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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역전 - 뒤바뀐 주종관계 20화

1234(39.113) 2021.01.16 18:36:21
조회 190 추천 13 댓글 8
														

눈을 떳을 때, 미키는 익숙하지 않은 천장 아래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제 겨우 집으로 돌아온 후 의식은 완전히 날아간 상태였다.


주변을 돌아보니 이곳은 병원이었다. 삐삐 거리는 기계 소리, 그리고 자신의 팔에 연결된 수액이 왠지 낯설다.


아마 사야가 자신을 이곳으로 보낸 것이겠지. 그렇지 않다면 지금도 집일 것이니까.


"후우...."


광기어린 밤을 보낸 후유증 때문이겠지만 미키는 몸 전체를 짓누르는 듯한 근육통, 그리고 그 이상의 고통을 맛보고 있었다.


사실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그리고 떠올리고 싶지도 않았다. 그것은 쾌락과 고통, 절망과 비참함이 뒤섞인 악몽이었다.


타의에 의해 사람이 사람을 벗어나 쾌락만 쫓는 짐승이 된다는 것은 절대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좋아하는 사람과 몸을 섞다가 약간 하드한 장난을 치는 정도는 사실 큰 문제가 아닐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이번 것은 종류가 완전히 달랐다.


떠올리기도,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몸이 반응하는 것보다도 스스로의 정신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은 어떻게 할 수 없었다. 비참함이 미키의 목을 조이고 있는 느낌이었다.


유코의 손안에 있다가는 완전히 망가진 장난감처럼 무너질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미키는 확실하게 실감했다.


다른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도 무너지는 것일까?


미키는 두려웠다. 그리고 무서웠다. 마치 도망갈 수 없는 지독한 공포가 쫓아오는 기분이었다.


"깨어났어?"


곱씹을수록 비참해지는 기분 속에 잠겨가고 있을 때 사야는 병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미키는 그녀를 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왔다는 안도감 때문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녀의 뒤에 또 다른 사람이 있는 것을 보자 미키의 표정은 급속도로 굳어 버렸다.


"아.... 미키. 이 사람이 전에 말한...."


사야는 급히 미키에게 자신의 뒤를 따라온 사람을 소개하려 하였다. 허나 에리는 사야의 말을 막으며 자신을 소개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사카모토 에리입니다."


"아 네...."


어색하기 그지 없는 통성명. 허나 이런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 그렇지만 이런 분위기도 잠시, 에리는 부드러운 미소를 띄며 말했다.


자신도 피해자라고.


그녀의 말에 미키는 자신도 모르게 굳은 표정이 조금 풀리는 기분이었다. 여기 모인 사람은 모두 유코에 의해 인생이 꼬여버린 사람들이다.


사야와 에리는 이미 꼬여버렸고 미키는 아직 꼬이는 중이라는 것이 다를 뿐이지만.


"일단 몸을 회복하는데만 집중하세요. 유코는 사람을 한계까지 몰아가고 다시 정신을 망가뜨리는걸 정말 좋아하니까요. 만에 하나 사야가 없었다면...."


에리는 그렇게 말하며 사야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정말 원했을 때, 사야는 이미 망가진 상태였다. 그렇지만 미키의 곁에는 그때의 상처를 딛고 일어선 사야가 있었다.


그 사실이 못내 부러운 듯 에리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한동안은 여기서 쉬고 있어요. 어차피 우리 가문 아래 병원이라 아무리 유코라고 해도 이 곳을 건드릴 수 는 없으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에리는 밖으로 나갔다. 아무리 그녀라고 해도 사야와 미키 둘만의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결국 둘 사이에 끼어드는 것은 불가능하고 어쩌다 불장난 치는게 고작이겠지. 그렇지만 부러움을 직접 보일 수는 없으니 조용히 문을 닫을 뿐이었다.


"몸 괜찮아?"


사야는 미키에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미키는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괜찮을리가 없었다. 보통 그 정도로 험할 꼴을 보면 며칠간은 그저 몸저누울 뿐이었다.


"모르겠어. 이게 도대체 뭔지. 그냥 사라지고 싶어."


미키는 그렇게 말하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하얀 석고보드의 갈라진 틈처럼 자신은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최악은 아니라는 안도감이 미키의 마지막 안전선이었다. 그녀의 곁에는 사야가 있으니까.


다른 어떤 사람보다도 신뢰하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면 미키는 진작에 무너졌을지도 몰랐다.


뇌를 녹일 듯한 쾌락.


그 앞에서 미키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만에 하나 사야가 없었다면 진작에 쾌락 앞에 몸을 맡겼겠지.


고통스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쾌락은 매혹적이었다.


유코는 이미 수많은 여자들을 농락하며 습득한 기술이 있었다. 게다가 금지된 약까지 쓰며 그녀는 극한의 쾌락이 무엇인지 영혼의 깊은 곳까지 강제로 새겼다.


만약에 미키가 평범한 여자라면 진작에 무너졌겠지.


그렇지만 인연의 힘은 생각보다 훨씬 강했다. 사람을 타락으로 이끄는 악몽을 버틴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끝은 아니었다. 곧 극심한 두통이 미키를 덮쳤다.


"하아...."


미키는 숨을 내뱉었다. 고통을 참으려고 노력하지만 결코 쉽지 않다. 마치 지독한 술을 마시고 난 이후의 숙취보다도 더한 두통이 미키를 괴롭혔다.


"미키?"


상식을 벗어난 두통. 아마도 일종의 금단현상이엤지. 말도 제대로 못하며 미키는 괴로워했고 사야는 급히 의사를 불렀다.


다행히 두통 이외에 큰 문제는 없었고 의사의 적절한 판단 덕분에 미키는 평온한 표정으로 눈을 붙일 수 있었지만 사야의 표정은 눈물로 가득 찼다.


흘러내리는 눈물의 뜨거움보다도 더한 분노가 사야의 내면을 채우기 시작했다.


"에리.... 바로 시작할 수 있을까?"


사야의 말은 더 없이 차가웠다. 하지만 에리는 그런 사야의 얼굴을 보며 전혀 놀라지 않았다.


자신이 무너지고 망가졌을 때 자신을 바라보던 가족들의 얼굴이 그러했으니까.


"응."


에리는 즉답했다. 그리고 둘은 함께 밖으로 나갔다. 이제는 움직일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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