않게 되어버렸다.

"언니..."

"미안, 하루야. 갑자기..."

"빨리 건너가자. 저런 거 더이상 보기 싫어..."

"응, 그렇네..."

하루는 내 손을 잡고 탁탁탁, 뛰었다. 나도 같이 뛰었다. 저 광경을 보고 있으면 보고 있을수록 다리가 움직여지지 않을 것 같아서, 하루의 손을 꽉 쥐고 다리의 마지막 힘을 다해 뛰어갔다.

.
.
.

조금만, 조금만 더...!

하루는 나를 한 손에 들고 반대쪽 비상계단을 향해 뛰었다. 우리의 뒤에는 키가 3m도 넘는 거대한 변종 괴물이 우리를 바짝 쫓아오고 있었다. 마치 우리가 원래 있던 층이 안전했던 게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이쪽 층에는 괴물들이 몰려 있었고, 그 중에는 하루가 상대하기 어려운 저런 변종 괴물들도 있었다.

원래라면 저런 변종 괴물들은 상대하지 않는 게 상책이다. 하지만 어디로든 갈 수 있었던 바깥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반드시 저 위로 올라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하루는 온 힘을 다해 달렸고, 다행히 괴물의 손에 닿기 전에 비상계단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버릴 수 있었다. 괴물은 당연하다는 듯이 문을 쾅, 찍어 뭉개 버렸지만, 괴물이 다음 경로를 위층과 아래층 중 어느 쪽으로 고를까 고민하던 중 이미 우리는 몇 층이나 올라가 버려 괴물을 따돌릴 수 있었다.

괴물의 울음소리가 더이상 들리지 않으니 그냥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하루의 상태가 이제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이었다. 하루는 갑작스러운 격렬한 운동 때문에 층계의 중간에서 갑자기 엎어져 버렸다. 자주 있었던 일이니만큼, 나는 빠르게 가방에서 약을 꺼내 하루에게 주사했다.

그 시설에서 나올 때 가방에 꽉 채워왔던 마약성 진통제도 이제는 거의 다 사라져갔다. 지금 하루의 상태로는 있는 약 전부를 다 투여해도 상태가 호전될지는 잘 알수 없었다. 하루가 정신을 차리고 더이상 통증을 느끼지 않게 된 건 천운이었다.

"고마워 언니."

하루는 나를 껴안았다. 나도 하루를 안아 주었다. 끔찍한 고통의 여파인 듯 하루의 온 몸의 근육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어느 정도의 고통일 지 나는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활짝 웃어주는 하루가 존경스러울 뿐이었다.

"그래도 이제 거의 다 왔어."

"응, 그렇네."

벽에 붙어있는 층을 보면 최상층까지는 이제 열 층도 남지 않았다.

.
.
.

하루는 옥상의 문의 문고리를 잡았다. 문은 잠겨있었지만, 하루가 몸으로 쿵, 부딪히자 문은 맥없이 열려 버렸다.

"시원하네."

고도가 높은 만큼 시원한 바람이 우리를 반겼다. 우리는 저 밑을 내려다보지 않으려 옥상의 중앙으로 갔다.

"아무래도 좀 부끄러운데..."

"그건 나도 그러니까 괜찮아."

우리는 서로 뒤로 돈 채로 한 꺼풀 씩 옷을 벗기 시작했다. 이런 곳에서 한다니. 서로 찬성한 일이지만 막상 닥치니 부끄러워졌다. 나는 서로 돌아보지 않자는 약속을 처음으로 어기며 살짝 하루 쪽을 돌아봤다. 그러자 하루도 빨갛게 물든 얼굴로 이쪽을 돌아보고 있었다. 내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짓자 하루는 빠르게 얼굴을 돌렸다.

"언제부터 보고 있었던 거야."

"...맨 처음 할 때부터. 설마 한 번도 안 돌아볼 줄은 몰랐는데."

"...하루는 변태였구나."

"아냐!"

"빨리 벗어."

"응..."

하루와 나는 곧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이 되었다. 내가 하루의 뒤로 가서 살짝 안아주자, 하루는 놀라 조금 떨다가 나를 넘어뜨리고 그 위에 올라섰다.

"오늘도, 마음껏 해줘..."

하루는 여전히 얼굴을 빨갛게 물든 채로 나를 애무하기 시작했다. 나는 느리고 울리는 쾌감에 몸을 맡기며 하루를 꼭 안아 주었다.

.
.
.

정사는 오래, 아주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올라왔을 때 밝았던 하늘은 이제 조금씩 해가 지며 노랗게 물들고 있었고, 내 체력이 바닥나 움직일 수 없을 정도가 되자 하루는 그만두어 주었다.

"...미안해."

"뭐가 미안해. 같이 정한 건데."

"언니..."

하루는 울었다.

계속해서, 계속해서 울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건 그런 하루를 안아주며, 같이 우는 것 밖에 없었다.

해가 완전히 지고 모든 것이 어둠으로 물들었을 때 하루는 일어섰다.

몸에 약간씩 통증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그걸 깨달은 순간, 우리는 같이 옷을 입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언가에 홀린 듯이 옥상의 난간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그것조차 전부 미리 정해둔 일이었다.

"이제 마지막이니까 한번 정도는 괜찮지."

"응, 당연하지."

하루는 더이상 못 참겠다는 듯이 내게 키스해 주었다. 감염되어버린 하루의 몸은 내가 있던 시설의 신약으로 인해 자아를 찾을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사람을 물면 감염시키고 통제 불가능한 통증이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괴물이었다. 결국 우리는 하루를 살처분하려는 시설에서 마약성 진통제를 한가득 들고 그곳을 탈출했지만, 이제 진통제도 인내심도 정신력도 한계에 다다랐다.

이곳에서 우리는 마지막 키스를 했다.
그동안 내가 감염될까봐, 수없이 몸을 섞으면서도 하지는 않았던 키스.
긴 키스가 멈추자, 나는 몸에 조금씩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몸의 통제가 조금씩 없어져가는 느낌이었다.

하루와의 키스는 하고 싶었지만, 인간으로서 죽고 싶었던 것. 그것이 나와 하루의 마지막 소원이었다.

통증에 미쳐가는 하루와 괴물이 되어가는 나는, 옥상의 난간을 부수고 저 아득한 바닥으로 몸을 던지며 마지막으로 포옹을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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