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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포피파의 수호천사 -1-앱에서 작성

AGBMD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1.28 22: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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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그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

안녕하세요. 하나조노 타에입니다.

하나사키가와 여고 2학년이고요. 취미이자 특기는 기타연주예요.

소중한 친구들과 함께 만든 포피파에서 리드 기타를 담당하고 있어요.

포피파에 대해서 말하자면 너무 길어지니까 한마디로 한다면 제게 토끼보다 더 소중한 존재입니다. 아, 아실 분들은 아시겠지만 전 토끼를 참 좋아한답니다.

하지만 포피파는 좋아한다는 걸 넘어서 저에게 새로운 길을 보여주었어요. 닿을 수 없을 것만 스페이스의 라이브를 향한 길을 터주었고 처음으로 마음이 떨리는 연주를 할 수 있었어요.

포피파와 만나고 나서 기타의 현을 튕기는 게 그렇게 가슴이 떨리는 일이란 걸 깨달았어요. 카스미가 가져다준 반짝거림과 두근거림. 그 감각은 아마 평생토록 잊지 못할 것만 같았어요.


하지만, 세상은 포피파가 가르쳐 준 두근거림만으로 채워져 있는 게 아니었어요.

그 전에 토끼 얘기를 해볼까요? 토끼는 귀엽고 복슬복슬하고 폭신하지만 의외로 사람을 잘 따르지 않는 동물이에요.

옷짱도 처음에는 저를 싫어하는 듯이 행동해서 상처도 많이 받았어요. 그리고 다들 알겠지만 자기 똥을 먹는 동물이랍니다. 그래서 친애의 표시로 입을 문질문질하는 건 의외로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대요.

요점을 말하면 귀여운 토끼의 겉모습 뒤에는 귀찮고 민망한 부분들이 있다는 거예요.

저도 포피파를 만나기 전에는 스페이스에서 화려한 밴드들 뒤에 드리워져 있던 빛을 보지 못하는 수많은 밴드를 봐왔어요.

개중에는 오디션에 떨어진 뒤 절망감을 서로에게 돌리며 해체되는 밴드도 봤어요. 아마 저도 포피파를 만나지 못했다면 아직도 그 그림자 속에서 지냈을지도 몰라요.


포피파가 저를 반짝거리는 세상으로 끌고 와준 덕에 저는 그림자에서  벗어나 어둠에서 눈을 돌릴 수 있었어요.


그렇게 잊고 있던 어둠을 다시 마주하게 된 건 정말 우연히, 예상하지 못한 곳, 예상하지 못한 시간이었어요. 그만큼 어둠은 우리들 곁에 있었다는 걸까요.


무도관 공연을 위해 무리할 정도로 힘을 낸 덕인지 저희에게는 꽤 많은 팬이 생겼어요. 당연히 제가 다니는 학교에서도요. 알아보고 싸인을 청하거나 한 소절이라도 곡을 듣고 싶어 하는 아이들도 많았어요.


그 호의와 동경을 받으며 한동안은 굉장히 설레고 두근거렸어요. 동시에 그런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연습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는 자극도 되었고요. 카스미와 포피파가 가져다준 설렘과 두근거림에 저는 매일매일을 행복하게 보내고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경음부의 부원이 기타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어요. 연습을 아무리 해도 어딘가 부족하다면서요. 저도 슬럼프를 한두 번 겪은 적이 있어서 그 마음을 잘 알고 있어 흔쾌히 응해주었지요.


서클에서 밴드를 하는 사람 중에 기타를 치는 하나사키가와 학생은 저랑 카스미, 사요 선배밖에 없었어요. 다만 카스미는 자기는 아직 가르칠 레벨이 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잔뜩 겸손을 부렸고 사요 선배는 솔직히 친해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다가가기 힘든 이미지여서 아마 그나마 이야기하기 편한 저에게 부탁한 것이겠죠.


저도 가르치는 건 익숙하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가르쳐 주었어요. 막혔을 때는 계속 붙잡지 말고 휴식 시간을 가져 보라는 충고도 함께 주면서요. 경음부 아이들은 반짝거리는 눈동자로 제 손을 잡으며 감사를 표했어요.


