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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창작) 최고의 씨발년 - 19모바일에서 작성

ㅇㅇ(112.169) 2021.01.22 00:26:31
조회 976 추천 20 댓글 8
														
“...”

“...”

한 번 파도가 친 이후엔
적막이 거품처럼 올라왔다

“...”

“...”

거품이 물 밑으로 녹아 없어지는 소리는 파도보다 훨씬 길게 이어진다

“...”

“...”

“반지우”

“...왜”

“뭔 왜야”
“대답 해봐”

“...”
“싫으면”

“싫으면?”
“싫으면...”

“또 양호실 침대에 묶기라도 할 거니?”

“...”
“괜찮은데?”
“가서 그 때 했던 거”
“그대로 처음부터 다시 해보자”
“이번엔 발까지 묶어서”

“진짜 이런 것도 인간이라고”

“싫으면 대답해”
“꾸물대지 말고 짜증나게”

“그럼 넌”

“뭐?”

“넌 ㅈ”
“...젖었냐고”

“...”

기도를 타고 올라오던 말이 수담의 목구멍에서 ‘턱’ 하고 막혔다
작게 벌어진 입 사이로 소리 없는 공기만이 새어나왔다

“...”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지 마”

“...방금”
“잠깐 머뭇거리지 않았니?”

“딴 소리 빨리 말고 대답해”

“빨리 말고 대답해?”
“기집애 말도 이상하게 하네 갑자기”

수담은 혈관에 피가 도는 속도가 급격하게 빨라짐을 느꼈다

“혹시 너도 젖었니?”
“그래서 내가 젖었나 궁금해진 거구나?”
“그래서 그런 문란한 질문을 했구나?”

맹렬한 역공
온 몸을 잔뜩 얻어맞은 수담의 모습이
은색 수도꼭지에 선홍빛으로 일그러져 비쳤다

“지랄 마라 진짜”

“또 욕 또 또”
“깨끗하게 인정하면 나도 대답해줄게”
“네 그 선정적인 호기심”

지우는 물로 적신 종이딱지 같았다
물을 뿌려 적당히 촉촉해진 종이로 딱지를 접으면
찰거머리처럼 바닥에 달라붙어서
아무리 잘 만든 딱지를 가져와 패대기를 쳐도 뒤집어지지 않았다
엔간해선 패배하는 법이 없었다

“...”
“...”
“잠깐만”

그런데 단 하나
물로 적신 종이딱지도 패배하게 되는
단 하나의 경우가 있었는데
그것은

“반지우”
“방금 너”

적당함을 넘어 과하게 적셔버린 나머지 물컹해져버린 부분을
잘 조준한 다음 강하게 내려쳐
아예 종이가 찢어지게 만드는 것

“..‘너도’ 젖었니?”
“라고 말하지 않았냐?”

요컨대 자승자박으로 생겨난 약점을 공략하는 방법이었다

“...”

“너도 젖었냐고 물어봤다는 건”
“일단 넌 젖었다는 거잖아”
“맞지”

“...”

“맞아 틀려”
“주둥이 열고 아무 말이나 해봐”
“대답 안 하면 맞는 걸로 안다?”

“...”

수담은 어깨를 옆으로 살짝 기울이며 고개를 천천히 뒤로 돌렸다
한 점도 남김없이 완전하게 빨개진 지우의 뒷모습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천천히 수담의 시야 속에 차올랐다
그 빨갛다는 게 정말이지 심각한 수준이라 만약 단군이 그녀의 뒷모습을 봤다면
제 어미가 먹은 마늘과 쑥을 대신 토해냈을 것이다

“야”
“대답 하라니까?”
“얘 좀 봐라?”

완벽히 승기를 잡은 수담은 몸을 일으켜 세워
욕조 가장자리에 걸터앉았다

‘참방- 참방-’

그러곤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붉어진 지우의 등에 물을 차올렸다

“응? 응?”

“몰라”

“뭐?”

“몰라!”

