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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이빨모형

ㅇㅇ(220.93) 2021.01.19 02:00:24
조회 504 추천 25 댓글 0
														

"뭐 시켜먹을래?"


숙제하자고 불러놓고서는 먹을것부터 챙기는 칭구의 목소리를 반쯤 흘리며 집안을 둘러보았다. 꽤 오랫동안 찾아오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집안 풍경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저 선반의 괴상한 인형들과 하얀…….


이건 분명히 전엔 못보던 물건이다. 가방과 겉옷을 벗어놓고서 곧바로 선반 앞으로 향했다. 한쪽 송곳니가 유별나게 튀어나온 하얀 치아모형. 그의 부모님이 특이한 감각을 가진 것은 알고있었으나 이것은 그중에서도 유별나다.


"뭐 먹을거냐니깐?"


"먹던대로 시켜."


다시 한 번 대답을 재촉하는 친구에게 퉁명스레 대꾸하고서 툭, 손가락으로 모형의 윗니를 건드려 들어올렸다. 모형은 어금니가 드러나도록 벌려지다가 윗니가 손가락에서 미끄러지며 위아래가 틀어진다.


"이거 뭐야?"


"그거? 내 동생 이빨모형. 그게 몇십만원 짜리랜다."


존나비싼 장난감이야, 가볍게 툴툴거린 친구는 주문하고 오겠다며 부엌으로 사라졌다. 동생의 치아모형, 누구인지까지는 설명할 필요 없었다. 친구에게 동생은 우리보다 두 살 어린 여동생 하나뿐이었으니.


덧니가 있다는건 어렴풋이 알고있었으나 이렇게 심할 정도였나. 그런 무심한 생각을 하며 윗니를 집어들다가 오돌토돌한 입천장을 보고서 나도모르게 움찔거렸다. 왜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생각보다 더 정교한 모형이다.


잇몸에 아직 파묻혀 있는지 반쯤 나오다가 만듯한 두번째 큰어금니의 자리를 엄지로 문질러보다가, 입을 벌려 막 사랑니가 나기 시작한 내 잇몸을 혀로 더듬었다. 그리고는, 그리고는…….


제길. 나도 왜 그랬는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그 치아 모형을 입가에 가져다대고서 혀를 내어 파묻힌 어금니를 핥아보았다.


치아모형의 재질은 아주 꺼슬꺼슬했고, 뽈록뽈록 튀어나왔을 어금니의 모양은 가늠도 가지 않았다.  아주 차갑고, 딱딱하다. 모형이므로 사람의 것과는 다른것이 당연했지만, 그것이 못내 아쉬워 혀를 떼고서 가볍게 입을 다셨다.


뒤늦게 내가 무슨짓을 했는지 깨닫고서 황급히 부엌을 돌아보았지만, 친구가 집주소를 부르는 소리만이 들렸다. 내심 안도하며 모형을 제자리에 돌려놓고서 벽에 기대어있던 상을 폈다.


숙제, 숙제. 평소에도 안되던 집중이 오늘이라고 될 리가 없다. 아니, 오히려 안될 요소만 가득이라 난 잘 읽히지도 않는 문제를 머리속에 박아넣기 위하여 무던히도 애를 써야만 했다.


그러니까 구리를 공중에서 가열…….


"왔다!"


겨우겨우 문제에 집중하려는 찰나 친구가 버럭 소리를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초인종 소리라도 들은 모양이었다. 오늘 공부는 종쳤군. 시덥잖은 생각을 하며 공책을 덮는데 삑삑거리는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친구는 아직 현관으로 다 가지 못하였고, 분명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였다.


"언니, 또 치킨을…… 안녕하세요."


친구가 현관에 도착함과 동시에 현관문이 벌컥 열리며 그의 여동생이 와락 구긴 얼굴을 드러내었다. 그는 제 언니를 질책하려는 듯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가 거실에 앉아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금세 화사한 얼굴로 고개를 꾸벅 숙인다.


"우웩, 존댓말. 옛날엔 이름도 막부르더니. 치킨내놔. 니껀 없어 친구랑 먹을거야."


"왜, 양 많게 시켰잖아. 같이 먹지?"


"와~ 언니가 내 친언니 해줘요."


별것아닌 대화가 오가며 두 자매는 나란히 이쪽으로 다가왔다. 와아~ 하고 동생이 입을 벌리자 아까 보았던 이빨모형의 구조가 얼핏 보였다. 당연하게도, 어금니는 보이지 않았다.


"저기 있는 이빨 모형이 네 이라며?"


상위의 책을 치우며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동생은 언니의 눈치를 보며 히죽이 웃더니 조잘조잘 묻지도 않은 말까지 떠들어대었다. 덕분에 나는 그가 치과에 가서 그걸 만들게 된 경위와 만드는 과정까지 상세히 듣게되었다. 그리고 그 언어의 밀물 속에서도 한가지 곶으로 튀어오른 단어가 하나 있었다.


"수술한다고?"


"지금은 어려서 안되고 좀더 크면 한다더라."


동생에게 물었지만, 대답은 언니에게서 나왔다. 친구가 치킨을 상위에 늘어놓는 사이 뽀르르 달려간 동생이 제 이빨모형의 아래를 가져왔다. 수를 세어보니 송곳니 바로 다음 어금니 하나가 부족했다.


"아주 위아래가 쌍으로 지랄이야."


뭔가 한마디라도 하지 않으면 못버티겠는지 친구가 또 말을 내뱉었다. 즉각 동생의 눈이 가늘어지며 언니를 노려보는 것이 보였다. 시발년이 왜 또 시비야. 바야흐로 자매대전의 발발이었다.


무려 시발년이라는 욕을 얻어듣고서도 친구는 내게 저들끼리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고싶지는 않았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동생의 팔을 붙잡아 일으켜 세웠다. 내게 먼저 치킨을 먹고있으라는 말을 남기고 제들 방으로 문닫고 들어간 그들은 곧바로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남겨진 내가 한가하게 치킨이나 뜯을 수 있을리 없다. 바닥에 방치된 동생의 아래 치아모형이나 자리에 돌려놓자고 들고 일어났다.


수술, 수술. 어릴적에 치아교정을 한답시고 교정기를 끼고 다니는 애들은 종종 보았었다. 첫키스 이후 치아교정을 할 거란 말을 듣고서 동생도 그런 교정기를 끼겠거니 생각했는데 수술이랜다.


해봤자 그렇게 큰 수술은 아닐테고, 기껏해야 잇몸찟고 안에있던 이빨을 들어올리는 것일테지만 싱숭생숭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교정을 마치고 나면 바로 이가 고르게 되어버리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딸려왔다.


위아래의 이빨모형을 집어들고 다시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그 고르지 않은 이빨자국이 궁금하여 모형을 오른손에 쥐고서 왼쪽 팔목에 대고 세게 눌렀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세게 누른 탓에 작은 신음소리가 나왔다.


뭐, 그게 다이다. 이런 이빨자국은 절때로 혼자서 낼 수 없다고 누가 낸 거냐며 으름장을 놓는 동생에게는 절대로 비밀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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