사실 그때부터 뭔가를 느꼈어야 했을지도 몰라요. 저보다 카스미에게 먼저 가르쳐 달라고 제안을 했다는 부분에서 말이에요.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지금 생각해보니까 거기서부터 위화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아무튼, 연습을 끝내고 저는 포피파와의 창고 연습이 있어서 먼저 자리를 떴어요. 신발장에서 신발을 갈아신는 중에 미니 앰프를 부실에 두고 왔던 게 떠올랐어요.


그래서 저는 아무 생각 없이 흥얼거리면서 부실로 향했지요. 부실 앞에서 문을 열려는 순간 안에서 경음부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단순한 대화였다면 그냥 열었겠지만 포피파의 이름이 나오자 저는 저도 모르게 문을 열려던 손을 멈췄어요.


아마 부실 안에서 질척하고 추잡한 날것 그대로의 욕망을 느껴서였을까요?


첫 대사는 평범하지 그지없었어요. 그러나 점점 갈수록 대화의 흐름이 이상하게 흘러갔어요. 아무것도 몰랐던 저라도 알아차릴 수 있었을 정도로 농밀하고, 저속하고, 기분 나쁘게.

"포피파는 참 멋지지?"

"응, 동경하게 돼. 연주 실력도 좋고 가사도 예쁘고, 멤버분들도 매력적이야."

"난 역시 카스미 씨가 제일 좋아. 이번에 가르쳐 주러 왔으면 좋았을 텐데."

"아마 기타 연주만으로 안 끝났겠지?"

"키보드 멤버를 구하면 아리사 씨도 꾀어낼 수 있을까?"

"사아야 씨는 역시 제빵부가 가져가려나?"

"미키, 너 그럼 제빵부 사람들이랑 말해볼 거야?"

"응, 사아야 씨. 이제 베이커리에서 보는 것만으로는 못 참겠어. 직접 만지고 싶어."

"적당히 해. 너무 대놓고 하면 그 둔한 포피파라도 눈치챌 지도 몰라."

"유나 네가 할 말이야? 진짜 오늘 타에씨가 아니라 카스미씨가 왔으면 유나 네가 제일 심하게 다뤘을 거 같은데."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어딘가 저속한 느낌이 드는 대화.

사아야를 가져간다? 카스미를 심하게 다룬다?

호기심은 고양이를 죽인다는 말이 떠올랐지만 저는 차마 거기서 엿듣는 걸 그만둘 수 없었어요. 호기심은 마약인걸까요?

홀린 듯이 저는 떨리는 손으로 문손잡이를 잡은 채로 대화에 집중했어요.

물론 이 호기심으로 죽어버린 건 고양이가 아니었어요. 호기심은 토끼를 다시는 건너오지 못할 강을 건너게 했으니까요. 죽은 건 아니지요.



"리미 씨는 어떡하지? 의외로 수요가 꽤 있는 거 같던데."


"제과부가 초콜릿 파티를 열기로 했어."


"거기 제빵부의 앞마당 같은 곳 아니야?"


"응, 사아야 씨랑 리미 씨 둘 다 잡을 수 있지."


"초코소라빵을 배터지게 먹을 수 있다니까 바로 승낙하는 거 있지? 참 쉬워."


"포피파 분들이 다들 착하고 사람을 잘 믿잖아. 그런 점이 사람을 불타오르게 하는지도 모르고."


"제과부 녀석들 리미 씨랑 사아야 씨 배 터지게 잡아먹겠네?"


"성적인 의미로?"


까르륵 거리는 기분 나쁜 음색의 웃음소리와 함께 대화가 잠시 멎었어요. 그 대화에서 느낀 건 배신감과 분노. 그리고 위기감이었어요.

떨리던 손을 바로 잡고 전 더는 듣기 싫어서 발걸음을 옮겼어요. 다리가 후들거려서 하마터면 계단에서 구를 뻔했어요.