지우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물 밖으로 빼꼼 나와있는 두 무릎 사이에 고개를 파묻었다
가느다란 목선 옆으로 고개를 내민 작은 귀는 물에 젖어
크리스마스 트리에 다는 장식용 전구처럼 주홍색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수담은 그것을 손끝으로 살짝 잡아 온도를 느끼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지만
겨우 참아냈다

“세상에서 제일 못됐어 진짜”

“찬물 좀 틀어줘?”
“너 지금 온 몸이 너무 빨개서”
“가만히 냅두면 터지겠다”

“됐어”

“아니 반지우 너 진짜 완전 홍인 그 자체라”
“지금 그대로 서부개척시대로 넘어가면 인디언 추장 아들이랑 결혼할 수 있어”

“성추행으로 고소할 거야”

“인디언 추장 아들을?”

“무식한 티좀 그만 내줄래?”
“인디언이 아니라 아메리카 원주민이야”

여기서 더 놀리면 지우가 정말로 터져버릴 것 같아 수담은 잠시 침묵한다
그리고 장식용 전구처럼 주홍색으로 반짝이는 지우의 젖은 귀에
손 대신 입을 가까이 가져가 작게 속삭이길

“그 날... 집에 와서...”
“...속옷”
“갈아입었어?”

“흐걋-!!”

‘첨벙-’

지우는 얼굴을 가리던 손으로 귀를 막더니
그대로 욕조 물에 고개를 처박았다

“읍...튿..”

수담은 재빨리 입술을 입 안에 말아 넣었다
잇몸으로 입술을 썰어낼 기세로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간신히 참아냈다

‘뽀글뽀글뽀글-’

물에 잠긴 지우의 얼굴 주변에 올라오는 거품
수담은 미소를 띠우며 그것을 등지고 욕탕을 나섰다
지우는 이번에도 수담이 웃는 걸 보지 못했다

‘덜컹’

“~~~”

이미 닫힌 욕탕 문 너머에서 누군가 소리를 지르는 듯했지만
깨끗하게 무시하는 수담

“하-”
“드디어 한 번 이겼네”
“존나 씨발년”

수담은 맨 몸에 차가운 공기를 맞으며 주변을 둘러보고는
문 없는 찬장에 깨끗하게 정리된 수건을 하나 꺼내 몸과 머리를 닦는다
코끝을 가볍게 튕기며 지나가는 섬유유연제 향기
언젠가 지우에게서도 비슷한 향을 느꼈던 기억이
의식의 수면 위로 풍선처럼 떠오른다

“...봄인데 뭐 이리 서늘해”
“옷.. 옷..”

옷은 욕탕 옆 선반 위에 있었다
흰색 티와 검은색 티
바지는 사이즈도 색도 똑같다

“아까 쟤가 검은 거 입고 있었으니까”
“흰 색이 내 거겠지”

위에 놓인 순서로 티와 바지를 주섬주섬
덕분에 맨 밑에 깔려있던 휴대폰이 빛을 받았다
수담은 차가운 휴대폰의 화면을 켰다

‘부재중 전화’
‘엄마’

“...”

느닷없던 서늘함은 봄 때문이 아니었나보다
심장이 몸 밖으로 튕겨나가 바닥에 부딪혔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기분

“...”
“왜..?”

뭐지? 엄마가? 수람이한테 전화 했는데 안 받았나?
엄마가 나한테 직접 전화하는 게 도대체 얼마만이더라?
이걸 좋아해야 돼? 슬퍼해야 돼? 어떡해야 돼? 미치겠네 진짜
설마 오늘 집에 또 들어왔나? 전에 집 오고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다시 전화 걸어야겠지? 근데 급한 일인가? 급한 일이면 문자도 넣지 않았을까?

장대비처럼 쏟아지는 생각의 물줄기 사이로
수담은 얇은 손가락을 집어넣어 통화 버튼을 누른다
누르자마자 후회한다

‘아 혹시 모르니 수람이한테 먼저 전화 할걸’

“강수담”

누르자마자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엄마?”

