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하고 싶다.
누군가가 듣는다면 무슨 소릴 하냐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정말로 말 그대로의 사랑을 하고 싶다.
단순히 고백을 받았거나 호감이 있어 사귀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첫 눈에 반해버려 그 사람 말고는 아무 생각도 못하게 되는 그런 감정을 갖고 싶다.
드라마나 만화 속에서 말하듯, 기존까지의 세상은 더욱 다채롭게 변화하고 하늘을 두둥실 나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을 느끼고 싶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고백을 받았지만 그 순간 세상이 달라진 적은 없었다. 사귀면 다를까 싶어, 노력해본 경험들도 내 몸을 하늘로 띄우지는 못했다.
객관적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 사람도 있었지만 그 뿐이었다. 학교의 상담 선생님과 대화를 나눠보았어도 "언젠가 나타나지 않을까?" 라거나, "사람마다 좋아하는 감정은 다르니까 굳이 그런 것에 집착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라거나.
그게 정답일지도 모르지만 그런 무책임한 말을 듣고 싶은 것이 아니다. 한시라도 빠르게 그런 사랑을 경험해보고 싶으니까.
그런데도.
"여고라니..."
교문 앞. OO여자 고등학교 라는 글자가 크게 써있다. 당연하지만 지나가는 사람들도 온통 여학생들.
"뭐야. 이은하. 네 머리로 가고싶은 고등학교를 고를 수 있다고 생각했어?"
"시끄러. 다른 데도 붙었는데 집에서 난리치니까 어쩔 수 없었다고."
"뭐, 좋게좋게 생각하자고. 집에서 가깝잖아?"
"가까우면 뭐해. 이번에야말로 운명의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고."
"우와... 고등학생이나 되었는데 아직도 운명이니 뭐니... 아직 중2병이 낫지 않은걸까. 머리 괜찮아?"
"그 입. 한마디도 못하게 만들어줄까?"
"우아, 무셔라~"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핸드폰 화면을 나에게 보여준다. 화면 속에는 한 여자의 사진이 보인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휴대폰을 세로로 긋자, 다른 여자의 사진이 나타난다.
"한가람. 그거 얼른 안치워?"
"어머나? 여고라고 안타까워하는 친구를 위해 중요한 사실을 상기시켜준건데?"
그렇게 말하며 가람이는 즐거운 듯 웃는다.
가람이가 보여준 사진 속 여자들은 내가 작년에 사귀었던 여자애들이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좋아해본 적이 없다보니 동성이든 이성이든 시도해봤지만, 남자는 뭔가 생리적으로 무리라는 기분이 들어 어느 순간부터 여자애들만 사귀었었다. 생각해보니 여고라도 큰 상관은 없겠네.
"너는 동성애에도 이해심이 있는 소중한 친구를..."
퍽. 하는 둔탁한 소리가 가람이의 옆구리에서 들린다. 그 직후, 가람이는 일순간 상체를 숙이며 온몸을 부르르 떤다.
"치우라고 했지."
"네.. 넷..."
뭐. 어찌 되었든 고등학교 첫날이니까. 조금만 기대를 가져보자. 혹시 모르잖아?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어줄 사람이 있을지도.
※
나는 학교 부지 구석에 있는 벤치에 앉아, 학교 건물 입구에 바글바글하게 모여 있는 학생들을 쳐다본다. 건물 입구에는 커다란 게시판이 있었으며 거기에는 학생들이 각자 자신이 어느 반에 속해있는지가 적혀 있는 것 같았다.
다만 학생들이 너무 많이 몰려있다보니, 가람이랑 가위바위보를 해서 한 명만 가서 확인하기로 했다. 물론 내가 이겼지만.
게시판 근처에 서 있는 학생들을 눈으로 훑어본다. 긴 머리부터 짧은 머리. 조금 탄 피부나 하얀 피부. 그 중에서는 객관적으로 이쁘다고 할만한 애들도 있었지만, 뭔가 가슴에 확 와닿는 아이는 없었다.
그렇게 다른 학생들을 관찰하며 시간을 보내던 찰나, 누군가가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 보인다.
야외 활동을 별로 안했을 것처럼 보이는 하얀 피부. 어깨를 조금 넘긴, 딱히 꾸민 것 같지는 않지만 부드러워 보이는 검은 머리. 우등생이에요 하고 말하듯, 모든 단추가 잠겨 있어 답답해 보이는 교복. 키는 나보다 조금 작은.. 160정도는 될법한 여자애가 이쪽으로 걸어온다.