연습에 지각해버린 그 날의 창고 연습은 그야말로 최악이었어요. 카스미가 제 상태가 나빠 보인다면서 오늘은 그만 쉬자고 해서 연습은 중단하고 가벼운 다과회를 했어요.


"오타에, 혹시 걱정거리라도 있어?"


카스미의 고양이 머리카락이 순간 쫑긋하고 움직인 것 같았어요.

걱정스러움이 담긴 보라색 눈빛. 항상 밝고 건강한 카스미에게 저런 눈빛을 하게 만들다니. 가슴 안쪽이 콕콕 쑤셔왔어요.

아무렇지 않은 척 웃음을 보여주었지만 카스미는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어요.


카스미가 둔하다니. 이렇게나 섬세하고 이렇게나 예민한 카스미인데. 잘 알지도 못하고 함부로 말을 내뱉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가 솟아올랐어요.


"너무 무리하지 마라. 힘든 일 있으면 우리가 거들어 줄 테니까."


아리사가 부끄러운지 눈을 피하면서 말했어요. 흔들거리는 금색 트윈테일이 마치 토끼 귀 같아서 무심코 잡을 뻔했지 뭐에요. 표현이 서툴 뿐 다정하고 남을 챙기기 좋아하는 아리사.


"아리사~ 부끄러워하네. 걱정된다고 솔직히 말하지."


사아야가 하늘색 눈을 반쯤 뜨면서 실실거려요. 작년만 해도 뭔가 꾸욱 참고 있는 눈빛이던 사아야도 이제는 참지 않아요.


싱글싱글하면서 아리사의 항의를 웃음으로 받아넘기는 사아야는 집안일로 걱정하던 그 사아야가 아니었어요. 밝고 빛나는 사아야의 모습에 쿡쿡 쑤시던 가슴의 통증이 잦아들었어요. 그래요. 사아야에게는 이런 밝은 표정이 어울려요. 이 표정을 계속 지켜주고 싶었어요.



"오타에 짱, 저번처럼 혼자 고민하지 말고. 우리에게 말해줘?"

리미가 제 손을 꼬옥 잡으면서 말했어요. 포피파에서 제일 순수하지만 가장 강한 리미. 리미의 손에서 전해지는 상냥함에 저는 다시 두근거렸어요. 더럽히고 싶지 않은 순수함 앞에서 이미 더러움을 보고 들은 저는 리미도 모르게 눈동자를 슬쩍 돌려버렸어요.



"응, 괜찮아. 그냥 오늘은 좀 피곤할 뿐인걸. 내일부터는 다시 분발할게."



저를 향해 행복한 웃음을 지어주는 카스미, 아리사, 사아야, 리미. 제 소중한 보금자리. 순수하고 따뜻하고 상냥한 포피파.



저는 그날 결심했어요.



포피파의 모두에게는 어둠을 알려주지 않겠다고.



어둠을 감내하는 건 저 혼자면 된다고.

*

인터넷은 참 편리해요. 그날 밤 저는 집에서 여러 가지 것들을 구글링해보았어요. 여자끼리 하는 법. 여자들이 좋아하는 것. 레즈비언의 수기. 그리고 다소 도덕적이지 않은 창작물까지. '당신은 18세 이상입니까?'라는 경고문들에게 망설임 없이 예라는 거짓말을 돌려주면서 정보의 거친 바다를 헤쳐나갔어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조사하다 보니 어느새 창가에서 해가 떠오르고 있었어요. 아, 그러고 보니 오늘은 다행히 토요일이었네요.


늦은 아침잠을 이룰까 생각하다가 문득 리미가 토요일에 제과부에서 여는 학교 축제 전 시제품 시식회가 있다면서 기대된다는 라인을 보냈던 게 생각이 났어요.


동시에 떠오른 어제의 대화. 만약 이대로라면 리미는 제가 열심히 찾아봤던 대로 더러운 짓을 당할 게 분명했어요. 그 아이들의 소름 돋는 목소리가 제 귓가에서 앵앵거리며 울렸어요.


서둘러 몸단장을 하고 옷장을 열어봤어요. 무난한 스타일의 옷들. 카스미가 좋아할 것 같다고 생각했던 색깔들. 그런 것들은 피해서 그나마 가장 예쁜 옷을 골라서 입었어요.


