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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불건전] 정말 몰랐다면 좋았을 텐데

legaldrug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1.03 23:59:03
조회 222 추천 12 댓글 2
														

 낯선 천장이다.


 '응?'


 갑작스러운 깨달음에 놀라 벌떡 일어났다.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다가 수진이의 자취방이란 걸 눈치챘지만 불안함은 가시지 않았다.


 '내가 왜 여기 있지?'


 어쩌다가 수진이의 자취방 바닥에서 자게 된 건지 전혀 기억이 없었다.


 '침착하자. 저녁부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차근차근 짚어 나가는 거야. 분명 기말고사도 끝났고, 내 졸업 연구 발표까지 어제 끝났지. 수진이가 정장 입은 모습은 처음 보는데 멋지다고 했고, 아니,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옷만 갈아입고 기다리고 있던 수진이, 지윤이랑 함께 술 마시러 갔지. 그리고 지윤이가 순진한(?) 후배한테 술 먹이고 성희롱했다며 나한테 술을 한 병, 두 병.......'


 그 뒤로 기억이 없다. 평소라면 수진이가 취하기 전에 내가 필름이 끊길 정도로 마시진 않았겠지만 거의 밤새 발표 준비한 데다가, 어제 지윤이까지 합세해서 너무 마셔버렸다. 신입생 이후로 필름이 끊긴 건 처음이라 어제 무슨 짓을 했을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어제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고 있는 걸 보면 땅바닥에 구르거나 술을 쏟거나 하진 않은 것 같아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일어났어?"


 목소리가 들린 화장실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지윤이가 드라이기를 손에 든 채로 화장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네가 왜 거기서 나와?'


 내가 몸을 못 가눠서 두 명이서 질질 끌고 왔나 싶어 불안감은 가중되었다.


 "어...... 수진이는?"


 "알바 가야 한다면서 먼저 나갔어. 그보다 넌 일어나자마자 그것부터 물어보네."


 "아...... 죄송합니다."


 "뭐가?"


 놀리는 듯한 말투로 물으며 지윤이는 드라이기의 선을 접고 서랍 속에 넣고는 책상에서 의자를 빼서 앉았다.


 "전혀 기억이 안 납니다......"


 "......"


 말없이 빤히 쳐다보는 지윤이는 마치 눈으로 욕을 하는 것 같았고, 견디다 못해 내가 먼저 짐작 가는 행동을 하나하나 읊기 시작했다.


 "나 혹시 욕했냐?"


 "아니."


 "아님 갑자기 뛰쳐나갔냐?"


 "아니."


 "울었냐?"


 "아니."


 "제대로 못 걸어서 둘이서 옮겼냐?"


 "아니. 니 발로 걸어왔어. 그리고 딱히 민폐짓은 안 했고 그냥 조용히 흑역사만 쌓았지."


 "뭐?"


 욕한 것도, 걷지 못한 것도, 갑자기 달린 것도 아니라 다행이었지만 그 외에 흑역사를 쌓았다니 짐작 가는 게 없어서 불안했다. 머리 속으로 도대체 뭔 짓을 했을지 기억하려 애쓰는 나를 보던 지윤이는 피식 웃더니 입을 열었다.


 "진짜 하나도 기억 못 하나 보네."


 "가르쳐 주십시오, 룸메님......"


 "너 어제 완전 대담했지, 아주 그냥."


 "어?"


 대담했다고? 개진상이었다거나 병신이었다도 아니고 대담했다니?


 "......혹시 옷 벗으려고 했냐?"


 "아하하, 아니, 민폐짓은 안 했다니까. 음, 술집에서 나오고 걸어오면서 수진이한테 기댄 건 기억해?"


 "뭐?"


 전혀 기억이 안 난다. 내가 수진이한테 기댔다고? 왜? why? how?


 "신장 차이상 그게 가능하냐?"


 "그 점이 궁금한 거냐고......"


 지윤이는 한숨을 쉬며 폰을 만지작거렸다. 누군가에게 카톡을 하는 듯했지만 누구랑 톡을 하는지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그게 다야?"


 "음...... 혀가 제대로 꼬여선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중얼거렸지. 그리곤 기숙사 쪽으로 안 가고 다짜고짜 수진이 자취방까지 따라들어왔고."


 "하...... 미친......."


 기절해서 끌려온 게 아니라 내 발로 걸어들어왔다니. 아니, 이쯤에서 이미 민폔데. 민망하고 미안해서 마른세수를 하다가 그대로 고개 숙여 몸을 웅크렸다.


 "아무튼 그래서 기숙사까지 걸어가다가 이상행동 하는 꼬라지를 보느니 차라리 재우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바닥에 드러누운 널 그대로 뒀는데 그러곤......"


 "또 있어?"


 "수진이한테 손을 달라고 했지."


 "예?"


 "그래서 수진이가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손을 주니까 두 손으로 잡고 주물거렸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내 행동을 듣고 놀라 고개를 들었다. 사람이 너무 놀라면 아무 말도 안 나온다는 게 사실이었다. 갑자기? 손을? 왜? 강아지 앞발도 아니고 사람 손을?


 당황한 내 표정을 보고 지윤이는 크게 웃어댔지만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서 전혀 짜증나지 않았다.


 "아, 그리고 나머지 한쪽 손도 달라고 했는데 그러다가 갑자기 잠들었어."


 "하...... 으, 수진이한테 나중에 미안하다고 해야겠네."


 "뭐가 미안한데?"


 방금까지 실실 웃던 지윤이의 목소리가 약간 냉정해진 것 같았지만 기분 탓이겠거니 생각했다.


 "걷다가 기댄 거랑 갑자기 자취방에 들어온 거랑 손 주물거린 거."


 "손 주물거린 게 왜 미안한데?"