그냥 벤치에 앉고 싶은 여자애일까 싶어 눈을 돌리려 했으나, 그 눈이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어 나도 그 여자애를 똑바로 쳐다본다.
뭐지? 왜 저런 여자애가 나한테 오는거지?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밝은 갈색으로 염색한 머리라던가, 조금 풀어헤친 교복 등. 저런 우등생처럼 보이는 애가 엮이기 어려울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 그녀가 다가오는 것에 신기함을 느꼈다.
내 쪽을 향해 걸어오던 그 여자애는 내 앞에 멈춰서더니 나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그리고는 갑작스레 내 손을 붙잡는다.
"드디어! 드디어 만났어요!"
그 여자애는 어쩐지 흥분에 가득찬 표정이 되어 그렇게 외친다.
갑작스런 상황에 놀란 나는 그 여자애의 손을 쳐내고, 자리에서 일어나 거리를 벌린다.
"너 뭐야?!"
"아앗, 죄송해요! 너무 기뻐서 저도 모르게!"
그 여자애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대더니 눈을 감고 작게 심호흡을 한다. 그 호흡이 조금 차분해진다.
"저는 윤 별이라고 해요. 성은 윤이고 이름은 별이에요. 당신의 여자친구랍니다?"
그 참신한 개소리에 나도 모르게 말문이 막힌다. 아무리 의기양양하게 말해도 말이지.
"저기 착각하나본데, 난 지금 널 처음 보거든?"
"걱정하지 않으셔도 저도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에요."
전혀 이해가 되지를 않는다. 얘 무슨 소릴하는거람?
"그러면 방금 말한 여자친구는 무슨 소린데?"
"저는 미래를 볼 수 있거든요! 미래에 당신과 저는 연인 관계에요."
아. 이거. 머리가 이상한 애다. 엮이지 말자.
그런 생각을 하며 그 여자에게서 벗어나고자 몸을 뒤로 돌린다. 그러자 그 여자애는 내 팔을 붙잡고 외치기 시작한다.
"아앗! 정말이에요! 제발 믿어주세요!"
고등학교 첫날부터 이상한 거에 꼬여버린 것 같다.
"하. 그래. 네 말이 진짜라고 치자. 증거는 있어?"
"증거... 아. 저희는 같은 반이에요!"
"그 정도는 게시판을 보면 나도 알 수 있거든?"
게시판을 가리키며 그렇게 답하자, 그녀는 할 말을 찾는 듯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몇 초 정도 그녀의 답을 기다려주어도 그녀의 대답은 나오지 않는다.
"없지? 그럼 난 간다. 더 이상 나한테 말 걸지 말아줘."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녀는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그 표정에 살짝 죄악감이 들기는 하지만, 이 이상 머리 이상한 여자애와 엮이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아 빠르게 발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찾으면 ..."
"뭐?"
"찾으면. 다시 말 걸어도 괜찮은가요..?"
어딘가 애원하는 듯한 그 표정을 보니, 마음이 약해져 나도 모르게 생각과는 다른 말이 튀어나온다.
"... 맘대로 해."
※
아까 전의 해프닝이 끝나고 가람이와 함께 교실로 들어간다. 이제부터 1년간 지내야 할 교실에 들어오니, 커다란 표에 각자의 이름이 적혀 있다. 아마 자리를 지정해준 거겠지.
지정된 자리에 짐을 내려놓자, 가람이가 다가오는 것이 보인다.
"화장실 가자~"
나는 "그래."라고 짧게 답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가람이를 따라 나선다.
"같은 반이라 다행이네."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서운하게 자꾸 그런소리 할래~?"
실없는 이야기를 하며 교실을 완전히 나서기 직전, 가람이의 시선이 반의 누군가를 향하는 것이 보였다. 그녀가 무엇을 보든 별로 관심은 없었기에, 그대로 교실을 빠져나오자 뒤늦게 가람이가 교실에서 나온다.
"그러고보니 이은하. 벌써부터 고백이라니. 엄청난데?"
"고백? 그게 무슨 소리야?"
그렇게 말하자, 그녀는 특유의 웃음을 띄우며 이야기한다. 목소리에도 장난기가 잔뜩 배어 있다.
