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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불건전)길을 잃다

삼일월야공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1.11 23:47:08
조회 505 추천 15 댓글 10
														



전편 -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lilyfever&no=690248&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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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집에서 새를 기른 적이 있었다. 베이지색 새장 안에서 지저귀던 새를 보며 웃음짓던 얼굴이 있었다. 그런 언니를 보면, 내 마음 한 구석에서도 미소가 차올라 얼굴을 덮었다.


“언니는 이 아이를 참 좋아하는구나.”


“그러는 선화 너도 웃고 있잖아.”


“나는 언니만 좋으면...다 좋아.”


그 새의 이름은...그런 건 잊어도 좋다. 그런 내 대답에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언니만 잊지 않는다면 괜찮은 것 아닐까. 새장 속의 그 새가 지저귀고 있는 한 우리는 행복할 수 있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저 어린 애의 소원에 불과했지만.


해가 저물어 달이 뜬 아스팔트의 숲에는 싸늘한 바람만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옷깃을 여미는 뭇사람들의 발걸음과 함께 먹이를 찾는 고양이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굴러가는 차디찬 공간. 주디는 그 한 구석에 쓰러져 숨을 내쉬고 있었다.


‘미쳐버린거야, 나는.’


그 말대로, 주디는 어딘가 틀어져 있었다. 육체적 고통 같은 것을 넘어서 이미 질릴대로 질려버려서 남의 시선을 갈구하고 있다. 상처 입은 여자를, 거리의 한 구석에서 피를 흘리는 여자를 보게 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미친 여자라고 생각할 것이다. 엮이면 더 골치 아파진다고. 그렇게 마음먹고 지나가지만 그 한 구석에는 동정이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측은지심에서 비롯된 순수한 연민. 주디는 그 티없는 감정을 만끽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놓는다. 다른 사람의 선의조차 쾌락의 자양분으로 삼기 위해, 차디찬 아스팔트의 바닥에 누워 자신을 전시한다.


나는 어느 주택의 난간에서 그 모습을 지켜본다. 옅은 가로등불 아래 지쳐 쓰러져 있는 주디를 바라본다. 주디는 그것이 나의 의무라고 말했다. 주디가 저렇게 거리의 한 가운데에 자신을 전시하는 것을 ‘허락’한 사람의 책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네가 내 것이니까, 그런거야?”


“맞아. 이 옷을 입혀준 순간, 그리고 이름을 붙여준 순간. 나는 네 것이니까.”


나는 네 것, 그리고 너는 내 것. 기묘한 소유의 관계.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는 주디, 그리고 그런 주디를 지닌다는 것을 욕망의 양분 삼아 살아가는 나. ...결국 우리 둘 다 비천한 쾌락의 노예가 아닐까. 그리고 그 생각대로 언뜻 나와 눈이 마주친 주디는 입꼬리를 슬며시 올린 채 웃음을 흘긴다. 아, 저 미소의 주인은 바로 나라는 사람. 저 얼굴이 온전히 나를 위해 있는 것, 분명 그렇다.


“춥거나 하지는 않았어?”


“당연히 춥지, 아프기도 하고.”


그래도 미소는 지우지 않은 채 목에 팔을 감는다.


“그래도 즐겁잖아. 너는 어떤데?”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입을 맞춰 그것으로 감정을 이어나갈 뿐. 벅차오르는 가슴이 가쁜 호흡을 만들어낸다. 그에 맞춰 다리는 움직이고, 우리는 다시 또 어느 밤처럼 방으로 파고들어 만족할 때 까지 서로를 품었다.


“그래서 그냥 일시적인 컨디션 난조였다고?"


"그런거지."


"그래? 얘는, 내가 또 얼마나 걱정했는데.”


수화기 너머로 한숨소리가 들렸다. 묵혀두고 있던 감정을 전부 쏟아내는 울림이 느껴졌다.


“미안.”


“됐어. 그렇게 미안하면 나중에 우리 집에나 한 번 찾아오던가.”


“...깨가 쏟아지는 신혼인데 뭘 찾아가.”