 "쎄쎄쎄 놀이도 아니고 갑자기 사람 손을 그렇게 만지작거리면 싫을 수도 있잖아."


 "아아, 그래서 미안한 거였어? 하하."


 지윤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빨리 기숙사로 돌아가서 씻고 정신 차린 뒤 사과해야겠다는 생각에 두리번거리며 입고 왔던 패딩을 찾았다.


 "수진이가 너한테 고백했던 건 아니지?"


 "어, 걘 고백한 적은 없......"


 구석에 침낭처럼 돌돌 말려진 패딩을 찾아 입는데 지윤이가 물었고, 내가 술 먹고 저지른 미친 짓에 대해서만 생각하던 나는 무심결에 대답하다가 말을 멈추고 지윤이를 쏘아봤다.


 "뭐야, 역시 너도 알고 있었잖아."


 "뭘?"


 "그렇게 자연스럽게 대답할 뻔 해놓고, 모른 척하기엔 늦었다는 생각은 안 들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모른 척 한 적은 없다. 확신이 없었으니까.


 "모를 리가. 그럼 동아리 1학년 교육 담당은 갑자기 왜 하겠다고 한 거야?"


 "니가 할 사람 없다고 나한테 사정했잖아."


 "그런 이유였다면 그 해 개강하기 전에 하겠다고 했겠지. 그 이유만은 아니잖아?"


 "이지윤."


 약간의 짜증이 실린 목소리로 이름을 부르자 지윤이는 입을 닫고 할 말 있으면 해보라는 표정으로 나를 봤다.


 "난 널 좋은 친구라고 생각하지만 항상 그런 식으로 사람 성격이나 마음을 단정 짓는 건 싫다고 했을 텐데."


 "그럼 아니라고 생각해?"


 "걔는 날 그런 의미로 좋아하는 게 아냐."


 "너야말로 니가 받아들일 수 없는 마음이라고 해서 모르는 척 하는 것 좀 작작 해. 그 짓 하다가 1학년 때 김동수한테 내내 시달려놓고는 배운 게 없어?"


 "난 모르는 척한 적 없어!"


 지윤이랑 말할 때 먼저 화내면 지는 듯한 기분이라 참으려 했지만 김동수를 언급하자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진작 처음부터 꺼지라고 욕을 박지 않은 걸 잘못이라고 하면 모를까 모르는 척한 적은 없다.


 "그래, 그땐 그랬다 쳐도, 이번엔 너도 알잖아."


 "알긴 뭘 아는데. 동성의 친한 후배와 선배 사이, 그 이상의 뭐가 있긴 했냐?"


 지윤이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나를 쳐다보기만 했다. 화를 돋우어 놓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태도에 참지 못하고 결국 폭발해 버렸다.


 "그럼 내가 뭘 했어야 했는데? 남친이랑 사귀면서 틈틈이 같이 밥 먹자고 하고, 지 좋을 대로 껴안고, 연애 상담 해달라는 애한테 나 좋아하냐고 물어 봐? 아니면 걔가 헤어지고 나서 사람 헷갈리게 하지 말고 얼른 새 사랑이나 찾으라고 해? 어차피 모르는 척 하는 거랑 진짜 모르는 걸 상대가 구분 못 하면 내가 무슨 의도로 걔한테 행동했는지가 무슨 상관이야?"


 '아, 이러면 내가 걔를 좋아하는 것 같잖아.'


 마지막 말만 하고 앞의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수진이는 그런 마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애써 아니라고 부정하며 숨겨왔던 내 마음이 이미 많이 기울어 있었다는 걸 이런 식으로 확인하고 싶진 않았다. 저질러 버렸다는 생각에 지윤이의 표정을 살폈지만 그저 놀란 듯이 조금 커진 눈으로 날 보고 있을 뿐이었다.


 "먼저 갈게."


 황급히 자취방에서 뛰쳐나와 기숙사로 달려갔다.


 '받아들일 수 없는 마음? 뭘 다 아는 척하고 지랄이야.'


 본인만 모르고 난 이미 알고 있는 수진이의 마음 가지고 고민하느니 차라리 확신할 수 없다고, 난 모른다고 믿는 게 편했다. 그래, 사실은 아예 모르는 건 아니었다. 단지 끝까지 모르는 척하다가 마치 후회하는 연인들의 드라마처럼, 서로의 마음이 그랬던 건지도 모르고 지나가게 되면 해결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많이 흐르고 이때를 돌이켜 보다가 문득 좋아했다는 걸 깨닫더라도, 인생은 드라마가 아니니까, 후회는 있어도 그리움에 슬퍼서 울 일은 없을 테니까, 그러면 된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잘 되어가고 있었다. 수진이가 헤어지고 나서 뭔가를 깨달은 듯한 행동을 보이지만 않았어도, 지윤이가 들쑤시지만 않았어도.


 '하아, 젠장.....'


 벌써 오후였지만 미처 지퍼를 잠그지 못한 겉옷 틈으로 12월의 찬 공기가 새어 들어왔다.


 '아, 개같이 춥네에에에에!'


 괜히 애꿎은 추운 날씨를 탓하며 멈춰서서 지퍼를 올리지 않고 그냥 그대로 달렸다. 정말 개같이 추웠다.


======


원래 앞 내용이 있고 거기서 이어지는 글이지만 대회용으로 이부분만 잘라서 냄

이렇게라도 안 하면 쓰던 거 뒷내용 영원히 안 쓸 것 같아서 이렇게 쓴 건데 이전에 썼던 거 이어쓰는 거 금지면 자삭함

대회 참여는 이 글 내용으로만 할 건데 이전 거 보던 백붕이는 밑 내용에서 이어지는 글로 읽으면 됨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lilyfever&no=652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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