“수람이랑 전화 했어”
“공부 때문에 친구 집 갔다고?”

“아”
“...”

수담은 여동생에게 속으로 감사를 전했다

“여보세요”

“응”
“걔가 먼저 불러서”

이 부분은 거짓말이 아니다

“지난번에 왔던?”

“응”

“걔 집에 데려오지 마”
“수람이 물들어 너처럼 될라”

“...”

“대답”

“응”

“끊는다”

“저기”
“그...”

“...”

“화 안 내?”
“수람이 아직... 중학생밖에 안 됐는데”

화내줘

“...”

“집에 혼자 두기나... 하고..”

차라리 화내줘

“내가 왜?”

“...”

그냥 제발 화내줘

“너가 뭔 짓을 해도 이제 화 안 나”
“그걸 여적 모르면 안 되지”

“엄ㅁ”

“아직도 정신 못차렸구나”

‘뚝’

“...”

이미 끊어진 전화 화면 위로 초점을 잃은 지우의 시선이 튕겨져 나간다

“...”

욕실을 나설 때까지만 해도 수담은 기분이 괜찮았다
사실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상당히 좋은 축이었을 것이다
근데 또 사람이라는 게 섬세하고 까탈스럽고 미천한 존재라
100에서 50되는 것과 50에서 0되는 건 체감상 천지차이
수담의 기분은 100에서 -100으로 떨어졌다

“하아...”

“땅 꺼진다”

튕겨져 나간 시선은 벽의 옆면을 타고 천천히 굴러간다
그 끝에 있는 것은 화장실 문에 기대 팔짱을 끼고 서있는 지우
욕탕에서 수담이 봤던 홍익인간은 온데간데없다

“여기 20층이라 땅 꺼지면 우리 다 죽어”

“...”

“엄마한테 화내달라는 애도 있네”
“애정결핍이니?”

“...”

“...”
“뭐 됐어”

지우는 한 걸음 두 걸음 다가가
자신보다 키가 살짝 큰 수담을 밑에서 올려다본다

“다 씻었는데”
“이제 뭐 할래?”

“...”

수담은 지우를 가만히 바라봤다
하얀 얼굴 위에 연꽃처럼 떠있는 눈동자로
방금 전 통화가 남긴 감정의 찌꺼기가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끼며

“...무슨”
“욕탕에 허물 벗고 왔냐”

“허물?”

“아깐 완전히 시뻘개져선”
“...부끄러워 죽으려고 하더니”
“멀쩡하네”

“...”
“너 덕분에 완전히 홀딱 벗겨졌는데”
“부끄러울 게 뭐가 더 남았겠니?”
“너무 당하면 나중엔 아예 아무 것도 안 느껴지는 거 알지”
“너한테 전신 박피수술이라도 받은 기분이야”
“새 사람이 된 것 같아”

“...”

하지만 아무리 비싸고 좋은 청소기라 해도
감정의 골 저 아래 진득하니 눌러 붙은 찌꺼기까지 빨아들이진 못한다
죽어서 살이 썩고 뼈가 녹기 전까지는 절대 빠지지 않는 혈관 속 노폐물처럼
사실상 반영구적 존재인 것이다

“표정 진짜 안 좋네”
“그렇게 들뜬 목소리로 놀려대더니만”
“너나 나나 참 사람이란 게 약해 빠졌다”
“방정맞게 오르락내리락 거리기나 하고”

“...”

“어떻게 하면 강수담 기분이 좀 풀릴까”
“뺨이라도 한 대 맞으면 정신이 좀 들겠니?”

“...”
“그렇게 해서 정신 들면”
“차라리 진짜 한 대 맞고 말래”

“...”

“...”

정적

“풉”
“...그렇게 해서 정신 든다 쳐도”
“얼굴은 안 때릴 거야”

‘스윽’

하고 지우의 두 손이 수담의 뺨에 감겨든다

“...”