아침마다 달리던 거리를 조급한 심정으로 뛰어갔어요. 달리면서 맞는 맞바람은 시원해서 기분이 좋았을 텐데. 오늘은 왜 이렇게 끈적하고 불쾌한지 잘 모르겠어요.


그런 불쾌함을 안은 채 학교에 도착한 저는 부실 동에서 제과부를 찾아 달려갔습니다. 안에서 나는 초콜릿 냄새는 달콤했지만, 그 뒤에는 매서운 날카로움이 숨어있었어요.



갑작스러운 저의 등장에 제과부 사람들은 상당히 놀란 표정을 했답니다. 대여섯 명 정도 되는 아이들 사이에 어제 경음부에서 보았던 아이도 보였어요. 이름이 뭐더라...... 리카였나? 그랬던 거 같아요.


뭐 아무래도 상관없겠지만요.


저는 조심스레 문을 잠그고 제과부의 아이들에게 다가갔어요. 황급히 뭔가를 숨기는 부원의 손을 저는 놓치지 않았어요.


성큼성큼 다가가 숨기던 가방을 붙잡아서 내용물을 보았어요. 젤리, 핑거돔, 바이브레이터, 우머나이저. 어제 본 지식이 아니었다면 아마 저는 보고도 뭐에 쓰는 물건인지 알 수 없었겠지요. 리미나 사아야도 절대 알지 못했을 거예요.



상대는 당황한 표정을 했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 제게 산뜻하게 말을 걸어왔어요. 아마 제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했나 보죠,



"하, 하나조노 타에씨? 타에씨도 시식해 보려고 왔어?"


경음부의 그 아이였어요. 저는 말 없이 그 아이에게 다가갔어요. 솔직한 심정으로는 밀어서 넘어뜨리고 싶었지만, 꾹 참고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어요.


그녀의 새하얗던 얼굴이 잔뜩 붉어지는 게 보였어요. 솔직히 조금 깨더라고요. 누구에게나 이런 표정 짓는 가벼운 사람이라니.


실망할 것도 없는 사람에게도 실망할 거리가 남아 있었다는 건. 분명 포피파에서 사람을 계속 믿고 세상의 따뜻한 부분만 바라봤던 영향이었을까요.



저는 그녀의 볼에 가볍게 입맞춤을 했어요. 조금 전보다 더 빨개진 얼굴, 설레고 있는 표정. 가슴에 가지런히 모은 양팔. 떨고 있는 눈동자. 그 아이를 슬금슬금 밀치며 문제의 가방이 있는 곳으로 향했어요.


가방을 숨기려는 다른 아이의 손목을 홱 하고 낚아챈 뒤 왈츠를 추듯이 그녀를 제 품으로 당겼어요. 제 품에서는 경음부와 이름 모를 여자애. 두 사람 분량의 열기가 느껴졌어요.

책상에는 초콜릿 퐁듀가 담겨있었어요. 슬쩍 손가락으로 찍어서 리카라는 아이의 입안에 집어넣었어요. 너무 강하지 않게, 부드럽게. 하지만 조금의 짓궂음을 담아서.


말캉말캉한 그녀의 혓바닥을 초콜릿으로 얇게 코팅하듯이 어루만졌어요. 순간 그녀의 눈동자가 풀리는 듯 보였어요. 떨리던 다리는 힘을 잃고 하얀 교실 바닥에 주저앉아버렸어요. 상기된 얼굴과 헐떡거리는 호흡.


역시 초콜릿을 찍어 먹지 않은 게 정답이었네요.


달아오르는 듯한 리카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제 품에 안긴 다른 아이에게도 초콜릿을 찍어 먹여주었어요. 그녀는 필사적으로 입을 벌리지 않으려 저항했지만, 뒷덜미를 살포시 쓸어내리자 옅은 신음을 내며 입을 허락했어요. 오래지 않아 그녀도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답니다.



방관하던 두 명도 곧 비슷한 꼴이 되었어요.


만약 리미가 이걸 먹었다면.


