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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설풀실] (42) 미야비의 분노, 카오루의 눈물

리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12.31 21:2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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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창작글은 설풀실 마지막화 후 우타와 카오루의 과거 회상을 담은 글이며 실제 설풀실과는 관련없는, 순수한 창작글임을 밝힙니다.


이전화들은 제 갤로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이제 양이 많아서 링크 걸기 귀찮네요.)

05













2시간 전, 나는 가게에 이 자리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었다.

계속 2주 전 우타의 그 모습이 떠올라 머리가 지끈거린다.

분명 아프다, 약을 먹고 있다라는 사실은 우타에게 직접 들어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지만, 말로만 듣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을 상상 이상으로 달랐다. 

고통스러워 하며 약을 물 없이 삼키고 행여 카오루 씨에게 소리가 들릴까봐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소리 없이 흐느끼던 우타의 그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그런 고통에도 불구하고 끝내 카오루 씨에게 진심이 담긴 한 마디 조차 하지 않는 우타를 보면, 여러가지로 생각이 복잡해진다.


'.....멍청한 놈.'


자신의 행복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사람.

그런데 모순되게도 자신의 주변 사람들은 행복하길 바라는 사람.

나는 절대 우타를 이해할 수 없게구나, 라고 생각하며 한숨을 내쉰다.


"쿠로에, 무슨 일이야?"


나는 미야비를 빤히 쳐다봤다.

지금 나와 미야비의 관계도, 우타의 도움없이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었겠지.


"그냥, 고민이 있어."

".....또 우타 씨 문제야?"


미야비도 대충 짐작 정도는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착잡한 표정으로 말을 내뱉었다.


"그래."


잠시 뒤, 조용히 내 귓가에 들려오는 미야비의 말.


"고민이 뭔지 나도 알 수 없을까?"


나는 당황했다. 

우타와 한 약속이 있었기에 말할 수는 없다.


".....우타 씨는 제가 고민이 있을 때마다, 항상 성심성의 껏 도와주셨어요. 그러니까, 저도 도움이 되고 싶어요."


나는 입술을 달싹였다.

확실히, 나도 이 복잡한 생각을 나눌 사람이 필요하다.

우타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카오루 씨 알지?"

"아, 네. 예전에 이 곳에서 일하셨을 때 몇 번 이야기 나눈 적이 있어요. 어릴 때 부터 우타 씨와 같이 지내셨다고....."

"우타가 어릴 적부터 그 사람 좋아했어. 10년 넘게."

".....네?"

"말 그대로야."

"하, 하지만..... 카오루 씨는 분명 우타 씨의 오빠 분과 결혼하셨었잖아요."

"그래, 그것 때문에 10년 넘게 좋아한다고 말 한 마디조차 못했었어. 최근에서야 겨우 한 마디 했고."


미야비가 경악한 표정으로 쿠로에를 바라본다.



*



'10년이라니.'


나로써는 상상도 안 가는 말이다.

나는 과연 쿠로에에게 똑같은 행동을 취할 수 있었을까.

이제서야, 우타 씨가 은연중에 나에게 해줬던 말들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10년 넘게 이어왔던 그 마음을 이제 포기하겠데."

"왜요?"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는 표정으로 쿠로에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큰 고통을 겪어가며 이어온 마음을, 도대체 무슨 이유로 그만둔다는 말인가.


쿠로에가 머뭇거리다 이내 우물쭈물 말하기 시작한다.


".....미야비, 지금부터 이 이야기는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 알겠지?"


나는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미야비에게 약속을 받은 나는 그제서야 천천히 입을 떼기 시작했다.


"짐작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우타가 지금 많이 아파."

".....그 정도로 심각한가요?"

"항우울제랑 진정제 외에 약 2개를 더 먹고 있어. 병원에도 계속 다니고 있고."


미야비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쿠로에를 바라본다.


".....그 정도로 상태가 심각한데, 도대체 어떻게 아무렇지 않다는 듯 버티고 있는거죠?"

"사실 나도 잘 모르겠어."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도대체 어떤 심정으로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는 것 하나는 알 수 있었다.


"――――――――――――――――――――――――"

"――――――――――――――――――――――――――――――――――"


나는 그 뒤로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갔다. 

지금껏 우타가 겪은 일들.

참다 못해 나에게 털어놓았던 이야기들.


그 이야기를 듣던 미야비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죠? 이 많은 일들이 있는동안, 카오루 씨는 방관하고 있었던건가요?"