"아까 전에 말야. 조금 귀엽게 생긴 애가 고백하지 않았어? 여자친구 어쩌고 했던 것 같은데."
"너 말야. 봤으면 도와달라고. 얼마나 난처했는지 알아?"
"왜? 고백 아니었어?"
나를 미래의 여자친구니 뭐니 말했지만 딱히 고백을 한건 아니니까... 고백은 아니지?
"고백은... 아니었을걸...?"
스스로도 확신이 서지 않아 의문문으로 답하자 가람이가 의아한 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럼 뭐였는데?"
"말해도 못 믿을걸."
"에~ 뭐야 궁금해~"
가람이의 말이 끝난 직후, 아침 조회를 시작하는 종이 울리기 시작한다.
"일단 교실 가야하니까 나중에 말해줄게."
가람이와 함께 화장실을 갔다가 서둘러 교실로 향한다. 첫날부터 선생님한테 찍히고 싶지는 않으니까.
교실 앞 복도에서 교실을 쳐다보자, 다행히도 아직 선생님은 도착하지 않으신 것 같았다. 대신, 뒷문 쪽에서 익숙한 얼굴이 서 있는 것이 보인다. 그 여자애는 우리를 눈치챈 듯, 시선을 나에게 향하며 다가오기 시작한다.
"저기."
"응? 나?"
아마 그녀는 나를 부른 것이라 생각하지만, 가람이가 앞으로 나서며 그녀에게 말을 건다.
"네? 아뇨. 그, 이쪽 분..."
그러면서 그녀는 나를 가리킨다.
"아하. 그럼 은하야. 난 먼저 들어간다?"
그렇게 말하는 가람이는 내 옆구리를 찌르면서 히죽 웃고는, 나를 버려두고 교실로 들어간다.
나는 새어나오는 한숨을 그대로 뱉어내며 눈 앞의 있는 여자애를 바라본다.
"있잖아. 윤 별이라고 했던가?"
"네. 맞아요. 그보다 이름이 은하였군요."
"뭐야. 알고 있던 거 아니었어?"
"아뇨. 얼굴만 알고 있었어요. 성은 뭔가요?"
별이는 무엇이든지 궁금하다는 듯, 흥미진진한 얼굴을 하며 나에게 한 발자국 다가온다.
나는 손을 들어 그녀가 더 다가오지 못하도록 제지하며 입을 연다.
"성은 이씨야."
"이은하."
별이는 감격에 젖은 것처럼 내 이름을 한마디 한마디 정성스럽게 부른다.
"이은하. 좋은 이름이네요. 저는 별이니까, 이름부터도 천생연분이라고 생각하지 않나요?"
"전혀. 그보다 미래를 본다면서 이름조차도 모르는 거야?"
"앗. 드디어 믿어주시는군요!"
"안 믿으니까."
그렇게 말하자, 그녀는 약간 시무룩한 표정이 된다.
"그게. 미래를 본다고 해도 단편적인 모습뿐이기도 하고. 특정 미래를 원할 때 보는 게 아니라 갑작스럽게 무작위로 한 조각씩 나타나는 거라서요..."
"안 믿는다고."
내 말에 짜증이 섞이는 것이 느껴진다. 아마 그녀도 느꼈겠지. 하지만 계속 터무니없는 얘기를 들어줄 생각은 없다.
"그, 그래서 아까 말하셨잖아요? 증거를 보여달라고."
"하. 정말. 그래서 증거가 뭔데?"
"우리 반 담임 선생님이 입으실 옷을 알려드릴게요. 베이지색 니트에, 검은색 코트를..."
"있잖아? 그건 교무실에 가서 한번 살펴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거 아냐? 담임 선생님 이름도 저기에 적혀 있는데."
나는 교실을 가리키며 말하자, 그녀의 표정이 굳는다.
"그, 그러면..."
"더 이상 한심한 장난질에 놀아줄 생각은 없으니까. 그딴 이상한 말 할꺼면 더 이상 말 걸지 마. 진짜로 화낼거니까."
나는 그렇게 말하며 그녀를 지나쳐 교실로 들어간다. 이미 지나쳤기에 그녀의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 그 얼굴이 쉽게 짐작이 갔다.
자리에 앉아 선생님을 기다리며 뒷문 쪽에 시선을 옮긴다. 선생님이 올 때까지 계속 그 자리에 서 있는 그녀가 눈에 들어온다.
※
"앞으로 1년 동안 모두 잘 지내봐요."
