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도서관_옥상
“아팟!”
“가만히 있어 붕대가 흐트러지잖아.”
“이럴 필요까지는 없다니까...아앗!”
“걷지도 못하면서 뭐라는 거야.
내가 마침 구급 가방을 가지고 있어서 다행이지, 이것도 없었으면 넌 여기서 얼어 죽었어.”
나중에 C에게 감사해야겠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니까 말했지만 웬만해선 안 죽는다니까...”
자신을 ‘엘리’라고 소개한 이 소녀는 하얀 붕대로 꽁꽁 묶인 자신의 왼 다리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엘리의 설명은 거의 판타지에 가까워서 속이는 건가 싶었다.
“그래 들었어, 네 민족이 영원히 산다며?
“아니, 영원히 사는 게 아니라 매우 오랫동안 사는 것뿐이야.”
“그래, 천년을 산다는 얘기잖아.
정말 그걸 믿으라는 거야?“
“...그래.”
“그럼 넌 몇 살인데?”
“...200살 조금 넘었어.”
“사람들 불러올게.”
붕대의 마지막 매듭을 막 지은 나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일어났다.
그러자 엘리가 다급하게 내 바지를 잡았다.
“정말로 들어본 적 없어? 미신이나 고고학 괴담으로도?
우리는 여러 가지 이름이 있어.
최초인, 마녀, 불의 사람, 용의 민족...
그 어느 것도 들어본 적 없어?“
“...아니, 들어본 적 없어.”
나는 다시 엘리의 옆에 털썩 앉았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거짓말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왕 하려면 좀 더 제대로 된 거짓말을 하지 그래?“
“거짓말이 아니야!
학자라면서 그런 식으로 단정 지어도 되는 거야?”
엘리가 언성을 높였고, 그 얘기에 나 또한 조금 발끈했다.
“학자란 건 말이야, 실증이 있으면 그걸 토대로 연구를 하는 거야.
실증도 없는 소문을 곧이곧대로 믿는 건 그냥 가십거리에 지나지 않아.“
“증거는 있어!”
“어디에?”
드디어 뭔가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네 큰 엉덩이가 깔고 앉아 있잖아!”
나는 무슨 소린가 싶어 몸을 기울여 엉덩이를 들어봤지만 그 아래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이 탑이, 이 도서관이 증거라고.”
엘리는 조금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말을 이었다.
“여기가 뭐냐고 물었지? 이 도서관은 우리 민족에 관한 도서관이야.
여기에 있는 책들은 우리 민족의 역사, 생리, 문화, 지리에 관한 책들이고.”
용과 불, 성채, 늙지 않는 인간, 고대의 것인 듯한 의학서적과 본 적 없는 문자, 그리고 온갖 그림 양식들.
나는 여기까지 올라오면서 읽은 책들의 내용을 어렴풋이 떠올려봤다.
여전히 진실이라고 하기엔 힘든 점이 많다. 하지만 이제는 거짓이라고 하기 힘든 점도 생겼다.
설령 거짓말이라 해도 작은 단서 정도는 건질 수 있으리라.
“...계속해봐.”
“이 도서관이 언제 세워졌는지, 누가 어떻게 세웠는지는 나도 몰라.
대략 5세기 언저리 즈음에 세웠다고는 들었지만, 확실하지는 않아.
그때는 이미 우리 민족이 뿔뿔이 흩어진 상태라 가까운 친척들에게 들었을 뿐이거든.”
“흩어졌다?”
“얘기하자면 길어지니 자세히 설명하긴 힘들지만,
우리처럼 특이한 인종은 어엿한 문명 속에서 뭉쳐있다간 금방 정체가 발각돼버려.
그렇게 되면 연구, 숙청, 사냥, 추방... 같은 것들을 피하기 힘들지.
그런 이유로 우리는 항상 중앙권력이 손이 안 닿는 곳에서만 함께 살았고,
그런 곳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게 되자, 민족은 아예 흩어져서
몇 가구끼리만 모여 살기 시작했다고 들었어.“
“그럼 넌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야?
네 뿌리라도 찾고 있는 거야?”
“그렇게 속 편한 게 아니야!”
짜증이 섞인 목소리였다. 하지만 이내 곧 힘없는 목소리로 바뀌었다.
“...아니,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네.
나는... 우리 민족의 고향을 찾고 있어.”