미야비의 눈이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우타가 카오루 씨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숨겼어."

"하지만,"

"그런데, 우타가 카오루 씨가 집에서 나오는 날에, 우타가 집 밖에 있어달라고 나에게 부탁했어."


나는 눈을 질끈감고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갔다.


"갑자기 집 안에서 맞는 소리가 들리더니, 우타가 한 쪽 뺨이 부은 채로 나왔어."

"물 없이 약들을 삼켜버리고,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도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울었어. 혹여나 카오루 씨에게 소리다도 들릴까봐."


나는 천천히 그 후의 상황을 회상한다.


밖으로 나온 나와 우타는, 근처 놀이터에 멈춰 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때 당시 우타의 모습을 본 나는 분노에 휩싸여 제정신이 아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좋아한데."

"뭐?"

"카오루 씨가, 나를 좋아하게 되었데."


나는 입을 쩍 벌렸다.


"그래서, 전에 말하던 것처럼 카오루 씨를 떠나기라도 할려고?"


나는 분노를 담은 말들을 쏟아냈다.

하지만, 이후 우타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내 화를 더 돋구었다.


"카오루 씨는..... 평범하게 행복해져야 하는데, 내가 다 망쳤어."

"카오루 씨에게 상처 입히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결국 또 상처 입히고 말았어. 어떡하지....."


나는 눈물을 흘리며 그렇게 말하는 우타를 보며 울컥했다.

그런 짓을 당했는데도, 자신의 상처는 눈에도 담지 않는다.

저것보다 더 애절한 사랑이 과연 이 세상에 있을까.

그런데도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 이야기를 들은 미야비도 눈물을 더욱 흘리고 있었다.


".....말해야 돼요."

".....?"

"카오루 씨에게, 사실을 말해야 돼요."


나는 벌떡 일어나는 미야비의 손을 붙잡았다.


"그래서는 안 돼."

"도대체 왜요?"

"우타가 원하지 않으니까."


나는 또 다시 우타와의 대화를 회상한다.


"이 사실은 비밀로 해줬으면 해."


나도, 미야비와 똑같은 질문을 했었다.


"도대체 왜?"

"진실을 알게 되면, 카오루 씨가 슬퍼할 꺼야."


우타가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이게 맞는거야. 카오루 씨가 다시 웃을 수 있게 되는게 중요한거야."


미야비가 눈을 부릅뜨며 말한다.


"그러면 우타 씨의 마음을 뭐죠? 그건 거짓이었던건가요?"

"그건....."

"아무리 부정해도, 마음은 사라지지 않아요. 우타 씨가 이대로 불행하기를 원하는거에요?"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 때, 누군가 우리를 불렀다.


"쿠로에와 미야비?"


뒤돌아 카오루 씨를 발견했을 때 나는 경악했다.


'언제부터 있었던거지?'


설마 처음부터 듣고 있었던건가?

생각할 새도 없이 미야비는 분노에 찬 눈으로 카오루 씨를 바라보며 말하고 있었다.


".....왜 그러셨어요?"


카오루가 어리둥절한 눈으로 미야비를 바라본다.

다행이다. 이야기는 듣지 못한 듯 하다.

그 순간 문득 드는 생각.


'.....다행인가?'


미야비를 말하는 것처럼 사실을 알려주는게 옳은 것인가.

어떤 선택이 우타를 위한 것인가.


"말해요! 왜 가족이라는 말로 당신의 행동을....."


나는 흥분한 미야비를 제지했다.

그리고는 마침내 결정한 내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는다.


"내가 말할게."



*



그 날 저녁, 나는 무기력한 표정으로 침대에 누웠다.

기억나는 좀 전 쿠로에의 말들.


「당신이 자신을 탓할까봐, 당신 몰래 병원에 다니고, 약을 먹었어요.」

「그 날 집에 나와서도, 당신에게 소리가 들릴까봐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울었어요.」

「그런데도, 당신을 탓하기는 커녕 자신이 당신을 망쳤데요.

「10년 넘게 당신을 좋아한 아이에요. 그런데 차가운 말 몇마디에 그걸 곧이 곧대로 믿는거에요?」

「.....이제서야 무책임하게 좋아한다니,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순간 스쳐가는 우타의 말들.


「가족이니까.」

「나는 괜찮아.」

「.....그런거, 조금 빨리 말해주지 그랬어.」

「.....미안해.」


우타가 나가던 그 날, 나는 우타에게 무슨 표정을 지었지?