선생님의 말을 끝으로, 학교에서 해야 할 모든 것들이 끝났다. 이제 집에 가기만 하면 된다. 나는 살짝 고개를 돌려, 침울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한 여자애를 쳐다본다.
하루종일 의기소침해 있는 그녀를 보자, 나도 모르게 죄책감이 올라온다. 딱히 나쁜짓을 한 것은 아닌데. 이상한 말을 하길래 받아주지 않은 것 뿐인데. 그럼에도 신경이 쓰여, 몇 번이나 그녀를 몰래 훔쳐 보게 되었다.
"야. 이은하. 집에 가자."
앞에서 가람이가 다가오며 말을 건다. 나는 짧게 "응"이라고 대답하며 가방을 챙겨 일어난다.
"그보다, 저 여자애. 윤 별이랬나? 신경쓰여?"
"딱히?"
"그런 것 치고는 몇 번이나 보던 것 같은데? 무슨 이야기를 했길래? 나한테 알려준다면서 하나도 안 알려주잖아~"
"얘기했잖아. 이상한 장난을 친다고."
"그러니까 무슨 장난이냐고~!"
나는 다가오는 가람이의 얼굴을 밀어내며 복도를 향한다.
"이은하!"
교실을 나서기 바로 전, 갑작스레 뒤에서 큰 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보자, 별이가 내 뒤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 보인다.
"응?"
갑작스런 외침에 놀라 쳐다보고 있자 그녀가 입을 연다.
"그, 이번엔 정말로 보여줄 수 있으니까... 부탁이니 조금만 시간을 내주시면 안될까요..."
굳이 따지자면 정말로 듣기 싫은 주제였지만, 그녀의 얼굴이 너무 간절해보여 나도 모르게 마음이 약해진다. 그렇게 거부당하고도, 또 다시 이야기를 꺼낼 정도로 그녀에게 있어 중요한 걸까.
어쩔 수 없네. 라며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자 가람이를 향해 시선을 옮긴다.
"가람아. 미안한데 먼저 가줄 수 있어?"
"뭐. 어쩔 수 없지. 먼저 갈게."
"고마워."
가람이가 걷기 시작하는 것을 확인한 뒤, 나는 뒤에 서 있는 별이를 향해 다시 시선을 옮긴다. 아무래도 별이가 큰 소리로 나를 불렀기 때문일까, 주변의 시선이 우리에게 향하는 것이 보였다.
"일단. 다른 데서 이야기할까?"
그녀는 고개를 작게 끄덕이고는 그대로 교실을 나선다.
그녀를 따라 도착한 곳은 과학실이었다. 불은 꺼져 있었지만 문은 잠기지 않았던 탓에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그래서. 보여줄 수 있다는 건?"
"그건..."
"아. 잠깐. 딱히 진짜로 보여주려고 하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아까는 내가 욱하기도 했고. 그냥 나랑 친해지고 싶었던 거 아냐?"
"... 친해지고 싶은 건 맞아요."
"그치? 그런 거 없이도 괜찮으니까."
미래를 본다는 이상한 소리만 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친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저런 행동을 하는데도 아직까지 그녀를 완전히 끊어내지 않았을 정도로 호감이 있던 건 맞으니까.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니까요."
"부족하다니. 뭐가?"
그녀는 살짝 웃더니, 이내 진지한 표정을 짓는다.
" "너와 그런 식으로 만나지 않았다면, 분명 나는 죽을 때까지 이 감정을 알지 못했겠지." 제가 봤던 미래에서 들었던 말이에요."
또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꺼낸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녀의 눈동자가 너무나도 진지해 보였기에. 그런 생각은 묻어두고 그저 그녀의 말을 듣는다.
"이런 말. 믿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어요. 이상한 사람 취급하는 것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
별이는 살짝 고개를 숙이며 자신의 오른손을 가슴에 두고는 그 오른손을 자신의 왼손으로 감싸쥔다. 그 손이 조금씩 떨리는 것이 보인다.
"저도 무서워요. 이것마저도 실패해서 정말로 미움받으면 어쩌지 하고."
그녀는 숙였던 고개를 다시금 일으켜 나를 쳐다본다. 살짝 젖은 채로 불안한 듯 흔들리는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친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어요. 제가 원하는 미래는 거기에 있으니까."
"... 알았어."