그런 생각을 하자 제 머릿속에서 뭔가가 끊어졌어요. 기타 현을 끊어먹던 느낌보다 훨씬 강렬한 무언가가 찢어졌어요.


정신을 차려보니 부실 안은 난장판이었습니다.
반라로 엉망진창 흐트러진 옷. 다리 사이로 흘러내린 액체들. 정신을 못 차리고 바닥과 책상, 의자에 쓰러진 아이들.


제 손가락에도 끈적한 액체가 묻어있어 찝찝한 기분이 들었어요. 물을 최대로 틀고 손을 벅벅 문지르듯이 씻어내 버렸어요. 차가운 물을 부어도 손에서 느껴지는 열기가 여운으로 남아서 불쾌했답니다.



저는 참담한 광경을 계속 보기 싫어서 잠갔던 부실 문을 열고 기분 나쁜 초콜릿 공장에서 나가버렸답니다.


아 문은 닫고 나왔어요.

*

'리미, 혹시 오늘 제과부에 가기로 했어?'

'응, 오타에도 같이 갈래?'

'아, 방금 학교에 왔는데 오늘 제과 이벤트는 부 사정상 중단한다고 적혀있었어.'

'그래? 아쉽네...... 잔뜩 기대했는데.'

풀죽은 이모티콘에서 리미의 상심이 느껴졌어요. 문득  리미의 실망한 표정을 떠올리자 마음이 아파졌어요.



그런데 어째서일까요.

아픈 마음의 뒤편에서 무언가가 질척하게 자라는 듯한 감각은 대체 무슨 이유로 그랬던 걸까요.

그날 밤은 기타도 치지 않고 지쳐 쓰려져 잠들었어요.

*

그 뒤로도 포피파 멤버들에 대한 세상의 마수는 끊임없이 뻗쳐왔어요.

제빵부가 사아야를 끌어들여 몹쓸 짓을 하려던 것.

서클에서 연습하는 한 밴드가 카스미를 꾀어내어 방음 부스로 끌고 가려했던 것.


원예부에서 분재를 미끼로 아리사를 덮치려 하던 음모.


영화감상부에서 공포영화 감상회를 이용해 리미를 데려가서 이런 짓 저런 짓을 하려던 일.


야마부키 베이커리에 단골로 다니는 여대생 언니가 사아야를 스토킹하던 것.


학생회 멤버들이 사요 선배와 린코 선배가 수학여행 간 사이 학생회실에서 아리사와 카스미를 덮치려고 한 일.

셀 수도 없이 많은 음모가 저희가 모르는 사이에 벌어지고 있었어요.

제가 만약 그때 경음부 연습에 가지 않았다면 포피파의 모두는 끔찍한 일을 당했을 게 분명했어요.

그래서 저는 제 손가락을 더럽히기로 했습니다.

제빵부의 부실로 달려가서 부원들을 유혹했고

방음 부스의 문을 걸어 잠그고 로터의 진동으로 밴드 멤버들을 유린했어요.

여대생 언니가 제일 쉬웠답니다. 슬쩍 다가가서 가출했다고 한마디를 하니 바로 집으로 들여보내줬어요. 아마 여대생 언니는 다음날 강의를 결석했을 거라고 확신해요. 대학교는 하루쯤 결석해도 괜찮다고 마리나 언니가 말했으니까요.


반대로 사요 선배와 린코 선배의 눈을 피해서 학생회 아이들의 쾌락을 채워주는 게 가장 어려웠어요. 저의 화난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마구 범해버리면 분명 사요 선배와 린코 선배가 눈치채버릴 것 같았으니까요. 조절하는 게 굉장히 힘들었답니다.



수많은 사람을 덮치고, 유혹하면서 그들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어요.

제과부나 경음부, 학생회처럼 나쁜 마음을 품었던 아이들도 있었지만, 원예부나 영화감상부는 짝사랑하는 마음이 이상하게 꼬여버린 느낌이었어요.

그 아이들의 옷을 벗길 때는 왠지 모를 죄책감이 들었어요. 붉은 얼굴로 죄를 참회하듯이 눈을 피하는 모습이 어딘가 동질감이 느껴졌거든요.