“민족의 고향이라니?”
“정확히는 발원지라고 하는 게 맞겠지.
나도 어렸을 적에 어머니께 들었던 것뿐이라 잘은 몰라.
그저 다른 민족처럼 우리 민족도 모든 걸 시작한 땅이 있고, 나는 그곳을 찾고 있는 거야.”
“그럼 역사 공부하는 거네.”
그 말에 엘리가 나를 째려봤다.
“나는 그냥 알고 싶은 게 아니라, 그곳으로 가려는 거야.”
약간 호전적이었지만 짜증보다는 힘이 깃든 목소리였다.
나에게 말하는 게 아닌 자신에게 다짐하는 듯한, 무거운 의지가 느껴졌다.
“부모님께는? 여쭤본 거야?”
그러고 보니 부모는 어디 가고 혼자 있는 걸까.
엘리는 내 질문에 갑자기 의지를 잃고 얼굴빛이 어두워지더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털어냈다.
“...부모님이 어디 계신지는 나도 몰라.
그래서 고향을 찾고 있는 거야.
언젠가, 가족끼리 고향에 가기로 했어.
물론 이주는 아니고 어렸을 때 약속한 가족 여행일 뿐이지만...
지금 내게 부모님을 찾을 방도는 그것밖에는 없어.”
그녀의 눈가가 다시 촉촉해졌고, 목소리는 떨리기 시작했다.
“80년 전, 헤어진 후로 계속해서 부모님을 찾고 있었어.
모든 책을 읽고 모든 단서를 수집하고 모든 곳에 가봤어.
그리고 마지막에 도착한 곳이, 지금 너희들이 파고 있는 황무지야.
지금 너희들의 심정처럼 나도 절망했고 또 포기했어.”
지금까지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아무렇지도 않게 터놓은 엘리는 점점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고 있었다.
목소리는 흔들리다 못해 거의 울 것 같았다.
“하지만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들어간 협곡에서 이 탑을, 도서관을 발견했어.
끝의 끝에서 가장 유력하고 선명한 단서를 발견한 거지.
지금은 이 도서관만이 부모님을 찾을 유일한 길이야.
제발, 제발 부탁해. 부디 이곳을 비밀로 해줘.”
갑작스레 간절해진 그녀의 태도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방금까지의 굳센 의지는 어디 가고 절박한 목소리로 나에게 매달리고 있었다.
내가 아무 말도 못 하자 또다시 힘없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니, 그건 무리겠지...
그럼, 적어도 나에게 시간을 줘. 조금이라도 괜찮아.
나는 오랫동안 여기서 연구해왔고, 거의 모든 책을 읽었어. 얼마 안 있으면 전부 끝날 거야.
그때까지만, 제발 그때까지만 기다려줘. 제발 부탁이야.
그 후엔 어떻게 하든 좋아. 네 마음대로 해. 하지만 조금만... 조금만 시간을 줘...”
엘리는 이제 거의 울고 있었다.
커다란 눈에서는 그렁그렁 맺힌 눈물이 별빛처럼 반짝이고 있었고
가녀린 손은 내 팔을 힘없이 잡은 채 끊임없이 떨리고 있었다.
나는 엘리를 지그시 바라봤다.
새하얬던 눈가와 뺨 그리고 귓불이 붉게 상기됐다.
온갖 감정과 좌절, 그리고 희망이 뒤섞인 그 얼굴은
마치 이제는 진실이니 거짓이니가 무슨 의미냐고 말하는 듯했다.
나는 나를 간절히 바라보는 두 눈으로부터 고개를 돌려, 하늘을 올려봤다.
어느새 완연해진 어둠이 하늘을 뒤덮었고, 샛노란 별들과 은빛 상현달이 저 멀리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공기가 차가웠다.
“여기에 계속 있다간 감기 걸릴 거야.”
나는 다시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돌아봤다.
“이제 돌아가야... 할 텐데 그 다리로는 무리겠지.
데려다줄게. 집이 어디야? 설마 노숙하는 건 아니겠지?”
엘리는 잠시, 흔들리는 눈동자로 나를 올려보다가,
어두워진 얼굴을 푹 떨어트리고 힘없는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1층...에 방이 있어...”
자물쇠, 1층의 문 몇 개를 굳게 잠근 검청색 금속 자물쇠가 기억났다.