“농담도.”


그렇게 웃는 언니의 목소리를 들으니 그 신혼집의 정경이 그려졌다. 서울을 벗어났지만 그만큼 넓다고 했었던가. 적당히 높은 층수의 방은 낮에는 햇빛을 받고 밤에는 네온사인의 잔향을 들여오겠지. 언니는 그런 집에서 형부, 그런 사람과 살고있다. 언니가 다른 누군가와 함께 살고 있는 집이라.


“그냥 신혼집에서 즐기고나 계셔...아, 잠깐 나가봐야 해서 이따 다시 전화할게.”


그런 상상을 하니 어쩐지 마음 속에서 하잘것 없이 차오르는 무언가가 있어 억지로 통화를 끊었다. 이제 언니와 함께하는 사람을 결코 나쁜 사람이 아닐텐데. 언니가 변해버리는 것도 아닌데. 지금 통화에서도 언니는 여전히 나를 생각해주고, 전처럼 웃어주고 있었는데 나는 금방 목이 메였다.


그 날, 참을 수 없는 충동이 일어 주디를 찾아갔다. 갑작스러운 방문에도 주디는 놀란 눈치 없이 자연스레 나를 안에 들였다. 나의 주디, 나만의 주디. 끊임없이 그런 말을 되뇌이며 끌어안은 손에는 자연스럽게 힘이 들어갔다.


“오늘따라 적극적이네?”


그런 농담에도 대꾸를 하지 않고 눈 앞의 주디와 함께하는 이 시간에 집중했다. 그저 비천한 쾌락이더라도 지금 이것만이 내가 누릴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밤은 눈 깜짝할 새 지나간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눈을 뜨지만 금방 감을 수 밖에 없었다. 창에서 비치는 햇살이 너무도 눈이 부셔 순간 적응할 수 없었다. 눈을 감고 심호흡하기를 몇 번. 그렇게 눈을 떴을 때, 주디는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아, 일어났어?”


“어디가?”


“일하러 가 봐야지.”


“일이라면…”

“내가 하는 일이 뭐겠어. 아, 그 날처럼 과격한 사람은 안 받을거야. 걱정하지마.”


주디는 그렇게 헤실헤실 웃는 얼굴로 문을 열고 있었다.


“저기 잠깐만..”


“그럼, 안녕.”


그렇게 인사를 하며 나가는 주디를 붙잡고 싶었지만 주디는 이미 나가고 없다. 주디가 하는 일이라면 분명 돈을 받고 고통을 애원하는 것, 다른 누군가의 욕망을 오롯이 담아내는 것. 내가 주디를 처음 본 그 날과 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다. 그 날처럼 과격하지 않다지만, 다를 것 또한 없으니.


하지만 내 마음 속에 싹을 틔운 욕망이 말한다. 나의 주디가 사라진다고. 오롯이 내 것이어야 할 주디가 사라진다고. 그렇게 욕망이 울부짖을 때, 무엇인가 차올라 목을 틀어막았다. 마치 그 날처럼, 언니와 전화했던 그 날 처럼.


“싫으면 그렇게 무리하지 않아도 돼.”


“...오른팔의 그 흉터, 없었던 거 잖아.”


그런 내 말에 주디는 자신의 팔을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달아오른 피가 채 아물지 않은 채 남아있었다.


“뭐야, 질투?”


“...됐으니까.”


“알았어, 알았다고.”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오른팔을 내밀었다. 그렇게 붙잡은 주디의 팔에는 울긋불긋한 열꽃이 만발해있었다. 나는 입을 벌려 그 위에 내 흔적을 아로새겼다.


“읏.”


“...아팠어?”


언제나처럼 묻는 형식적인 질문.


“항상 말하지만 아픈 건 아픈거야, 근데 또 미치도록 즐거운 건 어쩔 수 없는거고.”


그에 돌아오는 건 늘상 듣는 대답. ...사실 중요한 것은 내가 아로새긴 것이었다. 저것은 언제까지고 주디에게 남을까. 입 안에서 비릿한 향이 느꼈다.