수담의 체온이 조금씩 높아진다
두 볼이 아닌 하나의 심장에서부터

“너처럼 이쁜 애가 뺨 맞아서 얼굴에 상처 달고 다니면”
“상처 낸 사람은 천벌 받아야 돼”
“제대로 못 피한 너도 잘못이고”

“...”
“미친년”

“괜찮아졌나봐?”
“나쁜 말 하는 거 보니”
“근데 좀 출출하다”
“뭐 시켜 먹을래?”

“...”
“오늘 금요일 아니고 목요일이야”

“엄마가 목요일에 야식 안 먹으면 화내준대?”

“ㅆ...하아”

욕할 힘도 없다

“내일 학교 가잖아”
“일찍 일어나려면 먹고 바로 자야 되는데”
“그러면 배탈 난다고”

“나는 안 갈거야”
“다음 주부터 갈 거라고 밑에서 말 했는데”

“...몰라 기억 안 나”
“먹고 싶으면 니 혼자 먹어”
“아 얼굴 주물럭대지 마”

“알았어 살살 만질게”

수담의 눈 밑과 광대를 엄지로 부드럽게 쓸어 넘기며
지우는 백합꽃처럼 웃었다

“뭐 아무튼”
“하고 싶은 거 없어?”

“...”
“잘래”

“...”

지우의 눈가에 서려있던 옅은 즐거움이 어리둥절함으로 바뀐다

“...”
“그래”

“뭐냐”
“노잼이니 뭐니 지랄할 줄 알았는데”

“..뭐 재미없긴 한데”

수담의 볼을 떠나 미끄러져 내리는 지우의 두 손
목덜미, 어깨, 팔뚝의 살이 차례차례 비벼지는 소리는 마치 모래바닥을 기는 뱀과 같다
이윽고 뱀이 멈춘 곳엔 두 쌍의 손이 똬리를 틀어 한 쌍이 되어있다

“다음에 또 오면 되잖아”
“그치?”

오묘한 미소 위에 안개처럼 서린 야릇함
지우를 보며 수담은 자기도 모르게 숨을 잠깐 참았다
침을 삼키면 그 소리가 지우의 귀에 묻을 것만 같았다

“이 쪽”

마주보고 두 손을 잡은 채 뒷걸음질 한 번
그 다음엔 한 손은 놓고 다른 한 손만 잡고서
지우는 수담을 등지고 어딘가로 천천히 향한다

집 주인에게 손을 잡힌 채 뚜벅뚜벅 이끌린 곳엔
다 큰 성인 다섯 명이 일렬로 누워도 자리가 남을 정도의 큰 침대
백화점 침구류 코너 전시물마냥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다

“...”
“침대 자랑 하는 거야?”

“너 슬슬 일부러 그러지”
“짜증나게 하려고”
“거지근성 진짜”

“그럼 뭐”
“나 여기서 자라고?”

“아니 침대 자랑ㅇ”
“푸웁”
“킥끅끜...”

“등신...”

“여기서 자”

“...”
“너는”

“나?”
“나...는”

지우의 눈동자가 잠깐 위를 향하더니 제자리로 돌아온다

“너 자는 얼굴 구경할게”
“옆에 누워서”

“...”
“그래”

“뭐야”
“왜 갑자기 그렇게 순순해?”
“너가 게거품 물까봐 받아칠 거 생각하고 있었는데”

“됐어”
“너무 피곤해”
“지랄병 떨 힘도 없어”

“그래?”
“...”
“잘됐네”
“얼른 가서 누워”

“대신 나 자는데 손대면”
“진짜 손가락 분질른다”

“어머”

“구라같지”

“...”
“손 말고”
“입이면?”

“...”
“평생 산소마스크 끼고 살래?”

“흐흥-”

“웃지마 개년아”

“얘는 진짜 자기 직전까지 욕을 해 무슨”

둘은 티격대며
한 침대 위에, 한 이불 안에 목욕하듯 몸을 담갔다







아마도 다음 편이 1부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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