이제야 그 방들이 뭐였는지 궁금증이 풀렸다.
왜 자물쇠로 잠가놨는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가자, 데려다줄게.”
그렇게 말하며 엘리의 앙상한 등과 하얀 다리 밑으로 손을 넣어 번쩍 들어 안았다.
내가 힘이 센 편이 아님에도, 너무나 쉽게 들려졌다.
평소에 뭘 먹고 사는지, 아니 먹기는 하는 건지 의문이 들 정도로 가벼웠다.
계단으로 향하며 힐끗, 그 하얀 얼굴을 내려다보니
그녀는 내 품에 안긴 채 세상 그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얼굴로 조용히, 흐느끼고 있었다.
내 가슴팍이 깊숙이 젖어 들었다.
# 도서관_1층
그 야윈 몸이 한없이 가벼웠음에도, 역시 12층의 나선형 계단을 불빛도 없이 내려오는 건 힘들었다.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한 발 한 발 힘을 준 채 내려온 터라,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음에도 도착했을 때는 다리가 후들거렸다.
달빛조차 닿지 않는 1층은 완전한 어둠뿐이었다.
“1층이야. 어디로 가면 돼?”
“저쪽”
익숙하다는 듯이, 어둠 속에서도 주저함 없이 방향을 가르쳤다.
여전히 힘이 없는 목소리였다.
“아니, 그쪽 말고, 좀 더 오른쪽.”
내가 나아가자, 엘리가 곧바로 방향을 바로잡았다.
다시 몇 걸음 걷자, 작은 몸을 안은 손가락에 딱딱한 나무판이 닿았다.
“잠깐만.”
그렇게 말한 엘리는 뭔가 부스럭거리더니 문 쪽으로 몸을 기울였고,
곧 철커덕하는 금속이 맞물리는 소리가 났다.
“됐어.”
점점 더 힘을 잃고 조용해지는 그 목소리 탓일까
문을 열자 울려 퍼지는, 녹슨 경첩의 끼익 거리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여전히 캄캄했지만 덜 추웠기에 방 안에 들어왔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덜 춥다고 해도 밖에 비해서 그런 것뿐이지, 여전히 쌀쌀한 공기가 느껴졌다.
“여기에 내려줘.”
지시에 따라 조심스레, 작은 몸뚱이를 내리니 딱딱한 나무 침대의 재질이 느껴졌다.
침대에 내려놓으니 엘리는 말없이 벽 쪽으로 돌아누우며 등을 보였다. 마치 이제 가보라는 듯이.
나는 자유로워진 두 손으로 휴대폰을 꺼내 플래시를 비춰봤다.
시야는 어느 정도 확보됐지만 방 전체를 보기에는 무리였다.
“혹시 전등 같은 거 있어?
아니면 그냥 등이라도?”
엘리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존재마저 지우려는 것 같았다.
“아냐, 됐어 찾았어.”
나는 플래시로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방 곳곳에 놓인 등과, 그 앞에 보기 좋게 놓인 성냥으로 불을 밝혔다.
6개의 기름 등에 불을 밝히니, 곧 방안은 일렁이는 노란 빛으로 가득 찼다.
갑작스레 밝아진 탓에 놀란 눈을 조금 껌뻑였지만, 이내 빛에 적응됐다.
나는 방을 둘러봤다.
그 방은 황무지만큼, 아니 그보다 더 황량했다.
몇 개의 가구가 있기는 했으나 침대, 책상, 의자, 작은 책장이 전부였고
그마저도 얼마나 오래된 건지 가늠하지 못할 정도로 헤지고 낡아 있었다.
차디찬 냉기를 품은 돌벽이 둘러싼 그 직사각형의 방에는, 우리가 들어온 문이 한쪽 끝에 달려 있었고
조금 옆에 나무 침대가, 그 반대편 벽에는 나무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었으며 바로 그 옆에 작은 책장이 붙어있었다.
책장에는 [네크로노미콘], [아르고니안 메이드 3권], [콤플렉스는 끝나지 않아] 따위의 처음 보는 책들이 꽂혀있었고
책상 위에는 표지가 헤져 제목조차 못 읽겠는 책들 몇 권이 펼쳐진 채로 뒤섞여있었다.
그 외에는 어디로 통할지 모르는 나무문이 앞쪽 벽에 달려 있을 뿐이었다.