그렇지만 저는 그 죄책감을 집어넣고, 올라오는 혐오감을 참으면서 포피파에게 마수를 뻗는 여자들을 막았어요.

기타 현을 튕기는 시간보다 이름도 모르는 여자의 허리를 튕기는 시간이 더 길어졌어요. 피곤해서 학교에서 잠자는 날이 늘어났고 시간을 겨우 쪼개어서 하던 기타연습도 여러 명을 상대하고 나면 못하는 날도 많았어요.

자연스레 창고 연습에 빠지는 날도 빈번해졌어요. 카스미의 걱정스러운 눈빛이 마음을 찔렀지만 저는 이 짓을 그만둘 수 없었어요.


특히나 카스미는 자주 노려지는 것 같았으니까 더더욱 지켜줘야만 했어요. 아리사를 만나기 전에 여러 부 활동을 견학한 게 화근이었을까요. 배구부와 배드민턴부는 운동부라서 그런지 너무 힘들었어요. 다음날 조퇴하고 싶을 정도로 손목이 아팠답니다..


가끔은 저를 노리고 접근하는 여자들도 있었답니다. 강압적인 분위기로 순수해 보이는 저를 덮치려 하던 사람들은 모두 정신 차리지 못할 정도로 숨을 헐떡이면서 가버렸어요.

*


하지만 어느 날 저는 악마를 만나고 말았어요. 어딘가 슬퍼 보이는 얼굴을 하고 태연하게 제게 독을 주입한 악마를요.

어쩌면 그 악마 여자는 단순히 제 몸만 노리던 건 아니었을지도요. 저녁을 먹고 호텔이 아니라 집으로 데려갔어요.

그 때문에 더 긴장하고 들어갔어요. 집으로 초대하는 아이들은 대개 보내버리는 데 갑절은 힘들었거든요.

이름도 잊어버린, 아니 잊으려 노력했던 그 사람이 제게 부탁한 건 기타연주였어요. 기타를 가져오지 않은 저에게 어쿠스틱 기타를 주면서 말이에요. 아무 곡이나 연주해 달라는 그녀 앞에서 저는 한참을 고민했어요.


포피파의 소중한 곡을 이런 자리에서 치고 싶진 않았어요. 곰곰이 생각하다가 적당한 연습곡을 쳤어요. 기왕 치는 거니까 전력을 다하긴 했지만요.


언니는 제 연주를 다 듣고는 천천히 제게로 다가와서 저의 품에 얼굴을 묻었어요. 저보다 머리 하나 정도 작은 언니는 한동안 그렇게 있다가 침대에 가서 눕고 싶다면서 제 손을 잡아끌고 갔어요.



침대에서 그녀는 제 손만 잡은 채 저의 눈길을 피해 돌아누웠어요. 침묵 속에서 심장 소리와 시계의 초침소리만이 방안에서 울렸어요. 그 고요를 깨듯이 내뱉은 그녀의 말은 어쩌면 저주였을 지도 모르겠네요.



"타에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거지?"



갑자기 이름을 불려서 기분이 나빠졌어요.  그리고 뜬금없이 좋아하는 사람을 묻는 그녀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어서 저는 대답 없이 가만히 있었습니다.

잡고 있던 손의 힘을 빼고 슬그머니 손을 빼내려는 제스처를 취해 저의 불만을 소극적으로 표시했어요.

그런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언니는 말은 계속해서 제 마음을 두드렸어요.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서 뭘 하고 싶은 거야? 반대로 좋아하는 사람에게 하고 싶은 건 뭐야?"


잡았던 손을 놓아버렸어요.


"타에는 좋아서 이런 짓을 하는 거야?"

몸을 슬쩍 밀착시켰어요. 언니의 온기가 따뜻하게 느껴졌지만 포근하기보다는 더워서 불쾌했어요.


말없이 언니의 얇은 나시 안으로 손을 넣었어요. 언니는 소리를 꾹꾹 참았지만, 배와 허리는 떨리고 있었어요. 탄탄하지만 부드러운 피부의 감촉은 그래도 썩 나쁘진 않았네요.



