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것들을 죽여라, 사랑하는 것들을 죽여라,자기 중심적인 마음에 찢어지는 아픔이 오더라도모름지기 사랑하는 것들을 죽여야 한다.
“…룽해!”
히나는 어느 날 아빠의 서재에서 이런 글을 읽었다. 천재지만 열 손가락 안에서 셀 수 있는 나이의 어린 히나에게는 아직 자기 중심적인 마음이라거나 찢어지는 아픔은 경험해보지 않아서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사랑하는 것들을 죽여라’라는 말이 강렬했기에 신경쓰이지 않았다.
“히나짱은 크리스마스때 뭐할거니?”“언니를 죽일거예요!”
기껏해야 산타모양 종이접기를 생각하고 있던 히카와 여사는 작은 딸의 말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아이들의 순수한 잔혹함이란. 방긋 웃으며 대답하는 아이에게 아무렇지 않은 척 하려 애썼다.
“언니를 죽인다고?”“응! 언니를 사랑하니까… 내가 언니한테 주는 선물이에요!”
여사는 소파에 앉아있는 제 남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애들의 헛소리니까 신경쓰지 말라는 말을 담아 손을 휘휘 저었다. 히카와 여사는 고개를 흔들며 한숨을 쉬고 히나의 작은 몸을 안아올려 방으로 향했다.
“그럼, 히나 짱. 엄마나 아빠한테는 어때?”“음… 싫어요.”“응? 왜? 엄마랑 아빠는 사랑하지 않아?”“언니만큼은 아니니까.”
빙글 웃고있던 얼굴이 이때만큼은 진지했다. 애들이 진지해봤자 얼마나 하겠어? 같은 생각이 먹히지 않을 정도였어서 등골을 따라 식은땀이 주륵 흘렀다. 히나는 특이했다. 어릴 적의 항상 다른 식으로 당황스럽게 했다. 다른 또래 아이들보다 뛰어난 것은 맞았지만, 이런 식으로 어딘가 불안하게 하는 것이 있었다. 이런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으니, 여사는 이번에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 * *
“…으음. 어떡할까나아?”
크리스마스 선물로 언니를 죽인다! 라고는 했어도, 어떤 방법으로 해야할 지는 몰랐다. 나름 깜짝 선물인데, 사요에게 “언니는 어떻게 죽고싶어?”라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히나는 마룻바닥에 엎드려 스케치북을 펼쳐 크레파스로 의미없는 동그라미를 계속 그렸다. 입술을 삐죽거리며 크레파스를 든 손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친 탓에 얼굴에 빨간색이 묻었지만 의식하지 못했다. 히나는 빨간 동그라미들 옆에 초록색으로 사요를 그렸다.
“히나 짱, 뭐 해? 바닥…”“아무것도 아니야!”
사요가 뒤에서 다가오자 히나는 스케치북을 뒤집고 그 위에 엎드렸다. 빨간색과 초록색 크레파스를 숨기려고 꾹 쥐었다.
“…그래. 바닥은 차가우니까 담요라도 깔고 해.”“응!”
히나는 사요가 건네주는 담요를 받아들고 웃어보였다. 사요의 뒤로 크리스마스 트리가 보였다. 사요와 함께 부모님을 졸라 미리 세워둔 것이었다. 꼬마전구가 노랗게 점멸했다.
“후아, 위험했다.”
히나는 스케치북 위에서 뒷걸음질 치고 다시 뒤집었다.
“어라?”
위에서 몸을 움직인 탓인지 그림이 전부 번져있었다. 동그라미의 빨간색이 옆에 그려둔 사요 쪽으로 쓸려가는 형태였다. 히나는 세게 쥐고 있던 주먹에서 힘을 뺐다. 크레파스가 손에서 빠져나와 바닥에 굴렀다. 손은 크레파스들이 비벼진 탓에 엉망이었다. 히나는 손과 그림과 트리를 차례로 바라보았다. 눈은 별이 뜬 것처럼 반짝였다.
“이거다!”
크리스마스의 상징은 초록색과 빨간색. 초록색은 언니, 빨간색은 피. 정답은 칼이었다! 어린 천재는 진작에 엄마가 잘 열지 않는 수납장 속 칼의 위치를 알고있었다. 적진에 잠입한 요원처럼 양옆을 살피고 살금살금 부엌으로 다가갔다. 식탁의자를 조심조심 끌고 선반까지 가 위로 올라갔다. 왼쪽에서 두 번째 문. 꽤 오랫동안 열지 않아 끼익 하고 기분나쁜 소리가 났다.
“…있다.”
입구에 바로 단도가 있었다. 히나는 다시 주변을 둘러보고 단도를 꺼내 옷 안에 넣은 후 천천히 문을 닫았다. 문은 아까보다 뻑뻑하게 닫혔다. 히나는 성취감에 벅차올라 의자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언니에게 평생 기억에 남을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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