부드러움이나 포근함이라는 단어의 존재가 허락되지 않은 듯한,
모든 게 딱딱하고 각지고 차갑고, 무엇보다 텅 빈 공간이었다.
우리가 이 유적에 오기 몇 달 전, 아니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이 텅 빈 방에서 홀로 지내온 것일까.
나의 호기심은 어느새 도서관에서부터 엘리에게로 옮겨지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그 두 개가 같은 것임을 깨달은 나는, 엘리를 힐끗 돌아봤다.
여전히 나에게서 등을 돌린 엘리는 자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움직이지도 않았다.
“볼 일 다 봤으면 가.”
무얼 해야 할지 정하지 못한 채 물끄러미 보고 있던 내게
엘리가 힘없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조금 주저하다가 나무 침대에 걸터 엘리 옆에 앉았다.
야윈 어깨너머로 아직 노을이 묻어있는 붉은 뺨이 살짝 보였다.
엘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 상처, 그대로 두면 곪을 거야.”
하지만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자는 듯이, 아니 죽은 듯이 조용했다.
“붕대를 갈아줘야 할 텐데, 붕대는 있어?”
앙상한 등이 입 대신 침묵을 말했다.
차갑지만, 동시에 가여운 등이었다.
“이렇게 하자,
네 연구가 끝날 때까지 이곳은 비밀로 할게.”
그렇게 말하자 엘리가 나를 돌아봤다.
촉촉하게 젖은 눈동자는 조금 전보다 커져 있었다.
뭐라 말할 수 없는 표정 위에서 기름 등의 노란 빛이 깊게 번졌고, 애틋한 아름다움이 피어오르는 듯이 보였다.
“대신 조건이 있어.
이 도서관을 연구했다는 건 그 모든 상형문자와 이름 모를 언어를 해독할 수 있다는 거겠지.”
이제는 몸 전체를 나를 향해 돌린 엘리는 조용히 끄덕였다.
“그 해독방법을 비롯한 이 도서관에서 알아낸 모든 지식을 내게 가르쳐줘
물론 전부는 무리일 거야. 그러니까 중요한 것, 다른 학자들은 쉽게 발견할 수 없는 지식만 알려줘
그럼 이 도서관에 대해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게.
나는 네게 시간을 주고, 너는 내게 지식을 주는 거야.”
그리 밝지 않은 불빛으로도 그 하얀 얼굴이 환해졌음을 알 수 있었다.
미소를 짓거나 한 건 아니지만 전보다 초롱초롱해진 눈이 반짝였다.
“응... 그럴게! 꼭 그럴게, 전부 알려줄게!”
엘리가 격양된 어조로 빠르게 말했다.
처음으로 들은 기운찬 목소리였다.
나도 모르게 묻어나는 미소를 감추려 얼굴을 돌리며 일어섰다.
“좋아, 그럼 당장 내일부터 시작하자.
나는 매일 올 거야. 배우고 싶은 게 많으니까.
그리고 넌 지금 상태로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엘리는 자신의 앙상한 다리를 힐끗 쳐다보고 다시 나를 올려다봤다.
“말했지만, 우리 민족은 치료가 빨라. 그러니까-”
“말해두겠지만 난 그 말 안 믿어.
그리고 어떻든간에, 지금 못 걷는다는 건 사실이잖아.”
내가 한숨을 쉬자, 엘리는 말없이 끄덕였다.
몇 시간 전의 호전적인 태도는 어디 가고 어느새 이렇게 순종적으로 변하다니.
엘리는 이제 처음 봤을 때, 그러니까 석양 아래서 빛나던 그때처럼,
노란 불빛 한가운데서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은은히 자아내고 있었다.
“...그럼, 이제 가볼게.”
“아, 응.”
나는 줄곧 말없이 그 얼굴을 응시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허겁지겁 말했다.
어찌할지 모르겠는 기분으로 문 쪽으로 가는데 뒤에서 엘리가 날 불렀다.
“K!”
엘리가 내 이름을 처음으로 부른 순간이었다.
“시간은 어떻게 낼 거야? 발굴로 바쁜 거 아니야?”
“아, 고고학자라는 건 거짓말이야. 지금 나는 접시닦이거든.”
나는 생긋 웃고는, 멀뚱멀뚱한 표정의 엘리를 뒤로하고 방을 나왔다.