"능…. 숙하네. 얼마나 많이 해…. 온거야?"


언니는 신음을 섞으면서 끊길 것만 같은 말을 계속 이었어요. 슬슬 짜증이 나서 돌핀 팬츠 밑으로 손을 넣어 속옷을 더듬었어요.


손끝에서 느껴지는 축축한 물기. 속으로 탄식을 하고 있는데 언니가 더는 억누르지 못하고 신음을 토해냈어요. 순간 제가 내뱉은 소리인 줄 알고 깜짝 놀라 팬티 안으로 파고들던 손짓을 멈추고 말았어요.


만약 제가 거기서 놀라지 않았다면,


"타에는...... 할 때 말이야."


놀라서 손가락을 멈추지 않고 언니가 신음만 뱉게 했다면


"누굴 생각해?"


그런 저주를 뱉지도 못할 정도로 몰아붙였다면


저는 저주에 걸리지 않았을까요?


그 짧은 말을 들은 뒤로는 기억이 희미했어요. 아마 격렬하게 해버렸겠지요. 그만하라는 말을 무시하고 밤새도록. 공연을 앞두고 필사적으로 연습하듯이 그 저주를 덧씌우기 위해서 전력을 다해 언니를 연주했어요.


제 연주가 부족했는지 그 저주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지만요.


날이 밝고 나서 언니는 일찍 나가야 한다면서 답례랍시고 돈이 든 봉투를 주었어요.


저는 기분이 엄청나게 나빠졌어요. 제 자존심이 짓밟히는 것 같으니까요. 저는 4차원 같다는 말을 자주 들어요. 하지만 4차원의 인간이라도, 3차원에서 오는 날카로운 상처에 면역인 건 아니거든요.

그 봉투는 마치 제가 몸을 팔고 다니는 것만 같아서, 헤픈 사람인 것 같아서, 포피파 멤버만 보면 앞뒤 안 보고 덮치려 드는 족속들과 다를게 없는 인간이 된 것 같아서 바로 찢어버리고만 싶었어요.


하지만, 봉투를 건네는 언니의 눈빛이 어딘가 슬퍼 보였기에 마지못해 봉투를 받았어요.

중간까지 같이 걷다가 언니와 갈림길에서 헤어진 뒤 슬쩍 봉투를 열어봤어요. 0이 4개가 찍힌, 저로서는 거의 보지도 못한 지폐가 얼추 30장은 들어있었어요.

지폐에 찍혀있는 험상궂게 생긴 할아버지의 얼굴을 보니 죄책감과 구역질이 밀려와 무심코 고개를 돌렸답니다.


저는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 봉투를 열고 지폐들을 배수로에 던져버렸어요. 빛바랜 녹색 종이 쪼가리들은 깃털처럼 춤추다가 지저분한 배수로 바닥으로 추락해갔어요.

누군가 본다면 배수로 뚜껑을 열고 미친 듯이 주워가겠죠. 그렇게 더러운 돈을 손에서 떠나보내니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답니다.


하지만 그녀의 저주는 제 가슴 속에 들러붙어 메아리치고 있었어요.


'할 때 누구를 생각해?'


순간 떠오르는 소중한 사람을 고개를 돌려 애써 지워버렸습니다. 지워버렸어야 했어요.

포피파를 마수에서 지켜낸 뜻깊은 날이었지만,
그날은 몹시 기분이 좋지 않아서 창고 연습도 쉬어버렸습니다.


나중에 우연히 그 언니의 집 근처를 지나갔을 때 언니의 오피스텔 앞에는 경찰차와 구급차가 잔뜩 서 있었어요.

호기심에 몰려든 사람들의 웅성거림 속에서 젊은 여자라든가 자살이라든가 그런 어수선한 말들이 들려왔어요.



어딘가 마음이 불편해져서 전 더는 그곳에 있지 못하고 발걸음을 옮겨버렸어요. 호기심은 고양이를 죽이고 토끼를 포악하게 만드니까요.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3편으로 완결 내는 것이 목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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