그녀의 말을 완전히 믿는 건 아니다. 초자연적 현상을 그대로 받아들일 정도로 순수하지는 않으니까. 그럼에도 그녀의 말을 믿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좋아. 그럼 이제 알려줘. 별아."
"4시 47분에 일어나는 일이에요."
그녀는 과학실 한켠을 가리키며 이야기한다. 그녀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그 곳에는 4시 45분을 가리키는 시계가 걸려 있다.
2분 후에 일어나는 일인가.
"그래서 무슨 일인데?"
그렇게 묻자, 눈 앞의 별이가 심호흡을 하는 것이 보인다. 기분 탓인지 모르지만, 그녀의 얼굴이 조금 붉은 것 같았다.
"그, 그게... 저한테. 그..."
어쩐지 별이가 말을 잇지 못한다. 빨리 말하는 게 좋을텐데. 아. 46분으로 움직였다.
"키스를..."
"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별이를 쳐다보자 그녀의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있는 것이 보인다.
"저한테 키스를 해주시는 미래를 봤어요!"
별이가 힘겨운 듯 그렇게 외친다. 그리고는 두 눈을 살며시 감는다.
키스? 키스라고?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혼란스러운 머리로 몇 번이나 그녀의 말을 되뇌어 봐도, 내가 그녀에게 키스를 하는 미래를 봤다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너. 그게 무슨..."
"..."
내 말에도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눈을 감은 그대로 가만히 있는다.
시선을 옆으로 돌리자 시계가 47분이 된 것이 보인다. 나도 모르게 그녀에게서 한 걸음 뒷걸음질 친다.
아무리 그래도 키스는 안된다. 첫 키스도 안해봤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별이를 쳐다보자.
"아..."
내 입에서 얕은 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도 그럴게, 가슴에 쥔 별이의 두 손이 떨리고 있었으며 두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정말로 그녀가 미래를 보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어느 때보다 불안에 떨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어서.
나는 그녀의 양 어깨를 붙잡고 몸을 앞으로 기울인다.
"응..."
"하아..."
내 입술이 부드러운 무언가에 맞닿은 순간, 서로의 호흡이 새어나온다.
깨지기 쉬운 것을 다루듯 살며시 잡은 그녀의 양 어깨가 희미하게 떨린다. 내 가슴부근을 붙잡은 별이의 양 손이 절대로 놓지 않겠다는 듯 힘이 들어간 것이 느껴진다.
내 심장은 어느 때보다 빠르게 뛰고 있었고 그녀의 부드러움을 그대로 받아들인 머릿속은 사고를 정지한 탓에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얼마나 그렇게 있었을까. 서로의 입술이 떨어진다. 사라져버린 온기에 아쉬움을 느끼며 눈을 뜨자, 땀에 젖어있는 머리카락과 살짝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가파르게 호흡을 하는 별이의 모습이 보였다. 책상이 그녀를 받치고 있지 않았다면 그대로 주저 앉아 버렸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읏..!"
그제서야 부끄러움이 나를 덮치기 시작한다. 별이가 떨어지려고 하자, 나도 모르게 그녀를 잡은 두 손에 힘을 주어 도망치지 못하게 막았기 때문이다. 첫 키스일텐데도, 어쩐지 그녀와의 입맞춤이 너무 달콤해서. 떨어지는 것이 아쉽다고 느껴버려서.
"하아.. 제가 말한대로 되었죠?"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의기양양하게 말하는 그녀를 보자, 다시금 키스를 하고 싶은 충동이 올라온다. 자신만만한 그녀의 미소를 방금처럼 다시금 눈물 짓게 만들고 싶다.
아니아니아니. 나 무슨 생각을?!
"그러니까. 앞으로 잘 부탁해요. 미래의 여자친구로서."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세상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정말로 기쁜 듯 미소를 짓는다.
그녀의 말은 여전히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을 부정하기에는 그녀의 미소가 너무 눈이 부셔서.
"미래의 여자친구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어쨋든 잘 부탁해."
지금의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와 다를 바 없는 따뜻한 미소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세상이 더욱 다채로워지지는 않았다. 내 몸도 하늘로 띄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 심장이 너무나도 빠르게 뛰고 있었기에.
고등학교 입학식 첫 날. 나는 미래의 여자친구를 만났다.
이은하/윤별/한가람
아직 많이 쓸 부분이 많은데... 너무 바빠... 크리스맜쓰... 쨋든 재밌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수무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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