탑 밖으로 나오니 얼음장 같은 공기가 나를 감싸 안았다. 아드막한 달빛이 희뿌연 입김을 비췄다.
고개를 들어보니 검푸른 밤하늘 너머에 촘촘히 박힌 노란 별들이 희미한 빛을 속삭이고 있었다.
# 숙소_K와 C의 방
“언니!”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몰래 기지로 돌아와 샤워하는 것까지는 성공했으나
역시 룸메이트인 C에게는 들킬 수밖에 없었다.
C는 막 씻어서 따뜻한 향기가 피어오르는 내 두 손을 부여잡았다.
“도대체 뭘 하다가 이제 온 거예요?
그 위험한 곳에 들어가서 돌아오질 않으니 얼마나 걱정됐는지 알아요?
교수님께 말할까 싶었어요.”
“미안 미안. 조금 일이 있었어.”
나는 귀엽게 화내는 C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여전히 뾰로통한 C는 내게서 배낭을 뺐어 들며 말했다.
“정말... 가방도 다 더러워져선...”
C가 가방을 열자, 엘리와 한 바탕 뒹굴때 묻은 먼지가 조금 떨어졌다.
“...어? 언니...”
아, 구급가방...!
이상하게 사라진 걸 보고 C가 걱정하지는 않을까?
“밧줄은 어떻게 됐어요?”
“응? 밧줄? 어디 봐봐.
아 진짜 없네. 떨어트렸나?”
C가 지적한 건 예상 외로 밧줄이었다.
아, 구급가방을 꺼낼 때 같이 꺼냈던 기억이... 깜빡하고 다시 안 담은 듯 하다.
C는 그런 건 상관없다는 듯이 침대 옆에 가방을 두며 물었다.
“깜짝 놀랐잖아요. 등반이라도 했나 싶어서.
그래서... 무슨 성과는 있었어요?”
성과.
다른 사람에게는 몰라도 C에게는 말해도 괜찮을지 모른다.
언제나 이해해주고 의지가 되는 아이니까. 비밀을 지켜줄 뿐 아니라 지지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아무것도 없었어. 그냥 다른 암벽과 바위들뿐.”
“아... 안됐네요...”
C는 그렇게 말했지만 입꼬리가 조금 올라가 있었다.
그녀는 내 눈치를 살피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그래도, 이제 같이 일할 수 있겠네요.”
“아, 그렇네.
그럼, 잘 부탁해 C.”
“네! 언니!”
“C. 자?”
푹신한 이불이 지친 몸을 감쌌건만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불빛 하나 없는 어둠 속에서 눈을 떠 위 침대의 C를 불렀다.
“아뇨. 왜요?”
“혹시 그 책 기억나? 우리가 어렸을 때 네 할아버지 서재에서 본 노란색 표지의 책.”
“음... 교수님 서재에는 책이 워낙 많아서...”
“그... 용의 민족이었나 그런 내용이었는데. 내가 그 책에 한동안 빠져 있었잖아.”
“아, 네. 기억나요. 그 낡은 책. 그 책은 왜요?”
“확인해보고 싶은 게 있는데 검색해도 안 나오길래... 학교 도서관에도 없는 것 같고.”
“음... 지금은 제목도 잘 기억 안 나는데... 그래도 교수님께 물어보면 아실지도 모르겠네요.”
“그럼 부탁할 수 있을까?”
“언니 부탁인데 당연하죠. 맡겨주세요.”
“고마워, C. 잘 자.”
“네. 언니도 잘 자요.”
그리고 다시, 침묵이 어둠을 가득 채웠다.
포근한 침대 속에서 보드라운 이불을 온몸에 두른 나는, 눈을 감고 떠올렸다.
엘리의 두 눈, 딱딱한 어둠 속에서 숨죽이고 있을
그 에메랄드빛 눈동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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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올렸던 1편 재업
원래 이 주 화요일에 2편 올리려 했는데
한 편을 두 개로 나눠서 일주일에 두 번씩 4주간 올리려했었는데
사정도 있고 그렇게 느릿하게 올리면 아무도 기억 못할 거 같아서
그냥 하루에 하나씩 올리기로 함
그래서 걍 1편부터 새로 올림
아무도 안 읽을 거 같은데 이렇게 구구절절 설명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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