우타에 무슨 말을 했더라?

사실 나는 답을 알고있었다.

우타를 경멸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나는 이렇게 말했다.


「최악이야.」


그 때, 울리기 시작하는 초인종.


'뭐지, 올 사람이 없는데.'


나는 의문을 가지며 기운 없이 문을 열었다.


"카오루 씨 맞으시죠?"


택배 기사가 내 이름을 확인한다.

나는 택배를 시킨 적이 없는데, 착오가 있었나?

그렇게 엉겁결에 택배를 받아 집 안으로 들어온다.

나는 칼을 가져와 택배의 포장을 뜯어 안의 내용물을 확인했다.

상자 안에는 에어랩으로 감싸져 있는 작은 케이스와 익숙한 목걸이, 그리고 종이 한 장이 들어있었다.


"....."


나는 케이스를 여는데, 예상치 못한 물건에 흠칫한다.

케이스 안에는 빛을 받아 투명하게 반짝이는 보석이 박힌 반지 한 쌍이 들어있었다.

누가 봐도 꽤나 비싼 가격대일 듯한 반지였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옆의 종이를 집어들어 내용을 읽기 시작한다.


『안녕, 카오루 씨.

  

  지금은 내가 집에서 나가기 일주일 전이야.

  카오루 씨를 직접 보면서 이야기를 할 자신이 없어 이렇게 편지로 대신해.


  10년 넘게 카오루 씨를 좋아하면서 내 인생을 정말 행복했어.

  별 볼 일 없었던 내 인생이, 카오루 씨 덕분에 빛나는 듯 했어.

  물론 마음을 전하지 못한다는건 꽤나 고통스러운 일이 었지만, 그걸 넘을만한 행복한 일들이 너무 많아서, 불행하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

  그런데, 이제 이 마음을 끝내려고 해.


  모두가, 심지어 카오루 씨조차 우리를 좋은 가족이라고 말하는데, 괜한 나의 오기가 카오루 씨를 상처 입히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어.

  지금 내가 카오루 씨와 하는 일들은 가족으로써 해줘도 손색없는데, 내가 괜히 고집부렸나봐.

  카오루 씨는 가족으로써 다시 나를 가까이 대해줬는데, 나 혼자 불순한 생각을 한걸지도 몰라.

  그래서 카오루 씨의 집에 남아도 된다는 카오루 씨의 말은 정말 기뻤지만, 나가기로 결정한거야.

  조금 카오루 씨와 거리를 두고 마음을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거든.


  아마 같이 전해질 반지는 내가 이 마음으로 주는 마지막 선물이자 욕심이야.

  언젠가, 카오루 씨 앞에 나타날 좋은 사람과 같이 껴줬으면 좋겠어.

  나 같은 것 보다 카오루 씨에게 상처주지 않고, 사랑을 줄 사람.


  올해 카오루 씨가 나에게 선물해준 목걸이는 돌려줄게.

  살짝 달라진 마음으로 내게 선물해 준 건 기쁘지만, 분명 언젠가는 사라질 일시적인 마음일꺼니까.

  카오루 씨는 평범하게 행복해지길 바래.

  

  비록 지금은 이렇게 비겁하게 떠나지만, 언젠가 다시 카오루 씨를 찾아갈게.

  만약 나를 용서했다면, 아무렇지 않게 다시 가족처럼 대해줘.

  그동안 고마웠어.


  생일 축하해, 카오루 씨.                                                                                                                                                              

                                                                                                                                                                                          』



「왜 이렇게 일을 많이 하는거야?」

내 의문에 항상 웃으며 말하던 우타를 떠올린다.

「별 이유 없어.」


나는 쓰레기통을 열어 내용물을 확인한다.

수없이 많이 뜯어져있는 약봉지들.

나는 한 쌍의 반지가 들어있는 케이스를 바라본다.

조용히 흘러내리는 눈물 한 방울.

이제야 하나씩 기억나는 우타의 슬픈 표정과 말들.

나는 정말 몰랐던걸까, 아니면 모른 척 하고 싶었던 걸까.


카오루가 소리내어 울기 시작한다.

우타의 편지에 눈물 방울들이 떨어졌다.


"으아아아아아아!!!!!!"


카오루는 그렇게 절규하며 바닥에 쓰러져 하염없이 울었다.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반지의 보석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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