“네 앞에 있는 한 나는 너만의 주디야.”


그런 말에 도무지 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원하는 말은 그게 아니었으니까.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나를 떠나지 않은 나의 주디, 나만의 주디. 비대해진 욕망은 연신 그런 말을 내뱉고 있었다. 사람을 진정 가진다는 오만한 요구. 이룰 수 없는 욕망은 머리에 피를 쏟아부었고 그렇게 정신은 아득히 멀어져만 갔다...


깨질 것만 같은 머리를 부여잡고 눈을 떴을 때, 나는 내가 바라보는 풍경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 주디를 닮은 여자가 밧줄에 묶여 방 한 구석에 쓰러져있다.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아니면 어떤 도착적인 영화라도 보고 있는 걸까. 하지만 귀가 또렷해지고 노이즈가 낀 기억이 또렷해질 수록 이건 분명한 현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주디를 묶어버린 것은 바로 나였다. 저 방 한 구석에 가둬버린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


어쩌자고 이런 미친 짓을 했을까, 공포에 숨이 막혀 견딜 수 없는 몸은 멋대로 문 밖으로 나가 달리기 시작했다. 더 이상 발이 저려 달릴 수 없을 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의 한 가운데에 있었다. 나아갈 길도, 되돌아갈 길도 정할 수 없는 무저갱의 한복판.


문득 핸드폰이 울렸다. 디스플레이에 적힌 이름은 ‘우리 언니’.


“...여보세요.”

“여보세요. 우리 동생은 뭘 하고 있었을까?”

언니는 그 언제나처럼 쾌활한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걸었다. 지금 그 동생이 어떤 끔찍한 짓을 저질렀는 지도 모르고.


“그냥 바깥에 산책하고 있었어. 잠이 안 와서.”


내가 말을 하고도 역겨운 거짓말.


“날도 추울텐데 그냥 집에 있지…”


“아니 뭐, 그런 날도 있는거잖아. 그래서 왜 전화한거야?”

“아, 오늘 엄마네 집에 잠깐 들렸었거든. 그래서 우리 동생은 어떻게 잘 지내나 궁금해서...아, 참. 선화야, 너 주디 기억나?”


순간 언니의 말에 놀라 균형을 잃을 뻔 했다. 주디, 어째서 언니가 그 이름을 입에 담은걸까.


“주디라고?”


“그래, 주디. 우리가 같이 길렀었잖아. 베이지색 새장의 안에서 지저귀는 걸 같이 보기도 하고...”


새장안에서 우리 자매가 키우던 새, 그리고 그 새의 이름은 주디.


“어쩌다 창고에서 새장을 봐서...그걸 보니까 그냥 우리 어렸을 때 생각이 나더라고. 그 땐 별 거 아니더라도 웃고 그럴 수 있었는데.”


“...어렸을 때.”


“그래, 어렸을 때. 참 좋았지.”


지저귀는 새를 보며 웃는 언니, 그리고 그런 언니를 보고만 있어도 마음 한 구석에서부터 미소가 차오르던 내가 있었다. 그것이 우리 자매의 어릴 적, 지금과는 다른 어렸을 때의 우리 모습.


"나 그 때는 정말 좋았어...그 때는 정말로 행복해서..."


목이 메여 제대로 말을 할 수 없었다. 계속 목을 가다듬으며 말을 이으려고 하지만 한 번 터져나오는 눈물을 담을 수가 없어서 나는 흐느끼는 채로 고개 숙였다.


"선화야? 선화야 왜 그래? 너..너 괜찮아? 지금 어디야? 지금 어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언니의 목소리. 그래도 언니에게 크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서 답을 하려고 했지만 도무지 이야기 할 수 없었다. 돌아갈 길도 나아갈 길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움츠려 들어 떨 뿐 이었다.

__________________


주디는 영화 택시 드라이버에서 열연을 펼쳤던 주디 포스터에서 따온 거에요

아 좀 더 뭐 어떻게 하고싶은데

치일피일 미루다보니까 참 거 아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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